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소설에 빙의했다. (1~5화)


#현대판타지 #중세판타지 #탑등반 #피카레스크 #집착 #빙의 


1화 빙의 (공백 포함 5120자, 공백 미포함 3741자)


타다닥. 타다다닥.


어두운 밤.


이미 야심한 시간임에도, 어느 한 방에서는 여전히 밝은 불빛이 공간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방안에 있는 건 한 남자.


그 남자가 키보드를 눌렀다.


하나 하나.


천천히.


타닥. 타다닥.


『신들은 모두 죽었다.


저 지하의 악신도.

저 천상의 선신도.

이제 남은 신은 그녀뿐이었다.


“…모든 게 끝났네..드디어.”


수많은 회차들.

덧없던 인연들.

그것들이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탑의 끝을 보았지만, 결코.. 그 누구도..

그녀의 삶이 행복했다 말할 수 없었다.


무한한 죽음과 절망으로 점철된 인생을 어찌 행복했다 말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그녀는 시작했다.


그녀의…


마지막 회귀를.


The end. 

지금까지 ‘무한 회귀 능력을 얻었다’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마침표.


그 점 하나가 찍히고 나서야 사내는 의자에서 기지개를 피며 일어났다.


“으으..드디어 끝냈다아!!!!”


드디어 소설의 완결.


거의 일 년을 붙잡고 있던 글이 끝나버리니 감회가 새로웠다.


“으아아아.. 다음 소설은 대박 내자!!”


비록 그 성적은 저조했지만, 첫 글이었던 만큼 애정이 갔기에 더욱 벅차올랐다.


”하아…드디어..드디어.“


웹소설 작가가 돈은 많이 번다는 말에 혹해 시작한 지 근 일 년.


조회수가 몇십일 때, 온 계약 제안을 받아들이며 얼마나 기뻐했던가.


마침내 유료화에 들어갈 때, 얼마나 기대했던가.


그리고…나의 소설을 보는 독자 수에 얼마나 절망했던가.


”…크큭. 그것도 다 추억이네,이제..“


어쨌든.. 지금은 그냥 감격스러운 감정뿐이다.


“…그래도 결말도 제대로 못 내서 아쉽긴 하네..”


결국은 마지막 회귀를 시작하는 열린 결말.


…스스로도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소설, 그런 것에는 알맞는 엔딩이다.


애초에 시작부터 이상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무한 회귀 능력을 얻었다]


무려 일 년을 붙잡고 있었던 나의 소설이다.


대충 여주가 무한 회귀 능력을 얻고 탑을 오르는 내용을 가진 소설.


그리고 대차게 망해버린 소설이다.


”..그래도 유기 안 한게 어디냐.“


비록 성적이 저 진창에 처박혀 있지만, 그래도 결국 엔딩을 내긴 했으니 스스로는 만족했다.


만족했…


만족…


”..제기랄.“


만족할 리가 있나.


나름대로 열정을 가지고 쓴 소설이 묻혀버리는 건,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볼 수 없었다.


많은 비판을 들었지만 그중 가장 많았던 건 “어설프다“라는 한 마디.


…내가 들어도 맞는 말이다.


루프물 + 탑등반물 + 여주물이라는 독특한 구성.


역량이 된다면 회차마다 연인을 바꿔가는 여성향의 역하렘물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여주물을 쓰면서도 노맨스로 전개해 여성 독자들의 유입도 적었고, 여주이기에 남성 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럴거면 차라리 Ts 스킨을 입혀서 노블피스에서 연재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애초에 남자인 내가 여주물을 쓴 게 잘못이지..”


남자가 여자의 심리묘사 같은 걸 잘할 리가 있나.


부족하고 허술한 심리묘사와 애매하게 썸을 시작하려다 못 쓰겠어서 유기한 남캐들.


조악한 세계관과 기대감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전개. 


그리고 떡밥 없이 밝혀지는 사실들이라고 쓰고 개연성 부족이라고 읽는 급발진.


결국 나의 소설은 종합적인 요인들로 인해 망해버렸다.


조회수를 확인해보아도..


1. 1. 1.


최근 30화 동안의 독자는 한 명 뿐이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김x자 관측‘인가..


그래도 나의 소설을 따라와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음? 엔딩을 벌써 보셨나?“


회차들을 대충 둘러보던 나의 눈에, 최신화의 조회수가 들어왔다.


역시나 1.


그러나..


”..올린지 오 분도 안 됐는데.. 허..참..“


마지막 화가 등록되자마자 보았다는 말과 같기에 꽤 놀랐다.


내가 독자라면 나도 나의 소설은 보지 않을 정도로 재미가 없기에..이렇게까지 소설에 관심을 가질줄도 몰랐고.


띠링!


알림소리.


댓글이 달렸다는 신호다.


[작가 죽여버릴래.]

— 와 드디어 완결이네요. 작가님도 소설에 애착을 많이 가지셨을 것 같은데..축하드립니다.


”…흐흐..“


괜히 기분이 좋다.


역시 작가는 댓글로 먹고 사는 거지.


’..답글이라도 달까.‘


지금까지 댓글에 답을 한 적은 없었지만.. 끝까지 따라와 준 고마운 분이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답글을 달기로 했다.


타다다닥-!


[작가 죽여버릴래]

— 와 드디어 완결이네요. 작가님도 소설에 애착을 많이 가지셨을 것 같은데..축하드립니다.

         ㄴ [이러다가 다 살아]

          — 감사합니다. 특히 주인공은 더욱 아꼈었는데…어느새 끝이 왔네요. 다음에는 더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더 좋은 작품.“


쓰다보니 실소가 흘러나왔다.


더 좋은 작품이라..


내가 그런 것을 쓸 수 있을까.


소설에 재능이 없는 내가.


띠링!


 또 답글이 달렸다.


ㄴ [작가 죽여버릴래]

—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마지막 회귀에는 작가님도 참여할 테니 조금만 더 도와주세요.


“푸흐…이건 또 뭔 말이래.“


마지막 회귀에 내가 참여한다니..


“..차라리 그렇게 된다면 좋겠네.”


파아아앗-!


내가 읇조리자 곧 모니터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우와아악!! 뭐야, 이거!!”


치지지직-


태양과도 같은 빛.


그 빛은 나의 비명을 무시하고는 방안을 가득 채웠고, 이내 곧 사그라들었다.


방은 곧 원래대로 돌아왔고, 변한 건 없었다.


다만, 한 사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그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


“…여기는..?”


한편 그 사내, 천의찬은 영문 모를 웅장한 숲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숲..? 나무가 이렇게 클 수가 있다고?”


현실에 있다고 해도 믿기지 않을 만큼이나 거대한 나무. 


사람보다도 큰 꽃.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숲.


그것들에 나는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꼈다.


”이건 도대체..“


그 때, 옆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웅성- 웅성-


”…!“


파앗-!


하나 둘씩 생겨나는 긴 빛무리.


내가 아는 모습이다.


모를 수가 없다.


『그녀가 당황하던 그때, 수많은 빛무리가 숲을 밝혔다.』


내가 직접 묘사했던 광경이니까.


나의 눈에 지진이 일어났다.


[하하하핫!!]


이것도 익숙한 웃음소리다.


『작은 요술봉을 든 그 요정이 광소를 터뜨렸다.』


내가 고심하며 글로 적어서 표현한 모습이다.


그렇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다.


“왜..내가.”


내 소설 속에 들어온 거지?


“…무슨.“


이 울창한 숲은 튜토리얼의 장소.


저 요정은 그 튜토리얼을 안내하는 요정.


모두 나의 소설에 나오는 것들이다.


“…그럴 리가.”


그렇다면 좋겠지만..그럴 리가 없다.


내가 왜.


무슨 이유로 나의 소설에 들어온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도중, 문득 독자의 답글이 생각났다.


“..마지막 회귀에는 작가님도 참여할 테니…”


오싹-!


순간 소름이 끼쳐왔다.


그 말대로라면.


내가 창조한 등장 인물이 소설을 읽고 나를 이곳으로 불러왔다는 말이 되니까.


그것도 절대신의 자리에 올라선 주인공이.


“..하핫..“


그럴리 없다.


회귀는 마지막 층에 들어섰을 당시로 고정되니까.


이런 시작으로 올리가 없다.


애초에 소설 속 등장인물이 살아있을리가 없잖나


……


’..진짜로..?‘


정말..


이렇게 생생한 것이 꿈이라고?


머리는 이것이 가짜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저 하룻밤의 허상일 뿐이라고.


그러나..


『그럼에도 계속해서 생겨나는 빛의 기둥들이 나의 생각을 부정했다.』


막 소환된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할 때 적은 한 문장.


그 한 문장이 지금 나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이왕이면 꿈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머리가 그저 환상이라고 말하니, 나의 감각이 대답했다.


이건 분명한 현실이라고.


신선한 대자연의 공기가.


사람들의 말소리가.


터져나오는 빛무리가.


모든 감각들이 증명한다.


이것이 현실임을.


”여..여기는 어딥니까!!“

”씨X! 나 면접이었는데!!“

”뭐야!! 이거 납치인 거 알아!?“


사람들이 소리친다.


”대사까지..똑같아. 완벽하게.“


이제 다음 전개는..


[하아아..정말 왜 항상 이러는 걸까요.]


요정이 한숨을 내쉰다. 


‘…그렇다면 곧..!‘


나는 앞으로 일어날 광경을 기대하며 조용히 요정을 바라보았다.


피곤하다는 듯한 눈을 한 요정.


마침내 손가락을 튕긴다.


딱-!


청명한 소리를 내는 핑거 스냅.


“..뭐..뭐야!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잖아!!”

“..괜히 쫄았네, x발.”


사람들이 의아해할 때 즈음.


퍼엉-!!


고함을 지른 사람들의 머리가 터져나간다.


하나, 둘이 아닌 모두 한꺼번에.


사방에 피가 비산한다.


“꺄아아악!!”

“으아악!!”

“미친!!”


사람들의 경악이 서린 비명이 꽤나 듣기 좋다.


“..진짜로 죽었네.”


피가 나의 발을 적신다.


비릿한 피냄새.


결코 가짜 따위가 아니다.


피 웅덩이에 손가락을 찍어 먹어본다.


..피의 맛이 맞다.


현실에서나 느낄 법한 ‘맛‘이 느껴진다.


“..진짜다.“


어떻게?


왜?


무슨 이유로 무슨 과정을 거쳐 내가 이곳에 들어온거지?


“..됐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상황이 진짜라는 것.


한때 바라왔던 망상.


그것이 실제가 되었다.


가끔 꿈꿔왔던 세상.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표정을 바꾸었다.


”진짜..“


더없이 환한 미소로.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를 음산함이 느껴지는 그런 표정으로.


“이보다 좋을 수가 없잖아..!!!“


힘이 곧 법이다.


마법과 오러가 실존한다.


탑을 올라야만 한다.


모두 내 소설의 설정들.


“하아..“


이곳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힘이 있다면 하렘을 차려도 되고. 


힘이 있다면 사람을 죽여도 벌할 수 없다.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 받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야말로 꿈의 세계가 아닌가!


“..내가 쓴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 건 어떨까..“


직접 설정했다.


외형부터 성격, 좋아하는 음식까지 하나하나 모두!


내가 창조했단 말이다.


그런 이들을 만날 수 있다고?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하하..”


피가 점점 땅에 스며든다.


그리고 어디선가.


“크라라락!!”


몬스터의 괴성이 들려온다.


“으으으…꿈일거야..“

”살려줘…엄마..엄마..“

”허억..허억..“


이것 또한 소설 속 전개.


모든 게 똑같다.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


“하하핫..!!“


인정해야 한다.


꿈이 아니다.


나는 소설 속에 빙의했다.


그것도 내가 쓴.


그야말로..


“최고다.”



2화 구원자 (공백 포함 5963자, 공백 미포함 4388자.)


나는 나의 소설에 빙의했다.


결국 이것이 진실이다.


어떤 방식으로 이 세계에 끌려왔는지, 왜 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지금 당장은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건 나는 이 소설의 '작가'이며 미래를 알고 있다는 점이지.


[자자, 조용!]


사람들의 머리를 터트린 요정이 외쳤다.


나는 그 후에 일어날 일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바로 저 요정에게 대항해선 안 된다는 것.”


『그렇기에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요정의 말을 따랐다.』


역시나 그들은 입을 닫았다.


순식간에 찾아온 적막.


“…푸흐..”


내가 쓴 장면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니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감동? 희열? 뿌듯함?


하나의 단어로는 묘사할 수 없을 만큼..복잡한 감정이었다.


[딱 한 번만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요!]


[당신들이 소환된 이곳은……]


요정은 여타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듯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대충..


    1.    우리들은 특별한 장소, ’탑‘에 소환되었다.

    2.    탑을 등반할수록 강해지며, 고층에 다다를수록 더 어려운 고난을 마주한다.

    3.    상태창을 사용할 수 있다.

    4.    모든 이들은 하나의 스킬을 가지고 시작한다.


이정도였다.


‘흔한 설정이지.’


소위 ‘탑등반물’이라 불리는 소설 장르다.


탑을 등반하며 초인적인 힘과 아이템을 얻으며 강해지는 장르.


나의 경우에는 탑을 등반하며 강해진다는 설정과 주인공의 회귀 능력을 엮어서 잘 써보려고 했지만, 결국 역량 부족으로 망해버리고 말았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현재로서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스킬.


이 소설의 주인공은 무한 회귀(EX)라는 희대의 사기 스킬을 가지고 시작한다.


물론 그런 능력을 받은 이유가 있긴 하지만 사기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소설의 '작가’인 만큼 평범한 스킬을 얻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사실이다.


‘상태창.’


「이름: 천의찬

 종족: 인간

 성별: 남성 

 나이: 26


직업: 무직

스킬: 동반 회귀 (SSS+)


 스탯: 근력:5 민첩:5 체력:4 지력:7 마나:0」


…뭐?


푸른 상태창.


그 위에 적혀있는 스킬을 표기하는 칸에 어느 한 스킬의 이름이 써져있다.


동반 회귀.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는 건가?


“..이건.”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 걸까?


띠링!


「동반 회귀 (SSS+)

무한 회귀(EX)의 소유자가 회귀할 때, 같이 회귀합니다. 무한 회귀의 소유자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회귀에 대한 것을 알릴 수 없습니다.」


나의 손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나의 상황에 처한다면 누가 그러지 않을까.


이 스킬이 내가 써온 이야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해주는데.


“…하핫!”


각 층의 마지막 회차만 살아가는 게 아니라, 모든 회차를 함께할 수 있게 해주는데.


잊혀진 회차에서의 회귀자의 행동을 그저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회귀자와 함께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데!!


‘…최고다.‘


웃음이 숨겨지지를 않는다.


여기서 웃어 재낀다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게 분명한데도.


나의 입에선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핫!!!”


아..정말.


다행이다.


“..뭐야.”

“미친놈.”


사람들의 경멸하는 눈초리가 나를 감싼다.


그래도 나는 폭소를 멈추지 않았다.


“..하하핫!!!”


최고(最高)다.


이 이상으로 내게 좋은 스킬은 없으리라.


“하핫…흐흐..”


아 슬슬 멈춰야 하는데.


이 망할 웃음이 계속해서 나온다.


“흐흣…흐..후우.”


겨우겨우 진정했다.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지만, 적어도 전처럼 미친 듯이 웃지는 않는다.


이것 참..


회귀자에게 이상한 놈으로 낙인찍혀버리면 안 되는데..


“..하핫…진정하자. 상황도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아니니까.”


나는 전투에 도움되는 스킬이 없다.


동반회귀라지만 결국 회귀에 맞춰 발동되는 수동적인 스킬.


그런 스킬을 가진 내가 튜토리얼을 통과하는 방법은..


“..역시 히든 피스를 먹는 것뿐인가.“


나는 앞으로의 전개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전략을 정했다.


[자..뭐 그럼 설명은 다 했고..여기 단검 하나씩 드리니까 잘 살아남아 보세요.]


파앗-


요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에 쥐어지는 소담한 단검.


마트에서 파는 식칼 같은 게 아니다.


생물을 죽이기 위한 무기다.


”..칼이 주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곧.“


대학살이 펼쳐진다.


쿵-! 쿵-! 


어디선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발걸음.


”크롸라라아-!!!“


인간이 내는 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기괴한 울음소리.


미래를 몰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저들이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리라는 건.


”..몬스터들.“


그들이 오고있다.


”뭐야.뭐야.뭐야.뭐야…지금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으으..저건 또 뭐야..!!“

”괴물들..!“


『저 멀리서 흙먼지가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그 먼지를 일으킨 영문모를 생물들은 마침내 인간들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녹색 피부, 흉한 매부리코, 길고 날카로운 귀. 그러한 특징들이 한 몬스터를 연상시켰다.』


바로 판타지 소설의 대표적인 몬스터, 고블린을.


“…하핫.”


저들을 마주하니 긴장감과 왠지 모를 희열이 생겨났다.


식은 땀이 흐른다. 그렇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얼핏 보아도 수천은 넘어 보이는 그들. 


그러나 수로 따지자면 인간이 더 많다.


한번에 소환되는 인원은 만 명이니까.


‘..사람들을 방패로 쓰다 보면 싸우지 못할 것도 없다.’


애초에 고블린 놈들은 튜토리얼의 메인이 아니다.


“이..이게 뭡니까, 요정님!?”

“요정님..제발…제발.”

“야이 개 같은 새끼야!!”


고블린들을 본 놈들이 요정에게 소리 지른다.


[하아..그냥 제발 닥치고 있어봐요..]


퍼엉-!


또 머리가 터져나간다.


”그래도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네.“


죽일 거면 파편이 튀지 않도록 깔끔하게 죽일 것이지.


더럽게.


[자, 이제 몬스터들에게서 살아남는 게 튜토리얼이고요. 그럼 잘 해봐요~?]


[그럼 튜토리얼 시작❤︎!]


요정이 시작을 선언하자 새로운 시스템 창이 모든 사람에게 생겨났다.


[튜토리얼 종료까지 120:00:00]


튜토리얼의 남은 기간을 나타내는 타이머.


그것의 시간이.


띡!


[튜토리얼 종료까지 119:59:59]


줄어들기 시작했다.


쿵-! 쿵-! 


시간과 비례해 점점 가까워지는 고블린 무리들.


하지만 그들과의 거리와는 달리.


시간은 너무도 많이 남아있었다.


“..그래봐야 고블린들 입니다!! 한번 해봅시다!!“

”..그..그래!! 스킬도 있잖아!!“

”우리가 수가 훨씬 많다, 싸우자!!!“


점점 다가오는 고블린들을 보고, 사람들은 그들과 대적하기를 결심했다.


방금전 까지 사람들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이제는 몬스터들이 우리에게 진격한다.


그런데도 싸울 생각을 한다.


정상적인 반응은 두려움에 질려 도망가는 것일 터.


명백하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선동가인가.”


이 일은 아마 선동과 관련된 스킬을 가진 놈이 개입한 결과일 테다.


원작대로라면 당연히 ‘그놈’일테고.


“..멍 때릴 시간은 없어.“


타다다닥-!


나는 저 앞의 사람들에게 달려가며 생각했다.


당장 회귀자를 찾아가야 한다.


1회차의 회귀자는 고블린에게 죽으니까.


***


한가인.


죽음을 맞이할 시 과거로 돌아가는 무한 회귀(EX)의 보유자.


긴 흑발을 가졌으며, 소환 당시의 복장은 후디와 츄리닝 바지.


외모는 가히 나라를 망칠 미인이라 해도 될 만큼 아름답다.


‘애초에 가인이라는 이름을 절세가인에서 따왔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튜토리얼이 시작하자마자, 고블린에게 살해당한다.


그것도 돌창에 목을 찔려서.


사실 그게 당연한 것이다.


‘평범한 대학생이 갑자기 괴물들이랑 싸워야 하는데 그 몬스터들을 보이는 족족 죽이고 다니는 게 더 이상하지.’


뭐, 아무튼 그런 이유로 그녀는 고블린에게 죽는다.


그 말은 어차피 그녀가 죽으면 회귀하는 내가, 현재 회차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곧 회귀하니까.


그렇기에 나는 짧은 시간 동안 고심했다.


그런 회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차라리 회차의 길이를 늘려버릴 수는 없을까.


결국 나는 이번 회차를 완전히 개변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회차의 목표는 두 가지.


‘회귀자, 한가인을 구해 은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을 것.’


그리고 또 하나는.


‘한가인에게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각인시킬 것.


타다다닥-!


그 두 가지를 위해 지금 나는 저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한가인은 저 요정의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블린들과 격돌한다.‘


그 말은 그녀가 이 인파 중에 상당히 앞쪽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어디냐!!”


타다다닥-!


나는 계속해서 뛰었지만 회귀자를 찾지는 못했다.


인간 만 명의 무리가 만든 두께는.


나의 생각보다도 두꺼웠다. 


“크롸아아악-!!”

“으아아!!“

“케에에엑!!”

“사..살려..으아악!!”


고블린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함성과 공포에 질린 인간들의 비명.


그것들이 섞여 아수라장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벌써 고블린과 부딪혔나?“


죽어나가고 있을 인간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당장 내지르는 소리만 보아도 전장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젠장. 벌써 회귀하게 되나..”


첫 인상이 ’구원자'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텐데.


아쉽다.


“…이렇게 된 거 전투를 시도라도 해볼까.”


싸움을 시도하는 건 히든 피스를 먹고 나서일 줄 알았는데…


그래도 어차피 곧 회귀할 거, 뭐라도 해보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근처의 고블린에게 다가갔고.


”..하. 얘가 왜 밑에 깔려 있는 거지?“


땅 밑에 넘어져 죽을 위기에 처한 여자를 발견했다.


***


한가인.


그녀는 그리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남들보다 아름답고, 약간 허당끼가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평범하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날도 특별하지는 않았다.


요구르트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그뿐 이었다.


돌아오던 길에 우연히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눈을 떠보니 생전 보지도 못한 곳이었다.


“…무..뭐야!?”


당장 부모님께 전화를 걸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 아예 전화가 터지지 않는 듯했다.


그러던 중, 한 요정이 나타났고, 그 요정은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였다.


피가 흩날렸다.


비릿한 냄새가 나의 코를 더럽혔다.


역겨웠다.


“우웁..!!”


결국 한바탕 토악질을 하고 나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그런 광경까지 보자 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왜.


왜.


내가 이딴 곳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니 패닉 증상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죽는 건가?


죽음은 고통스러울까?


요정이 이곳에 대해 뭐라 뭐라 설명했으나 들리지 않았다.


몸이 덜덜 떨렸다.


호흡이 가빠졌다.


내가 두려움에 떨자, 어디선가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그리고 나를 반겨준 건 초록빛의 몬스터.


작은 체구였지만 그 흉측한 모습이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켰다.


“아아..”


나는 곧 죽겠구나.


엄마..

 

그들을 본 나의 감상이었다.


그랬는데..


그랬을텐데..


“그래봐야 고블린들 입니다!! 한번 해봅시다!!“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나는 무모하게 고블린에게 달려나갔고.


턱-!


고블린의 창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철푸덕-!


고블린의 창이 나를 겨눈다.


’…내가 여기서 죽는다고?‘


안된다.


아직 하지 못한 게 너무나 많다.


가기 전에 가족도 보지 못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제발.”


실날같은 희망을 품고 주위를 돌아본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다.


모두 고블린에게 죽어간다.


그 모습이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끌어내렸다.


’끝이구나..‘


결국 체념했다.


나는 죽는다. 그것도 몬스터에게.


질끈 눈을 감았다.

 

차마 창에 꿰뚫리는 고통을 눈뜨고 견딜 자신이 없었다.


‘모두 안녕..’


이제 창이 나의 목을 찌를 것이다.


그래, 원래라면 그랬을 것이다.


푸욱-!


살을 찢어버리는 피육음.


그런데…아프지 않다.


찔린 느낌이 없다.


‘어떻게?’


그리 생각하며 눈을 떴다.


그런 나를 반겨준 건, 흉한 고블린들이 아닌.


“아아…“


미형의 남자, 아니.


“괜찮으십니까?”


 나의 구원자였다.



3화 아주 좋아 (공백 포함 5345자, 공백 미포함 3924자)


푸욱-!


그대로 고블린에게 달려가 단검을 꽂아 넣는다.


”케르륵!!“


놈이 발광하며 괴성을 내뱉었다.


어차피 죽을 거, 그냥 빨리 죽어줬으면 좋겠는데..


결국 놈의 움직임이 멎었다.


[고블린을 살해하셨습니다.]


[칭호, 튜토리얼의 고블린 살해자가 주어집니다.]


{튜토리얼의 고블린 살해자}

[튜토리얼에서 고블린을 죽인 이에게 주어지는 칭호. 근력을 1 증가시킨다.]


‘..좋네.’


이건 까먹고 있었는데 의도치 않은 수확이다.


그나저나…


“후우..“


지금까지 계속해서 달렸던지라 꽤나 지친다.


그래도 무사히 회귀자를 확보했으니 다행이다.


지금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죽기 전에 넘어졌다는 묘사가 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급하게 뛰면서 둘러보았으니, 어찌 보면 내가 그녀를 찾지 못했던 건 당연했다.


”…”


눈을 질끈 감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여자.


그 모습이 우스웠지만, 그녀의 외모가 뭔지 모를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다.


‘…확실히 엄청나게 예쁘긴 하네.’


피가 묻어있음도 연예인들 보다도 더 아름다워 보이는 그녀의 모습.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그 모습을 보니 감탄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음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녀에게 흑심을 가지는 짓은 할 수 없었다.


첫인상을 그런 것으로 망쳐버린다면 두고두고 후회하겠지.


애초에..지금 모습으로는 아무리 예뻐도 그런 감정을 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예쁘면 뭐 하나. 지금 이 꼴인데.’


죽은 고블린의 발 밑에서 움찔거리는 그녀.


움찔거리는 게 에벌레 같았다.


지금 이 모습만 본다면 이 여자가 미래의 ‘그’ 회귀자라는 걸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의 복장이, 생김새가 스스로를 증명했다.


‘..이런 게 나중에는 그런 절대신이 된다니.’


내가 쓴 이야기지만 믿기지가 않네.


“…?”


이런, 슬슬 눈을 뜨려 한다.


표정관리나 하자.


이윽고, 회귀자가 눈을 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푸근한 미소를 짓고, 손을 내밀었다.


“아아..”


그런 나의 모습에 그녀가 탄성을 내뱉었다.


“괜찮으십니까?”


이어지는 말 한마디.


이것은 그녀가 나를 신뢰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영원토록.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사람을 구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죠.”


젠장, 내가 말하면서도 역겹다.


나는 속마음을 숨기며 고블린의 목에서 단검을 빼냈다.


촤악-


단검이 뽑히며 주변에 피가 튀었다.


움찔-!


한가인이 움찔거렸다.


‘…이거 당분간은 피곤하겠네.’


피에 익숙해지는 데엔 시간이 얼마나 걸리려나..


나는 그런 고민을 하며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뒤쪽으로 도망치죠. 저 고블린들은 앞쪽에서 진격해오는 거니까 뒤로 가면 한동안은 저놈들과 마주칠 일이 없을 겁니다.“


”..여기서 계속 싸우지는 않는 건가요?“


….이 여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혹시 스킬이 전투 계열이십니까?”


“..네..네!? 스킬이요..? 그게 무슨..”


“..하아.”


스킬도 모른다고.


…그래, 이게 맞는 거지.


평범한 사람이 이런 곳에 온다면 이런 게 정상이다.


그리고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다.


미래의 그 회귀자가 아닌.


“일단 뒤로 가죠. 지금도 고블린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크롸라락—!!

크레렉..


계속해서 들려오는 고블린들의 괴성.


그것은 그녀의 불안감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네.”


타다다닥-!


우리는 고블린들을 피해 계속해서 뛰었다.


중간에 뒤에서 돌로 만들어진 단검 하나가 날라와 놀라긴 했지만,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숨이 찼다.


그래도 달렸다.


놈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허억..! 허억…! 이 정도면 그만 도망쳐도..괜찮을 것..허억..같은데요.“


”…후우..네. 확실히…충분하군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럼 아까 요정에게 제대로 듣지 못하신 것 같으니 제가 대충이라도 설명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이 탑의 설정을 상세히 풀어놓았다.


그래봐야 요정이 한 말을 반복하는 것밖에 되지 않지만.


그 이상을 말했다가는 미래에 그녀가 요정의 설명을 들었을 때, 나를 의심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어차피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를 내 입맛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정보의 차단이 필요하다.


그녀는 회귀자니까.


한가인에게 정보란 곧 힘.


나의 꼭두각시가 될 이의 힘을 키워줄 생각은 없다.


“…꿈은 아니겠죠..?”


나의 설명을 모두 들은 한가인이 한 말이었다.


“꿈이라..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얌전히 죽음을 기다리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닐 겁니다.”


“…네.”


“저..그..”


“한가인이에요. 그냥 편하게 불러주세요.”


“예, 저는 천의찬이라고 합니다. 가인 씨도 한번 스킬을 확인해보시죠. 어쩌면 긁지 않은 복권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네.”


한가인은 잠시 동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눈이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


누가 보아도 부자연스러운 반응.


“무슨 스킬이십니까?”


“아..그,그게..“


나의 물음에 한가인은 쩔쩔매며 대답하지 못했다.


’..스킬 내용 때문에 당황스러운 건 이해하는데.. 너무 티를 내네.’


거 참.


진짜 이런 여자가 어떻게 그렇게 강해지는 거지.


***


그녀의 스킬, 무한 회귀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무한 회귀 (EX)

사망 시, 도달한 마지막 층에 처음으로 진입했을 때로 회귀합니다. 회귀에 대한 것을 알릴 수 없습니다.」


지금 그녀가 당황하고 있는 건 “회귀에 대한 것을 알릴 수 없습니다.“ 이 문장 때문일 터.


실제로 말하려고 해도 목소리가 안 나올 거다.


저 문장은 당시의 내가 ‘회귀를 숨기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넣은 문장이다.


무한히 회귀하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고통받는다..


중2병 감성이 나기는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한가인이 고통받는 내용을 쓰는 것을 좋아했기에 나온 문장이었다.


뭐, 결국 댓글 창에서 떡밥이 기대된다는 말을 들어서 어찌어찌 메인 스토리의 떡밥인 걸로 급히 바꾸긴 했지만.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아무튼 그것 때문에 말이 안 나온다고 해도 너무 당황한다.


“..뭐, 괜찮습니다. 말을 하기 싫을 수도 있죠. 그럼 천천히 어디 숨을 곳이라도 찾으러 가봅시다.”


“아..그..그….”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그녀.


“..죄송합니다.”


결국 사과만을 내뱉었다.


나는 발걸음을 옮기며 상관없다는 투로 말했다.


“아뇨, 뭐 그러실 수도 있죠. 저는 F랭크의 글쓰기라는 스킬이 떴는데 아무래도 무쓸모인 것 같더라고요.”


“아..”


..안타깝다는 한가인의 반응에 웃음이 나온다.


그녀는 평생동안 알 수나 있을까?


자기 자신이 내가 짠 판의 장기 말이나 다름없다는 걸.


우리는 약간은 어색한 대화를 나누며 계속해서 걸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는 어느 한 거대한 나무에 도착했다.


너무나도 거대해 마치 높이 솟은 빌딩 같은 크기.


”….와아. 엄청 크네요.“


“그러게요. 조금 더 가까이 가 볼까요?”


“네..”


조금 더 접근하자 생각보다도 더 두꺼운 나무의 두께를 체감할 수 있었다.


‘…진짜 크긴 하네.’


내가 직접 설정한 크기지만 정말 비현실적이다.


그렇게 잠시 멍하니 나무를 바라보던 우리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띠링!


[정령들의 세계수에 방문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이곳에는 천 명의 인간들이 머무를 수 있으며, 거주 중에는 인간 여러분을 모든 위협으로부터 차단합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역시 똑같아.’


이것마저 소설과 같다.


그 말은 요정들이 준비한 ‘함정’까지 같다는 말.


“의찬…님, 여기 들어가도 되는 거겠죠?”


“음..시스템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안전한 건 사실이겠죠. 아, 그리고 굳이 그렇게 존칭을 붙여서 부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후우.


나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녀.


뭐, 시스템이 거짓말은 안 하긴 하지.


‘거짓말은’ 말이다.


..역시 아무래도 죽기 딱 좋은 장소다.


그렇기에 좋은 거긴 하지만.


”그럼 빨리 들어가요!“


”저는..여기 주변을 둘러보다 들어가겠습니다.“


”네!? 왜 굳이 그러시는 거예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주변의 지리라도 익혀둘까 합니다.”


“그러면 저도 같이..!”


“저 나무의 안이 훨씬 안전할 겁니다. 잘못해서 고블린 무리라도 만나면 이번에는 못 지켜 드립니다. 그냥 안에 들어가 계십쇼.“


”..그건 의찬씨도 똑같잖아요!“


같이 가고 싶다며 온몸으로 말하는 한가인.


단순히 내가 없으면 자기가 불안해서일 수도 있고 나를 돕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가려는 곳은 ‘히든 피스’가 위치한 곳.


그녀에게 알려주었다가는 미래의 그녀에게 히든 피스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어차피 진짜 잠깐일 겁니다.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하아-


나의 완고한 태도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럼 빨리 오셔야 돼요.”


“하하, 네. 얼마 있다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그녀는 결국 나무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입장하겠다고 육성으로 말하자 푸른 빛이 그녀를 감쌌다.


곧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설속에서는 그냥 입장했다고만 적었을 텐데.”


저것 처럼 공간을 이동한다는 묘사는 없었다.


“개연성 문제나 설정 오류 같은 건 저런 식으로 바뀌는 건가.”


하긴 내가 생각해도 저 나무 안으로 그냥 들어가서 산다는 건 이상하긴 하다.


진짜 내 글 이상했구나.


“하아..뭐 그래도 수정되었으니 다행인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제 그걸 찾으러 가볼까?“


히든 피스는 이 나무를 지나쳐가서 조금 더 걸어야 있다.


한 마디로 안전의 유혹을 뿌리친 이들만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


저벅. 저벅.


1회차의 그녀는 고블린에게 죽는다.


2회차의 그녀는 이 나무에서 죽는다.


그리고 3회차가 되고 나무를 지나친 후에야 히든 피스를 발견하게 된다.


”..쯧. 꽤 머네.“


저벅. 저벅.


체감상 한 십 오분 즈음 걸었을까.


나의 시야에 붉은색의 얇은 결계가 들어왔다.


그것의 뜻은 이 튜토리얼 맵의 끝에 도달했다는 것.


또한 히든 피스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


마침내, 나는 조그마한 맑은 샘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신비롭네.“


요정이 살 것만 같은 샘.


이 대수림의 다른 곳과는 달랐다.


다른 곳은 아무렇게나 식물들이 자라있다면, 이곳은 마치 풀과 나무들이 이 샘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달까.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저건가.“


깨끗한 물 아래로 바닥과 꽃 하나가 보였다.


물 속에 존재하는 꽃.


나는 샘 안으로 손을 뻗어 꽃을 뽑아냈다.


뽀옥-!


물 안에서 손을 빼니 푸른 꽃 한 송이가 내 손에 들려있었다.


”..뭐 진짜 사람이 정성스레 가꾼 것 같네.“


내가 잠시 그 꽃을 노려보자 꽃의 정보가 떠올랐다.


띠링!


[요수초 妖水草

요정들이 머무는 장소에서 자라나는 풀이다. 물 안에서 자라 요수초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초로 복용할 시, 모든 능력치가 3 상승하고, 스킬 하나가 생성된다. 스탯이 9 이상에 다다를 시, 통하지 않는다.]


완벽한 초반을 위한 아이템.


나는 그것을 망설임 없이 입에 넣었다.


으적- 으적-


“후우..” 


젠장, 더럽게 맛이 없다.


[요수초를 복용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 상승합니다!]


[스킬: 수류검 (C)를 획득합니다!]


맛은 없었지만, 다행히도 결과는 좋았다.


전체적인 스탯의 증가와 새로운 스킬.


나는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띠링!


「이름: 천의찬

 종족: 인간

 성별: 남성 


직업: 무직

스킬: 동반 회귀 (SSS+), 수류검 (C)


 스탯: 근력:9 민첩:8 체력:7 지력:9 마나:3」


「수류검 水流劍 (C)

검에 물의 마나를 두를 수 있습니다.」


씨익-


“아주 좋아.”



4화 다가오는 죽음 (공백 포함 5054자, 공백 미포함 3736자)


마나.


여타 다른 소설과 그렇듯이 세상을 이루는 힘이다.


세상의 근원 그 자체.


자연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며 마나를 몸에 쌓은 동물들은 영수로 만들어주기도 하는 힘.


누군가는 이 마나를 내공이나 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류검..좋아. 이 정도면 고블린들을 썰고 다닐 수 있겠네.”


우리보다 앞서 소환된 탑의 인간들은 탑을 오르며 마나를 다루는 법을 체득했다.


바로 저 마나 스탯을 올려 몸 안에 기운을 쌓고, 그것을 운용하는 것.


그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면 몸 안의 기운을 밖으로 꺼내 몸에 두르거나, 사물에 두르는 방식으로 마나를 사용한다.


왜냐고 묻는다면, 마나라는 것은 가공할 만한 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검에 덧씌운다면 천하의 명검이 되고, 방패에 입힌다면 철벽이 될 정도로.


그리고 이 수류검이라는 스킬은 연습 없이 바로 그 마나를 검에 두를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다.


“..후우. 다행히 이 스킬은 바뀌지 않아서 다행이야.“


이 스킬이 개연성 패치라는 명목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정말 노심초사 했었다.


그만큼이나 초반에는 사기인 스킬이니까.


“..아니, 근데 어차피 쓰지를 못하네?”


잠깐, 한가인은 내가 공격 스킬이 없는 줄 알잖아.


이건 나중에 전직하다 익혔다고 해도 이상할 정도로 강한 스킬이고.


‘..함부로 사용했다가 한가인이 이것의 출처를 캐물으면 곤란해진다.’


이곳은 튜토리얼.


튜토리얼에서 전직을 하는 이들은 평균적으로 열 다섯이 되지 않고.


새로운 스킬을 배워가는 이들은 열 명이 약간 넘는다.


그런 곳에서 이런 밸런스 파괴 스킬을 얻는다는 것은 명백하게 이상한 상황이고.


“어쩔수 없나. 스킬은 숨겨야겠네.”


..크흑.


무기가 있는데도 쓰지를 못하다니.


통탄할 일이다.


“하아..이제 돌아가자.”


나는 다시 그 나무로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저벅. 저벅.


“…뭘 까먹은 것 같은데…”


뭐지?


‘…죄책감..’


아, 맞다.


조금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려면. 


상처가 있는 게 낫겠지.


푸욱-!


***


“…왜 못 나가는 거지!?”


천의찬을 만나 이 나무에 들어온 지 이십 분.


한가인은 나무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들어갔다가 바로 나와서 뒤를 따라가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왜 나가는 문이 없는 거야!


’가다가 고블린이라도 만나신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고블린들을 마주한다면 그래도 둘이 더 나을 텐데 왜 그러신걸까..


나를 보호하기 위함임은 알지만,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나를 구해주신 분인데 그렇게 죽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하아…“


제기랄..


어쩔 수 없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파앗-


나의 말이 끝나고 잠시 후, 공간이 일그러졌다.


그 균열은 사람 하나를 뱉어냈다.


“..의찬 씨..?“


드디어 의찬 씨가 오신걸까….?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이곳에 온 사람은 새로운 이였다.


”후우.. 어? 먼저 온 분이 계셨네요?“


”…아..네.“


..그래, 여기는 다른 사람도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니까.


의찬씨는…언제 오시려나?


“그…고블린들이랑 싸워 보셨어요? 한번 붙어보니까 생각만큼 강하지는 않더라고요.”


새로 온 남자가 한가인에게 말을 걸었다.


스스로를 치켜세우는 말과 묘한 허세.


그리고 자신의 가슴 쪽으로 향해있는 시선.


무슨 의도인지 뻔히 보였다.


‘하아..의찬 씨는 안 이랬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균열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들여보냈고, 그 중 천의찬은 없었다.


***

 

“..허억. 허억.”


젠장, 피 때문에 생각보다 힘들다.


”드디어..다 왔다.”


마침내 보이는 저 거대한 나무.


의찬이 나무에 손을 댔다.


띠링!


[정령들의 세계수에…..]


[……]


[입장하시겠습니까?] 


익숙한 시스템의 소리.


“그..래.”


그것에 대답하자 빛이 그를 감쌌다.


츠츠츠츳-


이내 공간이 일그러지며 그를 이동시켰고, 눈을 뜨니 어느새 새로운 공간이었다.


“..여기가 나무 안인가.”


밖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현대적인 모습.


모든 것이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부상을 치유합니다.]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오르자 곧 의찬 스스로 칼로 찌른 곳이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이건 똑같네.’


내심 이것도 개연성 수정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졌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다.


“의찬씨!”


저 멀리서 사람들에 둘러싸인 한가인이 의찬을  불렀다.


동시에 그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쏟아졌다.


‘질투라도 하나.‘


한가인은 그 인파를 뚫고 그대로 의찬에게 달려왔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더 자세히 보이는 그의 창백한 안색과 부글거리며 재생되는 다리를 보고는 흠칫 놀라며 말했다.


“이..이거 괜찮으신 거예요? 어쩌다가..”


“하하.. 그 사람들에게 지급된 단검을 빼앗아서 들고있는 고블린이 있더라고요. 하필 두 놈을 동시에 만나서 조금 다쳤습니다.“


”아니..이건 조금이 아니잖아요!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예. 회복도 시작했고 정말 멀쩡합니다.“


의찬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한가인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대답했다.


그러나 그와 비례해 그녀의 죄책감은 커져갔다.


‘…내가 같이 갔어야 했는데..’


조금이라도 더 강하게 말해볼 걸..


‘만약 죽게 된다면 두 번째 삶에서는 잘해드리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의찬이 의도한 대로였다.


‘…표정을 보니까 성공한 것 같네.‘


그냥 나의 말을 따른 것뿐인데 거기서 죄책감을 느끼다니.


멍청하기가 그지없다.


내가 속으로 조소하자, 어떤 남자가 한가인에게 말을 걸었다.


“가인 씨, 저분은 누구십니까?


…둥근 안경과 약간은 뚱뚱한 몸.


모르는 놈이다.


그 말은 엑스트라 1이라는 거겠지.


“….저를 구해주신 분이에요.“


한가인의 날 선 태도를 보니 저놈이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했는지는 알려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하. 반갑습니다. 천의찬이라고 합니다.


“..선송윤이라고 합니다.”


내가 자신을 소개하자, 놈도 똑같이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마치 연적을 보는 듯한 눈빛.


‘..하하핫.‘


 웃겨 죽을 것만 같다.


저놈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회귀를 할까?


고귀한 사명감을 갖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하다못해 용기라도 있을까?


아니다.


저 눈에 비치는 건 명백한 음욕.


저놈은 그저 한가인의 외모만 보고 그녀를 탐내는 것이다.


‘저놈 따위가..’


나는 손에 힘을 주며 놈의 손을 잡았다.


무려 근력 8의 힘.


근력 능력치의 정도는 이렇다.


지력 능력치의 경우에는 약간 다르긴 하지만, 민첩이나 체력은 비슷하다.


5는 평균.


6은 헬창.


7은 운동선수.


8이상은 초인의 영역.


그 초인의 힘으로 손을 잡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드드득-!


서로 맞잡은 손에서 괴상한 소리가 났다.


“끄으윽…”


안경남이 신음을 흘렸다.


뼈를 부서뜨린 건 아니다.


그냥 강하게 쥐었을 뿐이지.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끄으..네..”


나의 괴력에 순식간에 눈에서 건방짐이 사라졌다.


역겨운 놈.


“….?”


한가인은 우리의 기 싸움을 눈치채지 못한 눈치였다.


***


그 이후로는 별일이 없었다.


그냥 앞서 했던 것처럼 비슷한 식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놈을 교육해 놨을 뿐.


그놈이 꽤나 몸도 좋은 놈이었기에 더 이상의 시비는 없었다.


“저는 현실에서 대학생이었는데 갑자기 눈을 뜨니까 여기더라고요..“


“하하..나는 웹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환되더라고.”


덕분에 나는 한가인과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며더욱 친해졌다.


다섯 살이나 되는 나이 차를 알고 호칭도 바꾸고 말도 편하게 하게 되기도 했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마침 남은 시간을 바라보니 딱 이십 시간이 지나있었다.


[100:00:00]


띡!


[99:59:59]


[20시간이 경과하였습니다.]


[오크들의 군세가 전장에 도착합니다.]


‘그렇지.’


튜토리얼의 메인 몬스터, 오크가 도착했다.


하나하나가 초인의 근력을 가진 놈들.


5%의 생존률이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만들어내는 원인.


그리고 이 회차의 한가인을 죽인 몬스터.


“…오크라니. 이 안에는 몬스터가 못 들어와서 다행이네요.“


”그러게, 오크를 피해서 오는 사람들도 더 많아지겠네.“


한가인이 웃었다.


그렇게 믿는 이 나무가.


붕괴할 때가 기다려진다.


***


“오크들은…”


“아마도….“


퍼엉-!


[오늘치 식량과 식수가 지급됩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던 중, 음식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당황하며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지만, 그들의 앞에도 식량들이 소환되었다.


‘..이건 쓰지도 않은 내용인데.’


하지만… 이 공간에서 물도 마시지 않고 5일을 생존한다는 것이 더 이상하기는 하다.


‘..이러다 핵심 설정까지 바뀌면 안 될 텐데.’


그래도 중요한 줄기들은 신경 써서 설정했으니 괜찮을 거다.


[세계수가 영험한 기운을 내뿜습니다!]


마침 나무가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저 영험한 기운의 효과는 생물들을 끌어들이는 것.


그것을 증명하듯 이곳에 입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다.


파앗-! 파앗-!


시도 때도 없이 열리는 균열이 사람들을 뱉어냈다.


곧 하얀 공간은 인간들로 가득찼고.


[천 명의 인간들이 입장하였습니다.]


[수용할 수 있는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시스템도 무려 천에 달하는 인간들이 입장했다고 알렸다.


“사람이 다 찼으면..더는 들어오지 못하는 거겠죠?”


“아마도 그렇겠지.“


”밖에서 몬스터들을 만나야 한다니.. 다른 사람들이 무사하길 빌어야겠네요.“


한가인이 밖의 사람들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파앗-! 파앗-!


아직도 인간들은 이곳으로 도피하고 있었다.


“..분명 수용할 수 있는 최대치에 도달했다고 했지 않았었어요…?“

”..그랬죠.“

”씨x! 다 꺼져!! 여기는 꽉 찼다고!!“


계속해서 물밀듯이 들어오는 인간들에, 이미 안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끼리 언성이 높아졌다.


우리의 회귀자도 불안해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거 괜찮겠죠, 오빠?“


”..느낌이 좋지가 않다. 조심해.“


나는 대충 경고를 해준 후 곧 떠오를 시스템 창을 기다렸다


띠링!


[수용치 초과!]


[세계수가 붕괴합니다!]


“뭐,뭐라고!?”

“미..미친!!!”

“세계수라며!! 세계수가 왜 무너지는데!!”


쿠과과광-!!


순식간에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하얗던 배경은 검은색으로 물들어갔다.


“꺄아아악!!!”


슈우우욱-


나와 한가인은 어딘가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파앗-


그런 사람들을 입장할 때와 같은 푸른 빛이 감쌌다.


츠츠츠츳-


어느새 우리가 서 있는 땅이 바뀌었다.


고개를 돌리니 처참하게 부러져버린 세계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끄아아악!!”

“사,살려줘요!!!”

“제..제발..!!!!!!”


그러나 우리를 절망시킨 건 학살당하는 사람들과.


“크롸라라락-!!”


우리를 둘러싼 수백의 오크들이었다.



5화 2회차.


이 나무를 주위로 둥글게 모인 오크들이 인간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촤악- 끄아아악-! 퍼억- 챙-!


그들은 고블린과 달랐다.


근육질의 초록빛 피부와 돼지코.


그리고 들고 있는 도끼까지.


장비부터 무력까지 모든 면에서 고블린보다 뛰어났다.


“..아아아..”

”위대하신 주여..부디 나를 굽어살펴…..“

“으..으..오,오지마!!”


저 세계수에서 튕겨 나온 이들은 그들을 보고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이제야 안전이라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고, 쟁취했는데 바로 이런 전장에 서게 되었으니 누가 그러지 않을까.


‘이건 똑같네.’


세계수는 생물을 끌어들이는 기운을 내뿜는다.


그리고 오크는 명백한 생물.


세계수에 이끌리는 건 인간들 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오크들은 인간들을 마구잡이로 먹고, 죽이기 시작했다.


이런 학살은 이미 예상했으나…


“…하핫.“


나도 이런 식으로 오크들을 마주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가인은 그런 나의 반응에 더욱 당황하기 시작했다.


‘…의외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당황이라니.


두려움과 무서움이 아니라 고작 당황이라니.


아무리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대단한 건 사실이다.


역시 괜히 미래의 절대신이 아닌 건가.


‘곤란한데.’


한가인을 이용하려면 그녀가 나를 믿고 의지해야 한다.


아니, 믿는 게 아니라 광적인 신봉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의존을 해야 한다.


설령 내가 무고한 양민을 죽이다 걸린다 해도 넘어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도 이해해 줄 정도로.


‘..일단은 저놈들이랑 싸우는 데 집중하자.‘


전투를 앞두고 상념을 품어서는 안 된다.


크롸아악-!!


가장 거대한 체구를 가진 오크의 하울링이 울려 퍼졌다.


찌릿-! 찌릿-!


“..미친.”


이건 분명 마나가 입혀진 포효다.


이미 몸 안에 마나가 있기에 알 수가 있었다.


‘저놈이 오크 족장이겠네. 그래도 마나를 다룰 줄이야..’


어느 정도 소설의 변경은 각오했지만 당황스럽다.


끄아아악-!! 으아악-!


우리가 얼을 타던 중에도 사람들은 착실히 죽어나갔다.


나무에 들어오기 위해 접근하던 이들은 대부분 사망했고, 이제 오크들은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서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쿵-! 쿵-!


육중한 오크들이 동시에 진군하니 땅이 울렸다.


“…가인아, 최대한 도망가봐라.”


”…괜찮아요. 이렇게 둘러싸였는데 어떻게 도망가요? 그냥 싸우다가 죽고 말죠.“


“하, 고블린 하나에 깔려서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던 얘가 싸움은 무슨. 그냥 가라. 네가 도망갈 틈은 만들어볼 테니까.”


희생하고 한가인을 살리겠다는 뉘앙스.


그런 말에 오히려 한가인이 결연한 표정을 짓고 단검을 쥐었다.


”..크롸아아악-!!“


쿠구구구궁-!


아까 하울링을 내지른 오크 족장을 필두로 오크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일어나며 우리의 시야를 가렸다.


하지만 그들은 먼지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인간들과 싸움을 시작했다.


채앵-! 콰앙-! 퍽-!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투의 소리.


우리에게도 오크 한 마리가 다가왔다.


”..하핫!“


나는 우리를 목표로 삼는 오크를 발견하자마자 오크에 돌진했다.


기본적으로 오크는 도끼를 들고 싸운다.


그리고 그 도끼는 무겁다.


상상 이상으로.


그렇기에 휘두르고 다시 휘두르는 그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간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후웅-!


오크가 도끼를 휘둘렀다.


나는 옆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그 도끼를 완전히 피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내가 마지막으로 싸움을 한 것이 팔 년이 넘었다.


십 년이라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그것에 가까운 시간.


아무리 싸움을 하는 법이 몸에 새겨져있다 하더라도 잊어버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런 내가 모든 공격을 피하면서 싸우려고 하다가는 발이 꼬이거나 하는 실수가 나올 건 당연한 일.


뭐, 사실 진짜로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왕 희생하는 모양새라면.‘


조금 처절한 게 낫잖아?


촤악-!


오크의 도끼가 살가죽을 갈랐다.


피가 흩날린다.


“오빠!!”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살가죽.


치명상이 아니다.


“더럽게 아프네..망할 돼지 새끼가!!”


푸욱-!


내가 내지른 단검이 잠시간의 간격을 노려 오크의 다리에 박혔다.


“크레에엑-!”


오크는 다리의 고통에 발광하며 도끼를 다시 휘둘렀다.


후우웅-!


이번에도 도끼가 나의 살을 스쳤다.


“끄으윽….!!”


다만 이번에 얻은 건, 조금 더 깊은 상처였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런 나를 보고 한가인이 오크에게 뛰어갔다.


오크는 급히 도끼를 회수해 그녀에게 휘둘렀다.


카앙-!


그녀가 들고 있던 단검과 오크의 도끼가 충돌했다.


단검은 저 어딘가로 날아갔으나, 다행히 그녀가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나는 그 틈을 타, 오크의 다리에 박아놓은 단검을 뽑아냈다.


그리고 곧바로 남은 다리 하나에다 박아넣어 놈의 기동력을 봉쇄했다. 


“크와아악!!”


쿵-!


오크가 괴성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나는 놈의 목에다 단검을 찔러넣었고.


[오크를 살해하셨습니다.]


[칭호, 튜토리얼의….]


시스템이 녀석의 죽음을 알렸다.


“오빠, 이건..!”


한가인은 오크를 죽인 것을 자축하려고 했지만.


“크레에엑-!”


금세 또 다른 오크가 도착했고, 우리는 전투를 시작해야만 했다.


채앵-! 푸욱-! 퍼억-!


다음으로 온 오크는 비교적 수월하게 처리했다.


앞서 오크가 떨어트린 도끼를 던짐으로써 시선을 끌고, 단검을 박아넣는 식으로 두 번째 오크를 죽였다.


”꺄아아악!!“


전투를 지속하며 세 번째 오크를 상대하던 순간, 한가인이 큰 부상을 입었다. 


바로 도끼에 등을 찍혀버린 것.


‘치명상!!’


저런 상처를 입고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한가인은 곧 죽을 것이다.


그리고 회귀하겠지.


”가인아!!“


나는 당황한 것처럼 울부짖었다.


한가인은 등을 찍힌 그대로 엎어져 엎드린 모양새가 되었다.


’조금만 있으면 돌아가겠네.‘


..잠깐.


저 자세로는 내가 안 보일 텐데.


‘..그럼 화풀이라도 할까?‘


그래, 기왕 얻은 스킬. 써보기라도 하자.


나는 단검을 꽉 쥐고 나의 유일한 공격 스킬을 시전했다.


[스킬 발동]


[수류검水流劍]


파앗-!


푸른 마나가 검신을 감싼다.


푸르면서도 투명해 마치 물과도 같아 보이는 마나.


나는 그대로 오크를 단검으로 찔렀고.


서걱-!


나의 검에 적중 당한 복부가 너무나도 쉽게 갈라졌다.


마치 두부를 자르는 것 마냥.


-꾸웨에에엑!!


“…허.”


미친 위력이다.


소설로 썼기에 머리로는 예상했으나… 직접 보는 건 또 느낌이 달랐다.


이번에는 그냥 검을 휘둘러 보았다.


파아앙-!


터져나오는 검풍.


“..하핫.”


집필 중일 때는 힘에만 집착하는 이들을 만들면서도 멍청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힘도 좋지만, 더 좋은 것들이 많은데 왜 그러는 걸까.


..내가 틀렸다.


그때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기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초인의 힘을 얻게 된 지금은 알 수 있다.


왜 그들이 그렇게 힘을 갈망했는지.


‘..하하하핫!!!’


이렇게 짜릿하니 그런 것이다.


절대적인 힘이란, 마약과 같은 것이니까.


‘미쳤잖아!?’


나는 단검을 근처의 여자에게 내질렀다.


푸욱-!


여자의 복부가 깔끔하게 갈라진다.


“끄아아악!!”


서걱-!


그대로 목을 쳤다.


이제는 땅을 뒹구는 여자의 목.


“흐으..”


그런 광경이 나의 신경을 자극했다.


왜 나는 이런 모습을 보고는 희열을 느끼는 걸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 환상적인 세상에 오게 된 것에 감사할 뿐.


나는 혹여 한가인이 나의 웃음소리를 들을까 숨죽여 키득대며 엄청난 희열을 누렸다.


그리고 얼마 후, 잠시동안 그러던 나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


파앗-! 파앗-!


뿜어져 나오는 빛무리들.


두 번째 보는 광경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보고 2회차가 시작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시간을 역행했음에도, 나의 희열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흐으.“


진정하자.


지금의 나는 그런 초월적인 힘이 없다.


그저 일반인.


그러니까 흥분에서 벗어나자.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아.”


아쉽네.


그런 힘을 잃어버리다니.


“쯧.”


어쩔 수 없다.


그건 다시 요수초를 먹으면 될 일이다.


지금 더 중요한 건 이번 회차의 계획.


이번에는 어떻게 살아갈까.


“이번에는..최대한 몬스터하고 싸워보는 게 나으려나.“


저번 회차에는 능력치가 높았음에도, 스킬을 쓰지 못하면 오크에 고전했었다.


그 이유라 한다면 역시나 전투 경험의 부재.


그렇기에 이번에 최대한 경험을 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일정 수 이상의 몬스터를 잡으면 칭호를 얻고 능력치가 증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직업도 이곳에서 얻어 놓는다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면 또 한가인이 문제이긴 한데.“


이 방법의 단점은 한가인과 떨어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아무리 사냥을 가자고 해봤자 그녀가 거부하면 나는 어쩔 수가 없다.


만약 내가 그녀를 지켜보지 않는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안 되니까.


그녀를 조종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일단 말은 해 봐야지. 거부당하면 그냥 굽히고 같이 가면 그만이고.”


일단은 그녀의 의사에 따라서 능동적으로 대처하자.


[하하하핫!!]


또 익숙한 요정의 웃음소리.


그 이후로는 전과 같았다.


터져나가는 사람들의 머리.


비명을 지르는 인간들.


몰려오는 고블린들.


그리고 선동 당하는 사람들..


다만 이번에는 새로운 의견이 들려왔다.


“도망쳐야 해요!! 아무리 고블린이라고 해도 몬스터에요!!“


한가인의 목소리.


”최대한 사람들을 살려보려고 하는 건가.“


소용은 없을 거다.


애초에 선동가의 능력은 매우 강력하고, 그가 악의를 갖고 외치는 것도 아니니까.


오죽하면 그가 이 튜토리얼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사람이겠나.


그의 스킬은 한가인과 ’그녀'만 제외하면 적어도 튜토리얼에서는 최강이라도 해도 무방할 정도의 능력이다.


아니, 어쩌면 최강이 맞을지도.


한가인과 그녀는 전투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스킬이 아니니까.


”..이번에도 앞으로 가기는 해야겠네.“


나는 1회차 때와 같이 앞으로 달려갔다.


한가인에게 했던 것처럼 사람들을 구해줬고, 다시 칭호를 얻었다.


약간의 상처를 입긴 했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고블린이 침착하게 기습을 한다면 비교적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놈들이라 다행이었다.


 어쨋든 나의 구조활동 덕분에 대략 열 명 조금 넘는 이들이 목숨을 건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함께 고마움을 표현하는 그들에게 나는 뒤쪽으로 가서 나무에 입장하라는 말을 전한 뒤, 한가인을 찾아 나섰다.


세계수에 가라고 한 건 별 뜻은 없었다.


그저 나무에 오크가 죽일 놈들이 많아야 내게 오는 시간이 늦어진다고 생각했을 뿐이니까.


“..찾았다.”


길이 엇갈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한가인의 신형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뒤로 도망치고 있었다.


‘사람들을 구하려고 하다가 실패한 건가.’


일행 없이 혼자서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대충 각이 보였다.


“..따라가야겠네.“


나는 한가인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고블린에게서 도망치는 듯한 행동을 하며 그녀를 따라갔다.


타다다닥-!


”…!“


한가인이 뒤의 나를 바라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곧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내게 말을 걸었지만.


“저ㄱ-“


나는 그냥 무시하고 뛰어갔다.


‘외모만 보고 따라가는 놈으로 취급이 바뀌는 건 사양이다.’


1회차 때는 구원이라는 빌미로 그녀와 만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떤 이유가 없다.


결국 지금은 ‘한가인을 따라가는 행동’을 해선 안 됐다.


지금 한가인을 따라갔다는 것을 그 구원마저도 음흉한 속내를 가지고 행한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까.


“..이참에 요수초까지 먹고 가자.”


나는 요수초를 발견했던 곳으로 달려가 요수초를 복용했다.


으적. 으적.


[요수초를 복용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 상승합니다!]


[스킬: 수류검 (C)를 획득합니다!]


“좋군.”


반드시 해야 하는 건 끝났다.


이제 남은 과제는 두 가지.


첫째는 어떻게든 한가인과 합류하는 것이고.


둘째는 몬스터들을 사냥해, 경험을 쌓는 것이다.


‘…한가인을 만나는 게 우선이야.’


우선 순위는 명백하다.


그렇다면 그녀와 다시 마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수 주위를 서성거리다 보면 알아서 다가오겠지.”


그녀는 은인이 함정에 빠지려고 하는데도 모른 체하는 인간은 아니니까.


그럴 것이다.


나는 또다시 세계수 근처로 돌아갔다.


그리고 일 회차에서 말한 것처럼, 주변의 지형을 살피려는 듯 그 주위를 맴돌았다.


저벅. 저벅.


“..왔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고 있던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일 회차 때의 몰골보다는 훨씬 좋은 모습.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난 회차와는 달랐다.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뭔가..느낌이 이상하네.’


1회차에서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 많은 경험도 쌓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달라졌다.


회귀라는 것의 여파를 직접 보게 되니..


느낌이 이상했다.


‘회귀했다는 게 실감이 나네.’


..고작 한 번인데도 이렇게 달라졌다.


역시 한 회차라도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 나무에 들어가시려는 거예요?”


“..고민 중입니다. 몬스터를 죽이면 업적을 얻는다는 걸 깨달아서 괜히 고민되네요.”


“업적..이요?”


업적을 모르는 건가?


오크를 잡았을 때 떠올랐을 텐데.


..뭐, 그때는 상황이 상황이었으니 못 봤을 수도 있다.


“예. 아까 고블린을 몇 마리 죽이니까 업적을 얻으면서 능력치가 오르더군요. 그래서 조금 더 능력치를 올릴까..아니면 그냥 안전하게 지낼까 고민 중입니다.”


나의 말에 한가인은 잠시동안 침묵했고, 이내 내게 제안했다.


“저랑 함께 사냥하시지 않을래요? 혼자보다는 둘이 나을 텐데.”


..하.


방금 전에 오크에게 죽고도 저런 말이 나온다니.


역시 회귀자답기는 하다.


”저야 좋죠.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한가인에게 손을 내밀었고.


”저야 말로요.“


한가인은 나의 손을 잡았다.


***


서걱-!!


“끄아아악!!”


도끼의 날이 한가인의 등가죽을 찢어발겼다.


피가 철철 흘러나오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신경 써주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은인만이 뒤에서 싸우고 있을 뿐.


‘..이제 죽게 되는 건가..?’


알 수 있었다.


스스로의 운명쯤은.


이런 상태가 되고서도 무사히 살아나갈 리가 없다.


‘..젠장.’


짧은 욕설.


그것이 한가인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띠링!


[무한 회귀 (EX)가 발동됩니다!]


***


후욱-!


“허억!!”


순식간에 주위의 광경이 바뀌었다.


푸르른 숲. 


피가 낭자하던 전장이 아니다. 


“..무슨..!?”


[하하하핫!!]


저 위의 요정이 웃는다.


빛무리가 터져 나온다.


“..진짜였어?”


그녀는 자각했다.


자신이 회귀했음을.


“..대단하네.”


그래, 터무니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그러나 지금은 감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다.


‘곧 몬스터들이 온다,’


회귀라는 능력을 받았으면, 적어도 그 값은 해야 한다.


자신에게 막대한 힘이 주어진 이유는 어쩌면 사람들을 구하라는 신의 뜻이 아닐까.


그것이 진실이라면.


아니, 설령 사실이 아니라 해도 마땅히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쿵-! 쿵-!


점점 보이기 시작하는 괴물들의 신형.


“..그래봐야 고블린들 입니다!! 한번 해봅시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선동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돼요!! 도망쳐야 해요!! 아무리 고블린이라고 해도 몬스터에요!!“


지난 회차를 보내며 몬스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지성이 있는 사람과는 다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사냥 본능‘이 강하다는 것.


그들은 전투에 망설임이 없고,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전자는 고블린으로 깨달았고 후자는 오크와 싸우며 알아차렸지.‘


결국 온실 속에서 살아가던 인간들은 기습 같은 게 아니라면 고블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단 말이다.


고블린의 신체능력이 인간보다 뒤떨어짐에도!


“모두 도망쳐요!!“


또다시 외쳤다.


목이 찢어지도록 소리 질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고블린에게로 향한다.


그 옆에서 비명이 울려 퍼지는데도.


‘뭔가 이상해.’


..이건 비정상적이다.


이딴 게 정상적인 상황일 리가 없다.


“..세뇌의 스킬이라도 있는 거냐고!!”


…젠장.


어쩔 수 없다.


도망가야 한다.


타닥-! 타다다닥-!


가인은 결국 혼자서 몸을 피했다.


일 회차에서 그랬듯 일단 뒤쪽으로 달렸다.


얼마나 뛰었을까.


그녀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허억..헉. 이쯤이면 고블린-“


그리고 보았다.


”-이…?“


과거의 자신을 구원한 남자를.


‘…오빠..?’


오빠가 왜 나를 따라오고 있지?


..설마 나를 기억하는 것일까?


타악.


한가인이 걸음을 멈췄다.


약간의 설렘을 품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쌔앵-!


그러나 의찬은 가인의 기대를 처참하게 부숴버렸다.


마치 가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태도.


”..오빠..?“


그런 의찬의 행동에.


욱신-!


가인의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그래. 회귀는 이런 건가.“


극한의 상황에서 쌓았던 짧지만 굵은 유대.


약간의 우정과 전우애.


그런 것들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회귀라는 두 글자의 아래로.


”..썩. 기분이 좋지는 않네.“


..아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번에는 도움만 받는 존재가 아닌, 대등한 관계로서의 인연을 쌓을 수도 있다.


저 세계수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그를 도울 수도 있다.


그러니까.


”좋게 생각하자.“


..그럼 이번 회차의 오빠를 만나러 가볼까.


가인은 앞선 회차의 길을 되새기며 세계수로 향했다.


혹시나 의찬이 그곳으로 들어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의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


그는 나무의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의찬에게 걸어가 말을 걸었다.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첫 만남.


이번의 그녀는 마냥 의찬에게 매달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를 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업적이라고?’


확실히 오크와 싸울 때 그런 메시지가 떠오른 것 같기는 한데..


’..뭐 거짓말은 아닐 테니까 사실이겠지.‘


오빠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사냥을 갈까 고민 중이라고 했었나?


어차피 저 나무는 함정이고.


사람도 많은 게 더 나을 테니까..


이렇게 말해도 되겠지?


“저랑 함께 사냥하시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