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iler ALERT!

주제가 주제라 푸념으로 쓸게

같은 처지의 친구 중에, 재작년에 고인이 된 친구가 있어

인터넷에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보니 연락이 몇 번 끊긴 적도 있었지만, 당시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지인 중에 나와 더불어 거의 유이한 동족이었고 정체화 시기도 나와 비슷했어서 정말 남같지 않았던 친구였어

당연히 커뮤니티 내에선 친목을 하면 안되니까 모 SNS에서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정체화 시기가 비슷했다 보니 외적인 트랜지션 과정을 비슷한 시기에 겪었고,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한 그 친구한테 내 몫까지 열심히 길러달라고 나름의 덕담도 했었음. 그러다 그 커뮤니티 내에서 나를 알던 + 나와 약간 적대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내 SNS 계정을 알게 되면서 급하게 계정을 없앴는데, 그러면서 그 친구와 연락이 끊겼지만 그 친구는 한국보다는 비교적 프렌들리한 나라에 살고 있으니 막연히 나보다 잘 살 거라 생각했었음.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게 될 수도 있을 텐데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다가도, 나보다 영어도 잘 하고 해외 유학까지 갈 수 있을 정도면 돈도 많아 뵈는데 알아서 잘 살겠지~ 하고 당장 급한 내 앞가림이나 신경쓰자고 생각했던 거 같아. 

약 2년 정도가 흐르고, 나도 성인이 되고, 커뮤니티 안에서도 더이상 내 존재가 잊혀졌을 때 다시 SNS 계정을 파서 그 친구와 다시 연락이 닿았어. 근데 그 사이에 분위기가 너무 달라져 있었음. 나도 그 당시 야속하게도 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지라 그 친구의 변화를 알면서도 또 내 앞가림에만 신경쓰고 있었어. 무슨 일 있는 거냐고 한번쯤은 물어봤어야 했는데 또 내 SNS 계정을 누군가 까발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나도 내 코가 석 자였던 상황이 겹쳐져 어차피 내가 연락해도 싫어할 거라고 단정짓고 그 친구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했음. 그렇게 두세달 정도를 같이 지내다 결국 트리거가 된 모종의 사건이 터졌고, 부고가 들려왔어. 

그 사건 이후로 몇 달간은 더더욱 힘들게 지내고 있었고 개쩌는 미청년이 되겠다는 목표로 노력하던 것도 모두 올스톱한 채로,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집에서 배달음식과 술을 거의 매일 먹고 마시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내 꿈에 나와서 정신 차리라고 화를 내며 뺨을 때렸음.. ㅋㅋ 

그 다음부터 다시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술도 최대한 자제하고, 진짜 그 친구 몫까지 살겠다고, 나는 무조건 미청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다짐하며 다시 노력할 수 있었지. 그렇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고. 꽤 멋지게 잘 살아가고 있고. 그 친구에게 신경을 못 써줘서 미안했던 만큼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잃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내 주변에 나와 같은 이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 특히나 내 애인은 내가 자신을 살린 귀인이라고까지 말하고 있고.

근데 이렇게 꽤나 멋지게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그 친구가 더 이상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슬퍼. 그 친구는 나보다 1살 더 많았는데 곧 돌아오는 내 생일이 되면 내가 만 나이로도 한국식 나이로도 그 친구보다 나이가 더 많아진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나 이렇게 멋진 사람이 되어있다고 이 정도면 약속 지킨 거 아니냐고 자랑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게 슬픔. 하물며 거리 때문에 인터넷으로 알고 지냈던 나도 이러한 감정이 드는데, 나보다 더 가까운 사이에 있었을 지인 분들은 어떠한 감정을 겪어내셔야 했을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어

이 곳을 빌려서라도 그 친구에게 꼭 전하고 싶다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진짜 이 정도면 니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는 약속 지킨 거 아니냐고. 앞으로도 그 약속 지킬 수 있게 더 열심히 살 거라고.

보고싶다 친구야. 우리 다음 생엔 시스로 만나서 오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