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탄생

콘라드 커즈는 잉태 포드 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탄생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한밤중처럼 격렬하고 불안했다. 황제의 유전자 조작과 신비한 기술의 산물로서, 그녀의 시작은 이미 평범한 생명체와는 달랐다.

첫 번째 기억은 고통과 공포였다. 포드 안의 환경은 차갑고 메마른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따금씩 불길한 빛을 발하는 생명 유지 장치들만이 존재했다. 이 장치들은 그녀의 생명을 유지시켰지만, 동시에 아무런 따스함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녀가 탄생하는 순간, 포드의 차가운 벽을 통해 울려 퍼진 것은 그녀의 첫 번째 비명 소리였다. 그것은 단순한 신생아의 울음이 아니었다. 고통과 공포가 섞인 비명, 그것이 커즈가 세상에 대해 드러낸 첫 번째 반응이었다.

어둠 속에서 비명을 내지른 커즈는 주변의 모든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무겁고, 차가운 금속 위에 누워 있음을 알았다. 그렇게 커즈가 세상과 처음으로 맞닥뜨린 순간, 그녀는 이미 고독과 고통을 경험했다. 그녀는 혼자였다. 포드 안에는 그녀에게 따뜻함이나 위로를 주는 존재는 없었다. 그저 차가운 금속과 기계음만이 그녀가 보고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었다.

자신을 좀 먹는 듯한 어둠 속에서 커즈는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커즈는 포드 안에서 자라났다. 그녀의 몸은 점차 커 갔고, 정신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포드 밖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감각은 포드 밖의 작은 변화들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끊임없이 주의하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포드가 열렸다. 차가운 금속 출입구가 스산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노스트라모를 가득 채운 매연이 그녀에게 닿았다. 그 순간 커즈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포드 안에서 얼마나 고독했는지를 깨달았지만, 그 고독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형태로 그녀를 따라다닐 것이니, 그녀가 마주한 세상은 더 큰 어둠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콘라드 커즈는 노스트라모의 땅 위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녀가 스스로가 자신의 앞에 놓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커즈는 어둠 속에서 태어나, 어둠 속에서 자라났으며 이제 그 어둠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갈 것이다.

노스트라모의 끝없는 어둠 속에서 콘라드 커즈는 혼자 깨어났다. 이 하이브 월드는 영원한 밤이 드리운 듯 했고, 빛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지내던 포드와 같이, 도시의 골목과 폐허는 죄악과 범죄로 물들어 있었으며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들었다. 어린 커즈는 이 어둠 속에서 혼자였고, 그녀의 배는 항상 고팠으며 몸은 차가운 땅바닥에서 떨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혼돈과 절망으로 가득한 이 곳,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다는 단 하나의 원칙만이 존재하는 노스트라모 하이브 월드에서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외지인인 그녀는 그곳에서 가장 약하고 고립된 존재로 여겨졌고, 대부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녀보다 더 강한 자들은 그녀를 잔인하게 다루었다. 그녀의 어린 몸은 종종 폭력에 노출되었고, 그녀의 피부는 항상 멍과 상처로 뒤덮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골목길을 조심히 지나가려던 커즈는 순식간에 모여든 또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무자비하게 폭행 당했다. 그들은 그녀를 비웃고 조롱하며, 그녀의 약점을 즐겼다. 그녀는 땅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절규했지만,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지나가던 부랑배 하나가 자신의 길을 막아 선다고 인상을 찌푸리기 전까지 그녀에게 향하는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들이 쫓겨나자, 간신히 몸을 일으킨 커즈는 다시금 자신이 향하던 곳을 향해 기어가듯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이 비 맞은 생쥐와도 같이 퍽 애처로웠지만, 이곳에서 그런 모습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정처 없이 골목을 걷다 마침내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을 순간에, 커즈는 자신보다 약한 아이를 발견했다. 그 아이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굶주림에 지쳐 있었고 저항할 힘조차 없어 보였다. 그 날, 커즈는 날카로운 쇳조각을 손에 쥐고서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따뜻한 피를 들이켰고, 고기를 베어 물었다. 그날 밤, 끔찍한 악몽과 함께 자신의 인간성을 잃어가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증오와 분노 또한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요동쳤다.

다음 날, 커즈는 골목의 깊은 어둠 속에서 홀로 길을 잃었다. 그녀는 여전히  굶주렸고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그 순간, 그녀는 그림자 속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다. 두려움이 그녀의 심장을 옥죄었다. 그녀는 급히 달아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손이 그녀를 붙잡았다.


“넌 어디서 왔니, 작은 생쥐야?” 낮고 으스스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커즈는 몸을 떨며 그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손아귀는 점점 더 강해졌다. 그녀는 무기력하게 그 손에 끌려갔다.

그녀를 붙잡은 남자는 거대한 체구와 무시무시한 얼굴을 가진 돌연변이였다. 그는 커즈를 자신의 은신처로 끌고 갔다. 그곳은 냄새나고 더러운 작은 방이었다. 방 안에는 그가 잡아온 다른 희생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피와 고통의 잔재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오늘 밤은 운이 좋은 날이네. 새로 온 어린 생쥐를 먹게 되었으니.” 남자는 잔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칼을 꺼내들고 커즈에게 다가왔다. 커즈는 공포에 질려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절망과 공포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순간, 커즈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 그것은 끝없는 분노와 생존 본능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


“안 돼!” 커즈는 비명을 지르며 남자의 얼굴을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그녀의 손톱은 남자의 얼굴을 긁었고, 남자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 틈을 타 커즈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 방 밖으로 달아났다.


남자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커즈를 쫓아왔다. “넌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작은 생쥐야!” 그는 소리쳤다. 


커즈는 절박한 마음으로 어두운 골목을 달렸다. 그녀의 온몸은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끝없는 어둠 속에서 탈출구를 찾기 위해 발버둥쳤다.


골목을 돌아다니며 커즈는 자신이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앞에는 높은 담벼락이 가로막고 있었다. 남자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담벼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과 발은 피로 얼룩졌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남자가 그녀를 잡기 직전, 커즈는 간신히 담벼락을 넘었다. 그녀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땅에 부딪혔다. 그녀의 몸은 충격으로 인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일어났다. 그녀는 절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생존 본능은 그녀를 계속 움직이게 만들었다.


커즈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숨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만을 들으며 계속 달렸다. 그녀의 몸은 지쳤지만, 그녀의 정신은 끝없이 강해졌다. 그녀는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흘러, 커즈는 자신이 가진 예지 능력과 비범한 신체 능력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올바르지 못한 자들을 벌주기 위해 노스트라모의 어둠과 하나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밤의 괴물이라 불렀고 곧 그 이름은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그녀의 존재는 노스트라모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희망이자,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에는 항상 고독과 혼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와 운명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왜 자신은 여느 사람들과 달리 태어났을까? 왜 자신은 이런 능력을 지니고 있을까? 왜 매일 밤마다 꾸는 예지몽은 이토록 고통스러울까? 하지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결코 찾을 수 없었다.

노스트라모의 사람들에게 질서를 가져다주는 존재가 되어갈수록, 커즈는 점점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의 예지몽은 그녀가 성장할수록 점점 더 잔인하고 선명해졌으며, 그녀가 목격한 스스로의 미래의 종착지는 자신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콘라드 커즈는 폐허가 된 건물에서 자신의 잠자리를 찾았다. 피로 물든 몸, 허무함으로 가득 찬 마음, 그녀는 어둠 속에서 쓰러져 눈물로 바닥을 적셨다. 왜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걸까? 이토록 지겨운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의 종착지는 곧 커즈의 비명으로 마쳤지만, 그 비명은 답을 주지 않았고 어둠은 여전히 그녀를 감싸 안았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가고,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잊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