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실생활에서 쓰는 산업의 쌀, 철.


산업의 쌀이라는 말에서 알다시피 철은 여러 분야에서 쓰인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밥 먹을 때 쓰는 수저도 대부분 철로 만들고(스테인리스도 기본적으로는 철이니까)


주방에서 요리할 때 쓰는 칼과 가위도 철로 만들고


출퇴근할 때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들도 대부분 철로 만들고


과거부터 칼이나 창의 날 부분이나 갑옷의 주요 재료도 철이었고(물론 철기 이전엔 청동으로 만들었음)


현대의 총이나 전차도 철로 만드는 등 철은 인류의 삶 속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흔하게 쓰여온 금속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의 혈액에 있는 적혈구에 있는 단백질 헤모글로빈에도 철이 포함돼 있으며, 이 헤모글로빈 덕에 우리는 몸에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다. 그만큼 철은 산업만이 아닌 생물들의 몸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금속 원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철이 알고 보면 자연에서는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보다 더 구하기 힘든 금속이라면 믿겠는가?




"엥? 생활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고 또 생명체에게도 필수적인 금속이 철이라며? 근데 왜 자연에선 금이나 은보다 구하기 힘들다 말하는 거야? 혹시 철이 자연에선 금이나 은보다 희귀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은 것이


우선 지구 전체에 가장 많이 포함된 원소가 철인 것은 물론이고 지각에도 철은 원소 중에서 비율로 따지면 다섯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아주 흔한 금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항상 철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유용한 물건들을 만들어 온 것이다.




"그럼 대체 자연에서도 흔한 철이 왜 금이나 은보다 더 구하기 힘든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지구에 철 자체는 흔해도 그 철을 쓸 만한 용도로 만드는 과정이 매우 수고롭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금이나 은과 달리 철은 산소와 매우 잘 결합하는데(여기에 습기와 전해질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 이렇게 산화된 철은 너무 내구도가 약해서 쓸모가 없다. 문제는 지구에 존재하는 철의 대부분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대기 중의 산소와 주변에 있는 여러 전해질과 습기에 의해 산화가 상당히 된 상태라서 운철이 아닌 이상 지구에서 홑원소 상태의 철은 자연에서 매우 구하기 어렵다.


반대로 금이나 은의 경우, 쉽게 산화되지 않기 때문에 자연에서도 홑원소 상태로 구하기가 비교적 쉬운 편이다.


그렇다면 이 산화된 철을 어떻게 해야 쓸모 있게 만들 수 있을까? 바로 철에 있는 산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전혀 쉬운 일이 아닌 것이 일단 철이란 금속은 산화는 너무나 잘 되는데 반대로 환원은 더럽게 안 되는 데다 철과 결합한 산소를 제거해 주려면 가열해서 용융시켜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도 엄청 어려운 것이 우선 철은 산화는 너무 잘 되는데 내열성은 쓸데없이 높은 탓에 온도가 1500°C가 넘어야 녹기 시작하며, 여기까지 온도를 높이려면 단순히 나무에 불을 붙여서 가열하는 수준으로는 어림없다는 것이다.(일반적으로 잘 마른 나무를 태워서 낼 수 있는 온도는 최대 1200°C가 한계.)


불의 온도를 1500도까지 올리기 위해선 나무보다 더 탄소의 비중이 높은 숯(목탄이든 석탄이든)과 더 많은 산소를 불에 때려박기 위한 풀무가 필요한데 숯의 경우 목탄만 해도 나무도 아무 나무나 쓰는 게 아니라 매우 단단한 소재의 나무(참나무, 물갈나무, 밤나무 등)를 써야 하고 만드는 과정도 상당히 복잡해서 조금만 시간이나 온도가 맞지 않으면 숯이 재가 되며, 석탄의 경우 아예 땅을 깊숙히 파고 들어가서 캐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숯을 얻는 과정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거기에 풀무질의 경우 사람이 직접 공기를 불어넣거나 기계의 힘(물레방아든 풍차든)을 빌려서 공기를 불어넣는 방식인 만큼 필요한 인력과 자본이 장난 아니게 든다.




안 그래도 이렇게 불의 온도를 높이는 것부터가 아주 빡센 일인데, 더 빡센 것은 이렇게 해서 철을 얻어냈다 해도 금이나 은과 달리 철은 내부에 탄소가 너무 적거나 너무 많을 경우 내구도가 약해서 여전히 쓸모가 없었기 때문에 쓸모 있는 철을 만들려면 철 안에 적정량의 탄소를 첨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탄소를 적절히 첨가하는 과정 역시 쉬운 게 아닌 것이 탄소를 너무 적게 넣으면 잘 부러지지 않으나 쉽게 휘는 연철이 되고


그렇다고 너무 많이 넣으면 잘 휘어지지 않지만 쉽게 부러지는 선철이 되기 때문에 양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게다가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전근대엔 말 그대로 사람의 감과 경험에 의지해서 탄소를 섞어야 했기 때문에 더욱 골때리게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철은 지구에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어느 정도 기술이 받쳐 줘야 철기가 보편화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처음 인류가 사용한 금속은 구리나 청동이 된 것이다. 구리의 경우, 1,084°C에서 융용되고 청동의 경우 950°C의 온도에서 융용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철보다 사용이 쉬웠다. 오죽했으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 투탕카멘의 단검의 재료로 쓰일 정도로 철(엄밀히 말하면 투탕카멘의 단검은 그냥 철이 아니라 운철이지만)이 청동보다 더 구하기 어려웠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철은 지구에 매우 풍부하며,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귀한 구리나 주석에 비해 구하기 쉬운 데다 두 종류의 금속을 적절한 비율로 융합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 때문에 고대부터 차츰 청동기를 밀어내고 보편적으로 쓰이게 됐으며, 기원후 시기부턴 화기의 발명 이전까지 모든 무기 및 일상도구들의 재료로 쓰이게 됐다.




화기의 발명 이후에도 처음에는 가공이 어렵고 높은 취성 탓에 폭압을 버티기 힘든 주철 대신 청동이 쓰이다가(이 때문에 청동을 포금(砲金, gunmetal)이라 하기도 한다.) 기술의 발달로 강철을 이용해서 청동제 화기 못지 않은 내구도를 가진 화기를 만들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철은 산업의 쌀이라 불릴 정도로 유용하게 쓰이는 것이다.




요약: 철은 자연에서는 흔했어도 화학적 특성상 홑원소 상태로 존재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그럼에도 흔하다는 특성과 기술의 발달을 통해 지금 인류의 삶에 보편적으로 쓰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