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명확한 어느 시간대에 냉기를 느끼고 잠에서 깼다.

바닥에 불을 넣지 않고 잤다고 생각했는데 이불 아래를 만져보니 난방은 켜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 냉기의 출처는 어디일까, 이불을 정리하던 찰나에 창문이 열려 있음을 직감했다. 

 나는 창문 앞에 서서 밖을 살폈다. 비가 오고 있었다. 흙이 젖은 모습을 보니 적어도 몇 시간은 내린 것 같다. 그럼 난 빗소리를 몇 시간 동안이나 듣고 있었는데도 늦게 일어난 셈이다. 밤늦게까지 뭔가를 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끼며 하염없이 바닥을 보고 있었는데 습기를 머금은 흙을 보며 본능적으로 혐오감이 얼굴에 가득 찼다. 비를 맞은 흙은 밟는 즉시 몸을 뒤덮고 나에게 자신이 품은 오물을 남김없이 떠넘길 것 같은 인상을 보이고 있었다.

 비 때문인지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없는 거리,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지 않으니 희미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 거리에는 동물들조차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식물들뿐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보도블록 사이에 자라난 잡초들을 보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저 잡초들은 평소에는 만인에게 밟히며 지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다. 거리는 비었으며 오직 그것들만 남아있다. 비가 올 때 모든 이보다 낮은 잡초들은 추레한 모습을 벗고 본래의 아름다움을 찾아갔다. 신발 때문에 잎이 찢어지긴 했지만, 그런 잎이라도 활용해 빗물을 최대한 받으려고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나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들은 하늘을 가리고 작은 것들에게 돌아갈 햇빛을 빼앗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아니었다. 나무도 똑같이 잎을 통해 받고 있었고 필요한 만큼만 받고 아래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비 오는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서로 다른 요소와 특징을 지녔어도 근본은 모두 같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다른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받으며 양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늘에 가장 가깝다고 독차지하지 않으며, 모든 이보다 낮다고 권리가 박탈당하지 않는 것이었다. 흙은 오물만 품지 않았다. 모두가 충분히 챙긴 뒤에 나타나 자신의 몫을 챙겼고, 그것마저 모든 생명에게 돌아갈 것이다. 흙은 생명의 요구에 물을 내놓으며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는다. 편견을 가진 쪽은 나였다. 나는 잎에서 잎으로, 잎에서 바닥으로 흐르는 빗물을 보며 냉기 속의 온정을 느낄 수 있었다.

 비가 그치고 다음 날 아침. 곳곳에 흙탕물로 가득 찬 웅덩이가 생겼다. 사람들은 버스 정류장을 향해 웅덩이를 피해 다니고 있을 때 나는 웅덩이에서 맑은 하늘을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