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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끝에 서린 연기 따라

포도순이 기어나가는 밤, 소리 없이,

가물음 땅에 쓰며든 더운 김이

등에 서리나니, 훈훈히,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아오르노나.

가쁜 숨결을 드내쉬노니, 박나비처럼,

가녀린 머리, 주사 찍은 자리에, 입술을 붙이고

나는 중얼거리다, 나는 중얼거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다신교도와도 같이.

아아, 이 애가 애자지게 보채노나!

불도 약도 달도 없는 밤,

아득한 하늘에는

별들이 참벌 날으듯하여라.

-정지용, <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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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작은 생명]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바다는 항상 주변을 밝게 만드는 소녀였습니다. 고운 갈색 머리카락에 쪽 빛의 큰 눈망울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죠. 바다는 활달하고 씩씩한 성격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알 수 없는 열병이 이 작고 연약한 생명을 덮쳤습니다. 바다는 며칠 동안 높은 열에 시달렸고, 가족들은 걱정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병원 검사 결과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은 최선을 다하겠지만 준비는 되어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침대에 누운 바다의 얼굴은 땀에 젖어 창백했지만, 잠든 모습은 마치 천사 같았습니다. 곁을 지키는 부모님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딸의 작은 손을 꼭 쥐었습니다. 병실은 애틋한 사랑과 간절한 기원으로 가득 찼습니다.   


바다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갔고, 의식을 잃은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숨소리는 미약해져만 갔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족들은 바다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2장. 기억 속에 핀 꽃]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와중에도 바다의 마음속에선 아름다운 기억의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한 때 그녀가 정성껏 가꾸던 정원의 장미처럼 선명한 추억들이었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를 반겨주시던 할머니의 포근한 미소, 바다가 구워드린 쿠키를 맛있게 먹으시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 강아지와 뛰놀던 행복한 오후, 가족 캠핑 때 아빠와 함께 모닥불 앞에 앉아 나눴던 즐거운 대화가 주마등처럼 이어졌습니다. 


바다의 짧지만 찬란했던 인생은 사랑과 우정, 즐거움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빛나는 순간들이 지금 그녀의 영혼을 감싸주고 있었죠.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그 온기는 바다에게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문득 바다의 입가에 평온한 미소가 어렸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숨쉴 찬란한 꽃들을 가슴에 품은 채, 바다는 천천히 눈을 감았습니다.


[3장. 영원한 봄]


바다가 마지막 숨을 거둔 날, 세상은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장엔 하얀 국화꽃이 가득했고, 검은 리본이 애도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영정 사진 속 바다는 익숙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에 보는 이들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죠. 슬픔에 잠긴 부모님은 딸의 영원한 잠을 지켜주었고, 친구들은 각자 그녀와의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며 이별을 고했습니다. 


바다를 사랑했던 이들의 가슴속엔 그녀가 남긴 꽃씨들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비록 바다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 씨앗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바다가 전해준 사랑과 온기는 남은 이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한 봄으로 살아갈 테니까요.


하늘나라로 떠난 바다는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을 것입니다. 밝고 건강했던 시절처럼 자유롭게 뛰놀 수 있겠죠. 세상의 모든 아픔에서 벗어나, 바다는 이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바다야, 우리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함께 해줘. 너의 삶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감동을 잊지 않을게. 천국에서도 우리 곁을 지켜주길 바라며, 우리도 너의 사랑을 이어가며 살아갈게. 영원히 우리의 봄으로 남아줘, 바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