이런 거 올려도 되나 모르겠네
2년쯤 전에 번역하다 도중에 파일 날아가고 의욕 떨어져서 놨던 기억이 남. 2년 전에 번역하던 거라 지금이랑 내용 다를 수 있고, 검수 안 해서 오타도 많고 용어도 중구난방이고

하지만 지금 당장 10만자짜리를 검수할 의지는 없다
암튼... 하드 구석에 짱박혀있던 거 오랜만에 찾았다가 아까워서 일단 올려봄

사진 문제되면 걍 지움...

원문 및 사진 출처: https://scp-wiki.wikidot.com/scp-6500





O5 사령부의 명령에 의거
 이 파일은 모든 재단 인원에게 접근이 허가되었습니다.

열람자들은 반드시 이하의 예전문을 읽어야 합니다.


의식을 개시한다

여섯째 태양의 인내



나는 칼날이요, 나는 방패로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 팔이로다

폭풍 속에 나는 서있고

전설 속에 나는 남으리

 

나는 바래지 않으리라

 

나는 지팡이요, 나는 불꽃이로다

나는 풀려난 진실을 향한 매이로다

오로지 진실만을 나는 믿고

불리면 먼지를 나는 태우리

 

나는 바래지 않으리라

 

나는 칼이요, 나는 그늘이로다

나는 사냥감이 아닌 사냥꾼이로다

속삭임을 통해 나는 전해지고

불명예를 통해 나는 퍼지리

 

나는 바래지 않으리라

 

우리는 감시병이요, 우리는 성벽이로다

우리야말로 최후의 패이로다

고생 끝에 우리는 얻고

피를 통해 우리는 남으리

 

우리는 실패하지 않으리라.


 

이제 당신은 보호받고 있습니다.

굳은 각오를 품고 나아가십시오.

태양의 남극점에 인접한 SCP-179. 활동 징후 및 반응을 보이지 않음.


 

특수 격리 절차: 모든 재단 기지는 각 기지의 격리 기록을 재검토하여 격리중인 변칙개체 중 인류 혹은 변칙성에 대해 널리 퍼진 지식에 무의미한 정도의 피해를 끼칠 수 있는 변칙개체를 찾아내야 한다. 이후 그 변칙개체들을 비파괴성 변칙개체로 재분류하고, 이하의 항목을 포함한 조치를 취해 격리를 단순 관측 수준으로 최소화하거나 완전히 중단해야 한다. 

 

 ·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인간형 변칙개체에는 추적장치를 달거나 삽입하고, (생물학적/변칙적으로 용납될 수준일 경우) 해방한다. 각 개체는 상황에 따라 새 신분을 제공받을 수 있다.

 · 종교적, 신화적 유물은 각각의 문화적 기원지역 혹은 집단에게 반환한다.

 · 동물 및 기타 유기체는 윌슨 야생동물구제, 혹은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변칙개체들을 쾌적한 환경에서 돌볼 수 있는 집단에게 에게 양도한다

 · 도서 및 마법서적은 뱀의 손 구성원들에게 양도하여 방랑자의 도서관에 반환하도록 한다. 도서관 대사가 재단에게 반납 기한 위반에 대한 일시적 면책권을 승인하였다.

 · 변칙적인 지역에 넥서스와 동등한 수준의 기관을 제공한다. 출입통제는 대부분 해제된다.




SCP-2521의 잔해. 근처에서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담배가 발견되었다.



상기된 행동들은 지금까지 SCP-6500의 효과를 역전시키는 데에 불충분했지만, 그럼에도 유의미한 성과를 보였다.

 

전술신학부, 응용기적학부, 기원형이초학부(Invocational Pataphysics)의 회의에 의해 SCP-6500에 관련된 모든 작전은 비전秘傳적 요소를 포함해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는 문서까지 포함되며, 방어막 등으로 최대한 보호되어야 한다.

 

여섯째 태양 규약: 발견된 물품들(SCP-6500-α)이 손상되거나 SCP-6500의 영향 하에 놓이는 상황을 방시하기 위해 SCP-6500에 대응 및 무력화하려는 모든 특수임무(길들)에는 의식적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 여섯째 태양 규약 관련 자료들은 기적학적 방법으로 보호되어야 하며, 필수적인 의식의 부작용으로 인해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형식을 띄게 될 것이다.


설명: SCP-6500은 변칙성만을 향한 엔트로피 과정이다.   이는 우선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기적학(세간에서 “마법”이라 알려진)에 영향을 미치나, 이 영향은 기적학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SCP-6500은 지난 10년 1,500가지가 넘는 변칙적인 인물, 물건, 지역, 현상 등이 무력화된 현상의 원인이다.

 

SCP-6500은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 예시로 변칙적 유기체의 노화 가속이 있다. 이 경우 기존에 죽지 않는다고 여겨진 개체들까지 포함된다. 일시적 이탈에 의한 것인지, 혹은 평행 혹은 상위차원에서 전이된 것인지에 상관 없이 기준현실에 속하지 않은 개체들은 알려진 시공간 법칙과의 괴리로 인해 소멸 직전까지 사라지거나 심각한 구조적 붕괴를 겪었다.

 

공식적 인지와 연구를 통해 SCP-6500의 격리를 시도할 시 영향이 더욱 가속됨이 밝혀졌다. 추가적인 개입이 없을 경우 약 5년 내에 모든 변칙개체가 무력화될 것으로 예측되며, 이 경우 우주의 상태가 불가역적으로 변화되며 재단의 존재의의가 사라질 것이다.



O5-1의 사무실로부터


 고요함이 다가오고 있네.

 

이를 바란다고 해서 무어라 할 수는 없겠지. 변칙성으로부터의 자유. 이성으로 이루어진 새 시대. 우리의 이해 너머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는 곳. 우리의 형제들이 무의미하게 죽고 잊혀지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해서 무어라 할 수는 없겠지. 그들의 시선을 마주한 채 모든 것이 괜찮다고, 이제 힘든 일은 없을 거라고 속삭여주고 싶을 테니.

 

무어라 할 수는 없을 거야.

 

재단이 시작한 이래, 수많은 세대의 고결한 남자와 여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억누르는 데에 인생을 쏟아왔지. 그들은 충직히 이해의 끝자락에 선 채 도전적은 시선으로 심연을 들여다보고, 그러면서 자신들을 들여다보는 심연을 비웃어줬어.

 

그런데 왜 이제는 그 전통을 존중하면 안 되는지, 그들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어야만 하는지, 어째서 우리는 여태껏 완강히 가둬왔던 것들을 우리의 손으로 늘려야만 하는지 궁금한가?

 

SCP-6500은 마법의 끝을 의미하네. 이야기의 끝. 꿈의 끝. 감정과 지성을 가진 모든 생명들이 참을 수 없는 고립감을 느끼게 되겠지. 집단들은 찢어지고, 문화와 종교들은 완전히 무너져내릴 거야. 미지의 소실이라는, 자연적이지도 않고 견딜 수도 없는 것이란 말일세.

 

그건 모욕이자 용서할 수 없는, 그저 망각을 향한 행진에 불과하네.

 

그 행진을 멈추지 않는다는 건 우리의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져버리는 것이지. 그것의 영향을 받아들인다는 건 경이로 가득한 우리의 세상을 훔쳐가는 걸 내버려둔다는 것이고. 그것에 안주한다는 건 대학살이나 다름없네.

 

그리고 그건, 그것이야말로 용서할 수 없는 짓일세.

-O5-1

재단 의장.




기원: SCP-6500은 비교적 최근에 발생하기 시작한 현상이지만, 과거부터 각종 종교 및 오컬트 집단이나 그 구성원들은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 예측했다. 방랑자의 도서관에서 SCP-6500은 “치파틀리의 축제”, 혹은 더 간단히 “난국”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지막 오컬트 전쟁”의 전조로 여겨졌다.

 

SCP-6500을 예견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저자불명의 사르킥 성전이다. 성전은 위대한 카르시스트 이온이 요새도시 쿠르스트를 보며 느낀 바를 신화적으로 각색하여 담고 있다.


 


 소네 칼마Sone Kalma

 

“색에 잠기지 아니하고, 오만에 빠지지 아니하여라.”

 

주술사왕의 말은 기뻐하는 클라비가르를 향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다만 저 머나먼 곳을 향했다. 마치 천지만물을 향해 고하듯이.

 

“우리의 성전은 기쁘지 아니한 것이니, 우리를 억압하던 자들을 위한 연민을 가지거라. 설령 그들의 칼날이 그대의 목을 노릴지라도. 그들은 그저 존재함의 위대한 섭리에 무지할 뿐이니.”
 

이에 오로크는 질문했더,

 

“물론이옵니다. 파지웨매Pajiwemä(“버드나무어미.” 다에바 문화권에서 식물술을 사용할 수 있는 여성 지도자를 의미함.)의 속박을 견딘 자로서, 우리의 응징을 가장 먼저 축하해야 하실 분은 당신이 아니십니까?”

 

주술사왕의 시선은 요새도시의 타오르는 잔해를 향해 있었으나, 오로크는 마치 그 시선이 자신을 꿰뚫는 듯하였다.

 

“우리의 적은 그들의 권세 아래에 놓이지 않은 모든 것들을 짓밟으려 들 것이다. 바쥬마를 굶기는 것은 곧 자신들을 굶기는 것과도 같다.”

 

이온은 자신의 말에 고취되어있는 제자들을 향했다. 그들에게 고하며, 그들의 해방자로부터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잠든 포식자는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오직 밤, 그리고 공허만이 있을지니.”




재단이 이 성서를 발견하고 연구한 결과, SCP-6500은 최초의 다섯 감독관들에게 O5-0으로 알려진 재단의 한 설립멤버에 의해 가정되었다.

 

초기 재단의 일관적이지 못한 기록관리로 인해 O5-0에 관해 남아있는 정보는 극히 적으며, 대부분은 모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O5-0의 존재가 인정되는 이유는 그가 감독관들의 우두머리 자리를 맡는 것을 거부하였기에 O5-0라는 칭호가 모욕적인 칭호로 남았기 때문이다. 다음의 출처가 불분명한 기록들이 다양한 출처를 통해 O5-0으로 의심되는 사람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해진 자”


O5-0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 중 하나는 최초의 O5-4가 남긴 일기다. 그 일기 안에서 O5-0은 노리스 아클레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확한 국적을 알 수 없는 북유럽 출신 중년 백인 남성으로 묘사된다. 그는 “남성성을 가리기엔 부족한 옷차림을 한 초연한 골동품 수집가이자 성공한 사람. 만약 그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면 누군가는 그를 보고 디오게네스라고 여기겠지!”라고 묘사된다.

 

O5-4는 자신의 저술 중에서 아클레이를 정작 자기 자신은 권력과 계속 거리를 두려 하면서도 성장중인 평의회의 결정과 지시를 비판하는 광인이라 특징한다. 자가복제하는 변칙으로 인해 두 인원이 목숨을 잃은 모종의 사건에서 아클레이가 격리 규약을 창안해내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야 O5-4는 마지못해 그를 칭찬한다.

 

아클레이의 재단 탈퇴에 관해 O5-4는 “[그 남자]가 없으니 우리는 이제 나아지기만 할 것이다 …다른 이들은 그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물품들과 유물들을 잃은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만약 그가 심술쟁이 애처럼 자기 장난감들을 가져간 거라면 걱정할 것도 없다.”라고 기술한다.



  

“화원의 관리자”

 

세계오컬트연합의 기록 중에 바이에른 광명회의 구성원이자 초기 재단 구성원을 향해 첩보활동을 벌인 버트럼 수트미어가 남긴 것이 있다. 버트럼은 노르라는 이름을 가진 올리브색 피부의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직위는 없지만, 그녀의 말은 명령이나 다름없다.”라고 평한다. 그녀는 변칙성의 존재와 자연 속 변칙성의 위치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뛰어난 식물학자로 묘사된다.

 

버트람은 평의회의 주 구성원들의 대담한 행보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노르에 관한 기록은 비교적 적다. 그는 노르의 탈퇴로 이어진 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웃기지 않나. 나는 저 짐승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항상 불안감을, 위험에 빠진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마치 공기와도 같이 가벼우면서, 동시에 그들의 근처에 있는 동안 불안과 공포로 이루어진 차디찬 담요가 나를 덮은 듯했다. 나는 당시 이것을 단순히 정신적 문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내 상황 때문에 피어난 무해한 망상이라고 생각해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며 넘겼다. 하지만 그 여자가 사라진 날, 형제여, 나를 짓누르던 것이 함께 사라졌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인본주의자.”

 

윤리위원회의 창립위원장인 [신원 삭제됨]이 남긴 기록은 초기 재단의 행동과 그를 엄중히 감독하고 위원회의 초기 목적과 행동강령을 정립한 “명예감독관”에 대해 언급한다. 위원장과 오로지 전화통화로만 소통한 것으로 알려진 이 감독관은 변칙적인 대상을 위한 윤리적 고려사항의 “지능적이고 무시무시한 지지자”로 묘사된다.

 

이어진 기록에서 위원장은 이 감독관을 “영Zero”라고 칭하기 시작하며 그 자의 위업을 설명한다. 위원장은 “그녀의 지도 아래 우리는 인간형 변칙개체의 격리에 필요한 필수자원을 약 20퍼센트 감소시킬 수 있었다. 변칙개체들의 윤리적 취급을 위한 도덕적 장려책과는 관계 없이 그 효율성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윤리위원회가 독립성을 키워나갈수록 그 감독관과 위원장 사이의 소통은 점차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들 간의 마지막 소통으로부터 수 개월 뒤, 위원장은 영이라고 밝혀진 재단 고위직 인물의 내부적인 체포와 재판에 대해 언급했다. 이 인물은 재단 내에서 공식적인 지위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징계를 내릴 수 없었고, 그 대신 강제적인 은퇴를 통해 재단에서 추방되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관계자들을 위한 이 편지를 쓴다. 나는 더 이상 재단에서 양심적으로 있을 수 없다. 이 지도부는 변칙적인 대상을 위한 윤리적 고려사항을 향해 부정할 수 없는 혐오감을 드러내었고, 동시에 내 경력에 있어 은인과도 같은 여자를 추방시켜버렸다.” 

-윤리위원회 창립위원장의 마지막 기록.

.


 

 

O5-0은 조직의 성장속도와 영향력에 의한 이념차이가 원인으로 재단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감독관들은 SCP-6500의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를 바탕으로 재단의 범위를 제한시키자는 O5-0의 제안을 기각했다.

 

그 자의 실종 이후 O5-0의 숙소가 수색되었다. 생존한 인원들은 네 개의 변칙적 물품(공통적으로SCP-6500-α로 지정됨)에 대한 수십 개의 노트와 O5-0의 표기법을 발견했다. 그 기록들은 전반적으로 다른 변칙개체 혹은 SCP-6500와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한다.

 

상기된 네 개의 변칙적 물품의 회수는 이 작전의 최우선사항으로 간주된다.




여섯째 태양 규약


규약 개시

-배치중

 

기적서사 기관 작동 시작됨

 

임무 목표 처리중


…연결하는 중…

 


…연결하는 중…

 

인원 배치중

 

…인증하는 중…


…인증하는 중…

 

성격망PERSONALITY MATRIX 분석중


…불러오는 중…


…불러오는 중…

 

귀환몰입REVENANT IMMERSION 준비중


 

…시작하는 중…


…시작하는 중…

 

그대의 앞길이 진실되기를.




당신의 길을 고르시오.


전사

이끄는 칼날을 손에 넣어라. 형이초학적인 현실의 주름 속으로 기워진 전설적인 검. 그 검을 쥔 자는 영웅의 정신을 얻게 된다. 이 검이라면 위대한 여정의 끝에 SCP-6500을 극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사의 길

죽음 그리고 작가들.

 

제87기지

미합중국 위스콘신주 슬로스스핏


 “저는 이야기가 정말로 싫어요.”


사실은 조금 달랐지만, 이 편이 더 명료하리란 것을 그녀는 알았다.

 

연설대에 선 남자의 얼굴이 헬쑥해졌다. 차라리 그리스인을 혐오한다고 말하는 편이 나았을 수도 있었다. 그는 자신을 뒷받침하듯 그의 뒤편에 투영된 표지 슬라이드를 흘겨봤다. 그 슬라이드엔 ‘응용종말형이초학: 모든 것의 종점에서 이야기 들려주기’라 쓰여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설득하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언했다.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객석에 앉은 모든 관중들은 작은 델피나 이바네스가 강렬한 성격만으로 커다란 문틀을 완전히 휘어잡는 것을 목도하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좋아요.”

 

그녀는 그의 말을 받아들이고는 말을 정정했다.

 

“저는 허구가 정말로 싫어요.”

 

“…알겠습니다.”

 

그는 별로 달라진 게 없지 않냐고 묻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대답은 언제 들려줄 겁니까?”

 

그녀가 객석 통로를 걸어오며 가죽 부츠와 인견제 점프슈트의 삐걱임이 울려퍼졌다.

 

“까먹었어요.”

 

“저는 당신에게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뭐냐고 질문했습다. 원래는 제때 온 사람한테 질문하려 했는데, 당신이 참 강렬하게 입장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당신한테 질문한 겁니다만…”

 

그녀는 유일하게 낯이 익은 한 사람의 옆 빈자리에 풀썩 앉았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이바네즈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모습을 한 우도 오코리 박사를 향해 연민 섞인 미솔르 보여주었다.

 

“제가 늦은 이유는 제가 허구를 싫어하기 때문이에요. 다시 말해 저는 형이초학을 혐오한다고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강의자는 접니다. 그렇게 굴 거면 당신이 직접 강의를 하시죠.”

 

그는 설교단에 기대어 몸을 앞으로 숙였다. 이바네즈는 그가 신은 단화가 끽끽거리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이바네즈 대장.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뭐죠?”

 

그녀는 고민하는 척을 했다. 아주 잠시간. 그녀는 머지 않아 답했다.

 

제대로 된 이야기요.”

 


“난 마법이 싫어.”

 

이바네즈는 눈썹을 구부렸다.

 

“어떻게 마법을 싫어할 수가 있어?”

 

객석이 점차 비어감에도 오코리는 여전히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녀의 눈은 마치 귀신에 홀린 듯했다.

 

“공기를 싫어하게 될 수는 있겠지. 갑자기 달에 떨어진다면.”

 

“당신 친구는 대체 뭐가 문제인 겁니까?”

 

이바네즈의 시선이 통로를 향했다. 그곳엔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는 미남자가 있었다.

 

“당신의 그 멍청한 강의가 문제예요.”

 

“멍청한 건 당신입니다. 제 강의는 좋았다고요.”

 

그는 웃으며 받아쳤다.

 

“저는 기적술사예요. 선천적인.”

 

오코리가 말했다. 그녀는 안경을 벗고 콧대를 문질렀다. 이바네즈가 말을 이었다.

 

“저는 90퍼센트 물이에요. 당신은 90퍼센트 화끈한 공기고, 쟤는 90퍼센트 마법이죠.”

 

오코리는 미약하게나마 웃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에요. 난국이 시작된 뒤로,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피 500미리정도 뽑힌 듯한 기분이 들거든요.”

 

“싱클레어 박사의 연구실에 가보는 건 어때요? 우리의 마법사는 EVE준위가 낮은 사람들을 위한 뭔가가 있을지도 몰라요.”

 

오코리는 무기력하게 끄덕였다. 이바네즈는 어깨를 으쓱인다.

 

“고마워요, 뭐시기 박사님.”

 

“플레이스홀더.”

 

그는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

 

“플레이스홀더 맥닥터레이트Placeholder McDoctorate입니다.” (

 

그녀는 다시금 눈썹을 구부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알고 싶으십니까?”

 

“아니요.”

 

이바네즈는 오코리의 팔을 잡고 일어서는 것을 도왔다. 

 

 

오코리는 주인이 자리를 비운 싱클레어 박사의 사무실에서 자신의 문제를 일시적으로나마 해결해줄 주사 한 꾸러미를 찾았다. 이바네즈는 오코리가 자면서 그 증세를 떨쳐낼 수 있도록 그녀를 방에 데려다 주었다. 오코리의 증세와는 달리 플레이스홀더는 떨쳐내기 힘든 사람이었다.

 

“O5가 두 개의 001 제안을 동시에 기밀해제 하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인지는 아십니까?”

 

이바네즈의 뒤에서 그가 물었다. 긴 다리 덕에 그의 걸음걸이는 빨랐지만, 이바네즈는 목적지가 있다는 듯 더욱 빨리 걸었다.

 

“스완은 초차원적은 호러작가들 한 무리가 우리의 일상에 매번 간섭한다고 하고, 픽맨과 그 친구들은 서사의 개념 그 자체가 지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괜히 제가 그런 강연으로 모두를 겁준 게 아니란 말이죠.”

 

“괜하다고는 안 했어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말했다.

 

“저는 그냥 그 이유가 멍청하다고 했죠.”

 

“현실은 멍청하지 않아요!”

 

그는 그녀의 앞으로 뛰어가 몸을 돌리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복도를 뒤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존재는 변칙적인 체계들의 연결망으로 정의됩니다. 우리는 변칙적인 생태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요, 이바네즈 대장. 무언가가 유전적 다양성을 줄이고 있지만 그게 균등하게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난해한 괴상함의 한 층이 사라지면 다른 층이 그 틈새를 메우기 위해 확장하지요.”

 

그는 실험복 주머니에서 이상하고 성가신 기계 하나를 꺼내들고는 그녀의 앞에서 흔들었다.

 

“이 장치는 서사층의 요동을 측정합니다. 보시다시피 아직 바늘이 움직이고 있죠. 이곳 슬로스스핏에 마법이라고는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아직 허구의 힘 그 자체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진짜 마법을 이야기로 대체하라는 건가요?”

 

“이야기는 진짜 마법이 맞습니다!

 

플레이스홀더는 팔을 뻗어 지나가는 요원의 모자를 빼앗아들었다. 그는 빠르게 사과하며 이바네즈의 곁에 섰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외쳤다.

 

“알겠어요! 다 같은 거겠죠.”

 

그들은 병영에 도착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밤을 보낼 예정이었다. 그녀는 문 앞에 서서 벨트에서 열쇠를 집었다.

 

“이야기는 마법이 될 수 있겠죠. 그리고 제가 아는 한 제 일은 그 마법을 끝장내는 거고요.”

 

그녀는 문을 열었다.

 

“제 일은 이야기를 끝내는 거라니까요, 박사님.”

 

그녀는 잽싸게 안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뱃사공의 상륙

 


 

이바네즈는 나무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액체가 규칙적으로 떨어지며 내는, 마음이 평온해지는 듯한 저음이 그녀의 인지 끝자락에서 들려왔다. 점프슈트가 축축해진 것을 느끼며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살면서 한 번도 이불에 지도를 그려본 적이 없는데였다.

 

그녀의 두 번째 생각은 난 풀밭 위에서 잠든 적이 없는데였다. 그녀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얼어붙을 듯한 냉기를 품은 공기 속, 그녀는 자신의 숨결을 잠깐이나마 볼 수 있었다. 입에서 튀어나온 새하얀 입김은 곧바로 두 방향으로 무한하게 뻗어있는 강둑을 감싼 숨막히는 안개에 섞여 사라졌다. 그녀 자신은 느끼지 못하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나룻배에 부딪치고 있는 물결은 눈을 감았을 때 펼쳐지는 우주보다도 검었다.

 

배의 노걸이에는 노가 걸려 있었고, 선미에는 거적대기가 대충 걸쳐있었다. 그 거적데기 위에 다 해진 증잘머가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 거적대기는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거적대기는 한 번 부풀어올랐다. 딱 한 번. 마치 숨을 들이키고 참고 있듯이.

 

“안녕.”

 

그녀가 인사했다.

 

모자가 아래로 숙여 그 모자를 걸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한쪽 소매가 물 속에서 올라오더니 검은 물방울을 뚝뚝 을리며 강가를 미약하게 가리켰다. 그것은 아주 잠시간 그 자세를 유지하더니 바로 표백된 나무판 위로 엎어졌다.

 

“어쩔 수 없지.”

 

그녀는 말했다. 이건 꿈임이 분명했다.

 

그녀는 냉기가 전투화를 뚫고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발을 움직여 작은 나룻배에 승선했다. 부풀어올랐던 거적대기는 다시 쪼그라들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의 소임을 다해 모든 기력을 잃었다는 듯이.

 

“노는 내가 저어야겠네.”

 

그녀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가 탄 나룻배가 어귀를 따라 흘러가고, 뱃사공의 모자는 노의 움직임에 맞추어 규칙적으로 들썩였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하얀 안개 속, 거울면처럼 잔잔한 수면 위에서 영겁과도 같이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동안 노를 저은 그녀가 느낀 것은…

 

…그녀는 뭘 느꼈는지 몰랐지만, 무언가가 뒤에 있다는 것은 알았다. 뱃사공의 모자가 모자가 뒤로 넘어갔고, 그녀는 그것이 할 수만 있다면 다시금 손짓할 것임을 알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뒤를 보았고, 마침내 도시를 두 눈에…

 

…그녀는 도시 한복판에 서있었다. 강. 나룻배. 뱃사공. 전부 다 사라졌다. 돌벽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녀의 발 아래에는 물이 아닌 조약돌이 놓여 있었다. 어둑함이 내려앉은 옛스러운 도시 안, 거리는 가파른 언덕 위를 향하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닿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이바네즈가 쏘아붙였다. 목소리는 얇고 미약했으며 가련했다. 그녀가 걷기 시작하자 미약한 빛에 그녀의 그림자가 요동쳤다. 무수한 검은 형상들이 그녀의 발걸음에 맞추어 뒤따랐다.

 

이 마지막의 순간, 나는 너에게 희망을 줄 거야.

 

“넌 누구야?”

 

이바네즈는 발걸음을 멈췄다.

 

“배배 꼬인 꿈 같은 헛소리를 할 생각은 마.”

 

우리의 시간은 거의 다했어.

 

…그녀는 교회로 이어진 넓고 하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계단은 그림자 같은 형상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녀가 그것들을 지나칠 때마다 그녀를 향해 눈짓하고는 했다. 계단의 끝에는 반듯한 돌 연단이 놓여 있었다. 그곳엔 새하얀 거적대기가 또 다른 환상풍에 휘날리고 있었다.

 

나에게 다가와. 그리고 시작하자.

 

바람이 갑자기 세차게 불어 그녀는 균형을 잃고는 무릎을 꿇었다. 그녀가 두 귀를 막고 무언가를 큰 소리로 내지르자, 거적대기가 날아가고 그 아래에 있던——

 

 

제87기지

 

미합중국 위스콘신주 슬로스스핏


“환영이네.”

 

오코리가 하품하며 말했다. 그녀는 식욕이 없는지 접시 위에 놓인 차가운 치킨 샌드위치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이야기의 씨앗이죠.”

 

플레이스홀더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는 한 입만에 샌드위치 절반을 삼킨 뒤였다.

 

“그냥 개꿈이에요. 소화 안 된 치즈 때문이라고요.”

 

이바네즈가 사납게 말했다.

 

“디킨스 소설에나 나올 법한 미신 아닙니까.”

 

플레이스홀더는 지나가던 요원의 신발에 작은 닭고기 조각을 날리며 그녀의 말을 곧바로 부정했다.

 

“치즈는 악몽의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주인공적 성향이야말로 확실하게——”

 

“환영.”

 

오코리가 대화를 끝냈다. 그녀의 인상은 어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이 나빠보였다.

 

“환영을 보는 또 다른 확실한 방법이 뭔지 알아요? SCP-5923이에요.”

 

“그게 뭔데?”

 

이바네즈가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터키에 있는 고독한 도시. 우리가 거기에 관광객들을 잔뜩 보내기 전까진 꿈 속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고향’에 돌아와달라고 빌고는 했어. 관광객들을 유도한 뒤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는데.”

 

마법사는 자신의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 꿈 속엔 강이 있었어? 나룻배는? 뱃사공은?”

 

이바네즈는 끄덕였다.

 

“안개도 있었고? 교회나, 새하얀 옷을 입은 자도?”

 

이바네즈는 반쯤 끄덕였다.

 

“대충 그랬지.”

 

오코리는 등받이에 기대며 말했다.

 

“5923이네. 너한테 뭔가를 바라고 있는 거야.”

 

“아마 죽어가고 있는 거겠죠.”

 

플레이스홀더가 말했다.

 

“다른 모든 변칙적인 것들처럼 말입니다. 당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봅니다.”

 

“아니면 그것이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든가요.”

 

이바네즈는 받아쳤다. 그 말에 나머지 둘은 동시에 의문을 표했다.

 

“저한테 말을 걸었거든요…”

 

그녀는 살짝 놀라며 말했다.

 

“제가 균형을 수복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한테 검을 하나 보여줬죠. 열쇠라면서요.”

 

그녀는 말하면서도 자기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박사들은 의미심장한 시선을 이바네즈에게 보냈다.

 

“좋습니다.”

 

플레이스홀더가 말했다.

 

“규칙을 따라봅시다. O5들은 6.5k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의식적이어야만 한다고 했죠. 어쩌고 저쩌고 변칙성의 힘을 보강한다고.”

 

그는 이바네즈를 가리켰다.

 

“터키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해보세요.”

 

“터키에 가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좋습니다. 부름에 응하지 않았으니 이제 계속할 수 있겠군요.”

 

그는 오코리를 향해 말했다.

 

“환영을 위한 여정의 규칙은 뭐죠?”

 

“환영이 먼저 왔는데 환영을 위한 여정이라 할 수 있겠어요? 그건 그냥 여정이잖아요.”

 

오코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카야쾨위 마을


터키공화국


 "와."

 

이바네즈는 감탄했다.

 

"진짜 끔찍하네."

 

그들은 사람으로 가득한 마을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눈을 부릅뜬 채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언덕길을 따라 놓인 건물들 사이로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한 중년 남자는 살구가 잔뜩 쌓여있던 가판대를 엎었다. 살구들이 언덕 아래를 향해 굴러갔다.

 

"다들 앉혀요."

 

그녀를 따라온 열 명의 기동특무부대원들이 흔들리던 사람들을 땅 위에 앉혔다. 오코리는 이미 무릎꿇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싱클레어 박사의 주사를 주사하려 하고 있었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였다.

 

"저들은 왜 저러는 겁니까?"

 

플레이스홀더는 우발적 과일해방자를 업으려 하고 있었다.

 

"이 장소 때문이에요."

 

오코리가 하품하며 대답했다. 그녀는 단어 사이사이 계속 하품을 하고 있었다.

 

"이 장소는 사람들의 활력으로 살아가거든요."

 

"흡혈마을이라도 돼?"

 

이바네즈는 허리춤의 홀스터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아니."

 

오코리는 숨을 깊게 들이쉰 뒤 말을 이었다.

 

"활력을 빨아먹는 게 아니라... 모방하는 거야. 방문객들을 신경쓰거든. 지금 이렇게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그렇겠죠. 이 마을은 굶주렸고, 당장 먹을 식량이라곤 저들밖에 없으니까요."

 

플레이스홀더가 말했다.

 

"확실하진 않은─"

 

오코리는 땅이 갑자기 거세게 흔들리는 바람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바네즈는 겨우 서있었고 플레이스홀더는 살구 가판대 위로 쓰러졌다. 도로가 마치 파도처럼 흔들리며 그들을 덮쳤다. 돌 파편과 먼지가루가 사방팔방으로 흩날리고 건물들이 무너져내리면서 그들의 시야가 새카맣게 물들고...

 

지형이 바뀌었다. 그들은 메마른 수원의 한가운데에 서있었고, 쓰러져있었고, 앉아있었다. 그들의 눈 앞에 이바네즈의 꿈 속에 나타났던 교회가 솟아올라 있었다. 기동특무대는 보이지 않았다.

 

빨리. 긴박한 애원이 들려왔다. 나를 찾아줘. 빨리.

 

"나한테 말하고 있어."

 

이바네즈는 수원에서 나왔다. 

 

"검을 찾으라고 말하고 있어."

 

"저기."

 

오코리는 거친 숨결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녀의 손은 교회의 현관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서관이야. 마법이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느껴져서..."

 

그녀는 고개를 털고 말을 이었다.

 

"도서관 안에 있어."

 

"말 되네요."

 

플레이스홀더는 기동특무대원들과 연락을 취하려는 이바네즈를 일으켜 세웠다.


 

 

도서관은 꽤나 수수했다. 카야쾨이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고, 실상은 마을이라기보단──

 

"관광객들이나 털어먹는 함정이지."

 

이바네즈는 말했다.

 

단 한 명뿐인 손님은 말 그대로 책 속에 얼굴에 파묻은 채였다. 안내데스크 뒤편의 사서는 멍하니 컴퓨터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관심이란 관심은 도서관 속 세 번째 인물이 모조리 가져갔다.

 

가져가. 새하얀 로브를 뒤집어쓴 인영이 말했다. 흠집이 잔뜩 나있는 모자이크 바닥 한 가운데에 서있던 그것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리는 검을 든 새하얀 팔을 내밀었다.

 

이바네즈는 권총을 손에 쥐며 말했다.

 

“수상한 짓은 생각도 마.”

 

모든 미지의 끝은 곧 모든 이야기의 끝과도 같아.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그녀의 귀를 마치 간질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모든 이야기의 끝은 곧 모든 변화의 끝이기도 하고.

 

로브가 벗겨지고,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반짝거리는…전과 다름없이 로브를 두르고 있는 인영의 동상이 나타났다. 이바네즈는 이어질 말에 긴장하고 있었다.

 

모든 변화의 끝은 모든 것의 끝이야.

 

이바네즈는 졸고 있는 학자의 옆에 있던 의자를 하나 끌고 와서 동상의 앞에 내려놓았다. 플레이스홀더는 떨어진 로브를 줍기 위해 몸을 숙였다.

 

“조심해.”

 

오코리가 기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안내데스크에 기댄 채 겨우 서있는 중이었다.

 

이바네즈는 동상의 손에 들린 검을 회수하기 위해 의자를 밟고 올라섰다. 동상의 손을 비집고 들어가 검을 쥐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손이 검의 손잡이를 감쌌다. 그녀는 숨을 들이쉬었고…

 

…동상의 손에서 검을 해방했다.

 

그녀는 숨을 다시 내쉬며 검을 가까이서 살폈다. 90센티미터가 안 되는 길이의 검날과 둥근 코등이, 광 낸 참나무 손잡이로 된 한손검이었다. 코등이의 가장자리에 어떤 문구가 각인되어있었지만 해석할 수는 없었다. 익숙치 않은 문자의 그녀의 눈이 따가워졌다.

 

“이제 어쩌지?”

 

그녀는 의자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한 손에 쥔 무기의 무게 탓에 조금 균형이 깨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걸 어딘가에 꽂아넣기라도 해야 하나?”

 

플레이스홀더는 생각중은 듯했다.

 

“드래곤만큼 검을 꽂아넣기 적절한 것도 없죠.”

 

오코리의 머리가 한 쪽으로 기울어졌다.

 

“너한테도 무슨 목소리가 들려?”

 

이바네즈는 오코리에게 물었다.

 

오코리는 대답 대신 바닥 위에 쓰러졌다. 그녀는 숨을 가쁘게 쉬며 목재 가구에 고개를 기대었다. 그녀의 동행자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이바네즈는 뛰는 도중 검에 다치지 않도록 조심했다.

 

오코리는 얼굴을 찌푸린 채 말했다.

 

“이 안에 길이 있어.”

 

“어디로 이어지는 길이죠?”

 

플레이스홀더가 이바네즈에게 주사를 놓아주기 위해 가방을 뒤지며 말했다. 주사를 찾은 플레이스홀더는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로브를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길.”

 

오코리가 반복했다.

 

“전이문. 느껴져.”

 

그녀는 눈을 자꾸만 깜박거리고 있었다.

 

“모든 길은 노크를 해야 하는데, 이번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녀는 검을 바라보았다.

 

“그 목소리가 무어라 해주지는 않았어?”

 

이바네즈는 고개를 저었다.

 

“그 목소리는 이제 떠난 것 같아. 혹시 이거에 감이라도 잡히는 게 있어?”

 

이바네즈는 코등이에 각인된 문구를 오코리에게 보이며 물었다.

 

마법사는 눈을 찌푸리더니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못 읽지만 읽을 수 있을만한 사람은 알아.”

 

그녀는 고개를 안내데스크에 기대었다.

 

“뱀의 손을 찾아야 해.”

 

플레이스홀더는 오코리에게 주사를 놓아주면서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아, 뱀의 손 말입니까. 정말 친절한 친구들이죠. 참 좋은 생각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도 더 마법의 종말을 막고 싶어할 거예요. 예전이랑은 다르다고요.”

 

비꼬는 플레이스홀더에게 오코리가 현 상황을 상기시키며 말했다.

 

“길이 정확히 어디 있는 건데?”

 

이바네즈가 끼어들었다. 오코리는 몸을 돌려 나무를 두드렸다.

 

“이쯤에─”

 

데스크 안에서 무언가 딸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코리는 당황하는 수밖에 없었다.

 

“네가 말한 노크가 진짜 노크를 말하는 줄은 몰랐는데.”

 

이바네즈는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원래는 진짜 노크 아니야.”

 

바닥 위에서 꿈틀거리던 오코리를 플레이스홀더가 일으켜 세웠다. 오코리는 이번만큼은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난국의 여파인가봐.”

 

“아니면 이것이야말로 이 서사 속에서 당신이 배정받은 역할이던가요.””

 

형이초학자는 말했다. 오코리는 불만이 많아보였지만 굳이 반박을 하지는 않았다.

 

이바네즈는 데스크 반대쪽으로 돌아가 정신이 혼미해보이는 사서를 옆으로 치웠다. 그러자…

 

“이런 시발.”

 

책상 안쪽에 사물함이 하나 있었다. 사물함 문은 열려있었다. 그 너머에 무엇이 펼쳐져있는지 보았을 때, 이바네즈는 다시 한 번 검을 떨어트릴 뻔했다.

 


방랑자의 도서관


 

그들은 사물함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들의 아래 있던 카야쾨이의 차가운 돌바닥은 어느새인가 따스한 풀밭이 되어 있었다. 썩지는 않은, 단단하고…광을 낸? 나무판들이 그 아래에 있었다. 이바네즈는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서기로 했다. 일어선 뒤에는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개간지이면서 동시에 화려한 학당인 곳에 서있었다. 지붕 대신 폭풍구름으로 뒤덮인, 책들이 빽빽히 꽂힌 나무들로 가득한 이 곳은 그녀가 본 가장 웅장한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동행자들을 향해 뒤돌았을 때, 따스한 바람이 오래된 종이의 향기와 멀리서 들려오는 싸움소리를 싣고 불어왔다.

 

오코리는 아직 풀바닥 위에서 기고 있었다. 그녀는 미안한 눈치로 이바네즈를 올려다보았다.

 

“나 못 일어날 것 같아…”

 

이바네즈는 검을 플레이스홀더에게 넘기고 친구를 부축하기 위해 몸을 굽혔다.

 

“마법이 없어졌으니 몸이 좀 더 가벼워졌으면 좋겠네.”

 

그들은 사방으로 뻗은 문학으로 가득한 나무들로 세운 벽 사이로 걸어갔다. 그들은 거대한 구조물을 지나칠 때마다 한 번씩은 멈춰 초자연적인 풍경을 구경했다. 15분동안 그들은 “프락시스!”라고 외치며 2미터짜리 눈으로 이루어진 덩어리에 손가락뼈를 찔러넣어보는 움직이는 해골, 거대한 양장 책을 이용해 지점토 바퀴벌레 군단을 찍어내는 눈 넷 달린 초록색 생물체, 너무 빨리 도망쳐버린 바람에 뭘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던 뱀과 공룡의 중간쯤 하는 거대한 생물체, 천장에서 내려온 거대한 팔에 잡힌 채 잔뜩 겁먹고 어떻게든 벗어나보려는 세 명의 로브를 쓴 남자들 등을 보았다.

 

오코리는 팔을 길게 뻗어 책장 속 책들의 겉을 조심히 쓸었다. 깊게 숨쉬던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저건 뭡니까?”

 

플레이스홀더가 물었다. 이바네즈는 한 팔만으로 오코리를 지탱하듯이 자세를 바꾸었다. 이제 비게 된 그녀의 다른 쪽 팔은 재빨리 그녀의 허리춤으로 향했고, 이윽고 날카로운 총성 하나가 나무 계곡에서 울렸다. 총탄은 도약중이던 부풀어오른 신경다발에 충돌했고, 서로 금속조각과 핏더미로 분해되었다.

 

“그러게요.”

 

이바네즈는 총을 내리며 말했다.

 

“대체 뭐였을까요.”

 

“쏘기 전에 조준하기는 한 건가요?!”

 

플레이스홀더는 거미 같은 무언가의 잔해를 살피기 위해 몸을 굽혔다. 칼은 곁에 내려놓은 뒤였다. 플레이스홀더가 입을 열었다.

 

“당신, 진짜 무섭다고요.”

 

“시끄럽기도 하고.”

 

오코리가 중얼거렸다.

 

“다음 번엔 그런 짓 하기 전에 날 먼저 내려놓아 줘.”

 

이바네즈는 조심히 오코리를 내려놓았다. 마법사는 떨며 말했다.

 

“지금은… 이게 나은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오코리의 말을 끊고 재빨리 검을 들어 단숨에 위로 휘둘렀다. 또 다른 살로 된 더미 하나가 가까운 천장에서 떨어지던 중 이바네즈가 휘두른 검의 면에 맞고 날아갔다.

 

“당겨!”

 

이바네즈는 그리 외치고 두 번째 총성이 울렸다. 이번엔 피로 된 곤죽이 책들을 향해 날아갔다. 백과사전 몇 권이 피로 흥건해졌다.

 

“앗.”

 

플레이스홀더가 입을 열었다.

 

“망했네요.”

 

그는 흡혈거미 군단이 차지한 채 거미줄로 된 벽이 지어지고 있는 복도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바네즈가 다시 균형을 되찾기도 전에 그 거미들의 벽이 무너져내렸다. 끝없이 늘어선 버스 행렬보다도 더 거대해보이는, 빨간 등을 가진 지네 하나가 거미들을 저 멀리 날려보냈다. 땅에 남아있던 것들은 지네의 먹이가 되었다. 마지막 남은 거미가 지네의 뱃속으로 사라지자 그것의 짙은 갈색 배가 주홍색으로 빛났고 살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가득 울렸다.

 

어깨에서 얇은 불기둥을 뿜어내기 시작한 그것은 아직 남아있던 일행을 노리기 시작했다.

 

이바네즈는 오코리의 곁에서 겁을 먹은 채 쭈그러져있던 플레이스홀더를 보며 물었다.

 

“저것도 드래곤으로 칠 수 있겠죠?”

 


 

“옥리들!”

 

거대한 공포가 소리쳤다.

 

“감히 내 도서관에서! 너희들은—”

 

그것의 다리가 갑자기 쭉 펴지고 몸통이 바닥 위에 쓰러졌다.

 

“이런, 방해되는군.”

 

그것은 중얼거렸다. 이바네즈는 검을 치켜든 채로 가만히 서있었다.

 

“저는 뭔가를 잡으러 온 게 아니에요.”

 

그녀는 기차만한 생물체를 대적하며 자기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상당히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단지 정보 하나를 얻기 위해 왔을 뿐이에요. 그리고 충고하는데, 돕는 게 좋을 거예요.”

 

“나는 안내인이 아니다, 이 한입거리도 되지 못할 멍청아.”

 

그것은 다시 다리(?)로 땅을 딛고 일어섰다.

 

“그 얼토당토 않은 제안의 대가로 널 완전히 박살내주마.”

 

그것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스스로에게 물었다.

 

“박살? 찹쌀? 어찌 됐든 나는 너희 족속들을 믿지 않아. 나는 도둑들과 책을 태우는 자들을 혐오한다!”

 

“차라리 거미를 혐오하는 게 어때요?”

 

이바네즈는 가까이 있던 살덩어리 괴물을 거대한 지네를 향해 걷억찼다. 그것은 다리 하나를 들어 날아오던 살덩이를 순식간에 쳐내었다.

 

“너는 거미혐오자인가?”

 

그것은 다시 뒤로 물러났다. 이바네즈는 한순간 그게 자신의 뱃속에서 불타고 있는 거미들과 합류하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이바네즈의 예상을 깨고 놀라울리만치 부드러운 말소리가 그들이 있던 공간을 가득 채웠다.

 

“거미혐오자! 썩 나쁘기만 한 놈은 아니군! 나는 여덟 번째 기록보존사라네. 친구들은 나를 라운더피드라고 부르지.”

 

그것의  T자 눈꺼풀이 닫혔다.

 

“그대들은 나를 여덟 번째 기록보존사라고 부르게.”

 

“좋아요.”

 

이바네즈는 검을 내리며 말을 이었다.

 

“왜 도서관이, 비유적인 의미로 불타고 있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비유라고 할 것도 없다네.”

 

기록보존사는 오코리가 살면서 본 공간 중 가장 거대한 공간을 드러내기 위해 거구를 치웠다. 끝도 없이 이어진 데스크, 책장, 책상과 의자. 긴 의자와 소파, 랜턴, 화로, 잡지선반과 연설대. 그 공간은 살아 숨쉬고 있다는 듯이 수축하고 팽창하고 있었다. 기록보존사가 몸을 완전히 치운 뒤에야, 오코리는 왜 비유가 아니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천루만큼이나 높게 쌓인 책장들은 새빨간 살덩어리 거미들로 이루어진 징그러운 연결망으로 완전히 뒤덮여있었다.

 

“대연회장이…”

 

오코리는 숨을 들이쉬었다.

 

불꽃이 거미들을 타고 번졌다. 그 광경을 본 이바네즈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좆됐네.

 

“질문을 고칠게요. 왜 도서관에 저… 뇌거미들이 들끓고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라운더피드는 쌕쌕거리며 팽창하고 수축했다.

 

“옛 마법이 죽어가고 있어. 그래서 길이 열렸고, 이제는 닫을 방법이 없다네. 그 길을 타고 우리가 원하지 않던 것들이,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것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이지.”

 

“그것들이 대체 뭔가요?”

 

플레이스홀더는 이바네즈를 따라 들어오며 말했다.

 

“절도, 도서관 기물의 파괴, 도서관 기물이나 다른 이용자들을 섭취한 죄로 쫒겨난 전 이용자들일세.”

 

저 멀리서 거미떼가 날아오르자 거대하고 둥근 머리가 위로 향했다.

 

“물론 기괴한 괴물들도 있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며 존재하는 것들. 저것들도 그 중 하나라네.”

 

지네의 빛나는 초록색 눈이 좁아졌다.

 

“대연회장은 찾아오는 것들을 위해 알아서 수축하고 팽창하지. 평소에는 편리했겠지만, 지금은 아닐세.”

 

오코리는 떨면서도 일어서며 물었다.

 

“저것들의 이름이 뭔지 아시나요?

 

“우베로스Ueberoth의 반쪽짜리 뇌라네.”

 

라운더피드는 침을 뱉었다. 침은 새카만 덩어리였다. 침에 닿은 초록 판은 녹슨 쇠 같은 냄새를 풍기며 녹아내렸다.

 

“지식을 향한 증오. 공허한 우베로스. 분별없는 거미줄의 우베로스. 흔적 없는 자정의 아귀 우베로스.”

 

“그거 남자 이름인데요.”

 

이바네즈가 말했다. 기록보존사는 이빨을 딱딱거리며 되물었다.

 

“뭐라고?”

 

“우베로스요.”

 

이바네즈는 증식하는 고기뇌세포 덩어리들을 보며 말했다.

 

“80년대 야구선수예요. 아버지가 야구 팬이셨거든요.”

 

연회장의 꼭대기는 이제 새빨갛게 물결치는 거짓 천장으로 덮여 있었다.

 

“피터 유베로스라고 있어요.”

 

이바네즈가 말했다. 거미들은 이제 과실을 맺고 있었다. 한 무리의 안내인들이 빗자루로 열심히 거미들을 쓸고 있었다.

 

“한 90프로는 확실하거든요.”

 

“저도 압니다만. 저것이 그 야구선수같지는 않습니다.”

 

플레이스홀더가 말했다. 이바네즈는 쭈그려 앉더니 신발끈을 조이며 라운더피드에게 물었다.

 

“벽타기는 좀 해요?”

 

라운더피드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누구보다도 더 잘 타지.”

 

라운더피드는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했다. 이바네즈가 이어서 질문했다.

 

“갑각은 얼마나 단단하고요?”

 

기록보존사는 기대감에 부르르 떨고 있었다.

 

“네 기대를 져버리지 않을 정도로는 딱딱하다네.”

 

“대체 무슨 생각을—"

 

오코리가 그리 물으려 했지만, 이바네즈는 오코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땅을 박차고 뛰어 거대한 지네의 등 위에 올라탔다. 그녀가 올라타자마자 지네는 쏘아지듯이 날아가 거대한 뇌 아래 동굴 같은 공간으로 향했다.

 

이바네즈는 한 손으로 지네의 갑각을 단단히 쥔 채 다른 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 검은 칙칙한 흰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숨어있는 걸 추천할게요.”

 

라운더피드가 유기물로 이루어진 벽으로 향해 돌진하던 중, 이바네즈는 자신의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이바네즈는 거대한 절지동물의 등을 타고 맹렬히 올랐다. 하늘에선 거미와 책이 비퍼럼 떨어지고 있었다. 라운더피드는 턱으로 거미들을 물고 갈기갈기 찢었고, 뱀 같은 혀로 책을 조심히 받아 부드러운 배 쪽에 보관했다. 한 번은 마도서를 공중에서 낚아채 단번에 삼켜버렸다.

 

“지금 도서관 기물을 섭취한 거 아니에요?”

 

이바네즈가 소리쳤다.

 

“나는 보관을 위한… 소화관이 따로 있다네.”

 

라운더피드는 웃으며 말했다.

 

“내 소화액 중 일부는 무언가를 보존하는 데에 아주 탁월하지.”

 

이바네즈는 머리카락이 갑작스레 뜯겨나가는 감각에 대꾸를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꿈틀거리던 거미를 쥐고는 기록보존사의 옆구리에 패대기쳐 죽였다.

 

“좋아요.”

 

그녀가 외쳤다.

 

“작전명 거미조지기, 시작하죠.”

 

그들이 잔뜩 더럽혀진 책장 곁으로 지나가자 또 다른 악의로 가득한 것들이 돌진해왔다. 이바네즈가 검을 세게 휘두르자 검 면으로 맞은 거미가 멀리 날아갔다. 황금빛 받침대를 향해 날아간 거미의 화농으로 가득한 가슴팍에 두 개의 흠이 벌어졌다. 거미는 폭발헀다.

 

라운더피드의 거대한 눈이 뒤로 굴러 그녀를 보았다.

 

“검은 몽둥이가 아닐세!”

 

“머릿속이 야구로 가득해서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검을 다시 쥐었다.

 

“나는 야구가 무엇인지도 모른단 말이네.”

 

이바네즈는 세 개의 뛰어오르는 공포를 깔끔하게 절단했다. 진홍색 물보라가 기록보존사의 털을 더럽혔다. 기록보존사가 책장들 사이를 질주하고, 이바네즈는 균형을 위해 자세를 잡았다. 모든 방향에서 살덩이들이 그들을 덮쳐오고 있었다.

 


이바네즈가 검을 열심히 휘두른 덕에 다음 몇 분 간은 그저 새빨갛기만 했다. 기록보존사는 내장과 고깃덩어리의 안개를 뚫고 대연회장으로 향했고, 이바네즈는 기록보존사의 등 위에서 술취한 에롤 플린처럼 춤을 추었다. 그녀는 칼 끝으로 불운한 고깃덩어리 하나를 꿰뚫었다. 그것은 칼에 뚫린 채로도 이바네즈를 향해 다가오려 했다. 이바네즈는 그것을 곧바로 산산조각냈다. 익히지 않은 햄버거 덩어리 같은 것이 타일 바닥을 더럽혔다. 이바네즈는 팔을 크게 휘둘러 거미 다섯 마리를 한 번에 베어 라운더피드의 입 안으로 던져넣으면서 광인처럼 깔깔 웃었다.

 

수십층을 올라가자 마침내 천장이었던 곳에 닿았다. 기록보존사는 벽에서 뛰어 뚫린 공간을 거꾸로 넘어갔다. 이바네즈는 자리를 기록보존사의 배 위로 옮겨 검을 높이 피켜들고 거미줄 같은 천장을 찢어발겼다. 이바네즈의 몸이 진홍색 물줄기에 흠뻑 젖었다. 그녀는 너무 심하게 웃어버린 나머지 균형을 잃고 기록보존사의 위에서 굴러떠러질 뻔했다. 라운더피드의 것일지 모를 웃음소리 같은 것이 이바네즈의 웃음과 함께 울렸다.

 

유기물 막을 찢으며 떨어진 돌덩이가 기록보존사의 등을 강하했다. 기록보존사는 거대한 으라아앗차 하는 소리를 내며 방금 전까지 이바네즈가 있던 곳에서 불기둥 트림을 뿜어내었다. 이바네즈는 몸을 뒤로 굽히고 검을 크게 휘둘렀다. 아무런 의미 없는 본능뿐인 행위였지만…

 

…검의 끝에서 에너지가 솟아나 불길에 닿았다. 검이 불길과 하나되었다. 이제 검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었고, 이바네즈는 그대로 커다란 호를 그렸다. 연회장에서 불꼭의 폭풍이 몰아쳤고 살덩이 거미 무리가 불에 휩쓸려 죽어갔다.

 

라운더피드는 불 붙은 채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미들을 낚아채었다. 이바네즈는 남아있는 것들을 정리하게 위해 라운더피드의 머리까지 기어 올라갔다. 그들은 콘트라포스트토 같은 자세를 취하며 낄낄거리고 꽥꽥거렸다.

 

플레이스홀더와 오코리는 위에서 떨어지는 익은 회백질과 끓는 피를 피하기 위해 물러섰다. 라운더피드는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학살을 향해 최상층에서 곧바로 떨어지듯 내려갔고, 이바네즈는 덩굴을 타는 원숭이처럼 지네의 다리 하나를 타고 내려왔다. 그녀는 아직까지 살아있는, 공포에 질린 채 움츠러들어 있는 마지막 거미를 짓밟으며 착지했다. 거미는 새빨간 도넛 같은 모습을 하며 죽었다.

 

박사들은 이바네즈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뒤덮여 있었다. 새빨간 그녀의 얼굴 가운데에서 새하얀 틈새가 미소지으며 벌어졌다. 그리고 이바네즈는 외쳤다.

 

“나는 이야기가 너무 좋아!”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웃기 시작했다. 어찌나 격하게 웃었는지, 이바네즈의 목과 배가 아파왔다.

 

라운더피드의 매끄러운 갑각 위에서 불꽃이 춤추며 사그라들었다. 라운더피드는 어느새 다시 수십 권의 사본과 논문을 애지중지하는 사서로 되돌아와 있었다.

 


 

기록보존사는 검에서 물러서며 말했다.

 

“읽을 수도 없고, 읽을 수 있다 해도 읽고 싶지도 않군. 여기에 있는 누구도 너희를 도울 수 없어. 너희 스스로 근원을 파헤쳐야 할 걸세.”

 

이바네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흔적의 근원이 뭔지는 알려주실 수 있나요?”

 

“어, 그냥 찾지 맙시다.”

 

플레이스홀더가 말했다. 

 

“찾아야만 해요.”

 

이에 오코리가 바로 답했다. 오코리는 가까이에 있는 책장에 기댄 채로 힘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이야기가 끝날 테니까요.”

 

플레이스홀더가 가만히 오코리를 바라보자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여정, 이야기. 비슷한 거잖아요.”

 

이바네즈는 이를 악물었다.

 

“만약에 이 문구의 뜻을 알아냈는데, 단순히 ‘세계평화’이런 게 적혀있던 거면 가만 안 있을 거야. 진짜로.”

 

“그게 검의 목적일 수도 있겠네요. 당신을 엄청 열받게 만들어서 최강의 전사로 각성시키는 거죠.”

 

플레이스홀더가 장난스레 말했다. 이바네즈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기록보존사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길이 있나요?”

 

“길은 아닐세. 상처일 뿐이지.”

 

기록보존사는 이를 갈며 말했다.

 

“곪은 상처. 깨진 지 오래 된 어리석은 동맹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이지. 세븐폴드 전이문 너머에 있다네. 들어가면 곧바로 닫혀버린다는 것만 주의하도록. 도서관은 모든 지식의 장소와 연결되어있어. 다만…”

 

기록보존사는 몸을 떨며 말을 이었다.

 

“원해서 생긴 연결은 아니지. 가능하면 되도록 끊어버리고 싶군.”

 

“아, 마침 그것을 질문하려 했습니다.”

 

플레이스홀더가 입을 열었다.

 

“도서관은 가능한 모든 현실과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한 현실에 귀속된 공간이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 마법이 죽어가는 게 어째서 도서관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겁니까?”

 

기록보존사의 거대한 머리가 마치 고민을 하듯 한 쪽으로 기울어졌다.

 

“어쩌면 마법이 죽어가는 건 네 현실만의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네가 그 원인이라 하고 싶군.”

 

플레이스홀더가 움츠러들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저희를 전적으로 도와주시는 건 힘들 것 같네요.”

 

“그렇다네.”

 

지네가 바닥을 긁으며 말했다.

 

“머지 않아 이곳이 모든 현실에 있어 마법의 마지막 보루가 될 지도 모르는 법이니. 소용이 있을지 확실하지도 않은 너희의 심부름에 모든 것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일세.”

 

그 말에 이바네즈가 눈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저희는 지금 세상을 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조금만 도와주시는 것도 안 될까요.”

 

“이미 충분히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기록보존사는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듯 몸을 한껏 치켜새우며 말했다.

 

이바네즈는 새빨갛게 물든 카야쾨이 로브를 벗고는 밝게 빛나는 검에 비친 자신의 꼴을 살폈다.

 

“알겠어요. 그럼 전이문이 어디에 있는지나 알려주세요.”

 

이바네즈가 말했다. 라운더피드는 고개를 저어 몸에 묻어있던 피를 어느정도 털어내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금방 스스로 찾아낼 걸세.”

 

그리고 라운더피드는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이내 입이 열렸다. 라운더피드의 목구멍이 호박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라운더피드는 영창을 시작했다.


나는 너희를 급히 쫒아낸다

너희들이 슬픔만을 찾을 곳으로

흑단 선반에 놓인 검은 마도서와

너희들의 마음 속 시커먼 구덩이 속으로



“미안하네.”

 

영창이 끝나고 라운더피드가 작게 덧붙였다. 오코리와 플레이스홀더는 급히 물러났다. 이바네즈는 갑작스레 물길에 휩쓸리는 듯한 기운에 겨우 버티고 서있었다. 떠나기 전, 그녀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만약 이게 전부라면 어떡하죠?”

 

기록보존사의 눈꺼풀이 질끈 닫혔다.

 

“당신의 말이 맞다고 해도, 저희가 실패하면 도서관 밖에 변칙성이라고는 조금도 남지 않을 거예요.”

 

살아남은 방랑자들이 모여드는 탓에 폭주하듯 팽창하는 대연회장 속에서, 이바네즈는 겨우 입을 열었다.

 

“만약 도서관 밖의 모든 것이 죽어버리면요?”

 

“그렇다면 도서관만으로 충분할 것이야.”

 

라운더피드는 단호히 고했다. 이바네즈가 마침내 라운더피드를 보내줄 마음이 들었을 때가 되어서야 그것은 몸을 돌려 무리들과 합류하기 위해 떠났다.

 


 

일행은 무아지경 속에서 잘 정돈된 복도, 잘 가꿔진 정원, 넓은 공동실을 뚫고 날아갔다. 날아가는 그들의 주위에 도서관 이용객들이 파도처럼 몰려다녔다. 그들은 멍하니, 하지만 확실하게 도서관의 심부를 향해 점점 더 깊숙히 파고 들었다. 마침내 그들이 칠흑빛 금고문 앞에 다다른 순간, 그곳에 있던 건 그들 뿐이었다. 오코리가 금고 문에 손을 대자 더 큰 손의 윤곽이 금으로 짠 실처럼 펼쳐졌다.

 

문이 열렸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문이 열렸다. 그들의 심장이 뛰었다. 문이 열렸다. 모든 시간의 순간이 하나가 되었다. 문이 열렀다. 시간이 멈추었다.

 

문이 열리고 그들은 너머로 나아갔다. 나아간 뒤에야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문은 그들을 인정하여 열린 것이었다.

 

“난 마법이 정말로 싫어.”

 

이바네즈가 말했다. 오코리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문 너머의 방은 마치 대연회장이 불타고 남은 잔해를 작게 축소시켜놓은 것 같았다. 천장에 뚫린 구멍에서 빛이 내려와 박살난 타일 바닥을 어둡게 비추었다. 끈적한 검은 액체가 텅 빈 책장에서 흘러나와 중앙의 구덩이 속으로 흘러갔다. 마치 잉크처럼. 수많은 종이가 위에서 떨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 속으로 사라졌다.

 

플레이스홀더가 입을 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들은 원래 다 끝이 있습니다.”

 

이바네즈는 조심스레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섰다.

 

“이거 비유같지? 광기로의 추락에 대한 비유일까?”

 

이바네즈의 동료들이 그녀의 곁에 섰다.

 

“아뇨, 진전에 대한 비유입니다. 전환을 위한, 더 깊은 지식의 습득을 위한 진전이요.”

 

플레이스홀더가 말했다.

 

“이건 그냥 구덩이잖아.”

 

오코리가 말했다. 오코리는 일행의 앞에 선 채 환히 미소짓고는 공허 속으로 향했다.

 

남아있던 둘은 그녀가 떨어지는 것을 잠시 바라보더니, 손을 맞잡고 오코리의 뒤를 따랐다.

 

문이 닫혔다.

 



검은 금고실



 

이바네즈는 오늘로 벌써 두 번째 낙하를 겪고 있었다.

 

빛에서 점점 멀어지며 애써 눈을 감은 건 아니지만, 발이 땅에 닿았을 때는 애써 눈을 떠야만 했다. 앞을 볼 수 없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열려 한 순간, 그제서야 그녀는 무언가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했다. 그녀는 마치 화상입은 살껍질마냥 그것을 힘들게 벗겨내었다. 얼굴에 씌워졌던 것은 아무런 특징이 없는 새하얀 포르셀린 가면이었다.

 

그녀의 일행은 각자 자신의 가면을 손에 든 채 갑작스러운 밝음에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바네즈는 마스크를 내려놓고 빛이 일렁이는 검을 높이 들었다. 오코리는 검에 다가가 코등이를 손으로 쓸며 살폈다. 오코리는 놀란 듯 말했다.

 

“마법이 죽어가고 있는데, 어째서 이건 계속 강해지는 거야? 지금은 모든 것이 약해지고 있다고. 재단이 보유한 것들 중 절반은 이미 실패했을 정도인데. 2264는 열리지도 않고, 005랑 963은 아예 죽어버렸다니까? 근데 이건 왜 이래?”

 

“그래서 그 마법 도시가 이 검을 저희에게 넘겨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태 해결에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몰라요.”

 

플레이스홀더가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오코리가 동의했다.

 

“음.”

 

이바네즈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기엔 이 쉭쉭거리는 소리만 빼면 꽤 구린 검인데.”

 

그리 말한 그녀는 주위를 밝히기 위해 검을 치켜들었다.

 

“오늘은 그냥 도서관 탐험을 할 운명인가보네.”

 

그들의 앞으로 거의 무한하게 뻗어나간 검은 책장들로 이루어진 비좁은 복도가 나타났다. 지구의 곡률이 느껴질 정도로 길게 뻗어나간, 무지, 무지 비좁은 검은 책장들…

 

그들은 하나같이 몸서리쳤다. 이바네즈는 직감적으로 그 책들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책장들이 잘못되어 있다. 갑작스레 팽창하며 벌어지는 검은 책장들의 모습에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는—

 

“가야돼.”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강하게 고개를 털었다.

 

“빨리 움직여야 돼. 우리가—”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기 전에?

 

그녀는 곧바로 앞으로 나아갔다.

 

“빨리!”

 

그리 외친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우리의 비밀을 훔치러 왔나? 카야쾨이에서 들려왔던 목소리와 달리 이번 목소리는 약하지 않았다. 마치 텅 빈 우물 안에서 울리는 망가진 종소리와도 같은 그 목소리는 강하고 자신만만했다. 들쥐들은 독약으로.

 

그녀는 더욱 빨리 걸었다. 책장들은 죽은 손톱처럼 뒤틀리며 앞으로 뻗어나갔다. 책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책들은 그들을 인정하지 아니했다.

 

우리를 알고 싶나? 자신을 알고 싶나? 아니면 아직도 그 더러운 외설을 찾고 있나?

 

목소리는 조소적이고 모욕적이었다. 그것은 파멸적이고 매혹적인 웃음으로 요란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벌거벗은 듯했다.

 

“델피나?”

 

뒤쪽 저 멀리에서 오코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델피나?”

 

너는 우리의 처소에 왔다. 책장들이 닫히고 있었다. 책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너는 모든 아름다움과 망가진 것들의 종착점에 왔다. 그녀의 발걸음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너는 검은 알라가다에 왔다. 알라가다는 너를 환영한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나에게 오라. 목소리가 노래했다. 나에게 오라. 그리고 끝나라.

 

“끝날 수는 없어.”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눈을 떴다.



그녀는—네 명은—눈물의 어두운 웅덩이 속에서 서있었다. 물 속에는 종말의 계시에 잠겨 있었다. 표면장력 아래에서 유영하기 위해 젖은 페이지에서 말들이 흘러나왔다. 이바네즈는 몸을 숙여 손가락으로 막membrane을, 독과—

 

“그만!”

 

이바네즈의 외침에 일행은 뒤로 물러난 채 그녀를 바라보고만 했었다.

 

이것이 네 지식이다. 목소리가 말했다. 잠겨라.

 

그녀는 눈을 깜박였다.

 

“지식이라.”

 

그녀는 웅덩이 안으로 손을 뻗어 책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녀가 책을 닫자 젖은 섬유질들이 그녀의 점프슈트 위로 흘러내렸다. 표지에 무어라 쓰여있는지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 문자는 이름이 죽은 뒤에 남은 것들이었다. 그녀는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문자는 모든 이들의 안에 담긴 여물지 않은 광기였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눈을 더 가늘게 뜬 다음 마지막으로 한 번 다시 읽으려 시도했다.

 

제목은 간결했다. 약탈. 그녀는 책을 떨어트렸다. 책은 곧바로 물 속으로 잠겨들었다. 그녀는 다른 책을 집어들었다. 파멸과 장미. 다른 책을 집어들었다. 파멸의 전조. 바닷가로 떠밀려온 고래처럼, 영어 단어들이 조용한 알라가다어 사이에서 떠올랐다.

 

“그럼 그렇지.”

 

오코리는 이바네즈의 어깨 너머로 책을 살피며 말했다.

 

“알라가다 문서들은 도시 안에서 자동으로 번역돼.”

 

넷은 함께 선 채 웅덩이 가운데서 작은 원을 하나 형성했다.

 

“기록보존사가 말한 게 이것일 거야.”

 

이바네즈가 말했다. 그녀는 검을 치켜든 채 천천히 돌렸다.

 

“우리는 근원으로 찾아와야만 했어.”

 

순수한 빛과도 같이 빛나는 검은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바네즈는 큰 목소리로 읽어냈다.

 

“나는 바래지 않으리라.”

 

두고 보자고. 그녀의 세 번째 동행인이 내뱉었다. 이바네즈가 세 번째 동행인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녀의 위로 그것이 떨어졌다.

 

 


알라가다의 대사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그녀의 오른손을 파고들었고,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이바네즈는 웅덩이 속으로 쓰러졌다. 어두운 탁료 속에서 그녀는 감싸고 있는 것이 찢긴 채 뜯겨나가고 있는, 텅 빈 얼굴을 마주했다.

 

나는 너를 안다. 그것은 웃으며 말했다. 너는 영웅 따위가 아니지.

 

그녀는 수면을 뚫고 떨어졌다—아직 오코리와 플레이스홀더의 걱정어린 얼굴이 보이고 있었음에도. 그녀가 떨어진 곳은 제43기지의 중앙 승강기 앞 복도였다. 백 개의 붕대로 감싸인 망령들이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새인가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검은 이제 빛나는 최첨단 소총이 되어 있었다.

 

살인자. 가장 가까이에 있던 망령이 말했다. 그녀는 곧바로 그것을 총으로 쐈다. 망령은 총격당한 순간 보안복을 입은 채 겁에 질려있는 여자로 변했다. 양 팔이 어깨부터 잘려있던 그녀는 쓰러지듯 물러나며 새하얀 벽을 피로 물들였다.

 

겁쟁이. 그 다음 망령이 반항하듯 손을 치켜들며 울었다. 여자로 변한 망령은 이바네즈의 총격과 함께 피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옥리. 그녀를 향해 다가오던 망령들의 무리가 내뱉은 마지막 단어였다. 이바네즈는 뒤로 물러나고는 벽을 등진 채 연사로 총을 갈겼다. 피를 내뿜으며 쓰러지는 그들 사이로 갈퀴 같은 손이 나와 그녀의 얼굴을 잡고 피 웅덩이에 짓눌렀다. 너는 구원자 따위가 아니다.

 

이바네즈가 기침하며 웅덩이에서 얼굴을 들었을 때, 그녀는 잔해로 가득한 늪 위에 있었다. 하늘은 불탔고, 굉음을 내며 날아가는 비행기들이 대공포를 조립하고 있는 기동특무대 복장을 입은 남자와 여자들을 향해 폭격을 하고 있었다.

 

이바네즈의 손에 들려있던 전등은 두동강나있었지만, 불타는 하늘로부터 내려쬐는 백열광이 그녀의 앞에서 새빨갛게 물들고 있는 물을 비추었다. 작은 여자아이가 늪 위에 얼굴을 쳐박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뒷통수에는 깔끔한 관통흔이 하나 뚫려있었다. 이바네즈는 몸을 숙여—전등을 떨어틀리려는 강렬한 충동에 저항하며—차게 식은 여동생의 시신을 돌렸다.

 

“이건 진짜가 아니다. 붕대투성이 짐승의 거친 목소리 사이로 그녀의 목소리가 삼켜졌다. 짐승의 발톱이 그녀의 목덜미에 드리워 있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번엔 이바네즈도 저항했다. 부러진 전등으로 대사를 후려쳤다. 대사를 때리면 때릴수록 점점 더 커지고 강력해지고 자신만만해지는 것 같았다.

 

“이건 진짜가 아니야!” 그녀가 비명지르듯 외쳤다. “이건 다 꿈에 불과하다고!”

 

지금의 알라가다에선 꿈이 마법보다도 더 진실이다. 붕대들이 떨어지고 밤의 유연한 영상이 이바네즈를 감쌌다. 그녀는 전등을 총을 검을 쥔 손에서 힘이 점점 빠지는 것을 느꼈다. 대사가 그녀를 다시 한 번 물 속으로 쳐박은 뒤에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미지근한 수면 속에서, 그녀는 모든 것의 종말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한가지에 집중하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켰다. 수원에서의 실패. 열 명의 유능한 남자와 여자들이 죽은 채 누워있는 곳.

 

너는 지도자 따위가 아니다. 그녀의 머리를 파고든 날카로운 발톱이 그녀의 고개를 끌어올렸다. 피로 가득 찬 그녀의 두 눈에 달빛이 비추고 있는 비가 내린 뒤의 카야쾨이의 지형이 들어왔다. 그녀의 머리가 수원에 맺힌 웅덩이 속에 쳐박히며, 그녀는 뜨거운 공기와 고인 빗물을 잔뜩 들이마셨다. 짐승은 교회의 계단 위에 서서 객관적인 악의를 품은 채 그녀를 내려보았다. 나는 너를 속삭임만으로 찢어발길 수 있다. 짐승이 울었다. 하지만 네 스스로 파멸하는 것이 훨씬 좋은 유흥거리가—

 

“발사.”

 

그녀가 내뱉었다. 그녀는 소총 열 개 분의 할로우포인트 탄약이 대사를 향해 쏟아지는 걸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원들은 탄창을 비울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벌집이 된 괴물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은 뒤 계단에 얼굴을 박고 쓰러졌다. 이바네즈는 쓰러지는 괴물의 뒤에서, 신나게 강력한 바람을 불어대고 있는 하얀 로브를 잠시나마 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상황은 곧바로 비존재로 돌아가버렸다.

 

이바네즈는 끝없는 지식의 웅덩이 안에서 네 발로 기고 있는 채였다. 그녀의 적은 물 속에 얼굴을 박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검을 느슨히 쥐고는 뒤에 있는 일행에게 넘겼다. 괴물을 향한 증오에 파묻힌 그녀는 누가 검을 받아갔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단지 괴물의 목을 짓밟아 부러트리기만을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쇠사슬이 끊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동굴 안에서 한번 울린 뒤에야 그녀는 먹물 속에서 자신을 끌어내었다. 그녀는 만족스러웠다.

 

오코리는 말 없이 이바네즈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검은 어둠 속의 봉화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까 그건 씨발 대체 뭡니까?!”

 

플레이스홀더는 돌 복도를 나아가며 당황에 가득 찬 외침을 내뱉었다. 반면 오코리는 침착했다.

 

“알라가다의 대사예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주술사 중 하나죠.”

 

“죽은 겁니까?”

 

“처음부터 죽어 있었어요.”

 

오코리는 조금 유감스러워하는 듯한 눈치였다.

 

“원래대로였으면 저희는 눈짓 한 번만으로 원자단위로 분해됐을 거라고요.”

 

“맞아.”

 

이바네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음울했지만, 모순적이게도 더 강렬했다.

 

“지 입으로 그럴 수 있다고 직접 말하더라고. 그래서 졌지.”

 

얼굴을 타고 피가 흘러내리는 듯한 감촉에 그녀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악당들은 분위기 같은 거 읽을 줄 모르잖아.”

 

“저게 악당이었습니까?”

 

플레이스홀더가 끼어들었다.

 

“오코리, 당신은 그걸 대사라고 불렀죠. 목 매달린 왕을 섬기는 존재입니까?”

 

“그 이름을 입에 담지 마세요.”

 

오코리는 눈쌀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섬기는 게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꽤나 복잡해요.”

 

플레이스홀더는 연구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두 분 중에 캐릭터 아키타입에 대해 아시는 분 있습니까?”

 

플레이스홀더가 주머니에서 서사요동탐지기를 꺼내들었고, 일행은 어깨를 으쓱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흑막의 오른팔이 그쪽에서 무어라 불리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는 다이얼을 조정했고 일행은 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그쪽에선 그걸 드래곤이라 부릅니다.”

 

이바네즈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 말은…”

 

“제 말은 그냥, 당신은 동상에서 검을 빼들었고 독립적인 국가를 구한 다음 드래곤과 싸우고 아마 이겼다는 겁니다. 그리고…”

 

플레이스홀더는 탐지기가 표시하는 수치를 읽었다.

 

“…그렇네요. 수치가 한계를 찍고 있어요.”

 

이바네즈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재촉했다.

 

“그래서 그게 대체 뭘 의미하는 건데요?”

 

“우리가 슬슬 이 수치를 떨어트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작가들이 우리 수준까지 떨어지고, 우리는 영원히 상승하는 서사층에 갖히게 되겠죠. 당신이 영웅적 서사시를 쌓아올리는 것을 지켜보는 게 재밌기는 하지만, 세상의 구원이라는 사소한 문제가 하나 남아있거든요.”

 

오코리의 눈에 검빛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그거 말인데요…”

 

오코리는 검을 만지기 위해 손을 뻗었다 황급히 되물리곤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앗. 크흠.”

 

그녀는 생각을 정리한 뒤 말을 이었다.

 

“왜 이 죽어버린 철덩어리가 점차 임계질량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아시나요?”

 

“이바네즈의 주인공적인 역량을 두 배로 끌어올려주고 있는 겁니다.”

 

플레이스홀더가 말했다. 이바네즈는 그를 노려보았다.

 

“뭐라고요?”

 

“이건 네 영웅적 행보로부터 힘을 얻고 있어.”

 

오코리가 설명했다.

 

“아니, 아니다. 카야쾨이가 관광객들의 만족감을 먹고 살아가는 것처럼, 이 검은 네 영웅심에 맞추어 강해지고 있는 거야. 카야쾨이는 영웅을 소환했고, 그에 네가 응했잖아. 너는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영웅이니까.”

 

오코리는 이바네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는 터키에서 알라가다까지 왔어, 델피나. 그 망할 방랑자의 도서관을 통해서. 우리는 단지 검에 적힌 그 읽을 수도 없는 비문을 읽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우리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온 거라고.”

 

“검은 여정이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고, 여정은 검이 깨어나는 계기가 되었죠. 당신의 어처구니없는 힘겨루기를 통해 말입니다.”

 

플레이스홀더가 동의했다.

 

“누군가의 힘으로 알라가다의 균형이 뒤바뀐 지 얼마나 오래 됐는지 알아?”

 

오코리가 질문했다.

 

“옥리들이 손들의 관을 자유로이 거닐 수 있던 게 얼마나 오래 전 일이었는지 알아? 카야쾨이가 마지막으로 말한 게 몇십 년 전인 건 알고?”

 

오코리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능감이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걸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건지 알아?”

 

오코리는 검에 비교되는 광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게 이 검의 역할이야. 네 안에 있는 것을 끌어내어 이야기를 휘젓고, 죽었거나 죽어가는 것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거야. 그 검 하나만으로 이 난국을 뒤집기 위한 원초적인 변화가 충분히 쌓였다니까!”

 

이바네즈는 복도 끝에 다다를 때까지 고민에 빠져있는 듯했다. 두꺼운 석재 아치가 그들을 어둠 속으로 이끌고 있었다.

 

“으음.”

 

이바네즈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개쩐다?”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공허한 절망이 그들을 덮쳤다. 일행은 둥글고 거대한 원형 홀, 뒤틀린 기둥으로 이루어진 숲, 너덜너덜해진 현수막과 회랑 끝에 서 있었다. 그들이 방금 걸어왔던 통로는 사방으로 갈라졌다. 흑단 가로대 위에 불길한 범례가 새겨져 있었다. 목 매달린 왕의 관 심부에는 옥좌로 향하는 원형 계단이 있었고, 무덤 속의 벌레와도 같은 기억처럼 눈 아래로 기어가는 장면과 형상들로 조각된 어스름한 옥좌가 놓여 있었다. 옥좌엔 끔찍해보이는 가시, 부서진 검은 금속 고리들, 그리고 다 닳은 검은 밧줄이 널려 있었다. 보이지 않는 천장으로부터 사슬 하나가 드리워 있었고, 모든 것을 뒤덮고 있는 먼지를 벗겨내기엔 너무 미약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옥좌는 텅 비어있었다.

 

오코리는 일행을 다시 복도로 끌고 돌아왔다. 그녀의 얼굴이 정말로 창백해졌다.

 

“문제가 있어.”

 

그녀는 힘겹게 단어들을 내뱉었다.

 

“알라가다를 떠나는 유일한 방법은 문을 통하는 거야. 진짜 문 말이야.”

 

그녀는 엄지손가락으로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왕의 관에 문이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진 않지만, 도시엔 분명히 있을 거야.”

 

“그럼 그냥 도시 쪽으로 가버릴까?”

 

이바네즈는 심박수가 오르는 것을 느꼈다. 오코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왕이 풀려났어. 내 생각에 그 원인은 너… 우리인 것 같고.”

 

이바네즈는 그들 사이로 검을 들어올렸고, 오코리는 더욱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그 검이 대사한테 뭘 했는지 너도 똑똑히 봤잖아. 만약 목 매달린 왕이 그 검을 손에 넣는다면 더 이상 세상을 구할 필요도 없을 거야. 이미 망해있을 테니까.”

 

플레이스홀더는 과호흡중이었다.

“그러니까, 문이 나올 때까지 복도를 뒤져보자 이 말입니까?”

 

“그리고 만약 못 찾으면?”

 

이바네즈는 친구의 얼굴을 주의깊게 살폈다. 오코리는 등을 돌렸다.

 

“복도 하나 골라. 아무 복도나. 그리고 뛰어야지.”

 


 

회관의 불빛이 기묘하게 일렁였다. 각 복도에 쓰인 구절을 읽을 수 있었지만, 옥좌 너머의 알라가다로 향하는 층계는 끝없는 어둠과도 같았다. 그들은 빛이 비치지 않는 돌 터널을 내려다보며 문에서 문으로 이동하던 중 빛이 일렁임에도 그림자가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결국 별 모양의 자물쇠가 잠겨 있는 문을 하나 찾았다. 문 근처의 범례에는 “아뒤툼”이라 쓰여 있었고, 오코리는 그 문을 열기를 거부했다. 이를 악물고 수척한 얼굴을 한 채, 그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을 향해—

 

어둠이 물러났다.

 

“앗.”

 

오코리가 말했다. 그녀는 배낭에 손을 넣더니 가죽 주머니를 꺼내 왼손에 그 내용물을 쏟았다. 그녀가 박수를 치자 선홍색 안개가 그녀 주위로 퍼졌다.

 

“잘 있어.”

 

“뭔 소리야?”

 

이바네즈가 마법사의 어깨를 붙잡았다. 오코리의 근육은 굳어 있었다. 그녀는 흙바닥 속에 발을 단디 박은 채였다.

 

이바네즈가 자신의 친구를 붙잡고 있던 중, 플레이스홀더는 터널 안을 편집증적으로 살폈다. 오코리는 손이 쇠의 녹 색이 될 때까지 손을 비벼대더니 손 안에 남은 가루의 선을 살폈다.

 

“우도!”

 

마침내 이바네즈가 오코리 앞에 서자 오코리는 그녀를 거칠게 밀어내었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가득했다.

 

“넌 가야만 해.”

 

그녀는 바닥에 선을 긋기 위해 몸을 굽혔다. 바닥에 선을 긋자 검은 안개가 그녀의 주위로 피어오르며 주위에 복잡한 도안을 새겼다. 반물질 타래. 풀어지는 완전한 무無의 두루마리.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수많은 촉수들…

 

이바네즈가 검을 들어올렸다. 오코리는 자신을 위해 화내주는 친구의 모습에 기뻐하며, 엄지와 검지 사이에 불을 지핀 채 그 손가락을 바닥에 짓뭉갰다.

 

오코리의 발 밑에서 불꽃이 터져 옥좌의 방을 양분했다. 불꽃은 이바네즈와 플레이스홀더를 다가오는 목 매달린 왕의 그림자로부터 떨어트려놓았다. 이바네즈는 불에 손을 집어넣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차가웠지만, 그럼에도 돌처럼 단단했다.

 

오코리는 이바네즈와 똑같은 동작을 취하곤 입술을 오므리며 불의 벽을 밀어내었다. 이바네즈는 뒤로 튕겨나 바닥을 굴렀다. 플레이스홀더가 이바네즈를 일으켜 세우던 중, 그녀가 외쳤다.

 

“우도!!”

 

불꽃의 벽 너머의 공간은 이제 계단도 달빛도 없는 어둠뿐이었다. 오코리는 두 손을 들었다. 머리카락은 잔뜩 부풀어 있었고, 근육은 굳어 있었으며 허리는 곧게 펴져 있었다. 왕의 공허한 형상은 그녀를 점점 뒤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세 개의 초승달 문양이 있던 곳까지.

 

이바네즈가 그녀를 완전히 놓쳐버리기 전까지, 오코리는 결의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이바네즈를, 정신을 놓기 직전인 형이초학자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NEVERMEANT이라고 쓰인 길로 끌고갔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10미터도 가지 못하고, 이바네즈는 다시금 옥좌의 방으로 돌아가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그 충동은 기록보존사의 저주보다도 강했고, 부나방을 끌어들이는 깜박이는 불꽃보다도 강했다.

 

“돌아가야 해요.”

 

플레이스홀더는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나약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안 됩니다. 저희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녀는 양 손으로 자신의 구불구불하고 검은 머리를 쓸었다.

 

“당신은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검이 여기에 있어선 안 된다고요. 당신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에요. 오코리와 저는…”

 

“말하지 마세요.”

 

이바네즈가 플레이스홀더의 말을 끊었다.

 

“오코리와 저는 단지 조연에 불과합니다.”

 

그는 이바네즈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듯 두 팔을 치켜들었다.

 

“진짜라고요!”

 

이바네즈는 그의 따귀를 때리려는 충동을 겨우 참았다. 그녀는 다시금 복도 아래를 가리켰다.

 

“지금 형이초학 이야기따윈 꺼낼 생각도 하지 마요! 제가 돌아가서 돕지 않으면 제 친구가, 제 친구가 죽을 거라고요!”

 

플레이스홀더는 슬픈 듯 고개를 저었다.

 

“틀립니다. 돌아가든 말든 그녀는 죽을 겁니다. 진짜 문제는 이거죠. 과연 그녀의 죽음으로 끝날까요?”

 

이바네즈는 주먹쥐었다.

 

“당신은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지도 못하잖아요. 당신이 아는 거라고는 당신은 우리를 막다른 길로 이끌고 있다는 거고, 이대로 간다면 우도의…”

 

그녀는 눈을 깜박여 분노의 눈물을 삼켰다.

 

“헛되게 할 셈인가요?

 

플레이스홀더는 손가락으로 서사요동탐지기를 두드리며 절망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이 이야기가 어디로 향할지 압니다. 알라가다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의 해안에 위치해있습니다. 초차원적인 공허, 공간 사이의 공간이죠. 제 이론이 맞다면, 마법의 붕괴가 엮여 순수한 형이초학의 영역이 되었을 겁니다. 작가들의 공간이란 말입니다.”

 

이바네즈가 눈을 깜박엿다.

 

“당신의 이론이 맞다면 말이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로스스핏을 떠나오기 전에 오코리와 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세상이 서사의 힘으로 가득한 이상, 이곳에서 루프에 빠질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선을 넘기로 그녀와 합의를 봤었습니다.”

 

그녀는 턱이 잠긴 듯했다.

 

“선을 넘는다뇨.”

 

그는 괴로워보였다.

 

“다른 서사의 상자를 들여다보고, 작가들을 끌여들여 마지막 클리셰를 불러들이는 거죠.”

 

그녀의 눈빛은 다음에 이어질 단어를 말하지 말라는 의지로 번득이고 있었다. 그는 그 눈빛을 겨우 무시하고 다음에 이어질 단어를 입에 담았다.

 

“위대한 행위. 희생입니다.”

 

이바네즈는 잠시간 자신이 충동에 휩쓸려 플레이스홀더의 심장에 빛나는 검을 박아버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바네즈는 잠시간 그녀를 저 검은 석조 건축물에 박아버릴까 고민했다. 이바네즈는 잠시간 정신이 나가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의 심장이 목구멍을 넘어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과 함께 검의 날에서 눈이 멀 듯한 빛이 뿜어져나왔다.

 

“한 번만 더 희생이라고 해봐요, 씨발.”

 

그녀는 검을 그의 목덜미에 닿도록 겨누었다.

 

“희생이 아니라 속편 떡밥이라고요.”

 

 

처음엔 터널의 끝에 빛이 있는 것 같았다. 머지 않아 그것이 빛과 어둠 둘 다 부재한 것이고, 모든 선명함과 색을 집어삼킬 회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은 희미한 안개를 뚫고 달려 나아갔다. 이바네즈는 뒤를 잠시 돌아보았다. 잠시동안 허무가, 우도 오코리의 불확실한 운명을 위한 고요한 묵념이 실려 있었지만 이윽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고—

 

그들의 발은 어느새 두꺼운 카펫을 딛고 서있었다. 현란한 단풍나무 가구들로 장식된 별빛의 화랑이었다.

 

“다 가짜입니다.”

 

플레이스홀더는 앞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히 선언했다. 화랑의 창문 너머는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빛이 밤하늘을 가르고—

 

그들은 가시가 잔뜩 돋아난 쐐기풀 미로 속을 달리며 텅 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천상으로부터 올가미가 늘어트려져 있었다. 형상 없는 무언가가 밧줄 올가미의 끝을 차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서사층을 뚫고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형이초학자가 쏘아붙였다.

 

“계속 나아가—”

 

그들은 울타리 쳐진 거리를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수많은 죽은 눈의 시체들이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안개 속에서 움직였다.

 

“거의 다 왔습니다.”

 

플레이스홀더가 헐떡이며 말했다. 너무 달려 산소가 부족한 것이 분명—

 

그들은 텅 빈 공간 사이로 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이바네즈는 갑작스레 자신들이 장막 너머로부터 관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가 어떻게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말해드린 적 없죠?”

 

플레이스홀더가 말했다. 휘둥그레 벌어진 그의 눈은 저 너머의 공허를 향해 있었다.

 

“무언가의 관심을 사버렸고, 그 대가로 저주를 받아버린 결과입니다.”

 

그들은 마치 표본판 위의 나비처럼 검은 벨벳 커튼에 고정되어 있었다. 형이상학적 덩어리가 그들 위로 드리웠다.

 

“우리는 여정 중에서 저주에 대해 어느정도 배웠죠.”

 

정적인 울부짖음. 사슬이 끊어지는 소리 일곱 번. 이어서 그들의 뒤에서 떠오른 비인간적인 미소와 제4의 벽 너머에서 울려오는 비인간적인 비명. 그리고—

 

 

카야쾨이 마을

 

터키공화국



그들은 불편한 나무 의자에 않은 채 설교대 위에 떠있는 하얀 로브를 뒤집어쓴 형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로브가 보이지 않는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끝의 끝이 다가왔도다.

 

“저건 또 뭐였나요?”

 

이바네즈는 귀에 들려오는 자신의 목소리가 평평하고 공허하며 낯설게만 느껴졌다.

 

“언제 작가들이 우리를 찾아왔죠?”

 

“안전장치입니다.”

 

플레이스홀더가 중얼거리며 움직이지 않는 서사요동탐지기의 바늘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밀릴 경우를 대비한, 작가들에 대항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죠. 절대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한 격리절차였는데요.”

 

그는 숨을 가쁘게 내쉬며 말했다. 

 

“87기지를 떠나기 전에 정신권에 배치해뒀었습니다.”

 

이바네즈는 그를 노려봤다. 너무 기진맥진해 질문조차 꺼내지 못할 뻔했다.

 

“어째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거죠?”

 

플레이스홀더는 이바네즈의 눈 안에서 일렁이는 분노에 소심하게 답했다.

 

“말했더라면 우리를 찾지 못했을 테니까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규칙은 따르라고 있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그녀는 다시 매끈한 청동처럼 빛나는 검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바래지 않으리라. 그녀는 고개를 털었다.

 

“이딴 소리 다 좆까라지.”


그녀는 일어서서 열려있는 이중문으로 향하고는 여전히 남아있는 수호신을 무시하며 말헀다.

 

“지금부터 규칙은 저를 따라야 할 겁니다. 당장.”




<기록 종료>

관련 자료를 열람하기 위해 주 문서로 돌아가십시오.


부록: 임무 보고서

 

SCP-6500-α의 회수에 관한 사후 보고에 접근하려면 자격증명을 재제출하십시오.

 


실종자 보고서: 우도 오코리 박사 / 델피나 이바네즈 대장

 

SCP-6500 위기 초반, 세 명의 재단 인원이 자발적인 탐사에 착수하여 a)변칙적인 물품을 획득하고 b)해당 물품의 기원을 밝혀내었으며 c)해당 물품이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지 판단하였다. 그 결과 SCP-6500-α-검, “이끄는 칼날”을 습득하였다. 해당 물품은 소유자의 내적 강함에 반응해 기적학적, 서사적 에너지를 발생시켜 쇠퇴한 변칙적 지역과 생명채들을 재활성화하고 그것들의 “이야기”에 동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검이다. 제43기지의 응용오컬트학 학장인 우도 오코리 박사는 회수작전 도중 적대적이고 극도로 위험한 알라가다 도시에서 실종되었으며, 작전 중 사망으로 추정된다.

 

이후 SCP-6500-α-검의 소유자이자 제43기지 추적 및 억제 부대의 대장 델피나 이바네즈는 제87기지 소속 형이초학자 플레이스홀더 맥닥터레이트에게 확인된 특출난 “주인공의 잠재력”을 지닌 개인들로 이루어진 기동특무대를 편성했다. 이바네즈 대장과 MTF-델타-6500(마법적인 미지순회)은 가능한 한 SCP-6500이 야기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다양한 재단친화적인 변칙적 지역에 배치되었다. 국지적 효과는 더욱 극단적이었지만, 보편화된(무작위적이기는 하여도) 전세계적, 성간 및 차원간 효과가 목격되었다. 의도적인, 바람직한, 의도적이지 않은, 바람직하지 못한 복원의 예시로는 다음이 있다.

 

 · SCP-5923: 카야쾨이의 살아있는 마을은 더 이상 거주민과 관광객들의 정신적 에너지의 의존하지 않고 자발적인 동면 상태에 빠졌다.

 · SCP-179.: 자칭 “관찰자”가 다시 각성하였으며, 현재 손가락 하나로 지구를 가리키고 있다.

 · SCP-2922-C: 사태의 발생 초기, 코르베닉으로 알려진 사후세계와의 모든 접촉이 끊겼다. 현재 다시 연결되었다.

 · GoI-알파-19: SCP-6500 사태의 해결을 위해 집중했던 뱀의 손 기적술사들이 부활하여 재단을 향한 소모전을 재개했다.

 · SCP-1762: 야생에서 SCP-1762-1의 사례가 단일적이지만 보고되었다. 확인 필요.

 · SCP-6500-α-검은 변칙성이 완전히 지워진 대상의 변칙성을 재활성화시킬 수 없음이 판명되었다. 델타-6500이 방랑자의 도서관에 도움과 원조를 제공하기 위해 입장하려는 시도는 전부 거부되었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로 인해 알라가다로 귀환하려는 시도는 일어나지 않았다.

 

SCP-6500-α-검은 소유자에게서 일정한 양의 힘을 끌어낸 뒤 비활성화됨이 관측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바네즈 대장은 모든 델타-6500 구성원들의 주인공적 성향을 활용하여 소실 직전의 변칙지역 및 개채를 존속시키기 위해 해당 물품을 돌려서 사용하도록 명령했다. 일주일의 활동 후, 이바네즈 대장은 이러한 행동을 무기한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잘 훈련된 기동특무대의 임시 지도자로 맥닥터레이트 박사를 임명하고 검을 넘겼다. 이바네즈는 이후 오코리 박사의 양친에게 그녀의 부고를 전하기 위해 휴가를 신청했다. 오코리의 양친은 연구자로서 영국 요크셔에 위치한 제91기지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 신청은 허가되었다.

 

오코리 박사들은 제91기지에서 이바네즈가 보여준 행동에 특이한 점은 없다고 보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표면적으로는 델타-6500 임무를 재개하기 위하여 런던으로 복귀하던 중 여왕폐하의 왕궁과 런던타워 요새로 들어가는 것이 목격되었다. 이후 그녀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실종되었다.



 


 감독관 자격증명 입력:

 

나는 재탄의 작가요, 멸시당하는 자이니

불과 물과 공기와 땅 속에서

나는 홀로 서있으리라.

하지만 진실이 알려진다면,

[        ] 제출







마법사

오레이칼코스 사본을 취득하라. 대량의 마법에너지를 저장하고, 사용자로 하여금 최대 우주적인 규모의 의례와 의식을 펼칠 수 있게 해주는 마도서. 이 사본을 이용해 펼친 기적술은 SCP-6500의 영향을 완전히 멈추고 온전히 역전시킬 수 있다.

마법사의 길

불을 둘러싸다


 



첫 번째 겨울이 찾아왔을 때, 첫 번째 불이 타올랐을 때, 남자와 여자들은 따스함을 느끼기 위해 불을 둘러쌌고 이제 그건 인류의 영원한 본능이 되었다. 변칙성의 세상에 겨울이 찾아왔을 때, 불에 가장 가까운 것에 모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우리는 넥서스를 찾았다.

 

필립 베르호텐, 피난처: 변칙성의 종말에서 넥서스의 역할.

 


18번 넥서스

4월 26일

위스콘신주, 슬로스스핏

 

캐서린 싱클레어는 그녀의 타오르는 듯한 붉은 갈기에 나타난 회색 한 덩이를 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는 왼쪽 안와에 삽입되어있는 유리의안 앞에서 그것을 털어내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꾸밈으로서 조금 더 젊어진 것만 같았다.

매년 열리는 잼 대회—“잼잼”—이 메인 스트리트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대회에 감도는 분위기는 평소보다도 저조했고, 모든 참가자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 소도시는 점차 붕괴되어가고 있었다. 편리할 정도로 화창한 날들, 대기중의 폭풍우, 누군가 불길한 말을 입에 담았을 때 울리는 적절한 천둥소리. 이야기로 가득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상이 사라지고 있었다.

 

온 세상을 걸쳐 위치한 넥서스들은 수천 년동안 기적학적 에너지의 원천이다. 이제는 그것이 죽어가고 있었으니—싱클레어는 그것을 “마법”이 아닌 다른 표현으로 부르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변칙성이 산소호흡기를 달았으니 재단식 표현은 좆까라지ㅡ그들 또한 죽어가고 있었다. 슬로스스핏과 마법 전반은 마지막 숨을 내뱉는 중이었다.

 

그녀는 도시의 인구들 사이에서 보았다—수백의 사람들이 도망치며 대공황보다도 더 큰 피해를 입혔다. 이제는 나무까지 그리했다. 그녀가 본 나무들은 꽃을 느리게 틔웠고, 가을엔 항상 눅눅한 잎을 매달고 있었다. 음식은 더욱 맛이 없어졌고, 상황은 안 좋은 쪽으로 예상 그대로 진행되었다. 세상이 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싱클레어는 넥서스 밖에선 더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회색 레게머리를 하고 어두운 피부를 가진 남자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자 싱클레어는 깜짝 놀라 머릿속에서 생각을 날려버였다.

 

몽고메리 레이놀즈—그녀의 남편—는 한 손으로 핫도그를 건네면서 얼굴로는 걱정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 엄청 우울해보이는 거 알아, 캐서린?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

 

“떠올리고 있었어.”

 

싱클레어는 핫도그를 한 입 베어물며 가게에서 멀어졌다.

 

“우리가 패스파인더 하던 시절 기억나?”

 

“너는 항상 키츠네 마술사만 하려 했잖아.”

 

레이놀즈는 웃으며 말했다.

 

“언제나 야성 마법을 골랐고. 그래도 강했지.”

 

“내가 죄수를 심문해야 했을 때 기억나 파이크는 죄수의 입을 열기 위해 발톱을 뽑으려 했지만, 나는 그냥 다가가서—”

 

“잠깐. 난 사실 네 보스를 위해 일하고 있거든. 그가 널 버리겠다고 한 건 알고 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알려주면 살려줄 수도 있어.”

 

레이놀즈가 웃으며 가로챘다.

 

“그렇게 말했지. 토씨 하나 안 빼먹고 기억하고 있어.”

 

“그래. 근데 브루클링 억양으로 말했었어.”

 

싱클레어는 어깨를 으쓱였다.

 

“프흐, 그게 진짜 통했을 때 매팅스가 지은 표정은 정말 걸작이었지…”

 

“너랑만 패스파인더를 10년 넘게 했잖아. 근데 넌 항상 마법사는 안 하려 하더라. 왜 그랬어?”

 

“마법사는 마법을 부리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잖아. 그 문턱을 도무지 넘어설 수가 없었거든.”

 

그 예시를 들기 위해 싱클레어는 허공에서 마법진을 그리듯 손을 휘저었다. 손 끝에서 불똥만이 튈 뿐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늘은 EVE에너지가 적어. 젠장.”

 

레이놀즈는 입술을 깨물었다. 캐서린은 평생을 마법을 공부하며 보냈었기 때문에. 그는 아직도 그녀의 눈물이 피부 위에 떨어지는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

 

“불공평해도 너무 불공평하잖아.”

 

그녀는 고개를 털었다.

 

“재단에 소속되기 위해 뱀의 손을 배신하기까지 했어. 거기서보단 여기서 더 의미있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녀는 이빨을 악물었다.

 

“멍청이였다니까, 나는. 차라리…”

 

그녀는 남편의 마음을 생각해 말을 멈췄다.

 

“모르겠어, 몬티. 모르겠다고.”

 

그녀는 핫도그 절반을 입에 쑤셔넣고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그들은 메인 스트리트를 따라 걸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길은 거미줄과 저주받은 겨자로 합성된 잼을 시식하려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이제는 50명은 될까말까한 사람들이 모여 어떤 재미없는 수제 케찹을 집에 가져갈지 논쟁을 벌이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이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싱클레어는 그 공허함 속의 또다른 공허에 불과했다.

 

“떠나고 싶어하는 거 알아.”

 

핫도그가 레이놀즈의 목에 거의 걸릴 뻔했다.

 

“무슨 소리야?”

 

“우리 솔직해지자, 몬티.”

 

캐서린은 얼굴을 쓸었다.

 

“마법이 없는 난 대체 누구야? 나는 뭐야? 원래는 별의 불을 다루어 내가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던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종이비행기조자 제대로 날리지도 못해.”

 

그녀는 손으로 눈을 덮었다.

 

“마법이야말로 내 모든 것이야, 몬티. 그게 없으니… 너, 너는… 너는 나를 더 이상…”

 

레이놀즈는 말 없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캐서린. 더 말하면 화 낼 거야. 안 그런 거 너도 알잖아.”

 

레이놀즈가 그녀를 놓아줄 때까지 싱클레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은 핫도그를 버리고는 숲을 향해 걸어갔다.

 

“나…나 산책하러 갈 거야. 기지에서 다시 볼까?”

 

“…알았어.”

 

레이놀즈는 감정을 삼켰다. 10년도 넘게 싱클레어와 함께해온 그에게조차 그녀가 이토록 심란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쪽 눈을 잃은 뒤에도, 그녀의 손이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쓸모를 상실했을 때도 이토록 심란해하지는 않았다. 마법이 그녀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

 

단지 레이놀즈는 싱클레어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만들 방법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숲 속으로 반 마일 정도 들어갔을 즈음, 싱클레어는 마법이 정말로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리학적, 형이상학적, 주제적인 의미로 슬로스스핏 중앙에는 구덩이거 하나 있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그 구덩이는 100년 전 이 마을을 설립한 자, 잭슨 슬로스의 집이 있던 곳이었다. 구덩이는 순수한 질량만으로 이야기들을 끌어들이는 형이초학적 특이점이었다(그녀의 동료 중 한 명이 이 구덩이를 ‘플롯 구멍’이라 부르곤 했다). ‘정확한 방법’을 알지 못한 이상 한 번밖에 찾아올 수 없는 그런 장소였다.

 

그녀는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섰다. 낡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어느 무책임한 요원이 성의없는 농담으로 세워놓은 것이었다. ‘아랫바닥 없는 구덩이와 윗옷 없는 여자들’이었나. 하지만 정확히 무어라 적혀 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녀가 이 곳에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이 곳에 찾아올 수 있었고, 이젠 구덩이의 바닥이 보였다.

 

10미터는 될까말까한 굉장히 얕은 구덩이였다. 바닥에는 대량의 썩어가는 나무와 무너진 돌더미가 쌓여 있었다. 잭슨 슬로스의 저택이 남긴 유해였다. 이 10미터짜리 싱크홀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야기가 끝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구덩이 근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 이렇게 어두워졌지?

 

싱클레어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몬티와 헤어져 숲 속으로 들어온 것이 겨우 3시에 불과했었다. 이렇게 어두워질 리가 없었는데—

 

“9시 31분? 뭐야?”

 

그녀는 손목시계를 몇 번 두드리고는 표정을 다시금 찌푸렸다. 아직 이 마을에 약간의 특이함이 남아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 너 때문에 6시간이나 뛰어넘어버렸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덩이를 향해 말을 걸었다.

 

“왜 그랬어? 아무리 너라도 이건 이상하잖아. 혹시… 마지막 발버둥이라도 돼? 도움을 구하려는 거야?”

 

그녀의 말이 끝나자 찾아온 것은 정적 뿐이었다.

 

“지금은 널 구해줄 수 없어. 구할 수 있던 가능성이야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눈을 쓸었다.

 

“지금은 너무 늦었어. 미안해.”

 

그녀는 구덩이 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진짜로 미안해.”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나는 주홍색 빛이 하늘에서 내리쬐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그걸 바라보던 싱클레어는 원래 눈과 의안 둘 다 그 빛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야만 했다. 얼핏 보니 운석같아 보였지만, 이 세상 그 어느 운석도 저렇게 느긋이 떠다닐 수는 없었다. 구덩이의 심부로 향하는 그 빛은 마치 그녀에게 자신을 잡아보라고 도발하는 것만 같았다. 

 

“썅!”

 

그녀는 약한 팔을 앞으로 뻗었다. 어깨가 빠지는 듯했다—그녀의 몸은 더 이상 과거같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대신 의지로 그 빛을 잡으려 했다. 오른팔은 앞으로, 왼손 엄지는 입으로. 손가락을 너무 깨물은 탓에 흉터가 생겼을 정도였다. 입 안에 피가 흘러들어왔다. 그녀는 그 피를, 아마도 자신의 마지막 마법이 될지도 모를 것을 위한 제물로 바쳤다. 힘이 그녀의 뻗어진 오른팔을 타고 흘렀고, 그녀가 외치자 허공을 향해 토해내졌다.

 

“갈바니Galvanous!”

 

운석 주위의 공기가 떨며 그녀를 향해 끌어당겼다. 운석과의 거리가 1미터정도 남았을 때쯤, 손으로 운석을 잡게 될 것임을 깨달은 싱클레어가 마법을 끊었다. 싱클레어는 운석이 떨어진 곳에서 피어난 불씨를 짓밟아 껐다.

 

동그라미 하나를 7등분한 듯한 유리 혹은 결정체 조각으로 보였다. 누군가가 중심부를 대충 잘라놓은 것처럼 일정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름날 태양의 열을 뿜으며 십억 개의 영창되지 않은 마법의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 안녕?”

 

싱클레어는 몸을 숙이며 말했다.

 

“굉장히… 흥미롭게 생겼네.”

 

그녀는 주머니에서 표본체취용 팩과 집게를 꺼냈다. 그러자 결정체가 빛을 쏘아내어 그녀의 손에서 도구들을 쳐내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손등을 뻗어 수정의 온도를 확인했다. 생긴 것과는 달리 서늘했다.

 

그녀가 그것을 만지자 세상은 먹물과 먼지쌓인 책장 냄새로 폭발했다. 단풍잎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슬로스스핏에서만 느낄 수 있던 기묘한 직감이 따라왔다.

 

세상을 일곱 겹으로 보게 된 싱클레어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의 폐가 화롯불로 차오르고 있었다.

 

 

 

4월 27일.

 

“싱클레어 박사님!”

 

“캐서린!”

 

“캐서린 싱클레어!”

 

“싱클레어 씨!”

 

얼굴에 느껴지는 이슬의 감각과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따스함, 그리고 수십 명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싱클레어는 깨어났다. 그녀는 사람 몇 명을 알아볼 수 있었다. 특무대였다. 여기서 잠이라도 들었던 것이었을까? 그…결정체를 만난 다음에…

 

싱클레어는 자신의 손 안을 살폈다. 아직 남아있던 결정체는 전보다는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뒤에 있던 구덩이를 보았다. 바닥에 있던 잔해는 온데간데 없이, 바닥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구멍이 보였다. 그녀는 현실을 부정하듯 숨을 급히 들이쉬고는 입을 틀어막은 채 뒤로 비틀비틀 물러났다. 손에 들린 결정체를 놓칠 뻔했다.

 

“싱클레어 박사님!”

 

그녀의 이름을 부른 건 로버트 토플마이어 대령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달려오며 말했다.

 

“박사님, 어젯밤동안 실종되어 계셨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그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모든 S-10에 전함. 모든 S-10에 전함. 싱클레어 박사가 발견되었다. 위치는 슬로스스핏—”
 
 그는 구덩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하나님 맙소사! 구덩이가 복구되었다!”

 

싱클레어는 손에 들린 결정체를 바라보았다. 다른 손에는 차갑고 빨간 불꽃이 떠올라 있었다. 마법이 다시 그녀의 몸을 타고 흐르는 느낌에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절 당장 제 연구실로 데려가주세요. 이 시발것이 대체 뭔지 한시라도 빨리 알아봐야겠어요.”

 

 


오레이칼코스(혹은 오리칼쿰으로 더 널리 알려진)은 아틀란티스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알려진 미지의 물질이다. 혹자는 ‘텔레킬’ 합금, 베릴륨 청동, 혹은 평범한 황동 등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오레이칼코스는 합급이 아니었다. 오레이칼코스는 다이아몬드처럼 모스 경도 9를 기록하지만 쉽게 부서지는 결정체였다.


결정체 기반 저장매체는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다양한 공상과학 매체에서 등장했다. 오레이칼코스는 바로 그 저장매체였다. 오레이칼코즈는 정보와 에너지 양쪽 모두를 수용할 수 있다. 회수된 오레이칼코스 조각은 약 950mAH의 에너지와 20페타바이트 이상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위스콘신주 슬로스스핏 위의 하늘에서 떨어진 물체는 오레이칼코스 사본의 조각이었다. 그 조각은 전기에너지나 의미있는 정보 대신 마법을 저장하고 있었다.


그것을 손에 쥔 날 밤, 나는 내가 뭘 해야하는지 정확히 깨달았다. 나는 여정을 떠나야만 했다.


K. 싱클레어, 오레이칼코스 사본: 마법, 다시 한 번




날이 끝나기 전 싱클레어 박사는 가방 싸기를 끝마쳤다. 그렇게 떠나기 전,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마주쳤다.

 

“어디 가는 거야?”

 

“나는 여정을 떠날 거야!”

 

싱클레어는 미소지었지만, 이윽고 곧바로 미소가 지워졌다.

 

“…후, 머릿속에선 조금 더 재밌게 느껴졌는데. 아무튼…”

 

그녀는 자신이 찾아낸 결정체를 남편에게 보여주마 말했다.

 

“이게 다가 아니거든. 그래서 나머지를 찾으려고.”

 

“어디서부터 시작할 거야?”

 

레이놀즈는 집 안으로 들어와 코트를 벗고는 침실로 향했다. 그는 뒤따르는 싱클레어에게 물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잖아.”

 

“일단 제43기지에 가볼 거야. 블랭크 박사한테 받아낼 빚이 좀 있거든. 그 사람을 통해서 제43기지에 있는 궤도 변칙성 추적 시스템을 이용해보려고.”

 

그녀는 다시금 침실에 들어와 유틸리티 배낭을 집어들었다.

 

“하마터면 이거 놓고 갈 뻔했네.”

 

레이놀즈는 자기 가방을 집어들고는 자신의 물품들을 물턱대고 쑤셔넣기 시작했다. 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널 혼자 가게 둘 거라고 생각했어?”

 

싱클레어는 잠시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고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내가 떠나기 전에 당신이 돌아와줬으면 했어. 4시간쯤 뒤에 덜루스 국제공항을 떠나는 비행기를 잡아야 하니까 서둘러.”

 

그녀는 주머니에서 결정체를 꺼내들고는 힘을 뽑아내며 조용히 중얼거였다. 금으로 된 사슬이 나타나 결정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즉흥적으로 호부를 만들어낸 그녀는 농담을 던졌다.

 

“공항 검문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네.”

 

레이놀즈는 배낭과 슈트케이스를 챙겼다. 둘은 주방에 두 달치 월세를 올려둔 뒤 자가용을 타기 위해 달려나갔다.

 

 

캐나다 제43기지의 기지 관리 및 유지보수 담당 필립 E. 데어링의 개인 일지에서 발췌:

 


4월 28일.

 

그들이 이젠 내가 더 이상 변칙적이지 않다고 한다. 애초에 변칙적이었던 적도 없는데 말이다. 더그는 나의 유일한 관심요소였다. 19년이나 함께했었는데, 이제는 사라져버렸다.

 

잿빛 피부를 가진 거울에 비친 상이었던 그는 툭하면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는 공격적이고 기분나쁜 개자식이었지만, 적어도 나를 외롭게 두지는 않았다. 그가 없어진 지금 이제는 항상 외롭기만 하다.

 

내가 왜 이걸 지금 적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가 사라졌다는 건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고, 이 일지를 누가 볼 일이 없으리란 것도 안다. 더그는 개자식이었지만 적어도 외롭지는 않았다. 아멜리아가 있으니 아주 외롭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더그는 나로 하여금 쓰레기가 된 듯한 기분을 들게 하는 놈이었다. 하지만 그가 없어진 지금은 내 반신이 뜯겨나간 듯한 기분이 든다. 어느 날은 두 발로 서있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다.

 

호수도 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이제 호수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은 고작 철갑상어에 불과하다. 흑표범도, 티아매트도, 우리의 발 아래에서 몰래 폐기물처리장을 운영하던 광인도 전부 사라졌다. 마치 호수가 색을 잃은 것만 같다.

 

뭐, 완전히 그러기만 한 건 아니었다. 오늘 산책 중에 자그마한 색을 찾았으니까. 샛노란빛으로 빛나는 그건 유리자갈같이 생겼다. 원래는 맥주병의 일부이기라도 했던 걸까? 근데 만져보면 또 따스하다. 언젠가 오코리 박사한테 보여줄까 싶다.

 

 

대충 오후 9시쯤.

 

오박사는 없었다. 이바네즈와 함께 ‘업무’ 때문에 떠났다나. 공교롭게도 그들이 슬로스스핏으로 떠난 날, 슬로스스핏 제87기지에서 한 쌍의 얼간이들이 찾아왔다. 웨틀은 틈만 나면 그들을 살의 가득한 시선으로 노려봤고, 기지 안에선 그치들이 기지를 사유물 부리듯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블랭크 박사는 그냥 궤도 변칙성 뭐시기를 이용하려 찾아온 거라고 했지만.

 

오늘은 에이미와 함께 영화를 봤다. 제목이 아멜리에였나. 좋은 영화였다.

 

 

4월 29일.

 

진짜 정신나간 꿈을 꿨다. 아무래도 그 유리자갈 같은 건 변칙적인 물품인 것 같다.

 

나는 작업장 안에 있었다. 재단 기지 안인 것 같았다. 왠지 제19기지가 떠올랐다. 아마 GOC가 핵으로 터트린 탓에 모두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가 망치를 들고 오더니 그걸로 내 머리를 깨부쉈다.

 

나는 7조각이 났다. 조각 하나하나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더운 열대우림, 비 내리는 섬, 산을 낀 항구마을, 바이우, 포틀랜드의 거리, 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 그리고… 휴론 호수. 나는 내가 각각 어디에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았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로 모여야 한다는/모이면 안된다는 것을

 

나는 원래 이런 식으로 쓰지 않는다. 이… 이 망할 게 날 더 똑똑하게 만들기하도 한 걸까? 더 나은 필자? 대체 뭘까?

 

그들을 찾아가야만 한다. 랭데르스 박사가 아직 이 기지에 있었다. 새벽 3시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알아버린 사실이었으니까.


 


4월 29일 제43기지 보안카메라 기록

3:12:23: 필립 E. 데어링이 개인실을 나선다. 그는 한 손에 정체불명의 노란색 물체를 왼손에 쥐고 있었다.
3:17:05: 데어링 거주 및 생계실에 입장해 단말을 이용하여 일세 랭데르스 박사의 개인실 위치를 알아낸다.
3:25:19: 데어링이 랭데르스 박사의 개인실 문을 두드린다. 랭데르스 박사가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나타났다. 데어링은 랭데르스에게 손에 들린 물체를 보여준다. 랭데르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3:29:27: 랭데르스와 데어링이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랭데르스는 캔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이 모퉁이를 돌아 OATS 관찰실에서 임시 개인실로 향하던 캐서린 싱클레어 박사와 몽고메리 레이놀스 박사와 마주친다
3:30:32: 대화가 시작되어 약 3분간 계속되었다. 싱클레어 박사는 자신이 차고 있던 호부와 데어링이 들고 있던 물체를 비교한다. 기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방금 본 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기지가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처음엔 GOC의 공격인 줄 알았다. 최근 어떻게든 주권을 잡아보려고 미쳐 날뛰고 있었으니까.

 

몇 년 전, 브렌다 코빈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5866…, 그러니까 말 그대로 진짜, 신화 속에서 나오는 티아마트와 함께 도망친 여자였다. 그러고…죽은 줄 알았는데. 붕괴가 시작되었을 때 티아마트랑 함께 죽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그녀가 거기 있었다. 기지 밖 해안가에서, 어느 때보다도 쌩쌩한 모습으로 티아마트의 어깨 위에 있었다. 티아마트는 마치 지옥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뼈와 살점뿐으로 이루어진 몸에 갈갈이 찢겨진 듯한 거대한 날개. 기름을 뒤집어쓴 채로. 티아마트는 코빈을 통해 말했다.

 

“너희에게 사본 조각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마법을 되살리기 위해 필요하니 넘기거라. 그런다면 너희들은 살려주마.” 티아마트는 일이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을 시 우리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릴 기세였다.

 

그러더니 레게머리를 한, 이름이 레이놀즈였나, 남자가 앞으로 튀어 나오더니 그 둘을 바라보며 내가 갖고 온 유리 뭐시기를 들어올렸다. 그렇게 말을 유창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 그는 마치 왕족 대하듯 말했다.

 

“위대한 여신이시여, 저희가 무엇을 쥐고 있는지 아시지 않으시이까? 이것은 위기를 해결하고 마법을 되살리기 위한 수단이오니, 위대하신 당신께만이 아닌 이 세상 전부를 위한 것이나이다. 저희 또한 쉬이 포기하지 않을 터이니, 저희와 협상을 하시지 않으시리이까?”

 

“대가로 무엇을 바칠 것이냐, 작은 마술쟁이야?”

 

오코리 박사가 마법을 부리는 것은 본 적 있었다. 지금 이건 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레이놀즈는 손에 든 결정체를 티아마트를 향해 내밀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무슨 농담 같은 소리를 외쳤다. “카르테 데우스”였나. ‘카르페 디엠’에 반대되는 소리 같았다. 그러자 꿀빛 햇살이 티아마트를 감싸더니 티아마트의 몸을 다지 기우고 기름을 닦아내었다. 티아마트의 몸과 날개가 회복되었다. 레이놀즈는 이윽고 결정체를 높이 치켜들더니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위대한 여신이시여, 이는 이 결정이 품은 권능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옵니다. 당신의 몸이 회복되었사오니, 이제 떠나도 되겠사옵니까?”

 

코빈이 다시 티아마트의 대리자로서 말했었다. “서로와의 의회를 개최해야 한다.”라나 뭐라나(근데 어느 미친년이 이렇게 말하냐?). 어쨌든 그 날은 그냥 넘어가겠다고 했었다. 그 뒤부턴 계속 긴급대피소에 박혀 있었다. 와중에 잠들었었는데, 하필이면 많고 많은 것들 중에서 박수소리와 환호성에 깼다. 그게 대체 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곘다.

 

그리고 나는 그날 거울에서 다시 그 공격적이고 툭하면 가스라이팅이나 해대는 회색피부 개자식과 다시 만났다.


 



3막 첫 장면Act Tertius Scene Primus

 

히브라실 섬, 발로르 산 정상.

 

신사 블랙우드 경과 마법사 싱클레어 입장.

 

블랙우드:

마법사 아가씨, 내 여기서 말하는 것을 용서해주시오

이 땅 자체가 우리의 말을 뒤틀어놓았으니—

아무래도 축연이오, 마법이 되살아났으니.

과하게 포장되고 지독한, 생각하기엔 그렇소이다.

 

싱클레어:

그래, 거슬리는군요, 저의 입에.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니—

참으로 시간을 허비했군요. 시나 읽으며.

 

블랙우드:

시나 읽으며? 허비? 재밌는 농담이오!

 

싱클레어:

죄송해요, 주군이시여. 연결기호ampersand를 써버렸어요.

하지만 솔직히 말할까요? 연극투는 마법사에게 불쾌하게 느껴져요.

 

블랙우드:

아, 이 땅이 당신에게 재치를 주는구려, 아름다운 마법사여!

전에도 재치가 없었다는 건 아니지만—지금은 더욱 좋아졌소!

 

싱클레어:

기도하세요, 주군이여. 경솔함이 저를 떠나니.

마법이 영원히 떠났을 거라 생각했어요. 참으로 불행하죠.

 

블랙우드:

불행하다?

 

싱클레어:

감히 ‘다행이죠’라고 말할 수 없어요—죽음이 어찌 좋을까요?

한 시대의 끝이 어찌 축제일까요?

말해주세요, 기지가 어떤 공격을 받았는지 아시나요?

 

블랙우드:

알고 있소. 하지만 누가 공격했는지는 모르오.

 

싱클레어:

연합이랍니다. 이제 그들은 광기에 빠졌지요.

 

블랙우드:

이제? 예전에도 광인들이 아니었나? 책 태우는 야만인들! 이런!

아, 나의 불어를 용서하시오, 마법사 싱클레어.

 

싱클레어:

불어가 아니지요, 주군. 우리는 지금 연극투로 말하고 있으니.

 

블랙우드:

정곡을 찔렸구려!

하지만 그래, 그들은 뒤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 하오.

그들은 기적의 세계를 통제하길 원하오. 마치 마법을 굴복시키겠다는 듯이!

신이시여, 기적을 길들일 바에야 차라리 타라스크를 길들이는 게 더 쉽겠구려!

그래, 우리의 해안에서 그들이 목격되었소.

 

싱클레어:

신이시여!

힘이 돌아와 다행이에요!

 

블랙우드:

이 사본이, 결정체가 그대에게 숨결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오?

 

싱클레어:

제 폐에 또한 힘을 실어주지요. 더 이상 눈물로 밤 지새우는 일은 없겠지요.

생기가 제 몸을 채우니—동시에 걱정되는군요.

만약…사본 또한 힘을 잃는다면, 그때는 어찌해야 하지요?

마법의 진짜 끝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군요.

 

블랙우드:

그대의 두려움을 아오, 아름다운 마법사.

하지만 들어보시오! 주의해야 할 것이 있으니.

 

싱클레어:

무엇이죠?

 

블랙우드:

무엇이 아닌 누구요.

내가 알고 있던 한 남자—가장 똑똑한 까마귀를.

 

전원 퇴장.


3막 두 번째 장면Act Tertius Scene Secundus

 

전 23번 KEY 프로젝트 시설

 

연금술사 레이놀즈와 상왕 델바흐 입장

 

레이놀즈:

이것은 무슨 조롱이옵니까?

 

델바흐:

이건 그대가 찾는 사본의 산물이다.

말하라. 사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레이놀즈:

아, 폐하! 저는 그저 단순한 상담가에 불과하오니,

신비의 기술은 제 몸을 떠난지 오래이옵니다.

(독백)

펜타메터는 그 자체로 자아내기 어려우니,

운 맞추기를 싫어하지 않아 다행이로구나.

 

델바흐:

이미 브라실엔 다시 생기가 솟구친다.

시간이 시작된 이래 지금이 가장 마법으로 넘치리라.

번개 맞은 듯이, 우리 모두 힘이 솟아나니!

 

레이놀즈:

저의 캐서린 또한 그리 느끼나니, 아아, 그럼에도 그녀는 의식을 거부하옵니다.

 

델바흐:

어째서지?

 

레이놀즈:

그녀의 권능은 쇠퇴했고, 그녀의 의지는 꺾였나이다—

혹은 그리 생각하나이다. 그래서, 사본은 어디 갔는지요?

 

델바흐:

해안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으니, 이젠 발로르 산 꼭대기에 있다. 

아아, 분화구만이 남았구나.

 

레이놀즈:

파괴된 것이옵니까?

 

델바흐:

도난당한 것이다. 연합의 야만인들.

세상이 거대한 숲이라면, 그들은 나무꾼이로다.

 

레이놀즈:

나무꾼이라 하시었나이까, 폐하?

 

델바흐:

열대우림.

히브라실, 구덩이, 거리, 이 모든 것들이 마법과 생명의 보루이니.

마치 아마존 열대우림 같이, 하지만 더 큰 위기에 처했다.

 

레이놀즈:

저희는 조각을 추적했나이다.

 

연합 요원 보위, 사본 조각을 든 채로 입장. 

 

보위 요원:

너희들은 죽을 것이다!

아, 혐오스러운 요정이여, 아, 증오스러운 마법사여! 물러나라!

 

레이놀즈:

제기랄! 저 자는 조각을 들고 있사옵니다! 부디 물러나주시옵소서!

 

(독백)

제기랄? 진짜로? 이런 시발, 이 넥서스 진짜 거지같네.

 

보위 요원:

너에겐 나를 막을 방법이 없으니!

통제권을 위해, 이 조각은 나의 것이 되리!

 

레이놀즈:

맙소사, 저 자는 말을 어찌 저렇게 하는 것이옵니까? 구조도 엉망진창이옵니다.

 

델바흐:

하! 저치들이 책을 태우기 전에 읽어볼 성 싶더냐?

우리를 찾아온 것 만으로 경이롭구나.

 

보위 요원:

사본을 통제하려던 시도 중에 사본이 파괴되었도다!

대신, 사본은 네 조각이 나 세상 곳곳으로 흩어졌나니!

너희는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이다—연합은 재탄하리다!

불사조처럼 되살아나리라, 세상에 남은 유일한 마법사들이여!

 

델바흐:

역겨운 악당이여, 조언을 해주마.

 

델바흐가 권총을 생성해 보위 요원을 쏜다. 보위 요원이 쓰러진다.

 

독백이 너무 길구나.

 

보위 요원:

총? 지금 총을 쏜 것이냐? 이 혐오스런 요정이!

 

델바흐:

마법이 쇠퇴해도 나는 적응한다.

 

보위 요원은 사본 조각을 집은 채 무대 왼쪽으로 퇴장한다.

 

레이놀즈:

해내셨사옵니다, 폐하! 저 역겨운 짐승을 뒤쫒아야만 하옵니다!

 

델바흐:

아니다. 아직 대사 몇 줄이 남았으니, 그러니 말하라, 

독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레이놀즈:

신이시여, 싫사옵니다.

 

델바흐:

미안하군. 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니.

하지만…

델바흐는 말을 잠시 멈춘다.

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 그럼.

 

레이놀즈:

무슨 소리이옵니까?

 

전원 퇴장.


3막 마지막 장면Act Tertius, Scene Terminus

히브라실 해안

신사 블랙우드 경과 마법사 싱클레어 입장

 

싱클레어:

블랙우드 경, 이 가장 똑똑한 까마귀란 자는 누구인가요?

 

블랙우드:

가장 똑똑한 까마귀에게 우리는 우리 생명을 빚졌소.

혼돈의 바다에서 그는 남자와 여자 열셋을 빚었다오. 

모두 위대한 사상가이자 용감한 자들이었소.

그는 영Zero이라고 불렸지만, 나는 그를 알고 있소. 

노리스 아클레이. 그대보다도 강력한 마법사라오.

그대는 강력하오, 아름다운 싱클레어, 마치 태양풍처럼.

노리스는 초신성이었소, 그래—

트리니티라는 도시를 들어봤소? 핵공격에서

살아남은 도시를? 오호, 도시 위에

아클레이의 보호가 있던 덕이라오. 아, 그리고

빅토리아의 독이 든 덜베일이 있구려.

거주민들이 독약 속에서 먹고 사는 곳,

거미들이 개의 콧물에서 사는 곳? 아클레이는

그곳을 치유하고 저주했소. 그가 그곳에 머독 일족의

독이 퍼지는 것을 보고 삭제하려 든 자요. 아아,

덜베일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송곳니를 주나니.

그리고 또—

 

싱클레어:

주군이시여, 제발, 그만 해주시지요.

아클레이가 신비의 달인인 것은 알겠어요. 하지만 주군?

 

블랙우드:

왜 그러시오?

 

싱클레어:

어째서 그 자를 까마귀라 부르는 것인가요? 그것도 가장 똑똑한?

 

블랙우드:

이 재단을 설립할 때, 나는 까마귀인

사람들을 보았소.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놈들. 

불길한 야망가들. 아클레이가 나타나 일원이 되기를

바랐소. 나에게 많은 것을 주며.

가장 똑똑한? 어째서인지 기억이 안 나는구려.

미안하오, 싱클레어.

 

싱클레어: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주군.

 

보위 요원, 절뚝거리며 입장

 

싱클레어:

세상에 맙소사!

 

보위 요원이 권총을 들고 사본 조각을 겨눈다.

 

보위 요원:

물러나라! 물러나라 말했다!

내 배가 해변가 반 킬로미터 아래에 있으니!

나를 거기까지 데려다 주지 않으면 이 사본이 큰일날 것이다!

 

싱클레어:

아, 언제나 놀라게 해주는군요, 연합.

싱클레어는 두 개의 사본 조각을 꺼낸다. 세 번째 조각, 요원이 들고 있는 주황색 조각이 싱클레어의 조각들에 이끌린다.

 

싱클레어:

우리가 아무리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보존을 위해 노력했어요, 짐승.

그대들이라면 이 세상을 억겁 전에 멸망시켰겠지요.

 

보위 요원이 총을 쏘지만 빗나간다. 블랙우드가 소총을 쥐고 쏜다. 요원이 쓰러진다.

 

보위 요원:

어떻게?! 씨발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개좆같은 바다민달팽이 주제에! 대체 씨발 어디서 그 총을 꺼낸 거야!

어떻게?!

 

블랙우드:

바다민달팽이라니! 그리고 그 고약한 입버릇 하고는! 그대의 신경은 참으로 충격적이오.

그리고 구조를 지키지도 않는구려. 제기랄.

 

싱클레어가 사본 조각을 주워 자신의 두 조각과 합친다.

 

싱클레어:

지금 당장은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주군?

 

블랙우드:

왜 부르시오, 마법사 싱클레어?

 

싱클레어:

하룻밤 묵는 것은 어떤지요?

아르헨티나는 너무도 멀고,

저희는 지쳤답니다.

 

블랙우드:

그렇다면 우리는 쉴 것이오.

 

싱클레어:

요원은 어쩌실 것이지요?

 

블랙우드:

경비들을 부르겠소. 하지만, 아름다운 싱클레어,

물 속에는 아직 배고픈 것들이 거닐고 있을 것이라오.

참으로 안 되었구려, 적이여.

 

보위 요원:

좆이나 까잡—

 

전원 퇴장.


 


 

제4장.

푸에르토 엑스트라뇨Puerto Extraño에서 내가 보낸 시간

필립 베르호텐, ‘피난처: 변칙성의 종말에서 넥서스의 역할’로부터.

(원고 미완성)

 

1. 서론

푸에르토 엑스트라뇨, 내부적으로는 Nx-572로 알려진 그곳은 위기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발견되고 분류된 넥서스 중 하나이다. 동시에 그곳은 변칙적인 성질이 언제 발현되었는지 고려했을 때 가장 젊은 넥서스 중 하나였다. 변칙성 또한 독창적인 방식으로 발현된 탓에, 푸에르토 엑스트라뇨는 외계 기원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넥서스가 되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과 동시에 아르헨티나의 과학기술혁신부는 레오폴도 갈티에리Leopoldo Galtieri에게 남극 탐사로 위장하여 비밀리에 남극 반도에 식민지를 형성하라는 임무를 하사받았다. 남극 반도를 손에 넣기 위한 아르헨티나의 첫 시도는 아니었다. 1978년 아르헨티나는 남극 반도를 자국 영토라 주장하기 위해 남극에서 출산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식민지 개척자들은 전쟁이 발발하기 하루 전, 1982년 4월 1일에 반도에 상륙했다. 그들은 그 이후 10주동안이나 남극 반도에 갖혀있어야 했다.

 

그 10주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대부분 밝혀지지 않았지만, 갈티에리 정권의 붕괴 이후 그들의 배와 모든 식민지 개척자들은 과학부의 명령으로 기묘한 물체를 끌고 아르헨티나 한 항구로 돌아왔다.

 

양 쪽이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고 위는 뾰족했으며 아래는 평평했던 그 물체는 타원형 기둥을 연상케 했다. 식민지 개척자들이 연구를 시작했을 때 그것은 회색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이 빛은 주위 식민지 개척자들의 몸을 변이시켰다. 식민지 개척자들은 그동안 두꺼운 방한구로 그 변이를 숨길 수 있었지만, 아르헨티나의 온대 기후 속에서는 결국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변이 중에는 아가미의 형성, 더 길고 덥수룩해진 체모, 회색 공막, 그리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가 약 5센티미터정도 늘어난 것 등이 있었다. 마지막 변이는 특히 주목할 만한데, 식민지 개척자들로 하여금 그 원형 기둥 —테라포밍 기구를 활성화시킬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회색 빛의 파동이 항구를 덮쳤고, 항구의 환경과 그 안에 있던 모든 유기체들을 불가역적으로 외계의 형태로 변형시켰다. 지역 안에 있던 모든 식물들의 엽록소는 회색 빛으로 광합성을 할 수 있도록 선명한 파란색으로 변했다. 동물들은 기존의 형태를 어느정도 연상케 하는 기괴한 형태로 변이했다. 가마우지는 다리 근처에 날개 한 쌍이 자라났고, 마젤란 펭귄은 부리가 늘어나 그 안에 완전히 발달된 이빨이 돋아났다. 어떠한 인간들도 식민지 개척자들만큼이나 극적인 변이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더 길어지고 덥수룩해진 체모를 포함해 몇몇 특징은 이어받았다.

 

이러한 변이와 함께 일종의 공감적인 군체의식이—넥서스에서 멀어질수록 그 강도가 약해지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신경망’이 형성되었다. 이 신경망은 외계 환경, 유기체와 결합하여 항구 안 사람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고립되고 소외되게 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2009년 항구가 아르헨티나-재단 합동 탐험대에 의해 재발견되었을 때, 아르헨티나 당국은 이를 ‘푸에르토 엑스트라뇨’라고 명명했다.

 

오늘날 이 장소는 제572기지에 의해 감독되고 있으며, 미구엘 갈반 감독관이 항구의 시장 또한 역임하고 있다.1(목적의 차이는 명백하다. 이건 재단이 최전성기였을 때의 집합체술Nexology 부서에서 행한 최후의 행동 중 하나로, 지역 정부에 재단 인원을 심으려는 시도였다.)

 

2. 사라지는 마법.

사태가 시작된 이래 두 그룹이 살아남을 거라 예상되었다. 외계의 변칙성과 변칙적 야생생물들이다. 현 시점에서 고려했을 때 후자가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SCPS 솔리다리티 호가 부식되거나 SCP-3003의 문명 전체가 하룻밤 사이에 무너졌을 때엔 모든 관계자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외계에 기원을 둔 유기체나 기술들이 단순히 지구 과학의 범위를 벗어났을 뿐, 자연법칙이 아니라고 추론했다.

 

푸에르토 엑스트라뇨는 외계에 기원을 둔 세 넥서스 중 하나였으며(다른 둘은 뉴멕시코 주의 소코로와 애리조나 주 피닉스 시의 백도어후즈도이다), 변칙성의 상실은 곧바로 거주자들에게 파멸적인 영향을 미쳤다. 테라포밍 기기가 작동을 멈춘 이후, 시민들은 지구화된 대기에 질식하기 시작하였으며 생물군은 대멸종을 겪었다. 달의 뒷면에서 일어난 변화나 명왕성이 행성으로 재지정된 일에 비해서는 사소한 사건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인류는 많은 천문학자들을 알코올 중독증으로 몰아간 암울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인류는 완전히 혼자였다.

 

이에 나는 연구를 위해 푸에르토 엑스트라뇨로 향했다. 그간 넥서스를 연구해온 나는 외계 관련으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었기에 그 사실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를 원했고, 동시에 우리만이 남게 된 이 우주가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 알고 싶었기 떄문이었다.

 

3. 구조조정

이 위기에서 가장 안 좋은 점을 꼽자면 재단 밖 사람들이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 국제정세, 혹은 잘못된 이론들에 대한 몇 가지 증거들이 제시되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간 기억소거제 생산에 수조 달러를 낭비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밤에 안심하고 잠들 수만 있다면 마법의 존재를 부정하고 훨씬 일상적인 설명에 안주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년 6월에 외계 비행선이 뉴멕시코주 로스웰 근교에 추락한 적이 있었다. UFO 추락으로 유명한 지역에 우주가 직접 외계 생명체 존재의 증거를 내어주었음에도, 우리가 변칙적 유기체들이 으레 그렇듯 점액질로 변해버리기 전에 잔해를 대충 수거하는 동안 세상은 별 것 아닌 일로 여기고 넘어갔다.

 

재단은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대해 아는 여러 조직 중 하나이다. 위기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는 발표가 있기 며칠 전, O5들은 대중에게 비호전적인 첫 접촉의 증거를 공개해야 할지 의논해야 했다. 결론이 나고 투표로 넘어가기 고작 몇 분 전, 해당 행성에서의 대사관들이 연달아 폭발해버리는 바람에 이 의논은 허사로 돌아가게 됐다.

 

몇몇 외계종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아직 변이한 상태인 푸에르토 엑스트라뇨의 거주자들에게 그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무기력함과 절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나는 내 충성심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절망 속, 하늘에서 자그마한 반짝거림이 떨어졌다.

 

4. 불꽃을 일으켜라

4월 26일에 예고 없던 유성우가 발생하였으며, 이에 나를 포함해 아직 이 도시에 남아있던 자들은 편두통을 느꼈다. 이 유성우는 전례 없던 현상이었으며, 많은 이들이 아직 작동하던 아레시보 망원경 화면 앞에 모여 경악을 할 수밖에 없다.

 

유성우는 독특한 색을 띄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초록빛으로 빛났으며, 아래에 있던 땅을 기묘하게 비추고 있었다. 별들이 바다 너머에 떨어졌는데, 그 중 하나는 도시의 중심부에 있던 테라포밍 기기 위에 떨어졌다.

 

‘마을 광장’이라고 완곡하게 불리는 죽은 땅과 동물 시체들이 테라포밍 기기라는 거대한 금속 기둥을 감싸고 있는 공간이었다. 한때는 재단이 어떻게든 진입하려 했던 넥서스의 진원지였지만, 지금은 단순히 화재위험지역에 불과했다. 하지만 초록색 빛이 테라포밍 기기와 충돌하고, 회색빛 불이 광장을 감쌌다.

 

그 다음 일어난 일은 동시에 따뜻한 샤워, 햇빛 화상, 그리고 첫키스처럼 느껴졌다. 변칙성이 사라졌을 때 군체의식에서 절단당한 시민들은 설명하기 불가능한 방식으로 다시 군체의식에 접속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에 휘말렸다.

 

절친한 친구들, 가족, 모든 애완동물과 뇌를 공유하며 항상 반가운 기분이 드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것이 내가 회색 빛과 함께 내 머릿속에 신경망이 이어졌을 때 느낀 기분을 말로 최대한 설명해본 것이다. 기쁨과 안락함. 마치 마음이 포근하게 안기는 듯한 기분.

 

위기 전에 비해, 세상은 새로운 색들로 가득 차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또한 다시 사라지리라는 직감 또한 느꼈다.

 

5. 침입자

캐서린 싱클레어 박사는 서방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적학자 중 한 명이며, 그런 그녀가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간 지 일주일도 안 된 푸에르토 엑스트라뇨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모든 것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변칙현상의 쇠퇴 이후, 기적술사들은 거의 범우주적인 규모로 기적억압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다. 싱클레어 또한 마찬가지였다. 6개월 전 한 학회에서 그녀를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녀는 굉장히 비참해보였다. 그에 비해 지금은 훨씬 쾌활하고 사교적인 듯 보였다. 홀로 이 도시에 온 그녀는 남편이 루이지애나로 향하고 있다고 했으며, 자신 또한 곧 그곳으로 떠날 것이라 말했다.

 

그녀는 갈반 감독관과의 만남을 가졌다. 그녀의 허락 하에 나도 그 자리에 동행했었다. 그녀는 마법 전체를 되살리겠다는 자신의 목석을 설명했으며, 동시에 우리에게 도움을 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테라포밍 기기를 다시 작동시킨 그 물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푸에르토 엑스트라뇨의 신경망은 테라포밍 기기를 중심으로 굉장히 강한 자가보전기제를 가지고 있다. 이는 2009년 세 탐사대 인원들이 테라포밍 기기의 제거 시도를 하던 중 시민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사건으로 명백히 드러났다.

 

갈반이 그녀에게 결정체를 보여주자, 신경망의 영향을 부정하기가 어려운 기분나쁜 공포가 우리에게, 도시 전체에 엄습했다. 그녀가 결정체를 만진 순간 넥서스 전체가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그 결정체를 가져갈 생각이었고, 그렇게 되면 신경망은 다시 한 번 죽을 것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되도록 둘 수 없었다.

 

갈반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그녀를 겨누며 물러나라고 외쳤다. 그녀는 우리를 광인 보듯이 했다. 솔직히 말해, 당시 우리가 미쳐있던 것 같기는 했다. 신경망,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싱클레어를 기생충이자 위험한 포식자로 보았다. 우리는 싱클레어가 둥지 전체를 무너트리기 전에 그녀를 제거해야만 했다. 싱클레어가 물러나기를 거부했을 때, 갈반이 그녀의 주의를 끌었고…나는 의자를 들고 그녀의 뒷통수를 후려졌다. 그 때 나는 그녀의 한쪽 눈이 의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안와에서 의안이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우리는 우선 그녀를 구금한 뒤, 그녀의 처우를 결정하기로 했다.

 

6. 잠에 빠지다

싱클레어 박사는 주도권을 되찾기 전 약 6시간동안 구금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 결정체가 그와 비슷한 일곱 조각 중 하나라고 설명했으며, 세 조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 결정체들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았고, 우리도 그녀를 구금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그녀의 소지품을 수색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공포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야기하는 법이며, 그 공포가 주입된 것이면 더욱 그러했다.

 

그 다음엔 난 죄책감에 시달렸다. 사과를 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갔을 때, 나는 유치장 구석에서 눈물흘리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상심한 듯이 보여 말을 걸려고, 사과를 하려 했다. 하지만 동시에, 내 경험에 의하면 싱클레어 박사는 스트레스 때문에 무너져 울기 시작할 사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고개를 나를 향해 돌렸다. 그녀의 얼굴 왼쪽이 피로 흥건했다. 나는 뒤로 물러나며, 그녀의 의안이 있던 자리에 빨간색, 주황색, 그리고 노란색으로 빛나는, 힘으로 가득한 구체가 박혀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새로운 눈이 나를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눈을 한 번 깜박이자 얼굴에 묻어있던 피가 증발하듯 사라졌고, 눈은 조금 더 자연적인 색으로 빛났다.

 

그리고, 그녀는 몸에 가득 흐르는 마법으로 유치장과 나머지 세상을 단절하는 강화유리 판을 뚫고 쉽게 걸어 나왔다. 그녀는 내 이마 위에 손을 얹고 한 마디를 속삭일 뿐이었다. “잠들어라.”

 

나는 열두 시간 뒤에 깨어났다. 내가 꺠어났을 때 운석인 사라져있었고, 기지 전체가 무력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도시는 여전히 기능중이었다. 싱클레어는 사과문이 적힌 쪽지 하나만을 남기고 차량 하나를 갈취해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 떠난 뒤였다.

 

이 기록을 적고 있는 지금, 나는 호주 덜베일로 향하고 있다. 자기보존만을 위해 나에게 그런 폭력성을 주입할 수 있는 도시에는 단 한순간조차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싱클레어 박사는, 내가 알기로는 루이지아나, 그리고 라 뤼 마카브르로 향했다.

 



(원문 루이지애나 사투리 어투 못살림.)

 

나는 매일매일 바라듯 라 뤼에 들어가겠다는 마음으로 널린스(뉴올리언스), 디케이터에서 모건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었지. 라 뤼에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 날은 들어갈 수 있었다. 라 뤼가 그토록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어.

 

그곳은 따뜻하고 습했어. 마치 악어의 식도에 쳐박힌 듯이. 그리고 네버 엔 낫 온 곳에서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어. 마치 마르디 그라가 후두를 잔뜩 보이고 있듯이. 낸시 영감도 거기에 있었고. 레그바 할배도, 남작도. 심지어 바이우 소년단 또한 그곳에 있었다니까.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바이우 소년단은 재단 놈들(‘dation)이었고 재단 놈들은 라 뤼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원인이었지. 하지만 그들은 지금 라 뤼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여기서 술이나 퍼마시고 있네. 이 중에는 낯선 이들도 있었는데, 불꽃 머리칼을 한 여자애와 멋진 레게머리를 한 그녀의 남자였어. 관광객처럼 보이는 둘은 재단 놈들 마크를 달고 있었지. 여자애는 멀리서부터 벌레 퇴치 스프레이 냄새를 풍겨올 정도였고.

 

걔네들은 무슨 고리타분한 공무원마냥 레그바 할배랑 얘기를 나누고 있었어. 여자애는 지가 뭔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니까. 여자애가 말하는 방식은 진짜 대단했지. 엄청 고리타분한, 진짜 너무 고리타분한 호칭들로 말이야. 내 생각엔 그거 때문에 낸시 영감이 열받았던 것 같아. 낸시 영감이 그 여자애를 무슨 짜증나는 파리 보듯이 하고 있었으니까.

 

“마법사 계집!” 그가 말했어. “니들이 한 게 없다는 듯이 이렇게 그냥 들어와도 되는 게냐? 내가 전처럼 엄청 똑똑한 거미였던 게 아직 일주일도 안 된 일이다! 모든 이야기를 잃었다고! 너희들이 그 지독한 냄새를 풀풀 풍기고 다니기나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그녀는 영감이 외국어라도 한다는 듯이 바라봤지. 영감은 퀸스 영어로 말할 뿐이었는데, 그 여자애는 무슨 화성인 바라보듯 했다니까! 그녀가 크레올 말로 대답하지 않아서 무슨 소리를 했는지 여기다 적을 수는 없는데, 걔 남편이 끼어들었어. 퀸스 말처럼 들리긴 했는데, 조금 더 정중한 어투로. 근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낸시 할배요,” 그가 입을 열었지. “우리는 라 뤼뿐만이 아니라 마법을 다시 만드려 왔으니, 사본 좀 넘거주쇼.” 걔가 말하는 사본이 뭔지는 몰라. 나는 그냥 내가 보고 들은 걸 적고 있을 뿐이니까.

 

낸시 영감은 걔를 마치 끝이 왔을 때, 라 뤼가 닫히기 시작했을 때 재단 놈들을 노려본 식으로 노려봤어. 그 있잖아, 왠지 괜히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그런 시선으로 말이야. “흰둥이 냄새가 나는군.” 영감이 말했지. “흰둥이처럼 말하고, 아예 세상에서 가장 흰둥이 놈들 같은 조직에서 일하고 있기까지 하지!” 그래서 그 남자가 재단이 얼마나 다양성있고 다문화적인지 뭔지 하는 개소리를 늘어놓으려 했는데, 낸시 영감은 씹고 말했어. “내 말은 재단 놈들의 정신 자체가 흰둥이같다는 거다! 위대한 정복자, 구원자, 어둠 속의 빛이라니, 허! 대체 얼마나 많은 놈들을 재단의 노예로 삼아왔나? 그, 뭐더라, 디이 계급?”

 

“전부 풀어줬다니까요.” 그 남자가 말하더라. “더 이상 필요 없어졌으니까.”

 

“그럼 내가 무슨 디이 계급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눈감아주기라도 해야 하는 거냐? 여기서 썩 꺼져라, 재단 놈들아.”

 

“잠깐만요. 바이우 소년단들은 여기 있어도 되는 거요?”

 

“쟤네들은 재단 놈들이라는 달라. 쟤네는 라 뤼의 일부라고.” 영감이 코를 먹으며 말했어. “쟤네들은 내 거미줄 위에서 달라붙지 않고 걷는 법을 알아. 너네는 그럴 수 있냐?”

 

그리고 낸시 영감은 이상하게 생긴 보석을 들어올렸어. 그 보석은 새파랬고, 그간 라 뤼에서 본 어느 물이나 하늘보다도 더 맑아 보였지. 바이우 그 자체가 되살아난 듯했다니까! 재단놈들은 낸시 영감의 거미줄에 걸려서 옴싹달싹도 못했어. 영감은 그들을 점심거리 보듯이 했지. 그런데 영감이 갑자기 마법사 여자애의 한쪽 눈을 뽑아내더니 목에 목걸이처럼 쓰더라. 개인적으로는 조금 소름끼쳤달까.

 

낸시 영감은 재단 놈들을 네버 엔 낫 앞에 몇 시간이고 매달아놨어. 걔네들 계속 내려달라고 빌었었는데 말이야. 그 여자애 거의 탈출할 뻔 한 적 있었는데, 낸시 영감이 호락호락한 마법사가 아니라는 걸 잊고 있었지. 그 뒤로 한 시간동안 입을 열 때마다 입에서 거미가 튀어나오는 벌을 받게 되었어.

 

그리고… 우리는 부츠 터벅, 터벅, 터벅 하는 소리를 들었어. 검은 옷을 뒤집어쓴 남자 여자 열. 지오씨(Geo-See, GOC) 휘장을 매달고 있었지. 이 라 뤼에서 말이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낸시 영감이 그들을 본 순간 모든 사람들을 라 뤼에서 내보냈어.

 

물론 나는 남았지! 누군가는 남아서 나중에 이야기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지오씨 놈들이 낸시 영감한테 다가갔어. 한 남자가 그들 중에서도 앞으로 튀어나왔지. 엄청 열받아 보이더라. 어깨에 총이라도 맞은 것마냥 절뚝였는데, 낸시 영감의 가슴팍에 총을 겨누더라. 낸시 영감한테 그 목에 있는 장식품을 포기하던가, 영감이랑 라 뤼의 거주민들이 총알세례 맛을 보던가라나 뭐라나. 근데 그 지오씨 자식이 실수를 하나 했지. 감히 영감한테 ‘아난시Anansi’라고 하다니. 뭔 그딴 무례한 놈이 다 있냐.

 

지들 딴에는, 그 남자 이름이 보위랬나, 아무튼 그 남자 딴에는 지들이 막 전능하고 뭐라도 된 듯했을 거야. 낸시 영감은 그걸 알고 있었어. 영감은 바이우 그 자체를 이용해 거미줄을 치려 했어. 지오씨 자식들을 끌어들이려 했지. 근데 지오씨 놈들은 그게 마음에 안 들었나봐. 낸시 영감은 그 파란 보석을 목에 걸고 있었는데, 보위 그 자식이 그걸 그냥 뜯어내더니 낸시 영감 가슴에 총알을 한 발도 아니고 열 발이나 박았다니까!

 

모든 식물과 동물들이 비명을 질러댔어. 새들부터 시작해 낸시 영감이 돌보던 거미들까지. 거미줄이 영감 가슴팍에서 튀어나와서 지오씨 남자의 팔을 휘감더니 불태우기 시작하더라. 근데 지오씨 자식이 팔을 빼려다가 보석이 박살났어. 거미줄에서 풀려난 그 여자의 남편이 보위를 덮치려 했는데 라 뤼가 적당히 날뛰어야지. 거리는 출렁이더니 폐수랑 거미줄이랑 무덤 흙이 막 튀어나오고 장난도 아니었다니까. 살면서 그런 광경을 본 건 처음이었다니까. 낸시를 쏜 게 라 뤼를 죽이고 있던 거야.

 

그러더니 낸시 영감이 허물을 벗어냈어.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하지만 영감은 그래야만 했어. 라 뤼가 완전히 무너져내리는 걸 막는데 필요한 거미줄을 자아내려면 그래야만 했거든. 지오씨 남자가 보석을 집더니 길을 열고는 지 따까리들 데리고 도망치지 뭐야!

 

낸시 영감은 피흘리고 있었지만, 죽어가는 건 아니었어. 그래도 마법사 여자랑 그 남편이 영감을 치료하려는 건 막을 수 없었지. 영감이 빡쳐서 막 뭐라 외쳤어. 우리는 이전까진 괜찮았다느니, 그냥 내버려두라느니. 낸시 영감은 라 뤼가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지.

 

그래서, 레게머리 남자가 노란색 보석을 집어들더니 낸시 영감한테 주더라. 마법사 여자는 그나마 남아있던 파란 보석 조각들을 집어들어 초록색 보석이랑 합쳤고. 걔 엄청 슬퍼보였는데, 그래도 그걸 낸시 영감한테 주더라. 영감은 그 보석들을 이용해 라 뤼가 입은 피해들을 되돌렸는데, 한동안은 온 세상이 무지개로 가득 찬 것만 같았다니까.

 

라 뤼가 어느정도 멀쩡해졌을 때 나는 그들을 남겨두고 다시 거리 탐방이나 떠나리고 했어. 라 뤼는 다시 개방되었고, 지오씨 자식들이 아무리 망쳐놓아도 고향은 고향이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거리를 나돌면서도 알고 있었어. 앞으로 영원히 라 뤼가 닫히는 일은 없을 테도, 마법이 죽어버리는 일도 없으리란 걸.


 



보링 일보

 

오레곤주 보링. 5월 17일 월요일. $1.99

 

동물의 난동이 도시를 뒤흔들다

윌슨 야생동물구제 대표 구금되다

 

저자: 드리스콜 울프, 야생동물 담당자

 


 

사건 도중 윌슨 야생동물구제 시설을 탈출한 판다, 토프린.

 

월요일, 윌스 야생동물구제 시설을 탈출한 수십 마리의 동물들이 보링 시에 혼돈을 불러왔다. 그 날 거리는 동물들로 가득했다.

 

증언에 의하면 동물들은 윌슨 야생동물구제의 대표자 페오윈 윌슨 씨가 풀어준 것으로 보인다. 윌슨 야생동물구제는 각종 이국적이고 기묘한 동물들을 보호한 것으로 클래커마스 카운티에서 널리 알려진 동물보호 단체이다. 윌슨 야생동물구제는 윌슨 씨의 공식적인 발표에 의하면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생물들에게…해로운 환경 변화’에 의해 폐쇄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 윌슨 야생동물구제 시설에 운석이 추락한 것으로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건 이후 윌슨 야생동물구제는 다시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 투자 유치의 일환으로써 남색 유리조각처럼 생긴 운석이 시설의 본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 물건이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이 사건의 핵심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월요일 이른 아침,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30대 후반 백인 여성과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흑인 남성 2인이 클래커마스 카운티 보안관부서 일원 몇 명을 대동한 채 윌슨의 야생동물구제 단지 정문에 나타났다. 윌슨 씨가 그들을 단지 내로 들인 것이 목격되었다. 오전 8시까지 윌슨 야생동물구제 시설에서 남색 빛이 번쩍였다는 목격 사례가 여러 건 접수되었다. 이후 오전 8시 7분, 아이들이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을 순간 동물들의 탈주가 시작되었다.

 

목격담에 의하면 윌슨 씨는 남색 운석을 소지한 채 ‘발굽 대신 발톱이 달린 유니콘’으로 보이는 동물의 등에 올라타 있었다고 한다. 윌슨 씨는 이 남색 운석으로 기승하고 있던 동물과 다른 동물들을 조종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당히 근거 없는 주장이긴 하나, 현재 보링일보가 수사에 착수중이다.

 

주시할만한 피해로는 ‘거대한 웜뱃’에 의한 보링 시의 유치원 시설 파괴, ‘(원 발언 그대로)불타는 뿔을 가진 사슴들’에 의한 소규모 산불, 그리고 도시의 비법인 지역에서 맥tapir 한 마리를 목격한 이후 기묘한 꿈을 꾸었다는 개개인들의 증언 등이 있다.

 

또한 이른 아침 윌슨 야생동물구제 단지에 입장하는 것이 목격된 두 사람이 윌슨 씨와 대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 리포터는 그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하려 했으나, 그들이 대량의 전기를 발산하는 것으로 보이는 양으로 추정된 생물과의 전투행위를 시작함에 따라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부상자 한 명을 제외하면 아무런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신원미상의 부상자는 윌슨 씨가 타고 있던 유니콘에 추돌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이며, 현재 안정적인 상태로 포틀랜드에 위치한 병원에서 치료중이다.

 

윌슨 씨는 추돌사고 이후 투항하였으며, 현재 경찰력에 의해 구금되었다. 윌슨 씨는 구두 선언을 남겼다.

 

“제가 어디까지 말해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근 몇 년 동안…여러가지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경제적 위기와도 같습니다. 제 생물들은 그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날 제가 하늘에서 그 보석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그 보석이 제 생물들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결국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사유하려 들었고, 제 감시관들이 그것을 회수하러 온 것을 보자 화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동물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리고…신께 맹세하건대, 제가 그 보석을 쥐었을 때 동물들이 스스로 그 [욕설 검열됨] 우리에서 탈출해버렸습니다. 감시관들은 그 보석을 사본이라 부르더군요. 믿을 수 있다면 말이죠. 저는 그들에게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리고…그들은 자신을 보호했습니다.”

 

몇몇 동물들의 행방은 현재 불명이다. 현재 윌슨 야생동물구제의 임시 경영권은 확산되는 반려동물들을 향한 학대행위를 격감시키고 보호하는 모임(Stop Cruelty towards Pets)이라 알려진 집단에게 이양되었으며, 해당 조직의 대표자인 몽고메리 레이놀즈는 보링일보에게 직접 기존 윌슨 야생동물구제가 제공한 서비스에 대해 “그에 비등하거나 더욱 훌륭한 서비스를 지속시킬 것”이라고 발언했다. 


 

 

캐서린 싱클레어는 왼쪽 눈에서 느껴지는 열 덕에 오른쪽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유니콘 뿔은 울퉁불퉁했고, 그에 찔렸을 때 느껴진 통증은 그야말로 저세상 것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회복되리라. 하지만 회복이 더뎠고, 싱클레어는 환자복이 상처에 닿는 감촉이 너무도 싫었다.

그녀는 오레곤 보건과학대학 병원 안 스리포틀랜즈로 향하는 길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구급대원들에게 꼭 이 병원으로 데려다달라고 부탁한 이유였다. 지금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몰랐다. 원래는 사슴대학 병원 본당으로 이어진 길이었다.

 

길은 간호사 휴게실 자판기 안에 있었다. 사본의 힘을 이용해 지쳐 죽으려 그러는 간호사로 위장해 잠입하는 것은 쉬웠을 터였다. 하지만 무장한 경비원이 휴게실 입구를 지치고 있었다. 마치 폭동진압장비를 차고 있는 듯했다. 싱클레어는 허리춤에 있던 수류탄을 알아보았다. 분필가루—마법을 억제하는 베릴륨-동 가루가 든 수류탄이었다.

 

전에는 살펴볼 시간이 없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있었다. 싱클레어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병원의 무균 복도는 사복과 전투장비를 입은 연합 요원들로 가득했다. “연합이 벌써 여기까지 왔어? 썅!”

 

“캐서린?”

 

싱클레어는 실밥이 늘어나는 것을 느끼며 뒤로 돌았다. 남편의 얼굴에 떠오른 실망은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쉬고 있으라니까.”

 

“스리포틀랜즈로 향하는 길이랑 마지막 조각이 한 곳에 있는데도? 그리고 온갖 곳에 연합 요원들이 깔려있는데도?”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저 자식들이 사본을 가지고 뭘 하려는 건지도 모르잖아.”

 

“우리가 하려는 것보다 심하기라도 할까?”

 

레이놀즈는 자신의 양손을 맞잡았다.

 

“재단이 그냥…마법에 목줄을 채워놓지 않을 거라고 누가 보장해주는데?”

 

“내가 보장할 거야.”

 

싱클레어가 단호히 말했다.

 

“위원회와 독대하게 되더라도 상관 없어. 마법은 그 자체로 돌아오게 될 거야. 하지만 우리가 모든 사본 조각을 손에 넣어야만 가능한 일이지.”

 

그녀는 모퉁이 너머를 보았다.

 

“망할. 저기에 들어가야 하는데, 어쩌지?”

 

레이놀즈는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생각해 봐, 캐서린. 생각해. 여기서 거기로 가는 길이 저거뿐일 것 같아? 사슴대학으로 가는 길이 과한 하나뿐일까?”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왼쪽 안와에 박혀있던 사본을 두드렸다. 영창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단순히 생각했을 뿐이다. 찾아라.

 

그녀의 시야에 금빛 선이 떠올랐다. 최소한 열 개는 되었다. 그 중 하나는 간호사 휴게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이 가장 가까이 있던 길이리라. 하지만 다른 하나는 방금 막 연합 요원들과 불안해보이는 의사가 내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레이놀즈와 싱클레어는 엘리베이터로 향해 달렸다. 사본의 지도에 따라 싱클레어는 버튼들에 노크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하강했다.

 

 

스리포틀랜즈는 자연스러움에서 가장 거리가 먼 곳이었다. 스리포틀랜즈는 포틀랜드라는 이름이 붙은 각기 다른 세 도시의 개념적이고 의미론적인 합의 끝에 생겨난 곳. 어느 의미로는 가장 인간스러운 장소였다. 그럼에도, 사슴대학 과학캠퍼스의 중앙 아트리움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건물 안에서 자라난 숲이었다. 굴뚝만큼이나 굵은 소나무가 아트리움 중앙에서 자라나 천장을 뚫고 있었다. 나무 주위는 천장에서 떨어진 대리석과 유리로 어질러져있었다. 그 잔해들 또한 잔뜩 자라난 풀과 덩굴에 뒤덮여 있었다.

 

“태평양 북서부가 침공하기라도 한 것 같아.”

 

싱클레어는 그 주위에 서서 말했다. 그녀가 있던 반대 쪽에는 대학의 나머지 건물들로 이어지는, 이제는 대학 캠퍼스보단 열대우림같아보이는 통로가 있었다. 지평선은 스리포틀랜즈에서 언제나 그리했듯 땅 위에 있었고,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은 방향감각을 상실할 듯한 경험이었다.

 

“사본 때문에 이렇게 된 건가?”

 

레이놀즈가 얼굴을 찌푸렸다.

 

“어떻게?”

 

“내 생각엔, 사본이 시장을 깨웠고, 시장은 그냥 다들 떠났다고 여겼을 테고, 그리고…”

 

그녀는 출구를 막고 있는 뿌리 밑으로 기어들어가며 말했다.

 

“사본이 스리포틀랜즈를 좀 더…덜 인간적인 장소로 재건한 것 같아.”

 

“흐음.”

 

레이놀즈 또한 뿌리 아래로 기어야 했다.

 

“그럼 조각은 어딨는데?”

 

찾아라, 싱클레어가 생각했다. 집중된 자색 빛줄기가 그녀의 시야 속에서 쏘아져나갔다. 빛줄기는 캠퍼스 중앙을 향하고 있었다.

 

“날 따라와.”

 

그들은 숲 속으로 망설임 없이 걸어들어갔다. 뒤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마지막 사본 조각이 사슴대학의 캠퍼스 물개 위에 걸려 있었다. 돌과 쇠로 이루어진 이 물개는 지면에서 약 1미터 정도 튀어나와 있었고 너비 또한 1미터 정도 되었으며, 사슴 대학의 문장이 각인되어 있었다. 정오나 자정에 커플이 이 물개 앞에서 키스를 한다면 평생을 함께하게 될 거라는 속설이 퍼져 있었다. 그 물개는 지평선보다도 더 높게 자라난 상록수 숲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왜 저기 떠있는 거야?”

 

레이놀즈가 고개를 기울였다.

 

“다른 것들은…울지 않았는데.”

 

“공중에 흐르는 EVE에 의해 고정되어있는 건 아닐까? 스리포틀랜즈는 언제나 EVE가 짙게 깔려 있잖아.”

 

그녀는 눈을 껌벅이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니면 나뭇가지에 이어진 얇은 실에 매달려있는 걸수도 있고.”

 

“함정인가?”

 

“못 만든 함정이지. 아마도 무언가로부터 주의를 끌기 위해—”
 
 싱클레어는 압력이 파도처럼 자신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그녀는 물개에 머리를 박은 채 코피를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부츠 소리가 그녀를 감쌌다. 그리고 그녀는 뒷통수에 총구가 겨누어진 걸 느꼈다.

 

얇은 실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자색 사본 조각이 연합 요원의 손에 들린 파란 조각과 중돌했다. 조각을 들고 있는 창백한 손은 거미줄 모양의 화상 자국이 나 있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쓴 채 그녀를 비웃었다.

 

“네가 지금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알고 있—”

 

“검은 가을 이래 너만큼 클리셰적인 악당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그녀는 코웃음쳤다.

 

“놀랍진 않네. 그나저나 어떻게 아직도 보위들이 남아있는 거야?”

 

보위는 웃었다.

 

“아, 썅, 그랬지. 맞아. 너, 슬로스스핏에서 왔나보군. 아아, 언제 한 번 그 도시를 밀어버려야겠어.”

 

그는 사본을 던졌다 쥐었다 했다.

 

“내가 히브라실에서 무어라 했는지 기억하나?”

 

“연합은 세상 모든 마법을 손에 넣길 원했지. 왜 그런지는 몰라. 만약 네가 나니아가 사실이란 걸 알았으면 최대한 많은 원폭을 모아다가 기폭시키고 옷장 문을 닫으려 했을걸.”

 

“그것보단 조금 복잡하지—그 장소 탓에 그런 식으로 말해야만 했으니까.”

 

보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법은 철과도 같아, 싱클레어 박사. 그 자체로는 딱히 쓸모가 없지. 그래, 지구를 자전시키거나 자기장을 유지시켜주기도 하고, 한 손에 들고 누군가의 대가리를 깨버릴 수도 있지. 하지만 인간들은 철을 다룰 수 있어. 버터칼이나 검이나 총열로 만들 수 있다고. 수 세기동안 너희들 기적술사들은 마법을 인간이 철 다루듯 해왔지—아무런 통제도 없이.”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사본 조각을 보더니, 이내 싱클레어의 안와에 박힌 것을 보았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다—마법을 통제하는 것. 물론 우리의 기준에 맞게 말이야.”

 

그는 자신의 칠분지 이의 조각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아직 사본은 완성되지 않았어.”

 

“그래서 뭐? 인질교환이라도 하자고? 내 눈과 남편을 맞바꾸기라도 할까? 아니면 너희 조직에 자리를 내주기라도 할—”

 

보위는 그녀를 억누르고 있던 요원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요원은 그녀를 일으켜 세워 보위를 마주보게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등 뒤에서 두 개의 열원이 폭발하는 소리와 고통에 찬 울부짖음을 들었고, 이내 그녀의 양쪽으로 온기가 흘러내리는 것 또한 느꼈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피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요원은 그녀를 물개 위에 그녀를 내려놓았다. 요원이 그녀의 눈에서 사본을 뽑아내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시야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델바흐 왕이 옳았어. 절대 독백하지 마라…무언가 대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두 번의 총성이 다시 들려왔다. 몽고메리 레이놀즈가 그녀의 곁에 쓰러졌다. 그의 몸은 충격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렇게…” 싱클레어가 피 끓는 소리를 내었다. “안 돼… 이렇게… 이렇게 되어서는…”

 

보위가 떠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보위는 한 손에 사본 조각들을 든 채 조립하려 들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수명을 바쳐 증오와 에너지로 가득한 공격을 그를 향해 딱 한 번 날릴 수 있음을 알았다. 연합에게서 사본을 완전히 빼앗고 그것을 제87기지로 전이시킬 수 있었다. 아니면 남편을 살리거나.

 

“몬티…” 

 

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몬티, 약속 하나 해줘. 반드시 저들을 막겠다고. 반드시…사본을 되찾겠다고.”

 

“그, 그러면 뭐 해.” 

 

그는 아내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네가 없는 세상이나, 마, 마법이 없는 세상이나 다, 또, 똑같아.” 

 

그의 눈꺼풀이 스르르 감겼다. 그의 호흡이 얕아졌다.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

 

싱클레어의 눈이 흔들리며 어떻게든 도움을 구해보려 했다. 쓰리포틀랜즈에서 흐르는 지맥을 이용한다면 몇 시간 정도는 그의 목숨을 붙잡을 수 있을 터였다. 남편과 자신 둘 다 살리려면 사본이 필요했지만, 그녀는 사본이 이 차원에서 떠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텅 비게 된 그녀의 왼쪽 눈이 파랗게 빛나고 있는 남편의 주머니로 향했다. 손을 뻗어 내용물을 확인한 그녀는 파란 결정체 파편을 발견했다. 그제서야 기억났다. 라 뤼 마카브르에서 벌어진 난투 속에서 떨어져나온 파편이었다. 몬티가 그걸 주웠었다. 그녀는 그 파편에 힘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몰랐지만, 아마 자신들의 숨통을 붙여놓는 데에는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몬티, 우린 괜찮을 거야.”

 

그녀는 레이놀즈의 핸드폰을 만들어내어 도움을 불렀다. 그리고 그녀는 그와 손을 맞잡았다. 그들의 손 사이에 오레이칼코스 조각이 빛나고 있었다.

 

“이 주문이 우리의 목숨을 부, 붙여놓을 거야. 여기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그, 그러니까 다 괜찮을 거야. 그냥…날 따라하면 돼.”

 

그녀는 숨을 들이키고, 의지를 실어 말했다.

 

“데 타 세토리아소.”

 

“데… 데 타…”

 

그가 기침했다.

 

“모, 못 하겠어. 발음을 모, 못 하겠어.”

 

“그, 그럼 영어로 말해!”

 

그녀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입을 맞추었다.

 

“’나는 바래지 않으리라’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몬티, 제발… 제발…”

 

그들은 정오가 지나갈 때까지 주문을 계속해서 영창했다.


 

<기록 종료>

관련 자료를 열람하기 위해 주 문서로 돌아가주십시오.


부록: 임무 보고서


SCP-6500-α의 회수에 관한 사후 보고에 접근하려면 자격증명을 재제출하십시오.



‘두 발가락 달린 배반행위’ 작전에 대한 간략한 검토:

 

세계오컬트연합 요원들에 의해 오레이칼코스 사본(SCP-6500-α-사본)이 도난당한 지 사흘 뒤, 캐서린 진 싱클레어 박사와 그녀의 남편인 몽고메리 레이놀즈 연금술 자문이 사후 재단 명예 훈장을 수여받게 되었음이 발표되었다. 또한 두 사람을 위한 장례식이 두 사람이 생애 대부분을 보내고 재단에 헌신한 위스콘신 주 슬로스스핏에서 열릴 것임이 발표되었다.

 

잔존 서사에너지는 마틴 보위가 이끄는 세계오컬트연합이 장례식 날 넥서스를 공격케 하도록 조작되었다. 기지 인원의 대다수가 장례식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연합은 성공적으로 넥서스-18의 도시 중심부를 점거했으며, 제87기지를 습격할 때 모든 재단 인원과 자산 및 재단과 관계된 민간인들을 심문 및 영입을 위해 사로잡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Nx-18 내의 서사 에너지가 연합의 행동을 큰 폭으로 방해했다.

 

예를 들어:

 · 연합 요원과, 그가 죽은 줄로만 알고 슬픔에 빠져있던 전 약혼자가 의도치 않게 재회하여 부대 하나가 통째로 보위의 세력을 배반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 십대 청소년 무리들이 요원 여럿을 무력화시키고 무기 및 전투장비를 빼앗아 도시 내 여러 학교들을 요새화하는 데에 사용하였다.

 · UAE-채프먼-971(“잼 도둑들”)이 갑작스레 재등장하여 연합측 방송과 송신을 방해하였다.

 · 수십 명의 생존주의자들이 시민들에게 다양한 무기를 지급하며 그들을 훈련시켰고, 동시에 그들을 현재 알려지지 않은 규모의 벙커로 피난시켰다.


이러한 방해들은 마틴 보위가 제87기지 입구를 돌파하고 감독관을 암살하기 위해 감독관실로 향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감독관은 이미 몇 시간 전에 대피한 뒤였으며, 대신 보위가 감독관실에서 찾은 것은 싱클레어 박사와 레이놀즈 자문이었다. 비록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싱클레어는 거의 유산할 뻔하기도 했다지만, 두 사람은 생존하였으며 정상적으로 회복중이었다.

 

마틴 보위는 싱클레어와 레이놀즈를 제앖하기 위해 오레이칼코스 사본에 담긴 에너지를 이용하려 했다. 두 사람은 보위가 사본을 획득하기 전 이미 한 달 이상 사본의 영향에 노출되어있었고, 이로 인해 사본이 두 사람의 존재와 조화를 이루는 결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공격받는 대신 보위에게서 사본을 빼앗는 의식을 치룰 수 있었고, 이내 사본은 재단이 확보하게 되었다.

 

보위의 몸은 이후 그가 슬로스스핏에 입장했을 때부터 짊어지게 된 악성 서사의 ‘무게’로 인해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현재 위독한 상태이나, 곧 회복하여 재판에 회부될 것으로 예상된다.


 




감독관 자격증명 입력:

 

나는 재탄의 작가요, 멸시당하는 자이니

불과 물과 공기와 땅 속에서

나는 홀로 서있으리라.

하지만 진실이 알려진다면,

[        ] 제출





성직자

셀 수 없이 많은 세상에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성한 기원을 둔 미지의 장치를 찾아라. 연결된 현실로부터 새어나오는 변칙 에너지를 이용하면 SCP-6500의 행진은 영원히 멈출 것이다.

성직자의 길

(얘네 영어로 -상 거림)

케가레汚れ


이부키 산

 

에구치 카이토는 시원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며 나무들 사이로 난 좁은 흙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지팡이—대대로 물려받은 고리 여덟 달린 석장에 기대었다. 카이토는 여러 대에 걸친 불교 승려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소명에 있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는 집이라 부를 절이 없었다. 그의 절은 탁 트인 하늘이었다.

 

카이토는 맨들맨들한 두피를 문지르며 산길을 따라 올려다보었다. 그는 벌써 40대에 접어들었지만, 활달한 생활방식 덕에 그의 몸은 젊을 때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그의 승려복은 대체로 전통을 따랐지만, 그는 소매를 떼버려서 바람이 불 때면 팔이 시원하게 식었다.

 

방랑하는 승려 카이토는 그 떄 있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탁발을 하고 이따금 그들의 집에 묵는 식으로 숙식을 해결했다. 일 때문에 그는 일본의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종종 이동해야 했다. 어느 때는 일년 동안 여러 번이나 양쪽 끝을 왔다갔다 했었다. 그가 짊어진 임무는 그를 종종 외진 곳으로 이끌고는 했다. 시가 현 이부키 산 흙길을 오르고 있는 것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고 정오가 지났다고 판단한 카이토는 근처 나무에 석장을 기대 세워놓았다. 등에 맨 천 배낭에는 훈제 생선이 들어있는 주먹밥이 가득 있었다. 그는 벼랑에 걸터앉은 채 오후의 태양빛이 비투는 비와 호를 내려다보며 식사했다.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어 썩어가는 낙엽과 젖은 흙 냄새를 싣고 왔다. 식사를 마친 그는 석장을 다시 들고 정상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석장에 달린 여덟 금속 고리가 짤랑였다. 마치 간단한 악기를 연주하는 듯했다.

 

한 시간 후, 그는 물과 이끼로 얼룩진 토리이 아래 계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발걸음을 내딛어 낙옆으로 덮인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숲이 점점 울창해졌다. 나무그늘이 잔뜩 진 것이 무슨 저녁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계단 끝에는 나무 문이 부서진 채 활짝 열려 있었다. 습기로 썩어가고 있던 그 나무 문에는 최근에 강한 힘을 받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카이토는 석장을 굳게 쥔 채 열린 문 너머로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두 개의 밝은 주황색 빛이 그를 지나쳐 들어갔다. 뒤로 뛰어 물러난 카이토는 하마터면 낙엽을 밟고 미끄러질 뻔했다. 카이토의 시선이 나무 사이를 날아 물러나는 두 개의 인혼을 따랐다. 저 작은 불덩어리들은 최근 죽은 사람의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이라고 전해졌었다. 카이토는 두 영혼을 정토로 인도하기 위해 아미타불을 외우기 시작했다.

 

부서진 문 너머에는 돌로 포장된 작은 마당이 있었고, 그 주위에는 전통적인 형식의 울타리 잔해가 있었다. 빈틈없이 깔린 돌들은 낙엽으로 덮여 있었다. 마당 너머에는 버려진 신사 건물 세 채가 있었다. 한때는 이부키 산의 토지신을 모시던 신사였다. 시간과 자연은 그 건물을 확실하게 풍화시켰지만,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신사는 굳게 서있었다.

 

신사는 그를 등지는 모양으로, ㄷ자로 세워져 있었다. 그 형상 때문에 본당 너머 안뜰이 하나 있었다. 카이토는 신사 본당의 부서진 미닫이문 앞까지 걸어갔다. 본당에는 낙엽들과 기타 이런저런 것들 뿐이었다. 가구나 일반적으로 신사에서 쓰이는 물품들 하나 놓여있지 않았다. 그때 카이토의 귓가에 안뜰 쪽에서 기묘하고 알기 힘든 소리가 들려왔다. 카이토는 소리를 따라 반쯤 썩은 나무 계단을 올랐다. 기와 지붕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한 그는 빠져나와 여름 햇살을 맞이했다.

 

안뜰에는 산 저편 너머까지 이어진 안개가 드리워 있었다. 카이토는 지붕 가장자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신사의 돌바닥에는 두 구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젊은 남자와 중년 여자의 시체였다. 머리와 몸통을 둔기로 가격당한 듯한 흔적이 남은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시체들 위에서 웅크리고 있는 한 커다란 인영이 있었다. 그 인영은 야성적으로 땋인 머리칼과 이마에서 돋아난 뿔, 비인간적으로 빨간 피부, 그리고 입술에서 튀어나온 커다란 엄니를 갖고 있었다.

 


오니의 얼굴은 피로 덮여 있었다. 그는 여자의 팔을 든 채, 시뻘건 입을 열어 한 입 더 베어무려 했다. 오니의 키는 어떤 집이던 천장에 닿을 정도고 컸고, 어깨는 물소와 씨름을 하여도 좋을 정도로 넓었다.

 

오니는 갑자기 팔을 내려놓곤 고개를 돌려 카이토가 서있던 지붕을 올려봤다.

 

“아, 안녕하신가, 승려. 이거 반갑구먼.”

 

오니는 털이 북실한 팔로 입을 쓸고는 걸치고 있던 거적대기에 팔을 닦았다.

 

“한 시간쯤 뒤에 다시 와주면 안되겠는가? 마침 식사를 시작하려던 차인지라. 우리는 오랜 친구지 않나. 친구라면 응당 그런 부탁을 들어주겠지?”

 

오니의 일본어는 투박했고, 매 음절마다 거친 으르렁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카이토가 요괴의 말을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

 

“거절하마. 시체에서 떨어져라, 오니 놈.”

 

“그럴 수는 없겠군, 승려.”

 

오니는 가시가 돋아난 육각형의 쇠 몽둥이를 집어들었다. 몽둥이의 손잡이는 가죽으로 거칠게 감싸인 뼈로 되어 있었다. 몽둥이의 크기는 카이토의 절반만했다.

 

카이토는 허리춤에서 부적 두 장을 꺼내 그 중 한 장을 석장 끄트머리에 붙였다. 카이토가 언령을 읊자 부적은 쇠 고리 아래 작대기 부분에 착 달라 붙었다.

 

“좋게 말할 때 물러나라, 오니. 오늘은 너와 싸우고 싶지 않으니. 시체들을 나에게 넘기고 네 영역으로 순순히 돌아가라.”

 

“거절하마, 벌레 같은 놈아! 싸우고 싶지 않다면서 무기나 들고 있는 놈 말을 내가 들을 것 같으냐? 애초에 여기에 온 이유가 뭔가, 승려? 네 신사도 아니지 않나?”

 

오니는 몽둥이를 치켜들며 외쳤다.

 

“망자, 그리고 모든 것들의 안식을 위해 이곳에 왔다. 그리고 이것은 무기가 아니라 도구에 불과하니, 가능하면 너와 싸우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말싸움을 하는 중에도 신비는 없어지는 중이다! 영역은 사라지고, 주술은 실패하고, 신들이 신사를 떠나고 있지! 고작 그딴 것들을 위해 싸울 셈인가? 썩 꺼지거라!”

 

“신들은 이 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신자들을 내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 두 굼벵이 같은 것들 말이더냐?”

 

오니는 발치에 누워있는 시신 두 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여기 출신도 아니지 않으냐? 이들은 네 신자가 아니다, 승려.”

 

“일본의 모든 이들이 나의 신자다, 이 살인마 놈.”

 

“살인마? 내가 죽인 것은 고작 둘뿐이건만, 노부나가의 치세 이래 인간들은 이 둘의 천의 천 배는 더 새끼를 쳐서 이 땅을 가득 채우고 있지 않으냐? 심지어 저들은 바다를 황폐히 하고 대기를 오염시키고 땅을 더럽히는 중이지! 몇 정도는 죽어도 신경도 안 쓸 놈들이다!”

 

“말이 많군, 오니. 좋은 말 할 때 물러나라!

 

오니는 으르렁거리며 카이토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몸을 숙여 피한 카이토는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뛰어 물러났다. 오니는 몽둥이를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방금까지 카이토가 서있던 지붕을 무너트렸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이 건물이 흔들리는 탓에, 카이토는 바닥으로 부드러이 내려왔다. 착지의 충격으로 인해 무릎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꿋꿋이 서 있었다.

 

오니는 다시 한 번 으르렁거리며 카이토를 향해 달려들어 몽둥이를 내려쳤다. 카이토는 여으로 살짝 비키는 것으로 몽둥이를 간단히 피하고, 부적이 둘러진 석장을 뻗어 몽둥이를 받아쳤다.

 

안뜰에 종소리가 울리고 빛이 번쩍였다. 거대한 쇠몽둥이가 마치 단단한 바위라도 친 듯 뒤로 튕겨나갔다. 오니는 뒤로 물러나 얼얼한 손을 털어댔다.

 

“아프지 않으냐, 승려. 마지막으로 본 이후 잔재주를 좀 배워왔나보구나. 내 이름을 알려주지. 나는 샤–“
 

“네 이름 따위엔 관심 없다. 너를 향해 적의는 없다만, 그렇다고 너에게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니. 우리의 인연을 생각해 마지막으로 충고하마. 나는 그들의 혼을 기릴 것이니, 시체를 나에게 넘기고 이 땅을 떠나거라.”

 

“널 죽여 야식으로 삼아주마!”

 

오니는 공중으로 뛰어올라 몽둥이를 힘껏 내려쳤다. 카이토는 옆으로 뛰어 몽둥이를 피하며 석장을 휘둘렀다. 몽둥이가 방금 전까지 카이토가 서있던 곳을 깨부수었지만, 카이토가 휘두른 석장이 오니의 왼쪽 정강이에 닿았다. 부적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며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니는 고통에 차 울부짖으며 몽둥이를 떨구고는 정강이를 감쌌다. 카이토는 웅크린 채인 오니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니 또한 카이토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급히 몽둥이를 집어들었다.

 

카이토는 자신과 아미타불의 의지를 가득 담아 언령을 외쳤다. 안뜰이 천상의 종소리로 가득 울렸다. 강력한 힘이 몽둥이를 덮쳤고, 몽둥이는 오니의 손에서 빠져나가 저 멀리 날아갔다.

 

오니의 추악한 입에서 고통에 겨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주술이 사라지면 영역은 텅 비게 되겠지. 그리고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승려. 모든 요괴와 아둠의 아이들은 숨이 끊어질 것이다. 네 말은 힘을 잃고, 그 부적들은 단순한 종이쪼가리가 되어버릴 것이야. 그 때 네게 무슨 의미가 남아 있을까, 오니사냥꾼?”

 

카이토는 대답하는 대신 오니에게 달려들어 그 넓은 이마에 부적을 붙였다.

 

종소리가 다시 안뜰에 울렸다. 이번엔 길고 맑았다. 밝은 빛이 오니의 몸을 좀먹기 시작하자, 오니는 연기와 신음성을 내뱉었다.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그 자리에는 돌바닥 위 탄 흔적밖에 안 남아 있었다. 쇠 몽둥이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더니, 오니와 마찬가지로 물질세계에서 사라졌다. 카이토는 오니가 사라지자 안개 또한 걷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드레날린이 혈류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석장 끝에 붙은 부적을 손으로 건드리자, 부적은 바스라져 사라졌다. 효력이 다한 것이었다. 그는 석장에 기대 숨을 가다듬었다. 이윽고 그는 무엇이 이들을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고민하며 시신 두 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반파된 신사를 향해 몸을 돌려서는 합장을 하고 이 집의 주인이었던 신에게 감사인사를 올렸다.

 

“시간만 있었더라면 당신의 신사를 복구해드렸을 것입니다, 칭송받는 분이시여.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없는 듯 합니다.”

 

그는 오니가 반쯤 부숴버린 신사 건물의 모퉁이를 향해 말했다.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이라면 나와라.”

 

전투장비를 입은 젊은 여자가 구석에서 나왔다. 그녀는 소총을 들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권총이 매여 있었다. 소총을 들고 있긴 했지만, 그녀는 총구를 내리고 있었다.

 

“누구이며, 네 목적은 무엇인가?”

 

그는 일본어로 물었다.

 

“제 이름은 타나카 후미코라고 합니다. 저는-“

 

“재단을 대표하러 왔군.”

 

카이토는 일본어 억양이 약간 섞였지만 그럼에도 유창한 영어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일본어가 엉망이군요, 타나카 상. 무엇을 바라고 절 찾아오셨습니까?”

 

그녀의 눈이 조금 휘둥그레해졌다.

 

“재단을 아시나요?”

 

“그렇습니다. 이 땅의 옥리들은 숨죽이고 있는 듯하지만, 알 사람은 다들 알고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소속이 당신의 목적을 설명해주지는 않지요. 왜 이곳에 온 것입니까?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옥리들’이라뇨? 당신이 뱀의 손과 연관되어있다는 게 사실이었나보군요.”

 

요원은 고개를 털며 그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소총은 땅바닥을 향한 채였다.

 

“뱀의 손들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어느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부처님의 인내심마저 시험하려 드는군요. 제 질문에 답하십시오.”

 

그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두 눈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안뜰을 살피고 있었다.

 

“당신이 중요한 임무에 쓸모를 보일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제가 파견되어 온 거예요.”

 

카이토는 잠시 아무런 말도 없이 서있었다. 이윽고 그는 크게 웃었다.

 

“당신들과 협력할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들은 오니를 생포해 연구하면서 퇴치에는 별 쓸모도 없는 결과만 늘어놓다가 결국 놓쳐서 사람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기나 하겠지요.”

 

“방금 그거, 오니였나요?”

 

“그렇습니다. 당신들 말로 하자면 오거겠지요.”

 

“제가 미국인이긴 해도요, 에구치 상, 그래도 오니가 뭔지는 알아요. 그리고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아시면 놀랄걸요.”

 

카이토는 자신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양손을 들어올렸다.

 

“아무튼, 어찌 되었건 저랑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들과 협력할 생각은 없다고.”

 

그녀는 소총을 놓았다. 소총은 어깨에 걸린 끈에 매달렸다.

 

“당신의 경험이 필요한 상황이 생겼어요. 설명해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타나카 요원.”

 

그녀는 몇 분 동안 말을 늘어놓았고, 그녀의 말이 끝났을 때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어쩔 수 없군요.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저들을 수습하게 해주십시오. 이동수단은 있습니까?”

 

그녀가 끄덕였다.

 

“헬리콥터가 근처에서 대기중이에요.”

 

“좋습니다.”

 

그는 시신의 몸을 최대한 똑바로 폈다. 그런 끔찍한 죽음을 겪었으니 마지막만큼은 최대한 평온히 있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다른 경전을 읊으며 시신들의 얼굴에서 피를 닦아내었다.

 

그는 마친 뒤에 다시 그녀를 보았다.

 

“헬리콥터를 불러주십시오. 최대한 빨리 이네로 향해야 하니.”


 


이네 어촌


헬리콥터는 그들을 동해(원문은 일본해) 근처 평지에 내려다주었다. 거기서부터는 타나카 요원이 그들을 어촌으로 데려다 줄 보트를 호출했다. 어촌은 옛 수도 교토의 북쪽, 탄고 반도의 북쪽 끝 해안에 위치해 있었다. 대부분의 건물은 후나야라는 전통적인 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1층엔 작은 부두가 있고 그 위로 생활공간이 있는 식이었다.

 

“시신들을 예우를 갖추고 다룰 것을 보장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는 보트의 엔진 소리를 뚫고 외쳤다.

 

“아까 말했지만, 최대한 정중히 적절한 절차를 거친 뒤 신원이 밝혀지면 유족들에게 알릴 생각이에요.”

 

카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강렬한 햇빛에서 눈을 가리듯 손을 들어올린 채였다. 정오가 지난 지 꽤 되었음에도 마을은 조용했다. 평소라면 고기잡이를 떠난 배들이 돌아올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태양이 지평선에 걸쳐 있음에도 바다는 텅 비어 있었다. 그들이 탄 보트는 비어있는 부두에 정박했다. 카이토는 보트에서 내리며 후미코와 눈을 마주쳤다.

 

“사람들이 다 어디 있습니까?”

 

“테러 위험이 있다는 이야기로 전원 대피시켰습니다.”

 

“그럼 그 상황에 대처할 자위대나 경찰들은 어디 있지요?”

 

후미코는 미소지으며 얼버무릴 뿐이었다. 그녀는 카이토를 따라 보트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는 보트 운전사한테 한 번 끄덕였다. 그녀가 보트에서 멀어지자, 보트는 바다 저 너머로 떠났다.

 

그녀는 카이토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진 말아요. 지원이 필요하면 부를 테니까.”

 

카이토는 두 후나야 사이로 걸어 거리로 향하며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겠군요.”

 

후미코가 코웃음쳤다.

 

“자신을 너무 맹신하는 것 아닌가요?”

 

카이토는 그녀를 향해 몸을 돌리고는 석장에 기대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성인이 된 이래, 평생을 요괴와 오니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데에 바쳐왔습니다. 그동안 저는 항상 혼자였지요. 그러니 맹신이 아니라 확신이라 해두겠습니다.”

 

그녀는 항복하는 시늉을 하고는 그를 따라 거리로 나아갔다.

 

“이 살인사건들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카이토는 어깨 너머로 말했다.

 

“지난 8일간 여섯 명이 돌연사했어요.”

 

그런 것 치고는 그녀는 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빨자국? 살이 찢긴 걸 보니, 짐승이 물어뜯기라도 했습니까?”

 

후미코는 어깨를 조금 으쓱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사인은 전부 질식이었어요. 하지만 물에 빠졌거나 목이 졸린 흔적이 없네요.”

 

“피해자들은 침대 위에서 발견되었습니까?”

 

“아니요. 사망사건이 밤에 발생하기는 했는데, 집 안에서 발견된 건 몇 명 안 돼요. 대부분은 거리에서 발견됐고요. 목격자는 없는 것 같아요.”

 

“야마치치의 소행같인 한데, 확실하지가 않군요.”

 

“야마치치가 뭔데요?”

 

그녀의 어조는 평탄했다. 이 사건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듯이. 말이 안 되는 태도였다. 이 사건 때문에 그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지 않았나?

 

“잠 자는 사람의 숨을 앗아가는 요괴지요. 하지만 평소엔 산에서 지내고, 피해자들은 공격받은 다음 날 죽습니다.”

 

“이 사건도 그것들이 저지른 것일까요?”

 

그녀가 물었다.

 

“야마치치는 매우 희귀합니다. 만약 이 근처에 있다고는 해도 이렇게 자주 사냥을 나서지는 않지요.”

 

“얼마나 희귀한데요?”

 

“에도시대에 쓰인 우화로나마 읽어본 게 고작일 정도입니다.”

 

카이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잠시 멈춰서고는 배낭에서 물통을 꺼내 몇 모금 마시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가장 최근 사건이 일어난 건 언제입니까?”

 

“며칠 전이에요. 이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집 안에서 발견됐어요. 보러 가실건가요?”

 

카이토는 고개를 끄덕이고 후미코를 앞장서게 했다. 몇 분 뒤 그녀는 한 후나야 안으로 들어가 경찰선을 넘었다. 카이토는 현관에서 신을 벗고는 후나야의 생활공간으로 향했다. 후미코 또한 그를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카이토가 그녀의 발치를 내려다보며 멈춰세웠다.

 

“지금 여기는 그냥 빈 집이에요. 이 신발 벗고 신고 하기 귀찮단 말이에요…”

 

“그럼 그냥 여기 계시지요.”

 

카이토가 단호히 말했다.

 

카이토가 그녀를 지나칠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시신은 부엌에서 발견되었어요.”

 

카이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복도로 나아갔다. 카이토는 쇼지(전통 가옥 문)을 열었다. 바닥은 광을 낸 소나무로 되어있었다. 서랍장과 그 위에 놓인 오래된 TV가 있는 거실이 가장 먼저 그를 맞이했다. 그 다음은 현대적인 욕실이었고, 마침내 부엌에 다다랐다.

 

카이토는 피해자의 숨이 어디서 끊어졌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운은 부엌의 구석, 그러니까 거주자가 기대듯 쓰러져있던 작은 세탁기와 목재 서랍장 쪽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그는 합장을 하곤 경전을 읊었다.

 

창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거슬렸다. 그의 시선이 창문을 향했을 때, 시야 한 구석에서 털뭉치가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카이토는 곧장 입구로 달려가 재빨리 신을 신었다. 그리고 그는 문을 박차듯 후나야를 떠났다. 후미코가 그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뭐였나요?”

 

그녀가 물었다.

 

카이토는 고개를 털며 모퉁이를 돌았고, 그때 저 멀리서 집들의 옥상을 뛰어다니는 무언가를 보았다. 그가 골목길에 도착했을 즘엔 이미 도망친 뒤였다.

 

그를 따라잡은 후미코는 소총을 들어올려 주위를 경계했다. 하지만 카이토는 총열에 손을 얹고 무기를 아래로 눌렀다.

 

“도망쳤습니다.”

 

골목길 끝까지 걸어간 카이토는 꽤나 잘 관리된 공원 하나를 모았다. 이따금 깜박이는 LED 전등이 공원과 길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공원 저편에는 언덕 즈음에 조성된 숲이 있었다. 그는 공원을 향한 길을 향해 나아갔지만, 곧바로 뒤에서 작고 더럽게 무거운 것으로 가격당했다.

 

타격음과 함께 카이토는 아스팔트 바닥 위에 쓰러졌고, 잠시 그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시야가 다시 돌아오기 시작할 즈음, 입에서 피 맛을 느꼈다. 그는 떨리는 고개를 돌려 후미코의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쓰러진 그녀의 얼굴 위에 요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서 숨결이 새어나오는 것을 본 그는 어떻게든 발을 움직이려 들었다.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고, 구역질까지 났다. 말을 하려 했지만 입가에서는 기침만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그녀가 죽을지도 몰랐다.

 

갑자기 멀리서 세 번의 총성이 울렸고, 야미치치는 뒤로 밀려나 바닥 위에 쓰러졌다. 후미코는 그제서야 고통에 겨운 신음성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켜 세우곤 숨을 급히 들이쉬었다. 카이토가 골목길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시야에 소총을 든 재단 군인들이 들어왔다.

 

카이토는 자리에서 일어서 후미코의 호흡이 안정됐는지 확인해보고는 그녀가 완전히 안정될 때까지 일어서지 못하게 어깨를 억눌렀다.

 

카이토는 가장 가까지 있던 군인에게 다가가, 석장으로 다리를 후려쳐 쓰러트렸다. 그리고 곁에 있던 군인의 명치를 걷어찬 다음 석장으로 턱을 후려쳐 쓰러트렸다. 세 번째 군인이 카이토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만!”

 

후미코가 둘 사이에 급히 끼어들며 외쳤다. 그녀는 카이토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어 멈춰세우고는 군인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들을 일으켜 세운 다음 거리까지 물러나도록.”

 

“하지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병장!”

 

그리 외친 후미코의 고개는 이번엔 카이토를 향했다. 카이토가 군인들을 따라가려 하자, 후미코는 양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 막았다.

 

“제 말을 들어요!”

 

후미코는 카이토의 면전에 대고 외쳤다. 그 말을 들은 카이토는 멈추었다.

 

“저들은 단순히 저를 지키려 한 거예요! 그게 직업인 사람들이라고요!”

 

카이토는 후미코가 놀랄 정도의 힘으로 그녀의 손을 밀어내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관심을 요괴를 향해 돌렸다. 요괴는 부르르 떨고 있었다. 몸통에 난 세 개의 구멍에서 적갈색 피가 뿜어지고 있었다. 요괴는 살짝 의인화된 아기 사이즈의 주머니쥐같이 생겼다. 요괴의 눈은 놀라울리만치 사람과 닮은 푸른색이었다. 카이토는 요괴가 숨이 끊어지기 직전, 그것의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이건 단지 본능에 따라 행동했을 뿐입니다. 악의 같은 것은 품지 않았다고요.”

 

그가 말했다.

 

“그럼 뭐, 제가 죽기라도 해야 했다는 건가요?”

 

“당신은 환생했겠지요. 하지만 요괴는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몇 분간 말 없이 야마치치의 곁에 웅크린 채였다.

 

“요괴를 위한 기도 같은 건 없습니다. 지옥이나 윤회도 없지요. 요괴들은 그저 사라질 뿐입니다.”

 

후미코는 카이토의 어깨에 손을 조심이 얹었다. 카이토는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죄송합니다. 그냥, 방금 벌어진 폭력사태에 답답했을 뿐입니다.”

 

“왜 이렇게 몸에서 힘이 흘러넘치는 것 같죠? 마치 에스프레소 세 잔을 원샷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숨도 가빠지지 않았어요.”

 

“야마치치가 사람에게서 숨을 앗아가는 중에 실패한다면, 그 사람은 다음날 죽지 않고 대신 생명력과 수명이 늘어난다 하더군요. …적어도 전해지는 바로는 그렇습니다.”

 

카이토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배낭을 야마치치의 옆에 풀어놓았다. 그는 물병을 바닥에 놓고 남아있던 부적을 주머니에 넣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건데요?”

 

후미코가 물었다.

 

“무력화시키고 물질세계에서 추방시켰겠지요. 이건 단지 불쌍한 짐승에 불과하니.”

 

그러자 나무 쪽에서 느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카이토는 공원 너머의 숲에서 텐구 하나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텐구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톱이 잔디바닥을 파고들었다. 새카만 날개는 등 뒤에 접혀 있었고, 한 손에는 검고 반짝거리는 금속으로 된 창을 하나 들고 있었다. 가슴팍에는 쇠고리가 꿰매진 가죽 갑옷을 차고 있었다.

 

“아주 훌륭하구나.”

 

텐구의 부리가 벌어지고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야마치치의 장례식을 치뤄야 할 차례군! 경전을 읊어주겠는가?”

 

“읊어봤자 소용 없습니다. 혼이 이미 요괴들의 저승으로 떠나버렸을 테니. 환생할 혼도 없고, 정토로 갈 길도 없겠지요.”

 

“아아, 안 됐군. 아끼던 녀석이었건만. 좋은 말상대가 되어주었는데, 그립겠어.”

 

“이건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있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무려 여섯 명이나 죽였지요. 야마치치답지 않아요. 당신이 부추겼습니까?”

 

“내가? 아니. 내가 무엇하러 누군지도 모를 어부들의 죽음을 바라겠는가? 오랫동안 인간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냈으니 굶주리기하도 했던 것이겠지. 난 그것이 여기서 무얼 하며 지냈는지도 몰라.”

 

“텐구 씨, 저는 당신을 못 믿겠습니다.”

 

점점 둘에게 다가오던 텐구는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나를 거짓말쟁이라 하는 겐가?”

 

“네. 당신들 족속은 장난을 너무 좋아해서 말이지요. 장난이 보통 무고한 자들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마는.”

 

“무고한 자들이라, 웃기는군!”

 

“이 자들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텐구는 공원의 가장자리에서 멈춰섰다. 그들간의 거리는 이제 몇 미터 정도였다. 그는 팔을 크게 벌리고 창을 움직여 마을을 향해 가리켰다.

 

“저들이 살아있는 게 문제다, 승려! 저들은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을 망가트리지. 이제 우리가 살아갈 곳이 남아있질 않아. 우리들의 위용이 전해지는 이야기도 없고, 숲으로 들어오질 않아 사냥감도 없지. 그저 차랑 텔레비전을 가진 무수한 인간들이 땅을 더럽히고 있다. 저들은 케가레에 불과하단 말이다.”

 

카이토는 석장을 들고 마치 결계를 치듯 가로로 쥐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죽을 이유는 못 됩니다.”

 

“아아,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승려여. 윤회의 고리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기라도 한 게냐? 죽어봤자 저들은 환생할 터. 아닌가? 그러면 죽어도 상관 없지 않겠나?”

 

“꼭 이러셔야만 합니까? 평화로이 이 곳을 떠나면 안 되는 겁니까? 폭력이라면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고요.”

 

텐구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 소녀의 군인들이 내 친우를 죽였다. 이 치욕을 갚기 위해서라도 꼭 피를 봐야겠군.”

 

카이토는 후미코가 소총을 집으려고 몸을 숙이는 걸 보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내 언령을 외우며 석장에 붙였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물러나라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었지만, 그녀는 대신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녀는 소총을 조준하고는 놀람에 숨을 들이켰다.

 

카이토는 텐구가 하늘에서 그들을 덮치려는 순간에 고개를 겨우 다시 앞으로 향했다. 그는 옆으로 비킨 뒤 창을 막기 위해 석장을 들어올렸다. 충돌의 순간 종소리가 울렸고, 이번에도 역시 부적이 밝은 빛을 발했다. 창의 궤적이 비틀려 후미코를 향했다.

 

카이토는 후미코에게 경고를 하려 했지만, 후미코는 이미 피하고 있었다. 창끝이 그녀의 얼굴이 있던 곳을 꿰뚫었다. 후미코는 소총을 발사했지만, 텐구는 창을 한 번 휘둘러 탄알을 튕겨내었다. 요괴의 부리가 몇 번 딱딱거렸다.

 

텐구는 휘두르던 창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뭉툭한 쪽으로 후미코의 머리를 후려치려 했다. 카이토가 그에 언령을 외웠고, 창대의 궤적이 비틀려 방어구가 보호하고 있던 머리와 어깨 사이로 향했다. 후미코는 고통에 겨운 신음을 내뱉으며 뒤에 있던 후나야 벽까지 물러났지만, 그럼에도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만두어라, 새 놈!”

 

카이토는 일본어로 텐구를 향해 외쳤다.

 

“썩 꺼지지 못할까!”

 

그리 외치며 카이토가 휘두른 석장이 요괴의 노란 부리 옆쪽에 부딪쳤다. 다시 한 번 빛이 번쩍이고 텐구는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날아갔다. 텐구는 고통에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카이토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다시 한 번 석장을 크게 휘둘렀고, 이번에 노린 곳은 창을 들고 있던 손목이었다. 석장으로 가격당한 텐구의 손목에서 무언가 부러지는 살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텐구는 비명을 지르며 창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지옥에서 고통받길 바라마, 승려여! 그저 세상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을 뿐이거늘, 이제 우리가 있을 곳은 없구나! 우리가 갈 곳이라고는 정녕 망각 뿐인가!”

 

카이토는 추방부적을 든 채 텐구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소리지? 빨리 설명해라. 널 쥐어패기 전에!”

 

“신비가 사라지고 있지! 우리의 영역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의 고향이 곧 사라지니…우리는 인간들의 세상으로 와야만 한다는 말이다!”

 

“너희는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카이토가 부드럽게 말했다.

 

“오모구치 님께서 옳으셨군. 너희들은 정말로 지독한 족속들이야.”

 

“그게 누구지?”

 

“우리의 뒷배시다, 이 우매한 자야. 그분께선 우리들이 오랜만에 이 곳으로 다시 오는 것을 도와주셨지.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 같은 자들이 일본에 요괴가 귀환하는 것을 막으려 들 것이라고.”

 

“그 남자는 어딨지?”

 

텐구는 대답 대신 멀쩡한 쪽 팔로 카이토를 공격하려 했지만, 카이토는 간단히 피한 뒤 더 이상 팔이 멀쩡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방금 전에 비해선 덜 밝은 빛이었지만 그럼에도 텐구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대답해라!”

 

텐구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난폭하고 쾌활했던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음울한 목소리만이 새어나왔다.

 

“내가 유일하게 우리들의 소망을 이해해주신 분을 배신할 성 싶더냐? 저주하마, 승려여. 네 동족들의 더러움 속에서 썩어가거라. 그 힘을 잃었을 때, 우리의 영역에 도움을 구할 생각 말고!”

 

카이토는 말 없이 추방 부적을 텐구의 가슴께에 조심히 붙였다. 텅 빈 거리를 종소리가 메웠다. 그리고 요괴는 연기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사라질 때, 요괴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카이토는 다 쓴 부적을 석장에서 떼어네며 왜 부적의 효과가 전보다 약해졌는지 고민했다. 그는 석장에 기댄 채, 왼손으로는 창자루로 맞은 곳을 짚으며 벽에 등을 대고 있는 후미코를 향해 돌아섰다.


"괜찮습니까, 타나카 상?"


그는 영어로 물었다.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네요."


"새 놈이 신비가 사라지고 있다고 했는데, 뭔가 아시는 바라도 없습니까? 지금도 그렇고 신사에서도 그렇고, 제 부적이 전에 비해 효과가 약해졌습니다. 몇 번 치고 나면 그저 종잇조각에 불과하게 되어버리더군요."


"부적이요? 전 중요한 건 그 봉이라고..."


"네? 아뇨, 이 석장은 그냥 강철 봉입니다. 떠돌이 승려들의 전통이라 들고 다니는 것이지요. 요괴들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석장에 붙인 부적들, 그리고 언령입니다."


"주문을 읊듯이 말하는 것들이요?"


"주문이 아닙니다. 보살들과 아라한들께서 주신, 깨달은 자들로 하여금 특별한 능력을 쓸 수 있게끔 하는 선물이지요. 도구입니다. 주문이 아니라."


후미코는 고개를 저었다.


"제 눈에는 주문같아 보이던데요."


카이토는 짧고 날카롭게 웃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그 봉은 아무 기능도 없다는 건가요? 휘두르는 걸 보니 참 쓸모있어 보이던데요.”

 

“이걸로 맞으면 아플 겁니다. 시범을 보여드릴까요?”

 

후미코는 불편한 듯이 웃었다.

 

“잘 알겠습니다만, 사양할게요.”

 

카이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몹시 드물지만 석장 자체에 힘이 깃들었다는 전설이 있긴 합니다.”

 

“무슨 힘이요?”

 

“오래 전, 고치 현 엔코지에 방문한 유명한 승려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근처 마을이 가뭄에 심히 고통받고 있었기에, 석장을 휘둘러 땅을 가르고 우물을 위한 곳을 드러냈다더군요. 아직 그 자리에 있고, 주민들에게는 ‘눈을 씻는 우물’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재밌는 이야기네요. 이 상황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를 보며 미소지었다.

 

카이토는 웃었으나, 그 탓에 아스팔트에 부딪쳤던 머리가 울려왓다.

 

“텐구가 말한 남자는요? 혹시 아시는 바라도 있으신가요?”

 

“이름은 기억했어요. 오모구치, 맞죠?”

 

“네. 그리고 요괴는 그 이름에 ‘사마’라는 경칭을 붙였죠. 중요한 인물임이 틀림없어요.”

 

“한번 찾아볼게요. 그나저나, 괜찮아요?”

 

물을 머금은 카이토는 입 안 피를 씻어내곤 가까운 나무에 뱉었다.

 

“괜찮을 거예요.”

 

후미코는 등을 돌리곤 귀에 손가락을 얹더니 무전을 하기 시작했다. 카이토 또한 뒤돌아 야마치치의 시신을 보았다. . 그녀가 상부와 의논하는 소리를 마음에서 몰아내려 하면서도, 정신을 맑게 하고 이 죽음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그녀가 어깨를 두드릴 때까지 그는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토에 오모구치 켄타라는 사람이 있대요.”

 

“어째서 그 사람이 텐구가 말한 사람이라 생각하시는 거죠?”

 

“흔한 성도 아니고, 이 오모구치는 트랜스타 에너지의 CEO거든요. 본부가 도시에 있다네요.”

 

카이토는 울려오는 머리를 문질렀다.

 

“그렇군요. 그럼 오모구치 상이랑 대화를 나누러 가죠.”


 


 

교토

 


카이토는 유리창이 짙게 썬팅된 장갑 SUV 뒷자석에 앉아 언덕을 넘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언덕을 넘어가자 교토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카이토는 양 손으로 석장을 쥐었다. 한 남자가 요괴와 오니들을 물질세계로 불러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카이토는 그 정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 남자를 찾아갈 때, 대체 무엇과 마주하게 될 것인가?

 

한 과묵한 요원이 운전을 하고 있었고, 후미코는 그 옆자리에 앉아서 조용하게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후미코의 전화가 끝났을 때 카이토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의를 끌었다.

 

“우리 지금 뭘 하는 겁니까?”

 

“선두 작전팀이 지금 건물을 포위했어요. 이네에서 일어난 테러와 연루된 보안 위반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둘러대서 오모구치 씨를 제외한 모든 인원을 대피시켰고요. 지금은 우리가 갈 때까지 요원 몇 명이 그 사람을 붙잡고 있어요.”

 

“조금 강압적인 것 같진 않습니까?”

 

“평소라면 더 부드럽게 했을 텐데, 별 수 있나요. 상부로부터의 지시사항이에요. 이 상황은 최대한 빨리 정리되어야 하거든요. 만약 요괴의 급증과 연관된 사람이 있다면 멈춰야만 하니까요.”

 

“그래서, 진짜로 요괴들이 급증한 겁니까?”

 

“저희가 볼 땐 그래요. 우리가 알기론 그동안 열심히 활동해오신 것 같은데, 활동기간 중 오늘처럼 하루 동안 사람 죽인 요괴 셋이나 맞닥뜨린 적이 있나요?”

 

그는 감겨진 눈을 비볐다. 이네에서 공격당한 탓에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 번도 없지요. 요괴들은 보통 혼자서 널리 퍼진 채 몰래 움직이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이 상황이 만약 지속된다면 정상성이 위협받을 거예요.”

 

카이토는 비웃었다.

 

“정상성입니까? 요괴들은 일본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 때보다도 더 전에 존재해왔습니다. …대체 정상성이란 게 무엇입니까? 당신들 멍청이들은 언제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그 좁은 견해를 모두들에게 강요하려 들지요. 이게 현실입니다.”

 

후미코는 그의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돌리고 자세를 비틀러 앞을 바라보았다.

 

“당신 의견이 어떤지 알고, 개인적으로도 동의하는 바예요. 하지만 지금 당장 상황이 위험한 것은 사실이고, 당신과 저 단 둘이서 해결해야만 하죠. 대체 오늘 하루동안 일어난 사건으로 몇 명이 죽었는지 아시나요? 여덟 명이에요. 너무 많이 죽었죠. 여기서 더 심해지면 사람들이 눈치채기 시작할 거예요. 그러면 사회에서 얼마나 큰 패닉이 일어날지 생각해보라고요!”

 

카이토는 후미코가 자신을 더 이상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도 동의하지요. 엄청난 패닉이 일어날 겁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무슨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알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군요.”

 

후미코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 권한을 벗어난 일이네요, 에구치 상.”

 

카이토는 창 밖으로 도시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교토에서만 볼 수 있는, 고대 사찰과 현대 비즈니스 빌딩들이 뒤섞인 모습. 옛 도시에서 비즈니스맨을 상대하는 것만큼 적절한 상황은 없으리라. 그 비즈니스맨이 오니와 내통하고 있는 자라면 더더욱. 옛 수도의 근본부터 과거와 현재가 뒤엉켜 있었다.

 

“당신이 추방시키기 전에 텐구가 말한 게 있잖아요.”

 

후미코가 말했다.

 

“텐구는 많은 말들을 했습니다, 타나카 상.”

 

“알아요. 하지만 사람들을 ‘케가레’라 부른 게 마음에 걸려요. 저는 모르는 단어거든요.”

 

“단어 자체는 오염이나 불결함을 뜻합니다. 하지만 신토에선 다른 의미를 가지지요.”

 

“그게 뭐죠?”

 

“영적인 타락. 고인 것이 썩는 것. 영혼이 병드는 것. 도덕적인 부패나 개인의 죄 혹은 정신의 오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도덕하고 부자연스러운 힘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래서 개인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면서도 여전히 케가레를 품고 있는 것이 가능하지요. 그 자는 여전히 자신의 행동에 더렵혀진 채일 테니까요. 이해하시겠습니까?”

 

“이해는 했는데, 왜 그 새자식이 인류 전체를 케가레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케가레는 자격 있는 사람들이 벌이는 정화 의식을 통화 치료될 필요가 있습니다. 신토 쪽에서 흔히들 하는 말로 이런 게 있지요. 고인 물은 썩고, 병균의 근원지나 전염병을 옮기는 벌레들의 묘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흐르는 물은 맑고 순수하다. 텐구는 인류를 고인 물에 빗댄 것입니다.”

 

후미코는 잠시간 조용히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던 카이토는 지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갑작스레 입을 다시 열었다.

 

“한 문명 전체가 정화되려면 무슨 일이 벌어져야 할까요?”

 

“텐구의 생각으로는 아마 쓰나미가 인류를 휩쓰는 것이겠지요.”

 

카이토가 말했다.

 

후미코의 입에서 잠깐 경악으로 찬 탄성이 새어나왔다. 그녀는 다시 뒤로 돌아 카이토와 시선을 맞추었다.

 

“요괴들이 그런 짓을 벌일 수 있을까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불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바다는 그 어떤 요괴보다도 강력하니까요. 하지만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지상에서 인류를 닦아내는 건 가능합니다. 물질세계 밖에는 수많은 영역들이 있고, 그 영역들은 수많은 요괴들로 차있으니까요.”

 

후미코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녀는 시선을 약간 아래로 내린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인류 전체를 학살하려 들까요?”

 

이번엔 카이토가 어깨를 으쓱일 차례였다.

 

“이부키 산의 오니와 방금 말한 텐구 둘 다 영역들이 무너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신비가 사라지고 있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모든 요괴들이 집을 잃어 새 집을 찾아야 할 처지라면, 일본 땅만으로는 꽤 비좁을 겁니다.”

 

후미코는 소름돋은 듯 몸서리를 쳤다.

 

“동감입니다. 상상하기에 그리 좋은 광경은 아니겠지요.”

 

카이토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속으로, 이런 반응을 보이면서 신비가 사라지는 것을 모른다고 할 셈인가, 옥리, 하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운전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거의 다 도착해 갑니다.”

 

“선두 진입팀으로부터의 전언은 없나?”

 

후미코가 물었다.

 

“없습니다. 그들이 빌딩을 대피시켰고, 요주의인물을 포획할 예정이라고 보고한 뒤로 추가 보고는 없었습니다.”

 

“뭐?! 좋지 않군.”

 

“그게 무슨 소립니까, 후미코?”

 

카이토가 물었다.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그를 보았다. 카이토가 그녀의 성이 아닌 이름을 불렀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 듯한 눈치였다.

 

“문제가 발생했단 뜻이죠.”

 

몇 분 뒤 그들은 10층짜리 사무실 건물 앞에 서 있었다. 투명한 유리문을 통해 텅텅 빈 건물 로비가 보였다. 재단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예, 건물을 확보한 뒤로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후미코는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아니요. 지금 당장 완전한 전술팀이 필요합니다. 기동특무대를 동원해서 지원을 와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감독관 님.”

 

통화가 끝나자 카이토가 후미코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와 시선을 마주치며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안 됩니다. 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말을 마친 카이토가 유리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지만, 후미코가 금세 앞까지 달려와 그를 막듯 팔을 활짝 벌렸다.

 

“기다려야 한다니까요. 저 안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후미코, 저는 당신의 부대원들에게 감싸인 채로 들어갈 생각 없습니다. 저는 지금 바로 들어갈 겁니다.”

 

그는 그녀를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옆으로 비키게 하고는 유리문을 향해 나아갔다.

 

“아, 진짜.”

 

후미코는 아직 운전석에 앉아있던 요원에게 말했다.

 

“여기 남아서 지원이 도착했을 때 상황을 설명해주어라. 응답기를 켜놓을 테니 지원팀이 우리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저희가 받은 명령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요원이 후미코의 뒤에서 외쳤지만, 그녀는 그저 카이토를 따라 빌딩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카이토는 텅 빈 로비 안을 둘러보았다. 광 나는 바닥과 사람 없는 보안실이 보였다. 그는 보안실 쪽으로 다가가, 아직 로그인이 되어있던 경비실 컴퓨터 모니터를 보았다.

 

“건물 전체를 대피시켰다고 했지요?”

 

뒤따라온 후미코에게 카이토가 물었다.

 

“네. 적어도 그렇게 듣긴 했어요.”

 

“이 경비실에선 얼마 전까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밖에 서성거리는 사람들도 없고요.”

 

카이토의 곁에 선 후미코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게 벌써 25분 전이에요. 누군가 남았어도 벌써 다 집으로 돌아갔겠죠. 21시가 넘었어요. 이런 시간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걸요.”

 

카이토는 뒤돌아 다시 한 번 로비를 둘러보고는 후미코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의 부대는 어디 있습니까?”

 

“신호가 경영진 사무실을 가리키네요. 맨 윗 층이에요.”

 

카이토는 보안실 책상 위에서 굴러다니던 보안증을 하나 집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잡아 후미코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지원은 15분 뒤에 도착할 예정이에요.”

 

후미코는 엘리베이터로 따라 들어가며 말했다.

 

“기다리지는 않을 겁니다.”

 

카이토는 보안증을 센서에 인식시키고는 최상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어쩔 생각인가요, 카이토?”

 

“일단 그 남자랑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지요. 오니들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아내고, 당신의 부대도 찾아봐야 할 것이고요.”

 

“되게 간단하다는 듯이 말하시네요.”

 

카이토는 우수에 젖은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보면 세상 만사가 다 간단한 법입니다.”

 

후미코는 고개를 젓고 소총을 체크했다.

 

“제가 경험하기론 그렇지 않던데요.”

 

“두려움을 내려놓는 게 요령입니다. 모든 것은 결국 끝이 있는 법이니 말이지요.”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가 오늘 끝나지는 않았으면 하네요.”

 

카이토는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상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먼저 빠져나온 것은 후미코였다. 그녀는 소총을 들고는 복도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녀를 뒤따라 카이토가 나왔지만, 그는 천장을 살피기 위해 잠시 멈추었다.

 

천장은 15미터가 넘는 높이에 있었다. 그리고 방 한 가운데에 토리이가 세워져 있었다. 복도는 여러 방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경영진 사무실로 가는 길은 단 하나 뿐이었다. 토리이를 통과해야만 했따.

 

카이토는 토리이에 다가가 손을 얹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위를 향하고 있었다.

 

“문제라도 있나요?”

 

후미코가 물었다.

 

“이거, 진짜 토리이입니다. 장식품 같은 게 아니고요. 엄청 오래 됐으면서 관리가 잘 되어있긴 한데, 이런 곳에 있을만한 물건은 아니지요.”

 

“그러게요. 보통 저런 걸 실내에 들여놓을 생각을 하나요?”

 

“이런 건물 안으로 진짜 토리이를 옮겨놓은 건 처음 봅니다. 신토 교리에 의하면, 토리이가 효과를 보려면 야외에 놓여야 하거든요. 일상의 영역과 신의 영역을 분리시켜주는 역할을 하지요. 불경을 저지르려 한 것 같지는 않지만…불경에 가깝군요.”

 

“신들이 경영진들을 성스럽다고 보지는 않겠죠?”

 

“그렇지요.”

 

카이토는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뒤에야 그게 사무실이 아니라 또 다른 로비인 것을 깨달았다. 비서의 데스크가 마치 사무실의 입구를 지키듯이 토리이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다. 역시 비어 있었다.

 

카이토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석장에 달린 쇠고리가 울렸다. 재단 부대의 흔적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당신 부하들, 어디 있습니까?”

 

“이 복도 수십미터쯤 앞에 있다고 떠요.”

 

그들은 복도를 더 나아가, 격식 있는 폰트로 오모구치 켄타 CEO라고 적힌 명패가 걸린 문 앞에 섰다. 문을 밀고 들어간 카이토가 경악했다.

 

재빨리 따라들어온 후미코가 외쳤다.

 

“썅!”

 

그들의 눈 앞에선 사람 5명이 늘어져 있었다. 그들의 내장은 텅 비어 있었고,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어 무엇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몇 명은 아예 머리가 뜯겨나가 있을 정도였다. 경영진 사무실 안이 피와 배설물의 냄새로 지독했다.

 

카이토의 시선은 빠르게 시신들을 훑다가 방 끝에서 움직임을 본 뒤 멈추었다.

 

비싼 정장을 입은 중년의 일본인 남자가 개인 화장실에서 걸어나왔다. 그는 휴지로 손을 닦아내고 있었다. 휴지는 빨갛게 물든 채였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카이토가 일본어로 물었다.

 

“니들이 먼저 허락도 없이 내 빌딩에 쳐들어와 놓고선 한다는 소리가 겨우 그거냐?”

 

남자는 영어로 대답했다.

 

“산업스파이들이구만. 아니면 테러리스트던가.”

 

그는 자신의 책상으로 향하며 피로 흥건한 휴지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는 자신의 책상 앞에 살짝 기댄 채로 섰다.

 

“당신이 오모구치 켄타입니까?”

 

후미코가 물었다. 후미코는 곧 말을 정정했다.

 

“아니 시발, 다 좆까라지! 당신 대체 내 부하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총을 들고 쳐들어오길래…겁에 질려서 그만.”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맨손으로 이들을 찢어발겼다?”

 

카이토가 물었다.

 

“그래, 승려. 예의가 없는 놈들이었거든.”

 

후미코는 오모구치를 향해 총을 겨누며 말했다.

 

“이 개새끼가!”

 

카이토가 그녀를 말리며 속삭였다.

 

“지금은 참으십시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만 합니다.”

 

“나는 왕이다. 떠돌이 땡중이나 뭔 비밀스러운 조직의 사설군대 요원한테 뭘 말해줄 생각은 없어.”

 

카이토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 했지만, 이어진 정장 찢어지는 소리에 그럴 수가 없었다. 오모구치의 몸집이 점점 불어나 정장을, 이어서 창백했던 피부를 찢었다. 변형이 끝난 뒤 그 자리에 서 있던 건 2.5미터정도의 신장을 가진 뿔 달린 오니 전사였다. 찢긴 피부가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오니의 피부는 새파랬다. 머리에는 새 개의 뿔이 자라나 있었고, 입에선 엄니가 크게 삐져나와 있었다. 그것의 눈은 어두운 사무실 안에서 붉게 빛났으며, 번들거리는 비늘가죽을 갑옷처럼 걸치고 있었다.

 

방 안이 점점 어두워지고, 바닥에서 안개가 솟아나 요원들의 시신을 가리기 시작했다. 기온 또한 낮아지고 있었다. 오니는 왼쪽으로 팔을 뻗더니 허공에서 커다란 나기나타(원문은 Naganita)를 뽑아들었다.

 

 

“감히 내 영역을 멋대로 침범해놓고 나에게 답을 요구하는가, 방랑자여?”

 

카이토는 석장의 끝에 부적을 붙였다.

 

“요괴야, 네 이름이 무엇이냐!”

 

“슈텐도지다.”

 

카이토는 잠시 할 말을 잊은 채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뭐죠?”

 

후미코가 카이토에게 물었다.

 

“네 승려는 내 이름을 들어보았겠지!”

 

오니가 방 안을 웃음소리로 가득 채우며 외쳤다.

 

“어쩌겠는가? 내가 술을 너무 좋아하는 것을.”(슈텐도지 술에 낚여서 뒤진 걸로 유명)

 

후미코는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그녀의 앞에 나기나타가 내려꽂힌 충격 때문에 뒤로 날아가버렸다. 충격파는 카이토 또한 덮쳤지만 석장이 그것을 튕겨내었다. 사무실 안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더 이상의 질문은 없다!”

 

오니가 카이토를 향해 달려들며 외쳤다.

 

나기나타의 칼날이 카이토를 향했다. 카이토는 언령을 외우면서 오른쪽으로 뛰었다. 언령에 의해 튕겨난 나기나타가 다시금 바닥에 박혔고, 박살난 타일 조각들이 카이토에게 쏟아졌다. 카이토는 뺨과 팔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피가 흘러나오고 있으리라.

 

카이토는 석장을 휘둘러 오니의 팔뚝을 가격했다. 무거운 타격음이 올렸다. 오니는 그르렁거리며 그를 잡으려 들었다. 거대한 손이 카이도의 손을 감싼 순간, 오니의 주먹 안에서 강렬한 빛이 폭발했다. 푸른 피가 카이토에게 튀었다. 오니는 화들짝 놀라 망가져버린 손을 허겁지겁 빼내었다. 손가락 새 개가 뭉개졌고, 손바닥에 커다란 자상이 생겨 있었다.

 

카이토는 효력을 다한 부적을 내던졌다. 부적은 오니의 피로 젖어 있었다. 오니는 나기나타를 내던지고는 가슴팍 앞에서 순을 움켜쥐었다.

 

“이 망할 쥐새끼가! 감히 나를 공격하다니?!”

 

카이토는 서둘러 오니 앞에 있던 타일 바닥에 석장을 꽂았다. 석장이 바닥에 훌륭하게 꽂혔고, 곧바로 끝에 붙어있던 부적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종소리들이 잔뜩 울려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부적에서 발해진 빛에 오니는 멀쩡한 손으로 눈을 가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카이토는 몸을 뻗어 비늘갑옷 위에 부적 두 장을 붙였다. 부적들이 빛을 발하더니 빛의 사슬이 되어 오니를 옭아매었다. 사슬 하나가 목을 조르자 오니가 꺽꺽댔다.

 

카이토가 바닥에서 석장을 뽑아들자 끝에 붙은 부적이 바스라졌다. 그는 몸을 돌려 날아간 곳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는 후미코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부딪쳤던 벽에는 금이 가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다치셨습니까?”

 

후미코는 끙끙거리며 팔을 뻗었다. 카이토는 그 팔을 잡아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머리가 징징 울리네요. 그래도 어디 부러지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아요.”

 

카이토는 그녀가 부딪쳤던 벽을 보았다. 조금 패여 있었다. 후미코의 시선 또한 그를 따랐고, 그녀는 자신의 몸이 만들어낸 흔적에 경악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몸을 손으로 쓸지 시작했다.

 

“맙소사. 저 피 나나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야마치치 덕일까요?”

 

카이토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꿈틀거리고 있는 오니를 보았다. 오니가 더 발버둥칠수록 사슬은 더욱 강한 빛을 내뿜으며 그 몸을 조일 뿐이었다.

 

카이토는 오니 왕의 앞에 섰다.

 

“여기서 무얼 하고 있지?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인간들과 그 이야기 하고는! 역겹군!”

 

“이거, 대체 뭐하는 놈인가요?”

 

후미코가 물었다.

 

“자칭 오니들의 왕입니다. 옛날 이 지역에 큰 피해를 입힌 것으로 유명하지요. 전승에 따르면 유명한 사무라이에게 목이 베였다고 합니다.”

 

“그래, 그랬지! 하지만 난 살아남았다, 승려여! 내 신비는 강력하나니!”

 

“굳이 인간인 척을 한 이유는 뭐지?”

 

“힘 떄문이다. 언제나 힘 때문이지 않나? 내 동족들을 물질세계Waking world로 불러들이기 위해선 자원과 영향력이 필요했다.”

 

“영역들이 무너진다는 게 무슨 소리지? 어째서 여기로 피난해오려는 것이야?”

 

“그건 네놈의 동료에게 물어보거라.”

 

카이토는 후미코를 보았다. 후미코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저 년은 알고 있다. 저들 전부가 알고 있지.  저들은 몇 개월 동안이나 우리를 막으려 했다. 우리가 왜 이곳으로 넘어오는지 알고 있어. 신비는 사라지고 있다, 승려. 우리더러 신비와 함께 죽어가라는 말이냐?”

 

“저 자의 말이 사실입니까? 요괴들을 사냥하고 다녔습니까?”

 

카이토가 후미코에게 물었다.

 

“당연하죠! 그게 우리 일인걸요! 우리는 변칙을 격리한다고요!”

 

“하지만, 그렇다면 저들이 너를 왜 필요로 했을까, 승려?”

 

카이토는 후미코를 바라보았다.

 

“말해드렸잖아요! 이네에서 사람들이 잇달아 죽은 이유를 몰라서, 이쪽에 빠삭한 사람이 필요했다고요!”

 

오니는 다시 웃기 시작했다. 벽이 울릴 정도의 크기였다.

 

“저들은 너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저들이 필요한 것은 따로 있었지.”

 

오니는 카이토의 석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후미코는 오니와 카이토를 번갈아 보고는 소총으로 오니를 겨누었다. 하지만 카이토가 총열을 쥐고 천장을 향해 들어올리며 방해했다.

 

“멈추십시오! 저 자가 말한 게 무슨 뜻인지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후미코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등을 돌렸다.

 

“저는 저게 무슨 소린지 모른다고요.”

 

“거짓말 마시지요, 후미코.”

 

카이토가 부드럽게 말했다.

 

후미코는 급하게 돌았다.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나는-“

 

갑자기 그녀는 귓가에 손을 대고는 그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무어라 중얼거렸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반대쪽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뭐였습니까?”

 

카이토가 물었다.

 

“당신 도움이 필요했던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요?”

 

“그런데 석장 또한 필요했어요.”

 

“어째서입니까? 이건 저희 집안의 가품에 불과합니다. 단순한 석장에 불과하다고요. 아무데서나 살 수 있는 그런 것이라고요.”

 

“당신 것과 같은 건 살 수 없었어요.”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아니면 단순히 짜증이 난 건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둘 다일수도 있었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유물이에요. 변칙적인 물건이죠. 기록 속에서 당신 물건이 마법적인 힘을 품고 있다는 문서를 발견했어요. 진짜 마법 말이에요.”

 

“그건 또 무슨 헛소리입니까?”

 

“당신은 알아야만 해요. 그건 단순한 지팡이가 아니에요. 그건 열쇠라고요.”

 

“무엇을 위한 열쇠지요?”

 

“영역들. 차원들. 끊임없는 기적 에너지를 향한 열쇠예요. 그건 신성한 피뢰침이라고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양의 아키바 방사선을 뿜어내고 있단 말이에요.”

 

“저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주십시오.”

 

“당신이 그토록 쉽게 요괴를 퇴치할 수 있던 이유에요. 부적이나 주술이나, 언령 덕분이 아니죠. 전부 그 석장 덕분이라고요.”

 

“헛소리군요.”

 

“그동안 당신만큼이나 실력 좋은 요괴사냥꾼을 본 적 있으신가요? 그냥 아, 내가 다른 이들보다 훨씬 뛰어나구나, 하고 생각하셨어요? 당신은 군인들과 기적술사들 한 부대는 데려다 놓아야 겨우 잡을 수 있는 요괴들을 쉽게 퇴치해왔죠. 당장 저 자식이 무슨 꼴이 됐는지 보시라고요!”

 

오니는 다시 한 번 웃었다. 전에 비해선 조금 조용했다.

 

“사실이다, 승려여. 너는 아무것도 아니지. 중요한 것은 그 지팡이일 뿐.”

 

“저 살인마 새끼 말은 무시하시고요. 제 말에 집중하세요!”

 

후미코가 애원했다.

 

카이토는 손에 들린 석장을 바라보았다.

 

“저 자식 말이 맞아요. 마법이 사라지고 있죠. 변칙성 자체가 없어지고 있어요. 지난 수 세기동안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왔던 게 그냥 허무하게 없어지고 있다고요… 그리고 그 과정 중에서 몇몇 것들은 꽤나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고요.:

 

그녀가 카이토의 어깨를 쥔 채 말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알아요, 카이토? 그 지팡이에요. 당신은 수십 년간 요괴들과의 싸움에서 항상 승리해왔죠. 지팡이 덕에 그럴 수 있던 거예요.”

 

“아니에요.”

 

카이토가 중얼거렸다. 그의 팔이 떨리기 시작했다.

 

“맞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해온 일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당신은 그동안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왔잖아요.”

 

“그래서요?”

 

카이토는 그리 말하며, 그녀의 손을 떨쳐내고는 오니와 후미코 양쪽에게 등을 돌렸다.

 

“우리는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어요. 당신이 들고 있는 지팡이가 그 핵심이고요.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

 

오니는 다시 시끄럽게 웃었다.

 

“저 놈은 너희 옥리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쬐끄마한 요원아. 보아라! 이제 와서 바뀔 거라 생각하는가? 저 놈의 세상은 지금 막 부서진 참이란 말이다!”

 

“넌 닥치고 있어!”

 

오니가 으르렁거리자 방 안이 더 어두워졌다. 카이토는 편집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무실 벽은 온데간데 없었다. 주위엔 붉은 빛을 띤 안개와 죽어가는 나무들 뿐이었다.

 

“네 주위를 둘러보아라, 승려! 우리의 영역은 죽어가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물질세계로 나올 수밖에!”

 

카이토는 오니 왕을 보았다. 빛의 사슬이 어두워지고, 이제는 금이 가고 있었다. 총성과도 같은 굉음과 함께 사슬이 끊어지더니 소멸되었다.

 

슈턴도지는 후미코를 안개 속으로 치워버리고 카이토를 향해 외쳤다.

 

“네 장난감은 내가 가지마. 너를 친히 뜯어먹어준 뒤에, 이 땅을 나의 동족들로 뒤덮을 것이다! 인간들보다도 더욱 정성스레 다루어주마. 그들이 전부 죽은 뒤에 말이야!”

 

오니가 울부짖자 안개가 둘을 삼켰다. 카이토는 원래 최상층 로비가 있었던 곳, 칙칙한 적색 토리이가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오니는 자신의 영역 속으로 그것들을 끌어들였다. 토리이는 경계선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신의 영역을 가르는 경게선이 아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들을 가르는 경계선으로.

 

나기나타의 칼날이 안개를 뚫고 튀어나와 카이토의 가슴을 향했다. 카이토는 뒤로 물러나 석장을 휘둘러서 칼날을 튕겨내었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칼날이 이번엔 다리 쪽을 향하가 카이토는 뛰어서 피했다. 공중에서 휘둘러진 석장이 나기나타의 자루에 닿자 나기나타가 부러졌다. 종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이번에는 더 가까이서 울렸다.

 

슈텐도지가 울부짖었다.

 

“씨발 좀 죽어라 슬슬!”

 

카이토는 안개 속으로 숨었다. 그는 안개 속에서 일본어로 된 시구 하나를 읊조렸다.

 


흐르는 강물

모든 것을 바다로

나 또한 가네



안개가 걷힘에 따라 오니가 으르렁거렸다. 오니는 카이토를 향해 손을 뻗었다. 멀쩡한 한 손과 망가진 다른쪽 손을.

 

카이토는 몸을 비틀어 괴물의 손을 피했다. 앞으로 달려나간 그는 석장으로 오니 영역의 축축한 바닥을 쳤다. 종 소리가 크게 울리고 하얀 빛이 오니를 집어삼켰다. 바닥에서 푸르게 빛나는 불꽃이 타올라 오니의 다리를 불살랐다. 오니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마치 불길을 끄려는 듯 다리를 두드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카이토는 석장을 휘둘러 슈텐도지의 얼굴을 후려쳤다.

 

검푸른 귀혈(鬼血, Ichor)이 카이토의 얼굴과 몸에 흩뿌려졌다. 눈에 뒤집어 쓴 탓에 한순간 시야를 잃어야만 했다. 오니 왕은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마구 휘둘렀고, 그것을 가슴팍에 맞은 카이토는 뒤로 날아가 차가운 흙바닥 위에서 굴렀다.

 

카이토가 시야를 회복했을 때, 그는 빛이 되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오니의 영역이 사라지고 대신 사무실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머리 한 구석이 패인 슈텐도지가 카이토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니의 떨리는 입에서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오니는 갑작스레 아직 터지지 않은 한쪽 눈을 카이토의 얼굴에 고정시키고, 한 마디만을 중얼거렸다.

 

“나는… 바래지… 않으리라…”

 

슈텐도지가 가슴을 들썩이며 격렬히 기침을 토해냈다. 그의 목구멍에서 푸른 귀혈이 토해졌다. 그리고 그는 다 꺼져가는 한숨을 내쉬었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바닥 위에 쓰러졌다. 오니의 가슴은 더 이상 들썩이지 않았다. 오니의 눈에서 빛이 꺼졌다. 방에 빛이 돌아오고 있었다. 카이토는 오니에게서 시선을 뗐다.

 

카이토는 바닥에 누운 채 석장을 쥐에 가슴께에 얹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옆구리가 심하게 아려왔고, 입 안에서는 비릿한 피 맛이 났다. 그는 겨우 고개를 돌려 석장을 살폈다.

 

지금 내가 무슨 꼴인지 봐. 네 정체를 좀만 더 일찍 말해주면 어디 덧나냐? 그랬으면 적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누군가가 그에게 급히 달려왔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이 누구인지 간신히 알아보았다. 후미코였다.

 

마침내 힘이 다한 그가 눈을 감았고,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기록 종료>

관련 자료를 열람하기 위해 주 문서로 돌아가주십시오.


부록: 임무 보고서


SCP-6500-α의 회수에 관한 사후 보고에 접근하려면 자격증명을 재제출하십시오.



물품 번호: SCP-6500-α-지팡이

 

객체 등급: 안전

 

특수 격리 절차: SCP-6500-α-지팡이는 POI-8888이 개인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POI는 제██기지에 위치한 개인 숙소에서 기거한다. POI가 SCP-6500 연구 및 격리에 협력하는 한 개인 숙소는 POI에게 편안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며, 감시 및 보안은 최소한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POI-8888이 기지에서 외출할 때 가능한 경우 호위가 대동되어야 하며, 기지에 있을 경우 강화된 보안 규약이 시행되어야 한다.


 설명: SCP-6500-α-지팡이는 석장1(다수의 문화권에서 불교 승려가 들고 다니는 전통적인 봉)을 칭하는 호징이다. 석장은 강철과 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단부에 여덟 개의 강철 고리가 매달려 있다. SCP-6500-α-지팡이는 활성화 시 현 우주 외 시공간 구조체나 타차원을 향한 통로를 개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에 더해, SCP-6500-α-지팡이는 한 객체나 유기체를 한 시공간 구조체에서 다른 시공간 구조체로 옮기는 방식으로 응용될 수 있다.

 

재단 인원에 의해 추가적인 효과가 기록되었다. 이는 다음 효과들을 포함한다: 


빛과 열을 발산함.

‘오니’나 ‘요괴’2(객체가 지닌 다른 변칙적 존재/객체에 동일한 방법으로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음. 추후 다른 SCP 객체들을 이용한 실험이 제안됨.)로 알려진 변칙개체와 접촉 시 해당 개체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힘.

변칙적으로 높은 피해저항성을 가짐.

작동시 종소리가 울림.

 

해당 물체는 종소리를 울릴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자 않다. 기적학 기록보존소에서 발견된 문서를 기반으로, 연구진들은 SCP-6500-α-지팡이가 아키바 방사선과 비슷한 구성을 보이는 측정 불가능한 크기의 에너지원과 연결되어 있다 추측했다. 이 이론을 뒷받침하듯 SCP-6500-α-지팡이는 비활성화 시에도 미약한 아키바 방사선을 방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발견: 감독사령부는 SCP-6500사태를 무력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를 지시했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O5-0가 재단에서 탈퇴하기 전 남긴 개인 기록을 살피던 중, 초차원적인 효과를 가지고 “무한한 기적학적 에너지의 공급”이 가능한 지팡이가 언급됨이 밝혀졌다. O5-0의 추가 기록에 따라 연구를 진행한 결과 GOI-알파-019(“뱀의 손”)과 느슨한 연관성을 지닌 45세 일본인 승려가 지목되었다. 타나카 후미코 요원의 감시 결과에 의해 승려, 에구치 카이토(POI-8888로 지정됨)가 변칙적인 특성을 지닌 석장을 소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변칙적인 존재에 의한 살인으로 추정되는 사건 해결에 도움을 구한다는 거짓 이유를 구성하여 타나카 요원이 POI-8888과의 접촉을 위해 파견되었다.

 

수사가 진행되던 중 요원과 POI 둘 다 부상을 입어 의료 행위가 필요한 상태가 되었다. POI-8888은 갈비뼈 여러 개가 골절되고 상당한 수준의 타박상을 입었으며, 폐에 구멍이 나고 심각한 뇌진탕을 겪고 있었다.

 

POI-8888은 이전 재단과의 협력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회복기간 중 타나카 요원이 POI-8888의 설득에 성공하여 SCP-6500의 무력화에 협력키로 했다. 이 과정에서 POI-8888은 SCP-6500-α-지팡이가 반드시 자신의 소유 하에 있어야 하며, 연구 및 변칙성을 이용하기 위한 시도는 반드시 자신 참관 하에서 진행되어야 함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O5 평의회는 그의 협력을 조건으로 이 조건들을 승낙했다. 타나카 요원이 POI-8888의 호위 및 개인 담당자로 배정되었다.


 추가사항: 물체의 연구 및 활용 방안

██████ 선임 연구원은 SCP-6500-α-지팡이의 시공간 구조체에 간섭할 수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SCP-6500 사태의 방향성을 밝혀야 함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SCP-6500의 근원이 초차원적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이론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추가로 ██████ 연구원은 SCP-6500-α-지팡이을 이용, SCP-6500의 방향성에 변칙 에너지를 주입하여 기준현실의 변칙성 쇠퇴를 지연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감독관 평의회로부터의 전언
SCP-6500의 침식으로 인해 우리가 이전 150년간 쌓아올린 것들이 무의미해질지도 모르는 현 상황을 고려해, 앞으로 변칙성의 완전한 종말을 어떠한 식으로든 막을 수 있는 모든 행위는 전적으로 지원할 것을 밝힌다.


제안은 승인되었다.


우리는 마법이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O5-7







감독관 자격증명 입력:


나는 재탄의 작가요, 멸시당하는 자이니

불과 물과 공기와 땅 속에서

나는 홀로 서있으리라.

하지만 진실이 알려진다면,

[        ] 제출




 


도적

집중의 주형공?Mouleur Foci을 훔쳐라. 그 정수가 우주의 엔트로미, 부패, 퇴락과 얽혀있는 유물. 이 유물을 다룬다면 쇠퇴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룰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는 곧 SCP-6500을 다룰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도적의 길(번역안됨)




알림
상기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길들은 SCP-6500 위기의 추가적인 평가를 위해 요구되는 맥락을 (귀환몰입을 통해) 제공한다. 충분히 몰입한 O5 인원은 전술된 방법을 통해 획든한 자격증명을 입력하여 진행할 수 있다. 불명확한 경우 더 깊은 몰입이 필요하다.


감독관 자격증명 입력:


제출(번역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