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 그것을 대개는 기적이라고 칭한다. 

 

야구의 9회 2사에서 역전 홈런을 날린다거나 농구의 버저비터, 또는 복권에 당첨된다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허나 기적이라는 단어에 전제에는 최소한의 “확률”이라는 가정이 깔려있는데 그 일이 실현될 확률이 적어도 아주 소수점만큼이라도 존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허나 돌아오는 정신과 함께 보이는 장면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앤티크한 방의 풍경이 아닌 호텔과도 같은 구조. 

 

어디선가 본 듯한 시계, 티비, 그리고 침대들. 

 

무언가 불현듯 기억이 떠오르며 그 기억이 자연스럽게 내 다음 행동을 이끌었다. 어두운 방의 안에 자그마하게 새어들어오는 빛을 찾아서 나는 두통을 참고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겼다.

 

-차락.

 

나는 자연스럽게 몸이 시키는대로 커튼을 열어 젖혔고 어두웠던 방이 환하게 밝아지며 어렴풋이 내가 기억하던 풍경을 나는 볼 수 있었다.

 

푸르른 파도가 넘실넘실 대며 밀려와 내는 소리와 뜨거운 태양의 빛을 반사시키는 새하얀 모래사장.

 

내가 처음으로 보았던,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바다가 눈 앞에 들어와 있었다. 화이트 룸이 가동을 중단하고 내가 잠시 호텔에 머무르던 그 시간에 보았던 광경말이다.

 

새하얀 빛에 어느정도 눈이 적응을 하고 방의 환경을 둘러보니 보이는 것은 달력과 커다란 전신 거울. 평소에 경악할 일이 존재한다지만 이만큼 무서운 사실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 달력이 나타내는 오늘의 날짜는 십여년 전, 화이트 룸이 중단되던 시기와 동일했다.

 

점점 뇌에 들어오는 무언가의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전신 거울 앞에 서 나를 마주했고 그제서야 내 가설의 확신과 함께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젊어진 신체, 과거를 가르키는 달력.

 

나는 그 때 소설에서나 보던 회귀라는 것을 내 몸으로 직접 경험하게 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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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어느정도 지나고 혼란스러웠던 머리를 정리했다. 지금 내 상황과 더불어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고민에 대한 답은 지금 이 만남을 통해서 찾을 수 있겠지.

 

-똑똑.

 

“마츠오다. 들어가마.”

 

“들어와주세요.”

 

그 말과 함께 전자식으로 되어있는 방의 락을 열고 들어오는 한 남성. 그는 정갈한 양복을 입고 있었으나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컨디션이라거나 건강에 불편한 점이 있나?”

 

“괜찮습니다.”

 

“그래… 너도 갑작스럽겠지만 시설이 재가동될 때 까지는 여기서 머물러다오. 여기는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여러 것들을 볼 수 있을거다. 아마 너도 흥미를 가지겠지.”

 

“감사합니다. 구경해볼게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금 방을 나갔다.

 

그리고 그 대화에서 얻을 수 있었던 점은 그는 내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전생에서부터 자신에게 올 불합리를 감수하고 나를 이 시설에서 탈출시켰을만큼 호인이라는 것.

 

과거라면 모르겠지만 더 이상 내게 있어서 화이트 룸은 내가 돌아갈,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다. 화이트 룸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재능을 주었지만 무엇이든 될 기회는 주지 않는 곳이었기에.

 

나는 다시 화이트 룸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생의 목표는 내가 직접 정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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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호텔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먹고 마츠오에 의견대로 학습보다는 주변을 둘러보며 과거의 기억을 다시 한번 수면위로 끌고 올라오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 때는 이런게 있었지, 이 때는 이런 물고기가 있었지.

 

마츠오도 옆에 딱 붙어서 감시를 하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 자유를 주기 위하여 멀리서 떨어져 관찰하는 정도였다. 애초에 이 호텔은 우리만 사용하는 것이 아닌 다른 투숙객도 있었기에 과도하게 감시하기는 힘들겠지만.

 

인간의 기억은 전체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전체를 복기할 필요는 없다. 기억은 조각이 아닌 복잡한 실과도 같아서 하나를 건드리면 다른 모든 것들도 유기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떠오르기 마련.

 

오늘 하루 동안의 산책과 탐방을 통해 나는 과거의 기억을 대부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 곳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 지도.

 

어두워지기 시작한 진홍색의 하늘을 보여주는 유리창을 지닌 호텔의 로비, 나는 멀리에서 한 소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눈처럼 흰 머리카락과 그 위에 얹어진 아기자기한 모자, 아기자기한 모자와 비슷한 초등학생 정도의 신체와 인형 같은 외모를 가진 소녀를 말이다. 

 

사카야나기 아리스. 

 

어쩌면 내가 고도 육성 고교에 진학하게 된 이유도 지금 그녀가 방문한 일과도 연관이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무엇이라도 있나?”

 

“아뇨, 아무것도.”

 

아직 그가 내게 동정심을 가진다지만 그에게 빠르게 접근하는 것은 바보 같은 행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오늘 많은 것을 보았겠구나.”

 

“네.”

 

“감상을 말해줄 수 있겠나?”

 

감상이라, 과거에 보았던 것을 떠올리기에 지금 오늘 보았던 것에 대한 즉흥적인 감상은 아니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를 들려주었다.

 

“신기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냥, 모든 점에서, 언제나 그 곳에서는 새하얀 방과 검은 글자들이 전부였으니까요.”

 

새롭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곳에서 나는 언제나 학습만을 이어나갈 뿐이었다는 기계였다는 것을 그에게 말한다.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 그게 내가 취한 전략.

 

그렇게 말없이 걷던 우리는 엘리베이터 앞에 멈추어섰고 그가 적막 속에서 입을 열었다.

 

“만약, 무언가 되고 싶은 것이 있나?”

 

“당장에 되고 싶은 것은 없지만, 학교에는 가보고 싶네요. 학교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찾는 곳이니까요.”

 

“학교…. 그래….”

 

그렇게 내 방에 도착하고 그는 수심에 빠진 표정으로 떠나갔고 나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사카야나기 아리스.

 

고등학교 때 승부를 끝으로 졸업 후 내가 그녀를 다시 친 것은 정계에 입문하고 어느 정도 젊은 의원으로서 인지도를 높였을 즈음이었다. 

 

확실히 주류로 올라온 내 세력에 있어서 적대적 세력의 일원이었던 사카야나기 이사장과 아리스. 고등학교 이후로 다시금 승부가 이어졌고 결착이 났다.

 

결과는 사카야나기를 비롯한 반대 세력의 완전한 몰락. 

 

그들은 각자 정계에서 떠났고 심한 경우는 세무 조사, 비리 폭로 등을 통해 가문 자체를 몰락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사카야나기 이사장 또한 피해갈 수는 없는 법.

 

그는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고 압수수색과 함께 수많은 인력이 사카야나기 자택에 들이닥치던 날, 마당에서 사카야나기 아리스는 예상 밖의 말과 함께 나를 맞이했다.

 

‘미안해요. 구해주지 못해서.’

 

슬픈 듯, 동정하는 듯한 표정. 

 

아마 그녀는 나를 구해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오직 승리만이 전부라는 것이라고 학습된 틀에서 나를 말이다. 오직 승리만을 향하도록 설계된 ‘아야노코지 키요타카’라는 인간을 동정하며.

 

내 패배를 통해 화이트 룸의 방식, 승리주의를 부정하고 나를 구원한다. 그게 사카야나기의 바람.

 

그 때 알게 된 감정은 혐오였다. 패배했음에도 동정을 건네는 그녀에 대한 혐오였을까, 아니면 사람과의 교류 없이 하나의 목적만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진 자신에 대한 혐오였을까?

 

이미 누군가를 이용하고 조종하며 박살내고 승리하는 것이 당연하던 나에게 자신 혐오라는 감정을 알게 해준 사카야나기 아리스는 어쩌면 내게 꽤나 소중한 존재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내 미래를 찾기 위해 나는 내일 사카야나기를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