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나 테무는 구실에 지나지 않아.


이미 뭐 다 알고 있을 이야기고 뻔한 소린데 뭘 새삼스럽게 하느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정자들의 국민관(觀)임.


쟤들 하는 워딩이 뭐야. '알리 테무에서 원체 위험한 물건들 막 기어들어오니까 그런 위험한 거 사지 마! 그리고 우리가 정해준 틀에 맞춰야 해외물품 들여올 수 있어! 앞으로 해외구매라는 것도 정해준 장소에서 정해준 방법에 따라서만 해야 해!'


이와 같은 조치는 전근대적인 가족국가관에 기초했다고 봐도 무방해. 최근에 'Gyong'이 담화에서 뭐라 했어. '우리 성심을 니들이 못 알아주니 섭섭하다'


대부분의 느그나라 사람들은 아마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을거야. 어디서?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야, 아빠/엄마/선생님이 다 너 잘되라고 그렇게 하고 했는데 왜 너는 부모/선생님 맘을 몰라주냐. 섭섭하다.'

'에비지지 저런거(꾀돌이/아폴로 등등) 먹는거 아냐, 저런 곳(PC방/노래방)은 가는 거 아냐'

 

물론 가정 환경이나 학교 환경에서는 미성숙한 미성년자들에 대한 양육 내지는 교육이라는 차원에서, 사회 규범 내지는 도덕 함양 차원에서의 '단속'이 이루어질 수 있어. 그리고 그러한 훈육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부모 또는 교사라는 어떠한 사회적 내지는 태생적 권위와 자격을 가진 이들이고. 

근데 정치와 정책이라는 것은 도덕 내지는 사회적 규범의 주입과는 다르단 말이야. 공청회니 여론 수렴이니 하는 것이 괜히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왜냐, 의사결정 능력이 있는 개개인들이 모여 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키고자 만들어진 것이 사회요 국가니까. 

즉, 충분히 의사표명을 할 수 있고, 자기 의무를 다 했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일반 대중은 훈육의 대상이 아니라 협의의 대상이야. 투표라는게 왜 있겠어. '이 사람을 대표자로 내세우려 하는데, 이런 법안을 입안하고자 하는데 님들의 의견을 묻습니다' 하는 거잖아.


근데 ㅈㄴ 모순되는게 겉치레로는 저렇게 '의견을 여쭙습니다. 협의해보시죠' 해놓고서는 실질적으로는 어버이수령님, 위대한 영도자 동지 마냥 '다 니들 잘되라고 이렇게 저렇게 해놨으니 그대로 따르기나 해' 하고 있단 말이지? 그게 뭐 그대로 따랐을 때 실제로 일반 국민대중의 복리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이면 또 모르겠는데 이번 직구사태가 과연 일반 국민대중의 복리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일까? 


'다 니들 잘 되라고 이래저래 했고 위험하니까 이건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고 누구랑 놀지 마' 한 대표적 사례가 1945년 전까지의 일본제국이었어. 솔직히 이건 정떡같아서 비껴가고싶은 이야기인데, '국체' 운운 했을 때 솔직히 기겁했거든. '국체'를 단순히 국가체제로 생각하면 오산이야. 국체라는 말의 근대적 원류는 일본제국의 국체론, 즉 국체의 본의에서 정의한 천황제 국가의 심장인 '만세일계의 천황'을 뜻한다고. 자유주의니 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외부의 사상적 조류에 맞서 일본제국의 중심을 지키는 것은 바로 만세일계의 황통을 계승하는 천황과 천황제이다 라는 것이 국체론의 핵심 사상인데 홍범도 흉상 이야기 할 때 공산주의가 어쩌고 하면서 국체 운운하는 것 자체가.... 그분들의 사고구조 자체가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는 알겠지?


아무튼 나는 여기서 이데올로기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야. 핵심은 이번 직구 사태를 통해서 이 친구들이 자신들의 전근대적 가부장적 가족국가관을 드러내며 국민대중 보기를 그냥 어디 너댓살 먹은 어린애 보듯 하는 것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사실이라 봐. 따라서 이 조치는 단순히 뭐 저 치들이 KC 인증을 영리업체도 가능하게 해놨으니 지들 잇속을 채우려 하는 것 아니냐, 하는 단편적인 정경유착 내지는 부정부패 프레임으로 보기보다는 정당한 권리와 의사결정 능력을 갖고 있는 우리를 '여전히 훈육의 대상으로 여겨 못난 자식 취급하는' 구태의연한 전근대적, 가부장적 정부의 통제로 보아야 한다고 봐.


역사적으로 혁명으로 자빠진 정권들은 대부분 공통점을 갖고 있어. 국가 구성원들의 복리를 증진시키기는 커녕 훼손했기 때문이지.

권위주의적인 정권들이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국민 구성원들을 잘 통제 내지는 억압한 것도 있겠지만, 어쨌건 기본적인 복리를(적어도 그 동네 기준으로) 유지시키기 때문인 경우가 많아. 그런 의미에서 1917년 러시아에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에게로' 라는 구호가 나온 것은 지금까지 짜르와 보야르 나리들을 아버지, 큰 어른으로 여겨 굽히고 살아왔는데 이 양반들이 밥 먹여주기는 커녕 굶어 죽겠으니 밥 좀 주세요 하니 총으로 쏘질 않나, 전쟁에선 개발리기만 하지, 임금은 쥐꼬리만큼 주는데 일은 빡시게 굴려대니, 차라리 우리가 우리의 대표로 구성한 소비에트에게 권력을 위탁해서 인민대중통치를 하겠다는 소리였다고.

핵심 요지는 간단해. 아버지라고 모셨는데, 자식 굶겨죽이고 패죽이는 아버지가 어딨냐.


그랬다보니 스탈린 이후 소련에서도 정책 시행할 때는 일반인민의 눈치를 봤다고. 인기 없거나 결과가 거지같으면 철폐되고 그에 따라 장관 사임하거나 목 잘리고 그랬다고. 그리고 실제 실무 정책 입안할 때는 비영리 전문가 조직들 (대표적으로 환경보호정책) 자문도 받아가지고 수립하고 그랬었어.


생각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주저리가 길었는데,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긴 이거야. 직구규제는 단순히 뭐 정경유착하는거 아니냐! 우리의 구매의 자유를 침해한다! 하는 수준의 문제를 넘어서서 저어기 계신 분들의 구태의연한 가부장적 국가관에 기초하고 있기에 이 국가/국민관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언제든 다시 알리/테무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트집삼아서 또 다른 형태로 일어날 수 있다고 봐.  



잠깐 숨 돌릴 겸 옛날 위장도색 공임작업했던거 다시 보고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