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타 브라이언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일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학생회장의 부탁으로. 학생회 부회장이 회장의 명을 받아 일하는 게 뭐 그럴 일인가 싶지만, 안건이 안건이었다.

“여기인가.”

학생회실, 이사장실이 있는 본관 건물의 알짜배기 위치를 차지한 한 부실에 걸린 부활동 간판을 보고 부회장 나리타 브라이언은 혀를 찼다. 정갈한 붓글씨, 무려 영한문 혼용체로 ‘Triple Tiara부’라고 쓰인 위에 히라가나로 독법이 달려 있었다.

“뭐 이딴걸 허가해줬어.”

자유로운 교풍과 이사장의 성향상 중앙 트레센 학원은 학생들끼리 구성하는 소집단 활동이나 친목활동을 권장하는 편이다. 가끔은 좀 지나치게 좋아하는 느낌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 해도 트리플 티아라부라니. 일단 이름으로 뭘 목표하고, 무슨 활동을 하는지 불분명한 이런 것을 허가했다는 사실부터가 기가 찼다.

“내 실수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예산이 배당되었어. 자네가 가서 실태조사를 하고 삭감할 항목이 있다면 가감없이 기록해주게.”

심지어 자기가 소파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사이 날치기로 - 몇 번 불렀지만 적극적으로 끌어오지 않았으므로 - 예산을 통과시켜놓고 이제와서 삭감이니 실태조사니, 나리타 브라이언으로서는 의욕이 당기는 일이 전혀 아니었다.

“네 실수라면서 내가 왜 하는데?”

물론 당연한 의문을 가지기도 했지만 회장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까라면 좀 까.”

“그래, 좆까.”

“동탄부득. 없는 걸 까라니 참 곤란하군.”

으르렁대는 브라이언의 대답에도 회장은 여유있게 대답하더니 지 혼자 웃기까지 했다.

“지록위마. 내 특정 부위를 자네가 좆이라 칭한다면 뭐, 까지 못할 것도 없지만.”

비유를 굳이 다큐로 받아 좆같은 주제로 이어가는 것도 재능이라고 나리타 브라이언은 생각했다. 아무튼 회장이 같잖은 소리로 웃는 것도 짜증나고, 어떻게든 자기 유머로 이어가려고 하는 집념을 견디기도 힘들어 수락해버린 게 30분 쯤 전이었다.

평소에는 애완견이자 예스걸인 에어 그루브에게 턱턱 잘도 시키더니 이런 일만 자기를 시킨다고 속으로 욕을 삼키면서도, 그래도 일이니까 프로답게 하잔 취지에서 브라이언은 나뭇가지를 입에서 빼 가슴 포켓에 집어넣었다. 어깨를 쭉 펴고, 부실의 문을 두드렸다.

“어이, 있냐.”

“네! 사랑 넘치는 트리플 티아라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

문이 열리면서 나타난 것은, 별이 빛나는 예쁜 눈동자를 가진 강아지같은 인상의 우마무스메였다. 그 우마무스메는 둥근 눈을 빛내며 나리타 브라이언을 위아래로 보고 확인하자마자 표정이 싹 굳어버렸다. 도끼눈을 뜨고 그녀를 흘겨보는 입술에서 그대로 땅에 처박힐 듯한 낮은 소리가 나왔다.

“우와......”

흡사 길거리에 무단으로 투기한 쓰레기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소파에 누워있으면 에어 그루브가 자신에게 보내곤 하는 시선, 익숙하니 나리타 브라이언으로선 상처될 것도 없다.

“부활동 관련해서 조사할 것도 있고, 부장을 만나봐야겠다. 괜찮겠지?”

“삼관......”

나리타 브라이언 앞에서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기 전, 그 우마무스메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요란한 소리에도 그녀는 믿기지 않는 대응에 잠깐 말을 잊고 서 있었다.

“......하?”

분명 자신을 위아래로 흘기면서 경멸하는 시선을 보내긴 했으니 욕을 한 것 같긴 한데, 삼관이라는 명사가 모욕으로 사용될 수 있단 점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그녀의 두뇌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게 자신을 향한 모욕이었다는 걸 보면 느낄 수 있지만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리고 심란해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들려온 느긋한 웃음소리가 그녀를 움찔거리게 했다.

<후후후후후. 거절당했네, 브라이언쨩.>

“뭐라?”

현실로 돌아온 나리타 브라이언은 복도를 매섭게 두리번거렸다. 가끔 그녀의 머릿속에서 발작하는 것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어쩐지 사쿠라 로렐의 것과 비슷한 목소리였다. 경험할 때마다 확인했고 아무도 없었으니 그만 찾을 때도 됐지만 소름끼쳐서라도 정체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 역시나 다들 트레이닝이니 뭐니 바쁜 시간, 복도에 누군가 있을 리가 없다.

<간만에 일한다고 나왔는데, 저렇게 무시당하는 걸 보니 퇴물이 다 됐는걸. 후후후후.>

“어디서 얘기하는 거야?”

<네 마음 속♡>

“돌겠네. 이게 무슨 짓이야?”

<후후후, 여유 없는 표정......>

불에 덴 것처럼 한 손을 올려 자기 얼굴을 가리고 나리타 브라이언은 사방팔방을 두리번거렸다. 창문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모든 것을 안다는 듯, 실시간으로 감시중이라는 듯 시종 여유롭기만 한 웃음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그녀가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중얼거렸다.

“이 씨발년이......”

<아앙, 방금 그거 좋아. 더 욕해줘.>

“지금 바쁘다고. 일하는 중이야. 내 머릿속에서 당장 꺼져!”

<한 번 더 말하라고.>

등줄기에 소름이 끼칠 만큼 차가운 목소리에, 은근 겁이 많고 오컬트나 그림자같은 것에 약한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 명령에 따르고 말았다.

“......이 씨발년이.”

<에이. 맛 없어라.>

마지못한 욕에는 위압감이 없다. 국어책 읽는 듯한 욕에는 흥미가 팍 식는다는 듯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몇 번이나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나저나 브라이언쨩이 씨발년이라고 말해야하는 건 내가 아니지 않아?>

머릿속에서 나온 목소리라 그런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확 와닿았다. 나리타 브라이언의 시선이 굳게 닫힌 티아라부의 문을 향했다. 방금 전에 자신을 모욕하고 문을 닫았던 그 우마무스메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가 천천히 문을 향해 걸음을 떼면서 다리와 팔을 풀었다. 그러는 동안 얼굴에서, 몸에서 피어오르는 투지와 의욕이 그녀를 한 마리 야수처럼 공격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아아, 그래. 네가 맞는 말을 할 때도 있군.”

<난 항상 브라이언쨩 편이니까. 이제 할 일이 확실해졌어?>

“그래......”

그녀의 전신이 긴장하며 혈류를 펌프질하고, 근육이 전투태세를 갖추는 동안 입꼬리가 올라갔다. 거기 마지막 채찍질을 하듯 큰 소리로 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뭘 망설여?>

“으랴! 이 씨발년아!”

나리타 브라이언은 사냥감을 덮치는 야수처럼 땅을 강하게 박차고 튀어올라 문에 달려들어 발차기를 먹였다. 그녀를 가로막던 장애물이 산산조각나 흩날리고, 활짝 열린 길로 날아들듯 진입할 수 있었다. 성취감과 전능감에 이를 드러내 웃으면서 나리타 브라이언이 너저분해진 부실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객관적으로는, 부회장이 갑자기 큰 소리로 욕을 하면서 문을 걷어차 부수고 난입한 것처럼 보였다.

‘찰칵’

몇 번의 셔터음과 함께 플래시가 나리타 브라이언을 덮쳤다. 싸늘한 눈으로 카메라를 조작하는 그 우마무스메의 입은 웃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부실 안쪽 원탁에서 우아한 다도를 즐기고 있던 몇몇 우마무스메들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새된 비명소리에 그제서야 브라이언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죠?”

다도를 즐기던 우마무스메들 사이에서 붉은 드레스를 입은 우마무스메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겁에 질린 다른 이들을 진정시켜 뒤로 두어 보호하면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젠틸돈나였다. 원탁의 다리 하나를 뜯어 육모방망이처럼 붕붕 휘두르면서 나리타 브라이언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섰다. 젠틸돈나 쪽이 살짝 눈높이가 높아 올려다봐야 한다는 사실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부실 문을 왜 걷어찼는지, 제대로 해명해야 할 거예요.”

“저 우마무스메가 날 모욕했다고.”

“어머, 그래요? 라인크라프트 씨, 그게 사실인지?”

방금 전까지 카메라를 들고 신나게 사진을 찍던 그녀는 그말에 갑자기 팔다리를 파들파들 떨더니 카메라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주저앉았다. 잔뜩 울먹이는 소리로 그녀가 외쳤다.

“흐윽, 저는 그냥, 그냥, 우와, 삼관, 이라고, 흑, 했는데......”

“......라는데요. 부회장 씨.”

“어......”

나리타 브라이언은 살기 띈 고릴라에게서 시선을 피하면서 다음 대답을 떠올리려 애썼다. 실제로 라인크라프트는 ‘우와, 삼관’이라는 말을 했을 뿐이고 그녀가 들은 말도 같았다. 표정이 어떻고 말투가 어땠고 구구절절 따질 수도 있겠지만, 젠틸돈나의 얼굴을 보아하니 ‘씨발년’이라고 돌려주면서 문을 부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불리해지면 외부의 권위자에게 기대길 좋아하는 그녀의 감정적 휴리스틱은 머릿속의 목소리를 향해 울부짖었다.

‘야, 뭐라고 말 좀 해 봐.’

대답은 없었다. 사쿠라 로렐은 없었다. 이럴 때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머릿속이 고요하고 평온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모든 것이 자기가 미쳐서 일어난 일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튼 뭐라고 말 좀 해야하는 건 자신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젠틸돈나는 테이블 다리를 손바닥에 짝짝 부딪히면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방금 그건 내가 아니다.”

“무슨 말이죠?”

“내가 아니라......”

나리타 브라이언은 거기까지 말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아니라 머릿속의 사쿠라 로렐’이라는 말이 얼마나 이상하게 들릴지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아니라, 뭐죠?”

“아니다. 미안하다. 빨리 치우도록 하지.”



문 잔해를 적당히 정리한 나리타 브라이언은 굵은 밧줄에 칭칭 묶여 부실에 연결된 별도의 방으로 통하는 복도를 안내받아 갔다. 안내라고 하는 건 그 역할을 도맡은 라인크라프트의 주장이고, 실제로는 줄을 당기면 질질 끌려가듯 걸어가는 것에 가까웠다.

“교양 없고, 품위 없고, 인성 뿌리부터 글러먹었네요. 역시 삼관.”

“미안하긴 한데, 삼관은 관련 없잖냐. 애초에 여기 부도 트리플 티아ㅡ”

“트리플 티아라는 달라요!”

매섭게 홱 잡아끄는 손에 중심을 잃고 순간 기우뚱거렸다. 다행히 그것이 마지막이었는지, 점점 그녀의 손길이 부드러워진다. 말투도 부드러워지고, 꼬리도 부드럽게 살랑거리고, 바보털까지 산들바람처럼 넘실거렸다.

“그 기품, 그 품격, 그 아름다움......그야말로 댁들과는 하늘과 땅, 구름과 진흙의 차이......”

“그래서 지금 우리 어디로 가고 있는 건데?”

“에헴. 당신의 처우를 결정하실 단 한 분, 이 부의 존엄하신 부장님이시죠.”

꽤 긴 시간 복도를 걸어 ‘사랑의 방’이라고 도착한 문 앞에서 그 우마무스메는 자신의 복장과 밧줄의 묶인 모양을 정돈하더니 공손하게 방을 노크했다.

“......누구?”

짧고 뚱한 목소리에 라인크라프트가 몹시 꼬리를 살랑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네! 삼여신의 은총으로 중앙 트레센 학원 사랑이 넘치는 트리플 티아라 부의 부장, 초대 트리플 티아라로서 현창회의 일원, 오카상의 수호자, 오크스의 여왕, 슈카상의 지배자, 엘리자베스 여왕의 기념자, 메지로 가문의 부당주, 순애의 수호자, 순전한 사랑의 옥좌의 주인, 제 개인적인 아이돌이신 메지로 라모누 부장 폐하!”

온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그 소리에 문 너머에서 반가운 듯 아닌 듯한 대답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라인크라프트구나.”

“네! 트리플 티아라부의 문지기이자 사진촬영기사이자 정수기 교체 당번이자 기타 잡일 담당이자 라모누님의 개인 발걸이 가구인 라인크라프트입니다! 더러운 삼관 종자, 학생회의 끄나풀인 나리타 브라이언을 연행해 왔습니다! 들어가도 되는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그래.”

“들어가도 될까요?”

“그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라인크라프트가 문을 열자, 4개의 호화로운 옥좌가 놓인 단상이 마련된 커다란 방이 나리타 브라이언의 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왼쪽에 놓인 옥좌인 ‘순전한 사랑의 옥좌’에 다리를 꼬고 앉아, 바로 옆에서 하늘색 장발을 한 우마무스메의 시중을 받아가며 도란도란 차를 마시고 있던 메지로 라모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 앞에 나리타 브라이언을 패대기친 라인크라프트가 능숙하게 옥좌 앞으로 가 엎드리자 라모누의 발이 그녀의 등 위로 올라왔다.

“에헤헷.”

라모누가 편안하게 다리를 올릴 수 있게 이리저리 자세를 고치면서 행복한 강아지같은 얼굴을 하던 라인크라프트의 얼굴이 아무렇게나 바닥을 구르던 브라이언을 향해 일그러졌다.

“얼른 인사를 드리지 못해?”

“아, 안녕하십니까.”

“그래. 루돌프의 앞잡이. 그러니까, 나리타 탑......”

“언니. 나리타 브라이언이요.”

옥좌의 옆에 앉아 있던 동생의 지적에 라모누가 잠깐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래. 아무튼, 무슨 일로 왔지?”

“이 부활동에 지나치게 많은 예산이 배당되었다고 해서 실태조사를 하러 왔다만......”

나리타 브라이언이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중얼대듯 말했다. 4개의 옥좌와 그게 올라갈 단상만 해도 비용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이 방 자체도 팀 트레이너실 저리가라할 수준으로 크다. 대충 살펴보기에도 일반 트레이너실에 바르는 하얀 벽지가 아닌 도배 상태, 북유럽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인테리어 소품들, 합판이 아닌 게 확실한 원목 가구들, 그걸로도 모자라서 다른 방으로 통하는 문까지 두 개나 있었다. 애초에 여기 오기 전에 이미 ‘부실’을 지나쳤고, 또 한참을 연결통로를 걸어온 것까지 생각하면 결론은 난 것이나 다름 없다.

“할 필요도 없겠군. 뭐하는 부활동인지 모르겠지만 이딴 곳에 학원의 돈이 낭비되고 있었어.”

언짢은 투로 말하고 나서야 나리타 브라이언은 메지로 라모누와 그 발밑에 엎드린 라인크라프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천하의 죽일 년을 보는 얼굴이었다. 라모누의 눈이 커져 뱀같은 세로동공을 몹시 과장하고 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어, 그러니까......”

금방이라도 명령 한 번에 자신을 물어뜯을 것처럼 송곳니를 드러낸 라인크라프트와, 라모누의 꼬챙이같은 시선, 밧줄에 묶인 자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나리타 브라이언은 이번엔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라모누는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냐고.”

“뭐하는 부활동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곳에 학원의 돈이 낭비되고 있대요, 언니.”

“어라, 그렇구나.”

라모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리를 한 번 꼬았다. 음음, 하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 희미하게 웃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 보였다.

“미안하구나. 요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그래! 언니는 요즘 귀가 좋지 않으시다고!”

“아르당 너는 조용히 좀 말하렴. 귀청 떨어지겠구나.”



나리타 브라이언을 묶고 있던 밧줄은 곧 풀렸다. 어디서 구해온 건지 모를 유치원생용 플라스틱 의자긴 해도 의자도 주어졌다. 다리를 쭉 뻗으면 괜찮았지만 엉덩이가 불편했다.

“어이. 다른 의자는 없나. 이 자리는 좀 불편한데.”

“어라. 그래.”

옥좌에서 메지로 라모누가 친히 몸을 일으켰다. 나리타 브라이언은 내심 의자를 새로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걸음, 한걸음, 라모누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라모누는 브라이언을 평가하듯 내려다보고 슬그머니 웃었다.

“짧네.”

“크윽......”

“그 정도 의자면 괜찮지 않겠어?”

“뭐라고......”

“아니면, 일어서서 얘기하는 편이 좋을까?”

이번에도 역시나, 키가 5cm 정도 차이가 나 눈높이가 미묘하게 맞지 않았다. 벌써 몇 번째 올려다보는 건지 모르겠다. 이대로 얘기하는 건 질색이다. 얌전히 자리에 앉는 나리타 브라이언을 확인하고 라모누가 옥좌로 돌아가는데,

“카악~!”

꼭 뱀의 소리같은, 깊은 곳에서 무언가 털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라모누의 귀가 쫑긋하더니 소리의 진원지, 방 구석의 라인크라프트를 향해 외쳤다.

“거기 뭐 하고 있니?”

“네! 라모누님! 손님에게 접대할 다과를 준비중이었어요!”

“어머. 열심이구나.”

“감사합니다!”

뭔가 뱉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리타 브라이언은 절대로 마실 것에 손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그녀를 옥좌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내려다보면서 라모누는 턱을 괴고 편안히 앉았다.

“그래. 이 부가 무슨 부인지 알고 싶다고 했지?”

“알고 싶진 않지만. 그래. 대체 트리플 티아라부가 뭐하는 부활동이냐?”

“정식 명칭은, 사랑 넘치는 트리플 티아라부야. 말 그대로 사랑이 넘치는 부활동이지. 나같은 트리플 티아라...... 오카상과 오크스, 그리고 엘리ㅡ”

“언니, 슈카상, 슈카상이요.”

“어라,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잖니.”

지적질하는 아르당에게 가볍게 짜증을 내고, 라모누는 설명을 이어갔다.

“아무튼 그런 위대한 우마무스메들이 모여서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는 부활동이란다. 이해가 됐니?”

“전혀 모르겠는데.”

“하아.......이해가 느린 아이네.”

“아니, 내가 그런 말을 들을 상황인가? 어디서부터 이걸 지적해야 돼.”

서로를 답답해하는 상황, 다시 설명해주려는 라모누의 말을 끊어버리고 나리타 브라이언은 지끈대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일단, 구성원. 이 부활동은 부원이 전원 트리플 티아라란 말이지?”

“뭐, 그렇지.”

“네 동생부터가 트리플 티아라가 아니잖냐.”

“하지만 내 동생이잖아?”

막힘없이 대답하는 메지로 라모누, 손을 내밀자 메지로 아르당이 턱을 들이밀었다.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여유롭게 설명한다.

“사실상 트리플 티아라라는 거야.”

“그래! 사실상 트리플 티아라라고!”

세 번째 옥좌인 ‘강한 사랑의 옥좌’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던 푸른 머리 우마무스메가 끼어들었다.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비웃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우쭐거렸다.

“나만 해도 트리플 티아라의 세 경기에서 모두 2착을 거뒀지. 이런 유일무이한 기록을 수립했기 때문에 이 부에서도 사실상 트리플 티아라로 인정하고 옥좌에 앉을 권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세 번 다 2착이었으면 그냥ㅡ”

메지로 라모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 섬찟해 브라이언이 조금 움츠러들었다. 그녀가 손을 번쩍 들어올렸을 때는 비와 하야히데의 이름을 부를 뻔도 했다. 라모누의 손이 나리타 브라이언의 귀 앞에 조용히 올라왔다.

“사랑으로 보듬어 줘. 안쓰러운 아이야.”

“......아아......”

나리타 브라이언은 라모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슬픈 표정으로 세 번째 옥좌를 힐끗거려 눈을 마주치자, 과시하듯 옥좌 위의 우마무스메가 편안히 기대 다리를 꼬았다.

“설명하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하다니. 머리가 나쁘구나?”

“그래......내가 레이스만 하다보니. 미안하다.”

팍 꺾인 의욕처럼 고개를 푹 숙여 사과하자 방 안이 떠나가라 웃는 소리가 들렸다. 라모누는 고개를 돌려 조용히 한숨을 쉬고, 옥좌로 돌아가는 그녀의 슬픈 표정을 아르당이 능숙하게 가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