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90년대 후반년생이고, 군대 전역하고 어쩌다보니 꿈을 찾으면서 3수째 수능을 보고있고, 내년에 의대를 목표로 4수를 하려고 하는 MTF 트랜스젠더에요.

 

 저는 여자로 알고 태어났는데 남자로 살아가야되는 삶, 나이먹고도 잘하는 것도 모르겠고 모아둔 돈도 없고 내 사회적 가치가 뭘까에 대해 고민하면서 우울장애가 심해졌어서 올해 10월부터 과수면, 무기력함, 자살생각 등 우울장애 부작용이 엄청 심해져서 수능공부도 잡지 못하고 매일 자살만 생각하면서 살았었어요. 눈물도 없는 편이어서 울지도 못하고 언제 내 생각들을 유서에 적고 죽을까만 생각하던 중에 25수능 일주일 전인가 커밍아웃 할 생각은 없었지만 제 우울장애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부모님께 드릴 편지에 제 인생사와 우울장애의 원인들을 녹여냈습니다.


 저는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여자인 줄 알고 살았어요. 분명 3, 4살 때까지 여자로 알고 살았다가 5살 이후에 제가 남자인 것을 자각했던 것 같아요. 이전에 여자로 알고 산 기억때문일까 여자들이 부러웠고 나는 저렇게 살 수 없을 거고 아이도 낳지 못할거야 라며 어릴 때부터 절망감을 느낀 기억이 있어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시절까지는 목소리도 여자목소리였고 성차이도 별로 없어서 성별불쾌감은 잘 못느꼈지만 그래도 여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어요. 중학생 때 이차성징이 오고 트랜스젠더라는 용어와 존재를 알고 부터는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잘 못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저 평범하게 여성으로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안되는 현실에 많이 절망하고 학창시절을 우울하게 보내고 그게 성격에 드러나 내성적이고 염세적인 성격이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친한 여자애들에게 커밍아웃을 처음으로 했어요. 다행히 친구들은 잘 받아줬지만 제가 그때 인간관계 기술이 형편없었을 때라 객관적으로 봐도 제 실수로 멀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게 굉장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뒤로 친구들에게는 커밍아웃을 안하다가 대학교 1학년 때 지금도 제일 친한 친구와 전 연인한테 커밍아웃을 했어요. 전연인은 얼마 못사귀다가 헤어지긴 했지만 제가 어떤 사람을 좋아할까 생각하면서 저는 사람만 좋으면 남자든, 여자든 별 상관 없구나라고 생각해 저의 성적지향을 범성애자라고 정의내렸어요.


 몸은 남자이기에 군대를 갔다오고나서 제가 MTF 트랜스젠더로 살아야되겠다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던 것 같아요. 연애도 해봤고 군대도 갔다왔지만 전혀 변화가 없고 오히려 그 생각이 강해지더라고요. 전역하고 머리 기르고 싶어서 주변 사람들에게는 머리 길러서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부할거야라고 말하고 머리카락 기르고 벌써 3년째 기르고 있네요. 중간에 계속 자르고 옆머리하고 길이맞추면서 지금은 가슴 아래까지 내려오는 길이에요. 정말로 기부 생각 있어서 염색도 안하고 기르고 있지만 앞으로도 짧게는 안자를 것 같아요. 머리카락을 길러서일까, 키도 170 정도라 그럴까, 입 안열면 여자인 줄 아는 사람도 많고 말을 하더라도 남자에요 여자에요 물어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남자화장실갈 때 사람들이 쟤 뭐지 라는 시선으로 봐서 곤란한 정도…이지만 아직 여자화장실 가본 적은 없어요. 저번에 친척 여동생이 차피 칸막이 있어서 모른다며 끌려갈뻔했던…


 어쩌다보니 수능을 계속 보고 있지만 제 우울장애의 원인이었던 트랜스젠더로 살아야하는 삶, 내 삶은 가치있는 삶일까를 고민하고 정신과도 주기적으로 안가다보니까 우울장애가 일상에 지장을 줄만큼 심해졌어요. 자살생각만 가득했던 10월, 죽는건 두렵지 않았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무섭더라고요. 오히려 자살시도를 했는데 죽지 않으면 어떻하지라는 생각이 더 무섭더라고요.


 25수능 1주일 전에 부모님께 드릴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원래 커밍아웃까지는 생각이 없었지만 제 우울장애의 원인이나 20년 넘게 앓고 있던 것을 설명하기 위해 글에 녹여내야겠더라고요. 일주일동안 공부하면서 틈틈이 글 고치고 내용 추가하고 하면서 수능날에 아침 7시 반에 가족들 다 있는 톡방에 메세지를 보내고 저는 폰을 끄고 그대로 수능을 치렀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원래 그날은 집에 안돌아갈 생각이었어요. 부모님께서도 충격받으셨을거고 서로 상의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수능 끝나고 학교 정문을 나가는데 아버지께서 전화를 거셨어요. ‘많이 힘들었지? 정신과 가서 치료도 받아야할거고. 방황하고 있지? 집에 돌아오렴.’ 이라고 말씀하셔서 집에 돌아가서 가족끼리 술을 마시며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해가면서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 했던 것 같네요. 아버지께서는 ’호르몬 치료를 하든 성적합 수술을 하든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할거잖아. 그러니까 나는 안말릴거다.‘ 라는 스텐스셨고 오히려 어머니께서 고쳐보려는 노력 안해봤냐는 얘기도 듣고 하니까 아직 못받아들이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와 같이 상담센터 가서 제가 메인으로 상담받고 상담사님께서 어머니 불러서 받아들이는 편이 좋을거라 말씀하시고 그날 어머니가 하루종일 생각에 잠기셨다가 어쩌다보니 밤에 산책나가서 만났는데 저보고 행복하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행복해. 그동안 행복감을 잘 못느꼈는데 밀린 행복들이 지금 쏟아지는 느낌이야.‘ 라고 말하고 어머니께서는 ’너가 행복하면 됐지.‘ 하면서 그때부터 받아들여주시더라고요. 정말로 부모님을 잘 만난 것 같아요.


 저는 부모님께 커밍아웃 한 이후로 마음 맞는 친구들, 지인들만 팔로우 하는 계정을 새로 만들고 약속 잡혀서 현실에서 만나든, 디엠을 하든, 카톡을 하든 해서 꽤 많은 사람에게 커밍아웃 하고 잘 받아들여줬어요. 그 중에 아는 언니가 하는 말이 마음에 너무 와닿더라고요. ’이렇게 다양성 존중 안해주는 나라에서 살기 정말 힘들었겠다.‘ 라고 말씀해주고 친구가 ‘너는 너인데 뭐 달라지는 거 있나?’ 라고 말해주는 것이 정말 위로가 되었습니다. 지금 일하는 가게 점장님이나 동료분들도 잘 받아주시고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부모님께 말하기 이전에도 친한친구 몇몇에게 말했지만 커밍아웃 이후 제가 MTF인 것을 알고 존중해주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20명이 넘어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느리게나마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깨닫고 있어요. 최근들어서 그런지 성격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많이 바뀌고 나는 정말 인복이 많구나. 내 사람들에게 감사해. 라는 마음을 갖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의대를 목표로 다시 수능을 볼 예정이에요. 원래는 자연과학쪽을 꿈꿨지만 제가 정신건강이 매우 안좋았고, 정체성에 대해 오랜 고민을 했고, 사회적 가치를 모르겠었기에 저같은 사람을 도와주는 의사를 꿈꾸게 되었어요. 주변에서 많은 응원을 해주셨고 살림의원의 의사분들도 멋진 꿈이라며 응원해주셨습니다. 호르몬 치료도 내년쯤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일정 빡빡하게 잡고 일정 구겨 넣었고, 작년 7월부터 정신과 진단서도 언제든 받을 수 있는 상태였어서 올해 11월 말부터 시작해서 HRT 시작한지 한 달 정도 되가네요. 정말 요건만 갖춰지니까 추진력이 장난아니네요 ㅋㅋㅋㅋ…


 저는 항상 우울했고, 죽음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고, MTF 트랜스젠더로 수술하고 성별정정까지 하면서 살더라도 껍데기만 여자로 사는 것이 아닐까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그런 불완전한 삶이더라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기에 지금은 제 삶을 받아들이고 저에게 솔직하게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못느꼈던 행복감이라는 감정, 밀렸던 행복들이 최근들어 쏟아지는 것 같아서 요즘 너무 행복합니다.


 아마 이 비슷한 글을 다른 곳에서 보시고 오신 분도 있겠지만 본인 맞고요.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