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IF - 카루이자와 케이와 사귀는 사이가 아니였다면 (2학년편 4.5권 ‘각자의 성장’ 6)

IF - 이치노세 호나미와 사귀었다면 (2학년편 6권 승리의 대가 2)

IF - 이치노세 호나미와 사귀었다면 (2학년편 7권 문화제를 향하여 4)

IF - 이치노세 호나미와 사귀었다면 (2학년편 7권 번외)

IF - 이치노세 호나미와 사귀었다면 (2학년편 8권 말 그대로의 수학여행 5)

IF - 이치노세 호나미와 사귀었다면 (2학년편 8권 어둠 끝에 켜진 빛)

IF - 이치노세 호나미와 사귀었다면 (2학년편 9권 기운의 징조 2)




(2학년편 9권 휴일을 보내는 방법 0)




(칸자키 일행으로부터 호나미가 A반으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한 것인지 확인해달라고 부탁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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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일요일. 나는 조금 일찍 기숙사를 나섰다.

 


날씨는 아직 화창하지만, 불행하게도 오후부터는 비가 내릴 예정이라는 듯 해서 일단 우산을 챙겨 나왔다.

 


기숙사 현관을 지나며 이제는 습관처럼 호나미에게 출발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냈다. 


 

마침 호나미도 나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던 듯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곧바로 읽음 표시가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이번에는 호나미가 보낸 화려한 이모티콘으로 가득한 메시지가 화면에 가득 찼다. 


 

이모티콘으로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는 것처럼 보였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화려한 메시지의 안에서 나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골라 읽는 도중, 터치를 잘못하여 호나미와의 채팅내용의 제일 위까지 올라가 버렸다. 

 


몇 달에 걸친 길고도 긴 채팅기록이 그동안 호나미와 나의 관계가 얼마나 진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로부터 거의 반년...인가?’


 

호나미와 연애를 시작한 이후 생각보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우리의 관계가 진전되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좋은 일들만 계속될 수는 없는 법.


 

본의 아니게 호나미가 알아버린 화이트 룸이라는 키워드. 끝내 들을 수 없었던 나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나에 의해 강제로 학생회장 선거에 발을 딛게 된 일.


 

호나미로서는 언제까지나 나와 행복한 일들만 있었으면 했겠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호나미의 고백을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 예상했던 언젠가는 피해갈 수 없는 갈등이었다.

 


호나미가 학생회실을 도망치듯 나간 그날 이후 나와 얼굴을 맞대는 첫날.


 

호나미는 어떤 마음으로 오늘 아침을 맞이했을까.


 

그녀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 그것이 하나뿐만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나와의 서먹함을 해소하는 일, 강한 정신력을 얻는 것, 자신의 반을 이끌어갈 리더로서의 능력향상. 


 

무릇 바라는 걸 세어보면 한 손, 아니, 두 손으로도 부족한 법이다.


 

나와의 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수학여행의 밤과 학생회실에서의 일로 호나미와 나 사이에 무언가가 조금씩 변해가는 느낌이다.


 

아직 불안정한 호나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직접 만나서 확인할 수밖에 없겠지.

 


칸자키가 부탁한 호나미의 A클래스를 향한 도전의 중단 여부. 

 


와타나베가 부탁한 아미쿠라의 좋아하는 타입에 대한 힌트.


 

그리고 내가 학생회장 선거에 강제로 밀어 넣은 것에 대한 호나미의 반응.


 

그러한 오늘의 목적 3가지를 떠올리며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자, 뒷짐에 우산을 든 호나미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이쪽이 말을 걸기 전에 먼저 알아차리고,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조, 좋은 아침이야. 키요타카.”


 

무거운 공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느 쪽인가 하면 싱그러우면서도 풋풋한 긴장감이 맴도는 듯한 분위기.


 

제대로 된 표현조차 못 하고 학생회실을 뛰쳐나갔을 때와는 달리, 호나미도 확실하게 겉으로 보일 가면을 준비해 온 건가.


 

우선은 이 쪽에 시선을 맞춰왔지만, 속마음을 파헤쳐 보려 계속 그 시선을 좇다 보니 금세 빗나가고 말았다.


 

쉽게 눈치채지는 못할 정도였지만 내 입가와 코, 목에 시선을 조금 떨어뜨린 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무리하게 불러낸 게 아닌가 모르겠네.”

 


으응, 천만에! 키요타카가 먼저, 그것도 주말에 불러주는 건 드문 일인걸. 


 

언제나처럼 나를 향해 짓는 기쁜 표정. 


 

그것만으론 아직 지난번 학생회장 선거에 강제로 밀어 넣은 것에 대해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의 하루를 같이 보내다 보면 분명 호나미의 생각이 은연중에 드러날 것이다.


 

아직 케야키 몰이 오픈하기 전이었기에 우리 둘은 우선 입구에 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양옆에 나란히 서서 오픈을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은 누가 봐도 주말 데이트를 즐기러 나온 연인의 모습이겠지.


 

다만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볼 사람들이 없을 뿐.


 

“개점 전에 올 일은 별로 없었는데 아직 아무도 안 보이네.”


 

“오늘은 추우니까. 다들 아직은 방 안에 있지 않을까?”


 

“음... 오늘은 정말... 추우니까.”


 

겉옷을 살짝 여미며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호나미가 살짝 내 옆으로 붙어온다.


 

아무 말 없이 그런 호나미의 팔을 나의 팔과 교차해 팔짱을 끼자 호나미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어린다.


 

‘최소한 호나미와 이 정도의 거리는 아직 유효한 건가.’


 

한동안은 호나미가 그대로 나의 어깨에 기댄 채 침묵을 유지했다.


 

살며시 시선을 돌려 호나미의 얼굴을 바라보니 딱히 대화의 주제가 없거나 어색해서라기보다는 나와 붙어있는 시간 자체를 즐기려는 것 같았다.


 


 

나 또한 침묵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있기만 해서는 호나미의 마음을 읽을 수 없을 테니 우선은 가벼운 이야기를 꺼내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수학여행 때 와타나베랑 같은 그룹이었어.”

 


“응. 그런 것 같더라.”

 


“지금까지 접점이 없어서 몰랐는데, 와타나베는 성격이 소탈하고 말하기 편한 좋은 애더라.”

 


느낀 점을 있는 그대로 말하자 호나미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응! 남녀 불문하고 반 애들이 좋아해.”

 


이름이 언급된 참에 시간을 보낼 겸, 또 오늘 나에게 주어진 과제 중 하나를 빠르게 해치울 겸, 곧바로 와타나베의 부탁대로 아미쿠라에 대해 물어볼까 했지만...

 


“...”


 

평안한 미소로 나에게 기대어 있는 호나미를 보자 왜인지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또 기회가 있을 테니까...’


 

그 대신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해 좀 더 무난한 주제로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보기로 했다.


 

“이번에야 기회가 있어 알게 되긴 했지만, 사람을 사귀는 건 참 어려워. 반만 다르지 2년 가까이 같은 학교에서 공부했는데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런 점에서 호나미는 참 대단하다고 할까?”


 

“어? 나 말이야? 그런...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 키요타카.”

 


부끄럽다는 듯 살짝 내 어깨를 치며 그런 말을 하는 호나미.


 

겸손이라기보다는 정말로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듯했다. 


 

“그럼 비결이라도 있는 거야? 모두와 친해지는 방법 같은 거 말이야.”


 

“으음... 그런 게 있을까? 있다고 해도 난 잘 모르겠어.”


 

천부적인 능력이기에 이론적으론 분석해서 말해줄 수 없다.


 

진정으로 몸에 밴 습관이나 행동은 걸음을 걷듯, 또 숨을 쉬듯 너무나 당연해서 말로 그 방법을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겠지.


 

필시 아무리 나라도 학습만으로 익힐 수 있는 영역의 밖에 있는 능력이라 봐야 할 것이다.


 

약간의 호기심이 생겨 호나미에게 추가적인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그럼 반대로 호나미도 사귀기 힘든 사람들이 있어?”


 

“음... 그야 그렇지. 어떻게 해도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들이나, 처음부터 가시를 세우고 있는 사람들은 말이야. 가령... 류엔 군 같은 학생들과는 아무리 해도 친해지기 어렵지 않을까...?”


 

과연. 분명 호나미라고 해도 모든 사람들과 친해질 수는 없는 법이겠지. 내친김에 그녀의 인간관계의 팁에 대해 한 가지 더 묻기로 한다.


 

“사람들을 많이 사귀는 것도 좋지만, 그만큼 유지하는 것도 힘들 것 같아. 그런 점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 거야?”


 

“관계의 유지 말이지? 글쎄, 사실은 생각해 본 적이 없네... 헤헤헤. 그저 많은 사람들을 알아간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달까? 무엇보다...”


 

주위에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음에도 주변을 살핀 후 그래도 누가 들을 새라 내 귓가에 입을 대고는 그녀만의 작디작은 비밀을 털어 놓는다.

 


“그 덕분에 다른 반인 키요타카하고도 이렇게 만날 수 있었으니까.” 


 

살며시 짓는 그 미소에 교태가 어린다.


 

“나에겐 키요타카를 알게 된 게 둘도 없는 행복이라고?” 


 

한 점 거짓 없는 순수한 미소. 


 

그것만 보았을 때 이미 학생회장 선거와 관련된 나에 대한 감정은 모두 풀린 게 아닐까 할 정도의 행동.


 

하지만 다르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이 시점이면 으레 나올법한 나를 향해 매일 같이 좋아한다 말하는 호나미의 애정 표현이 빠져있다.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할 그런 점이지만, 반대로 그런 사소한 점이기에 호나미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그녀의 속내를 반영할 터.

 


그런 작은 차이점 하나에서 호나미의 심리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평소 나에 대한 애정을 100점이라 봤을 때 현재는 90점 정도로 평가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잠시 후 오전 10시가 되어 닫혀있던 자동문이 열렸다.


 

“그럼, 들어갈까?”


 

“그래.”


 

호나미의 뒤를 따라 따뜻한 실내로 들어가기 직전.


 

나는 살짝 뒤를 돌아 거리를 바라보았다.

 


얼핏 보기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한산한 주말의 오전 거리였지만...

 


“...”

 


“왜 그래 키요타카?”

 


곧바로 들어오지 않는 나에게 호나미가 돌아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호나미.”

 


우리를 향해있던 시선에 대해 짐짓 모르는 척, 나는 뒤를 돌아 호나미와 함께 케야키 몰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케야키 몰에 들어서니 난방으로 인해 따뜻해진 공기에 휩싸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몇 시까지 시간 낼 수 있어?”

 


“몇 시든 괜찮아. 아무 스케줄도 없으니까.”

 


과연. 시간은 충분할 것 같다.

 


오늘 호나미에게 확인해야 할 3가지를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되뇌며 나름의 우선순위를 정해본다.

 


알아봐야 할 것이 많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겠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찜찜한 느낌이 드는 것을 지울 수 없다.

 


나와의 문제야 어쨌든, 호나미는 원래 둔한 타입이 아니다. 

 


아니, 그동안 보여준 면모들을 보았을 때 오히려 그녀는 예리한 관찰력을 지닌 학생이다.

 


애초에 그렇지 않으면 한 반의 리더를 맡을 수 없으니까.

 


무엇보다 우리의 데이트에 있어 오늘처럼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약속을 잡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에, 호나미 나름대로 내가 다른 의도가 있을 거란 걸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조건에 따라서는 나의 뒤에 자기 반 아이들이 숨어 있다는 것까지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생각이 들자 곧바로 호나미를 흔들기 위해 그녀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기로 했다.


 

“그럼 좀 늦어져도 되려나...”


 

의도적으로 호나미가 들으라는 듯 그런 중얼거림을 입에 담았다.


 

그것만으로도 호나미의 동요를 일으켜 탐지능력을 흔들 수 있을 테니까.

 


“어...? 늦게... 까지?”


 

어떤 상상을 한 것인지 호나미의 얼굴에 당황함을 넘어 순간적으로 부끄러운 빛이 감돈다.


 

하지만,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나는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호나미는 휴일에 주로 뭘 하는지 물어봐도 돼?” 


 

“... 핫!? 아... 그러니까, 내가 휴일에 뭘 하는지 말이지?”


 

“응. 호나미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알면 모두와 친해지는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오늘 하루는 호나미의 루틴을 따라가 보면 어떨까?” 


 

“에에? 그런 걸로 알 수 있는 거야?”

 


“일단 생각나는 대로 말해본 것뿐인데... 이상한 질문이었을라나?”

 


연인 간의 관계에 딱히 이상한 질문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질문이겠지.

 


물론 호나미라면...

 


“음... 그럼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키요타카가 그걸로 좋다면 그렇게 해볼게.”

 


역시나 싫은 표정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승낙했다.

 


일단 첫 교섭은 성공한 듯하군.

 


“음, 그럼... 정말로 내가 주말에 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거지?”

 


“물론이지. 쇼핑이든 영화든 카페든, 다 따라갈게.”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을까?”

 


방금 말한 그 어디에도 해당 사항이 없는지 호나미가 웃었다.

 


아침에 만났을 때부터 살짝은 어색해 보였었는데, 드디어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바로 가볼까?”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뗀 호나미를 따라 나는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케야키 몰 안에는 다양한 상업시설이 있는데, 대부분은 나도 발을 들여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런 나도 아직 체험해 보지 못한 시설은 몇 개 남아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2층에 있는 헬스장이다.

 


“주말만이긴 한데, 여기에 다니고 있어. 운동엔 영 소질이 없어서 조금씩이나마 개선하고 싶어서.”

 


호나미가 학생증을 꺼내며 물었다.

 


“키요타카는 헬스장 안 다니지?”

 


“어, 들어가 본 적도 없네.”

 


“그럼 잘됐다.”

 


“호나미가 헬스장을 다니고 있었던 건 몰랐네. 주말엔 영락없이 다른 약속 때문에 바쁜 줄 알았는데 말이야. 언제부터 다닌 거야?”

 


“음... 무료체험을 9월쯤에 했고 정식회원이 된 건 10월 초부터였나?”

 


벌써 두 달 넘게 다니고 있단 말인가? 비록 우리가 주말시간까지 세세하게 간섭하는 타입의 연인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전혀 몰랐다.

 


“혼자 시작했어? 나한테도 말해줬으면 생각해 봤을 텐데...”

 


등록하고 다니기 시작하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처음 한두 번이 힘들다. 친구나 연인과 함께 시작한다면 그 문턱도 조금은 낮아질 테니까. 

 


그러나 그런 나의 질문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듯 호나미가 당황하는 기색을 띠었다.

 


“앗? 그... 절대 숨기려거나, 다른 뜻은 아니고... 키요타카에게는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달까나...?”

 


“깜짝 놀라게 해준다니, 뭘 말이야?”

 


“그, 그게... 그러니까... 키요타카는 분명 균형 잡히고 단련된 몸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해서...”

 


“...?”

 


뜬금없는 영문 모를 그런 말이 호나미에게서 나왔다.

 


‘단련된 신체를 좋아한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봐도 호나미에게 그런 여지를 남긴 적이 있나 싶을 뿐, 떠오르는 장면은 없다.

 


그야 내가 살아온 화이트 룸의 여자 원생들은 하나같이 어지간한 운동선수만큼 건장한 신체를 자랑하긴 했지만... 딱히 그렇다고 그런 몸을 선호한다거나 한 기억은 없다.

 


아니 그보다도... 

 


나도 모르게 시선을 살짝 내려 호나미의 몸을 바라보았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호나미의 몸매라면 어느 남학생들에게 물어봐도 호불호는 없지 않을까 싶은데...’

 


“아, 키요타카! 지금 이상한 생각 했지?”

 


나의 시선을 눈치 챈 듯 볼을 살짝 부풀린 호나미가 가슴을 손으로 가리며 몸을 틀었다.

 


“어... 미안.”

 


변명의 여지없이 빠르게 인정하기로 한다.

 


제법 실례되는 행동을 했다는 자각은 있지만 그 이상으로 당황스러운 건 호나미의 표정이 오히려 묘하게 기뻐 보인다는 것이었다. 

 


살짝 삐진 듯한 표정도 잠시, ‘풉!’ 하고 웃어버리며 헬스장 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는 호나미에게서 다시 한 번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카운터에 서 있던 여성 스태프에게 인사한 호나미가 학생증을 내밀면서 뒤에 있는 나에 대해 설명했다.

 


“키요타카, 학생증 가지고 있어?”

 


“응.”

 


학생증을 제시하면 상세 기입을 생략하고 간단히 무료 체험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좀 이따가 봐, 키요타카. 지금부터는 스태프분이 설명해 주실 거야.”

 


여자 탈의실로 향하는 호나미와 잠깐의 짧은 헤어짐을 가졌다. 

 


곧바로 남성 트레이너가 다가와 탈의실, 로커, 샤워실 등 대략적인 안내를 해준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고 했다.

 


빠르게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온 나는 먼저 트레이닝 룸으로 향했다. 

 


호나미는 아직 옷을 갈아입는 중인지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막 개점했으니 당연한가.

 


호나미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좋겠지만...

 


트레이너의 세부설명을 사양한 채 아무도 없는 트레이닝 룸을 잠깐이나마 홀로 즐겨보기로 결정했다.

 


우선은 어떤 기구들이 있는지 순서대로 순회하도록 할까. 

 


그렇게 랫 풀 다운, 레그 컬에 이어 버터플라이 머신 등 한 칸씩 옆으로 이동하다 눈에 들어온 것은...

 


‘풀업 머신인가?’

 


턱걸이 정도라면 호나미가 나오기 전에 1분 정도나마 짧게 해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빠르게 나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과거와 비교해 볼 기회이기도 하고.

 


곧바로 휴대전화로 1분의 시간을 설정한 후 손잡이에 손을 얹고 힘을 가하자 익숙한 자극이 몸에 가해졌다.

 


정신을 비운 채 하나, 또 하나 턱걸이 횟수를 늘려가며 시간이 다하기 전 하나라도 더 숫자를 높이기 위해 집중하고 있을 무렵.

 


‘...?’

 


어느샌가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그대로 손잡이를 놓고 바닥에 발을 디뎠다.

 


아니나 다를까 시선의 주인공은 역시나 호나미였다. 

 


탈의를 마치고 내게 다가온 듯 했으나 나를 지켜보던 것은 그 이전부터였으리라.

 


눈이 마주치자 자신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변명하려 하지도 않은 채 자연스럽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와아! 굉장해 키요타카, 진짜 잘하잖아! 그렇게 턱걸이 잘 하는 사람 우리 학생들 중에서도 처음 봤어!”

 


“아니, 아직 30개밖에 안 했는데...”

 


말을 내뱉고 나서야 이 수치 또한 언젠가 스도에게서 들었던 숫자임을 기억해 낸다. 

 


고등학생 평균 턱걸이 개수가 이 수치가 맞기는 한 것인지 확인해 본 적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경솔한 발언이었다고 할 수 있겠군. 

 


“아니, 아니. 진짜 굉장한 거라고! 우리 반 칸자키 군이나 시바타 군도 그 정도는 전혀 무리인 걸?”

 


두 사람 모두 호나미의 반에서는 운동 쪽에 소질이 있는 학생인가.

 


앞으로는 이럴 때를 대비해 적당한 변명거리 정도는 찾아놓도록 해야 할 것 같다. 

 


그건 그렇고.

 


그제야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호나미의 모습을 제대로 눈에 담는다. 

 


“아... 그러고 보니 미안, 키요타카. 조금 기다렸으려나?”

 


비록 아직까지 헬스장에 그다지 많은 사람이 오지는 않았지만, 호나미의 모습은 그나마 있는 헬스장 사람들의 눈이 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차림이었다.

 


헤어스타일은 포니테일로 길게 늘어뜨린 가운데 그녀의 머리카락이 닿는 잘록한 허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탱크탑을 입고 있었다. 

 


하의 또한 트레이닝용 팬츠로 바꿔 입은 것이 눈에 띈다. 늘씬한 다리의 끝에는 하얀 운동화로 스포티한 느낌을 살린 것이 포인트인 듯.

 


몸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 모습에 대부분의 남자라면 눈을 둘 곳을 모를 그녀치고는 과감한 복장이었다. 

 


“저기... 키요타카. 나 말이야 트레이닝복 어울리려나...?”

 



 

아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나의 눈을 피한 채 기대에 찬 물음을 해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끔은 그런 호나미에게 칭찬 정도는 해도 되겠다는, 나답지 않은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반년 사이에 나에게도 조금의 변화는 있는 걸까?

 


백 마디의 칭찬보다도 한 번의 침묵으로 보다 깊은 표현을 남기기로 한다.

 


“...”

 


“어... 키요타카..?”

 


슬쩍 뒤로 돌아서는 나에게 호나미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모습에 아랑곳 않고 조용히 고개만을 끄덕여 나의 의사를 명확히 한다.

 


그것이 그리도 기뻤던 걸까?


 

“흐읍..!”

 


슬쩍 뒤를 돌아보니 이번에는 호나미가 입을 가린 채 뒤돌아서서 그런 탄성을 삼키고 있었다.

 


비록... 지금 내가 보인 모습은 계획하고 내보인 의도적인 감정표현이었지만...

 


그럼에도 나의 감정표현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작은 만족을 느낀다.

 


그렇게 서로가 마주 보지 못하고 어색하게 서 있을 무렵.

 


“앗? 아, 호나미 짱?!”

 


탈의실에서 막 나오던 아미쿠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내가 호나미를 만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만큼 진심으로 놀란 눈치였다.

 


“어, 어째서 헬스장에 있는 거야?”

 


의문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나왔는지 침착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겨우 어색함을 해소할 계기라 생각한 듯, 동시에 한편으론 아쉬운 듯 호나미가 살짝 뺨을 만지며 차분히 대답했다. 

 


“아, 마코 짱. 좋은 아침이야. 휴일에 헬스 다니기 시작했잖아? 키요타카도 좀 소개해 주려고.”

 


“그랬... 구나!”

 


설마하니 연인끼리, 그것도 황금 같은 주말에 운동으로 땀을 빼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틀림없이 조용히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그녀의 속마음을 넌지시 떠보고 있겠거니 생각했을 것이다.

 


호나미는 그런 아미쿠라의 생각을 알 리 없으니 나도 태연하게 있었다.

 


“그렇게 됐어. 잠깐만 방해 좀 할게.”

 


“딱히 방해되는 건 아니고...”

 


아미쿠라가 눈빛으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고 압박했다.

 


쓸데없는 소리란 당연히 저번에 노래방에서 만났을 때 했던 전반적인 얘기겠지.

 


“아야노코지랑 헬스장이라니. 음... 가만 생각해 보면 연인끼리 같이 운동하는 게 그리 이상하진 않을지도?”

 


“응응, 그렇지?” 

 


“음, 사실... 아야노코지는 이런 거 하는 이미지는 아니라고 할까. 사람 많은 곳은 꺼릴 것 같은데 그래도 호나미 짱을 위해서라면 같이 와주는구나 싶네.”

 


뭐,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학생들 앞에서 운동하는 건 실제로 꽤 거부감이 드니까.

 


하지만 호나미와 함께라면 서로 대화를 나누며 어색하지도 않고, 또 타인의 관심을 호나미가 양분해 갈 테니 나로서는 부담을 훨씬 덜 수 있으니까.

 


“그런데 잠깐 나 좀 볼래, 호나미 짱?”

 


순간 뭔가를 알아차린 아미쿠라가 호나미의 팔을 잡아끌고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뭐라 귓속말을 하는 두 사람의 눈이 왜인지 나를 향해 있었다.

 


“아하?”

 


잠시 뒤 호나미가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 아미쿠라에게 눈웃음 지으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인다.

 


“아... 의도한 거구나 호나미 짱. 헤에..? 의외로 대담... 하네?”

 


그런 아미쿠라의 헛웃음과 비슷한 말이 들려오자 궁금증이 들어 물어보았다.

 


“왜 그래...?”

 


“아아, 그게... 호나미 짱이 남자친구를 위해 꽤나 진심이라는 게 복장에서 느껴졌달까. 그렇지?”

 


‘이런, 이런.’ 하는 시선을 아미쿠라가 내게 보낸다.

 


“그렇구나?”

 


확실히 호나미의 복장이라면 좋든 싫든 눈길을 끌 테니까.

 


그 와중에 지금까지 운동을 몇 번이고 같이 했을 아미쿠라가 이제와 호나미의 복장을 보고 놀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 호나미의 복장이 평상시 그녀가 입던 트레이닝복과는 다르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언젠가 나와 함께 헬스장에 올지도 모를 날을 위해 여분으로 오늘의 한 벌을 더 챙겨놓았다.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겠지.


 

“음... 그럼 슬슬 땀을 좀 흘려볼까 하는데. 많이 가르쳐줘, 열심히 해보고 싶어.”


 

언제까지나 이런 이야기만 할 수는 없으니 슬슬 운동을 시작할 것을 넌지시 권한다.


 

그제야 호나미와 아미쿠라도 잠깐의 담소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시작할 요령인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짧게 둘이서 무언가를 이야기 하더니 서로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했다.


 

“우리가 아직 초보여서 그런데 익숙한 러닝머신부터 해도 될까?”


 

“물론 상관없어.”


 

뭐가 됐든 우선은 가볍게 몸풀기 정도만 할 생각이었으니까.


 

이윽고 3개의 런닝머신에 나란히 올라탄 우리는 각자의 세팅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은 슬쩍 두 사람의 세팅을 참조하여 나 역시 같은 속도로 맞췄다.


 

“헬스장은 처음이지? 무리는 하지 마, 아야노코지.”


 

신경 써주는 듯한 아미쿠라의 너머로 호나미가 방긋 웃는다. 


 

두 사람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 후로 얼마간 조용히 러닝머신을 타기 시작했다.


 

서로의 호흡만이 오고 가는 고요함 속에 한 방울씩 땀방울이 흐르며 달리기를 30여 분.


 

설정한 시간이 지나고 러닝머신이 멈추자 호나미가 고개를 들었다.


 

“후우... 힘드네.”


 

자기 입으로 운동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고 말했던 만큼, 아미쿠라보다 더 힘들어하며 깊게 숨을 토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잠깐 물 좀 마시고 올게. ”


 

그렇게 말한 호나미가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아마도 라커룸 옆에 있었던 정수기에 다녀오려는 것이겠지.


 

그렇게 나와 아미쿠라만 트레이닝 룸에 남자 잠시 서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다.


 

지금이라면 어쩌면 와타나베의 부탁대로 아미쿠라의 마음을 떠보거나, 아니면 호나미가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게 된 이후 어떤 반응이었는지를 자세히 물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깐 전화 좀 할 곳이 있어서. 나도 잠깐만 실례할게, 아미쿠라.”


 

“응? 어, 어 그래 아야노코지.”


 

틀림없이 내가 대화를 걸어올 거라 생각한 듯 아미쿠라가 살짝 당황했지만, 그럼에도 순순히 나를 보내주었다.


 

그대로 아미쿠라를 뒤로 하고 잠깐 헬스장 밖으로 나가 자연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헬스장 안으로 따라 들어온 건 아닌 듯하니 틀림없이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리고 그 순간.


 

 

“아야노코지 선배도 참 짓궂다니까~”


 

히히힛 하는 미소와 함께 마치 땅에서 솟아나기라도 한 듯 아마사와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짓궂다니, 뭐가 말이야?”


 

짐짓 모르는 척 한 번은 둘러대 보려 했지만, 당연히 통하지 않는다.


 

“뭐긴 뭐야. 선배 아까 케야키 몰에 들어가기 전부터 내가 따라오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잖아? 정말이지 그렇게나 기척을 감췄는데도 그걸 알아채다니, 완전 짐승이라니까?”


 

“... 칭찬인건가 그거?”


 

“후후 어떠려나?”


 

그런 애매한 표현에 대해 아마사와에게 반문할 뿐, 정작 아마사와가 나와 호나미를 미행한 것에 대해선 추궁을 하지 않았다. 


 

그야 그럴게...


 

“그래서, 호나미에 대한 특이 사항은?”


 

“아아... 시시해, 시시해. 그저 학교 후엔 친구, 또 친구. 친구들 다음엔 3학년 선배들... 그 후엔 1학년 후배들... 정말이지 인기인의 삶이란 참 피곤하네, 선배~”


 

그리고는 헬스장 문을 흘끗 바라보며 아마사와가 덧붙였다. 

 


그리고, 그런 인기 많은 이치노세 선배의 마음을 뺏은 아야노코지 선배. 하아... 정말 죄 많은 남자라니까? 후후후.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아마사와.”


 

나의 타박에도 아랑곳 않고 아마사와의 입가엔 여전히 장난기가 가득 묻어났다. 마치 나와 대화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즐겁다는 듯.


 

“흐응~ 알고 있다고. 선배의 부탁대로 며칠간 이치노세 선배를 따라다녀 봤는데 말이야... 글쎄? 딱히 화이트 룸 측에서 주시하는 시선은 발견하지 못했다구?”

 


“그래?”

 


그런 비밀스러운 대화가 우리 사이에 오간다.


 

아마사와의 능력이면 호나미를 향한 다른 이의 감시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을 터. 


 

아마사와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 이상 호나미에게 꼬리가 붙지는 않았다고 봐야겠다.


 

수학여행의 마지막 저녁. 호나미의 입에서 화이트 룸이라는 있을 수 없는 단어가 나온 후 학교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아마사와를 불러냈다.


 

목적은 내가 없는 곳에서의 호나미에 대한 관찰.

 


언제나 내가 곁에 있을 수는 없으니 호나미의 주변에 대한 확인을 통해 그녀에 대한 화이트 룸의 감시가 존재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목적이었다.


 

아마사와 또한 처음엔 귀찮다는 핑계로 둘러대려 했지만, 호나미가 화이트 룸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는 말을 들은 후 안색이 바뀌며 응해준 덕분이다.


 

‘이 학교에서 물러간 츠키시로야 어쨌든, 시바 선생도 당장은 그쪽으론 신경 쓰지 않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할 무렵.


 

“그건 그렇고,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아야노코지 선배~?”

 


“아니 묻지 마라, 아마사와.”


 

귀찮을 것 같은 예감에 선수를 쳤지만 어차피 물어볼 생각이었던 듯 아랑곳 않고 아마사와가 질문을 던졌다.


 

“이치노세 선배를 지켜보라는 선배의 지시 말인데, 한 가지만 명확히 하고 싶어서. 선배의 그 의도... 정확하겐 ‘감시’야, 아님 ‘경호’야?” 


 

싱글싱글 웃고 있지만 그녀의 말 안엔 가시를 담고 있다.


 

“어느 쪽이든 의미가 있는 건가?”


 

“있고 말고, 선배.”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며 아마사와가 말을 잇는다.


 

“선배의 의도가 감시라면, 난 계속해서 선배를 도와줄 거야. 그야 화이트 룸이 연관된 이상 선배 혼자만의 일이 아니기도 하니까 말이지. 하지만... 그렇네, 난 궁금하단 말이지? 선배가 과연 이치노세 선배와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나에게 이런 지시를 시켰을지 말이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어느새 웃음기조차 지우고 진지하게 물어오는 아마사와의 눈이 어둡게 빛난다.


 

“아야노코지 선배... 조금이지만 변했어. 알고 있어?”


 


 

변했다라...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호나미와의 관계 이후 간혹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도 낯설 때가 종종 있으니까. 


 

가령 아마사와의 말마따나 호나미와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한 발 떨어진 곳에서 호나미를 지켜보며 그녀의 활용 가치를 생각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아마사와에게 말해줄 필요는 없다.


 

진실은 강력한 정보이자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선배는 스스로가 변한 게 없다는 뜻? 모르는 척하는 거야, 아님 진짜 모르는 거야?”


 

“난, 나일 뿐이야 아마사와. 변한 건 없어.”


 

그런 짧은 대답을 하곤 슬쩍 휴대전화 시계를 보는 제스처를 취하며 슬슬 돌아가야 할 때임을 내비쳤다.


 

전화 한 통 하는 시간치고 너무 길어져선 호나미나 아미쿠라가 나와 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무튼, 이야기는 여기까지. 난 이만 들어가 봐야 해. 필요하면 또 연락하마, 아마사와.”


 

“아,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덧붙이는 아마사와였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오늘 나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일지도 모른다.


 

“선배, 알고는 있는 거겠지? 이 연애의 끝이 그리 좋지는 않을 거라는 거 말이야.”


 

한순간 나를 향한 애처로운 눈빛을 아마사와에게서 본 것 같았지만, 곧바로 고개를 돌렸기에 다시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럴지도. 하지만... 역시 잘 모르겠네.” 


 

그것이 헬스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며 아마사와에게 남긴 한 치의 거짓 없는 대답이었다.


 

호나미의 고백을 받아들였을 때 다짐했듯, 결국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을 훔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아마사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분명 그렇게 계획했고, 또 그렇게 될 테니까.


 

그저... 


 

그럼에도 되도록이면 이 연애의 끝에 호나미와 함께 웃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반년 전과는 또 다른 나 자신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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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11권 나오면 전개 보고 더 써보려고 했는데 정작 11권엔 이치노세가 안 나오더라고.

12권까지 기다리려 했는데, 12권도 늦어질거란 말이 있어서 그냥 써 봄.

9권엔 이치노세 분량이 많아서 좀 쓸 거리가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