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나 영미권 웹을 좀 깊이 돌아다녀봤다면 리무브 케밥이 뭔지 들어볼 기회 정돈 있었을 것이다. 왠 남자들이 나와서 유치뽕짝인 멜로디에 저화질 영상들이 흘러지나가고 요상한 노래를 하는 영상. 쓸데없이 근엄한 아저씨의 표정에 조금 실소가 나오는, 다른 나라사람이 보기엔 별거 아닌 영상이다.

하지만 리무브 케밥은 그냥 웃기라고 만든 노래가 아니다. 90년대 중반에 태어났다면 역사속에서만 봤을 유고 내전에 얽힌 상흔이다. 쓸데없이 근엄한 아저씨들은 자국 세르비아의 우월함과 적국의 병사들에게 보내는 살해 협박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장 격렬하게 싸웠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무슬림들에 대한 적의가 담겨있다. 덕분에 노래는 케밥밥(무슬림) 제거라는 이명을 얻게 된것이다.


유고 내전중 이렇게 상대 진영을 모욕하고, 아군의 사기를 북돋기 위한 전쟁 가요는 구 유고지역의 대중(특히 자기 민족을 위해 군사활동에 참가게된) 사이에서 널리 퍼졌다. 세르비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구분 할것 없이 유고 내전의 한복판이었던 모든 곳에서는 흔한 현상이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구 유고연방의 정치적/사회문화적 특수성이 작용했다. 소련 공산권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던 동부 유럽에서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티토를 중심으로 한 파르티잔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정권은 소련과 끊임없이 대립했다. 이러한 대립에 반비례하여 유고슬라비아는 다른 동구권 국가들과는 다르게 서방세계와 더욱 개방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여기에 공산국가 중에선 비교적 자유로운 문화적 분위기가 더해져 유고슬라비아는 서구권에서 유행하는 락, 메탈과 팝송들을 수월하게 접할 수 있었고 이는 유고의 대중가요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유고 내전이 발발하자 이렇게 형성된 구 유고지역의 대중 가요 기반은 그대로 전쟁가요들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어주었다.





보스니아 포병대(Bosanska Artiljerija)도 그런 기반을 가지고 탄생한 노래다. 이 곡은 1992년 Croatia Record에서 발매된 앨범 Bosno Moja, Jabuko에 수록되어있다. B사이드, 4번째 트랙이다. Muhamed (Hamo) Brkić가 작곡했으며, 이름에 무하마드가 들어간데서 알 수있듯이 보스니아의 무슬림계다. 


Muhamed (Hamo) Brkić은 1992년 7월경부터 투즐라 시(市)에 거주하는 도중 해당 앨범의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이후에도 2005년까지 다른 멤버와 듀엣으로 활동하며 애국/민족을 바탕으로 한 음악활동을 이어나갔다. 이후 2013년에 음악계에서 은퇴하고 스웨덴으로 이주해 여생을 보내고 있다.


해당 곡의 가장 큰 특징은 보스니아 지역의 전통적 곡조에 기타를 동반한 서구권 팝음악이 결합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동시기 다른 구 유고 연방국가들의 전쟁가요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으로, 앞서 언급한 리무브 케밥또한 세르비아 지역의 민요적 특성이 결합되어있다. 때문에 일반적인 군가라기보단 가요적 특성이 크게 두드러진다. 이러한 결합은 단순히 전통적 곡조와의 결합에서 끝나는 것뿐만 아니라, 보스니아 지역의 경우 이슬람의 종교적 음악과 결합하여 매우 특이한 양식을 보이기도 했다. 아래 Mi smo muslimani(우리는 무슬림들이다)가 대표적인 예시다.






유고 내전의 전쟁 가요는 팝송이 크게 발달한 20세기 말의 음악이 정치적/군사적 배경과 결합하여 어떠한 형태를 보이게 되었는지에 관한 대표적 예시다. 이 노래의 곡조는 당시 지역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나 가사는 명백하게 아군의 사기 진작과 결합, 반대 진영에 대한 적개심과 위협을 담고있다. 가사의 그것은 일반적인 군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군가적 형태를 띄지만 그 바탕은 민간의 대중가요에 기반을 둔 전쟁 가요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을것이다.


어쩌면 만약 한국에서도 차후 큰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거나, 세계 3차대전 등 대규모 분쟁이 발생한다면 지금의 가요와 결합한 전쟁 가요들이 등장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가장 좋은 일은 그러한 노래가 불릴 일이 없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정보 출처
https://www.discogs.com/Various-Bosno-Moja-Jabuko/release/9048764
https://barikada.com/muhamed-hamo-brkic-predstavljan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