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챈질을 가끔씩 하다가 그런 글을 보곤 한다. 얀데레는 만약 얀붕이가 ~한다면, 혹은 자식이 ~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얀데레는 병적인 사랑이자 타인에 대해 자신의 애정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얀데레는 (ex. 애니메이션, 소설 등) 오히려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정상적으로 행동하고 감정이 격해지고 질투가 극에 달할 때만 얀데레의 특성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 경우엔 유형이 두 가지로 나뉘는데 타인에게 평소 본심을 숨기는 타입과 숨기지 않는 타입.


전자는 얀붕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조차 겉으로 미소를 띠며 친절한 척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척일 뿐이다.


얀순이의 외모에 이끌려 옥상으로 불러낸 한 남학생이 그녀에게 고백을 했다고 쳐보자.


얀순이는 겉보기엔 베시시 웃으면서 내숭을 떨듯 공손하게 거절할 테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가선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변기에 온갖 혐오감에 가득 찬 구토를 할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이 경우는 의문이 들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왜 그런 대외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거지?


유지보단 아마 구축이라는 단어가 필요할 것이다.


단순히, 이미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미래를 생각하고 장기적으로 얀붕이와의 장래를 꿈꾸는 얀순이들은 대개 이런 행동을 취한다.


즉 타인에게 착하게 굴면 입지를 더 공고하게 할 수 있고 그것이 설령 자기피폐적인 얀붕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해도


언제든지 확고해진 입지로 그 범인을 사회 밑의 끝없는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게 가능하다.


당장 얀순이가 고백을 받아주지 않아 화가 난 양아치 선배가 얀붕이는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걸 보고 질투해서 얀붕이를 해코지하면 어떻게 될까? 뒷일은 상상에..



후자는 본심을 숨기지 않는 타입이다.


타인의 시선도 개의치 않고 얀붕이에 대한 애정과 질투, 독점욕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다가오는 모든 여자를 경계하는 타입.


철두철미한 경우도 있고, 피지컬만 믿고 다른 여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인간관계 따윈 중요치 않고 그 중심엔 얀붕이 - 자신 하나만 있으면 족하기에 세상 모두가 얀붕이로만 이루어져 있다.


얀붕이는 대개 이런 행동에 방어적이거나 수동적인 태세를 취하지만, 얀붕이가 오로지 세계의 전부인 얀순이에게는 허무맹랑한 소리나 다름없다.


세계를 버리라는 말과 똑같은 것이다. 얀붕이가 아무리 밀어내고 배척해도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득달 같이 달려들 뿐이다.


여기에도 물론 이유가 있지만, 그 본질은 전자와 같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전자가 입지를 공고히 해 수월한 미래를 꿈꾸었다면, 이쪽은 오히려 싹을 미리 잘라낸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전자는 얀붕이의 뭍밑에서 사전 공작을 펼치는 뇌지컬 쪽이 부각되는 얀순이로, 후자는 사이코패스 얀순이나 납치감금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지.


범죄를 저지른 시점에서 이미 관계는 끊어내는 게 당연한 가정이므로, 후자에 더 몰입하고 만들기도 쉬운 까닭이다.


조금 전에 보았던 게시물 중에 이런 질문을 본 적이 있다.


Q. 얀붕이가 낳은 자식이 얀돌이라는 아들 하나인데, 발달 장애 진단을 받았다. 얀붕이가 얀돌이를 돌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자신을 소홀히 할 때, 그녀의 반응은?


CASE #1: 전자일 때, 가장 이상적인 현모양처를 연기한다. 얀돌이의 병수발을 직접 나서서 해주고, 지친 얀붕이의 어깨를 주물러주거나 자신의 사랑스러운 남편이 지나치게 피곤할 때는 알아서 의무방어전을 한 수 접어두기도 한다.


모성애란 감정은 생각보다 사랑과 그 간격이 크지 않다. 따라서 얀붕이를 자신의 자식으로 여기고 있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하지만 얀붕이의 모습을 자식에게 투영해 집 곳곳에 숨겨진 초소형 CCTV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겠지.


어느 날은 얀돌이의 병수발이 너무 힘들더라도, 금세 남편의 퇴근 모습을 보고 화가 풀린다. 다정하게 끌어안아주고 뺨을 비비면서 얀돌이도 같이 품속에 어느덧 안고 있다. 아마 필자도 이런 유형을 가장 선호한다고 생각한다.


CASE #2: 후자일 때, 얀돌이가 없을 때의 기회 비용은 애당초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결실이니 버린다는 선택지는 결단코 없다. 그러나 애증의 감정을 느낄 수는 있겠다. 얀돌이가 상기했다시피 얀붕이와의 끈적한 사랑의 증거라면, 반대로 말해서 아들이 사랑을 하는 데 집요한 걸림돌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병 수발을 하다 지쳐 일부러 진정제 같은 알약을 먹일 때, 몰래 물에 하얀 가루를 타고. 아무렇지도 모르는 척 방긋 웃으며 자식에게 걱정하는 얼굴로 약을 먹이는 어머니다.


하지만 대놓고 해코지는 못한다. 그건 곧 얀붕이와의 연결고리를 스스로의 손으로 끊어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얀붕이가 올 시간을 철저히 계산해 성가신 얀돌이를 재운 뒤, 얀붕이와 강제적인 키스를 나누는 정도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