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 휴가 때, 작은 외삼촌과 어무니가 휴가 데리러 옴.

집에 가서 쉬고 싶었는데, 외삼촌이랑 엄니 생각은 기왕 나온 휴가인거

집에서 멀리까지 다시 올 생각말구 곧바로 놀러가자고 함.


평창 놀러감. 그때 평창 올림픽은 끝나고 페럴림픽은 아직 하고 있었음.


도착하고나서 이거 저거 구경하는데 군인 겁나많았음. 이거 다 평창 진행위원으로 끌려온 무급노예구만 ㅋㅋㅋㅋ 야발 나도 이 근처에 배치되었으면 저랬겠지... 다들 고생이다..




여러 굿즈나 특별관을 한참 둘러보다가 잠시 거리에서

외삼촌과 어머니는 잠시 뭘 찾는지 멈춰 서고


나는 가만히 폰 하고싶었는데 휴가 나오기 전 날 휴대폰 충전을

행정반에서 깜빡한지라, 멍때림.


그러다가 옆에 벤치에서 스킨헤드 떡대인 무서운 형님들이 어떤 개쩌는 미녀 눈나랑 떠드는 거 봄.

영어는 분명히 아니고.. 러시아어인가? 하면서 좀 머엉 하니 있다가


한 5분 뒤? 갑자기 그 누님이 오더니. (이쁘면 암튼 눈나임)


나한테 영어로 말 걸면서 간단한 잡담 좀 함.

(영어를 못하기에 의역? 으로)


상대 "혹시, 너 군인이니?"

본인 "예스. 아임 코리안 아미"

상대 "음, 계급이 뭐야?"(였다고 추정)

본인 "어.. 아임 어 솔져(일병을 몰?루 라서 간부말고 병사라는 의미로)"

상대 "오 그렇구나. 혹시 종교를 믿니?"

본인 "음, 믿지는 않지만 관심은 있어"

상대 "정말? 혹시 부대에 그런 시설도 있니?"

본인 "church 있지"

상대 "그렇구나.. ~~~~~인데 ~~ 일까?"


이후로는 사실 잘 이해하지도 못 했으면서

적당히 추임새만 골라서 함. 뭐, 지금와서 기억하자니 기억 안 나는 거 뿐이지

종교색채 묻은 대사는 아녔음.


상대 "그렇구나..  혹시, 내가 너를 위해 기도를 해 주어도 괜찮을까?"

본인 "그래주면 고맙지?"


그 대답이 끝나자마자 제 손을 자신의 가슴팍 근처에 끌어안으며, 눈을 감고 살짝 묵념하는 듯한 고개 각도로, 엄청 속삭임.

빠져드는 분위기가 이런 것인가.. 싶더라.

영원과도 같은 찰나에 이별을 고하는 아멘 이라는 말이 나오고 나서도, 아주 잠시동안 내 손을 잡고 있다가 놓음.


아주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흐르다가,

상대 "좀 아쉬운데 혹시, 트위터 아이디 알려줄 수 있을까?"


뭔가 기쁘고 좋으면서도

나 혼자만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괜히 나중에 개쪽 당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까지 할 리가 없을텐데 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나는, 순간 아무생각 없이 말을 내뱉음.


"나 트위터 아이디 없는데."



지금 같으면 '트위터 어려워서 아이디는 지금 없는데, 한번 시작해볼께. 아마 ☆♧♤& 라는 아이디로 만들거야. 내가 만들고 나면 친추 보낼테니 네 것을 알려줄래?' 같은 식으로 넘겨야지 싶긴 한데

내 인생 다 돌아보면 옛날에도 저런 병신짓 한 게 있어서

나는 진짜 아무리 직구로 말해도 병신같이 대답하는 일이 있음.



인생을 반복해도 눈치가 드럽게 없던 멍청이라 

리트해도"나 트위터 아이디 없는데" 이럴 거 같음.



상대 "그래? 상당히 아쉽네."


그렇게 대화가 끝.

그 상황이 되고나니 

멀리 떨어진  떡대 아저씨랑 옆에서 나 기다리는 엄니가 눈에 들어옴.

이제 진짜 끝이구나 라는 생각에 괜히 한 마디 함. 


본인 "저기, 있잖아!"


내가 부르니까 깊은 속눈썹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속 안까지 들여다보는 듯한 미소에

존나 위축 되면서 마지막으로 왠지 떠오른 말을 함.


본인 "혹..시..  블랙핑크 알아?"

상대 "??"

본인 "아, 그.. 한국에 나름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걸그룹이거든.. 그.. 네가 그 멤버 중 가장 예쁜 멤버닮았다고 생각해. 너 예뻐.."


쿡 하고 웃더니 생긋 웃으며

"Thanks."


그 한 마디 하고는 스쳐지나갔음.




어머니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돌아가는 차에서

뭘 사람을 기다리게 하느냐 하며 궁시렁 거리셨고

외삼촌은 너 영어 잘 하네? 무슨 대화 한거야? 쟤 뭐래.


별 거 아니고 그냥 종교 믿냐, 부대 내에 교회는 있냐 같은 거 물어보고는 건강하라 빌어주겠다고 주기도문 외운게 끝이에요 했더니


너 그걸 이해를 하냐 좀 치네 하면서 비행기를 태우시고 어무니는 옆에서 또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그랬음.


부대에 복귀한 이후 그런 일이 있었다고

선임에게 이야기를 꺼내봤더니


그거 썸 아니냐? 부채질을 하는데 잘 생기지도 않고 빡빡이였던 나한테 그럴리가 없다고

그냥 군인이 보여서 그랬던 거 아니겠습니까.

선임은 평창에 지원나온 군인이 한가득이지 않냐고 그 중에서 굳이 너한테 말을 건 건데? 라고 했는데..

기분은 좋아졌지만 어쩌겠냐 지나갔는데.



왜 먼저 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상대가 진짜 썸을 타려한건지 아닌건지...







사진은 그 때 헤어지면서 그 눈나가 줬던 선물

뭔가 타먹는 거라고 하던데 도대체 뭔지 몰라서 냅두고 나서 보니, 저거 16.10.17 이더라?

제조일자야 유통기한이야 몰라서

그냥 추억으로 갖고만 있음.


다시 한 번 친구먹게 만나보고는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