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사랑은 끝났다.


그토록 내 마음 밑바닥까지 불태웠던 그녀는


더 이상 떼울 장작이 없다는 걸 알아챘는지


너무나도 쿨하게 떠나버렸다



촌에서 자라 도회의 감성에 열등감을 가졌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과분하게 유행을 달리던 총을 제 깜냥도 재지 못하고 만났던 거였을까


나 자신만 빼고 모두가 답을 알던 결과를 향해 갔던 것 뿐이겠지.



정말 많이 사랑했었다.


어느 누가 자기 사랑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겠냐마는


정말 목숨을 걸었었다. 진심이었다. 마지막 사랑인것 처럼 매달렸었다.


그렇게 바스러 질 사랑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열심히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한동안 아파야 할 만큼 아파했을 즈음 다음 사랑은 찾아왔다



첫인상은 꼭 독일 시골마을 입구의 벤치에서


도도하게 책을 읽고 있을 만한 느낌이었지만


그녀가 건내주었던 첫 손길은 의외로 따뜻했었다.


왠지 고풍스러우면서도 우아한 매력이 있던 그녀를 왜 여태껏 몰랐을까 자책하듯이


우리는 빠르게 서로에게 빠져들어갔다



처음엔 그녀도 그렇게 꾸미고 싶지 않아했었다


각자 떨어져 살았던 시간이 긴 만큼 나름대로 자기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었을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서로를 위해 생각보다 더 노력을 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마치 그렇게 했어야 했던 것을 너무 늦게 알아챈 것 처럼 서로를 빠르게 변화시켜 갔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되는거야?"


라고 몇번을 물으면서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그저 싫지만은 않아하는게 느껴졌다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사랑받는다는게 내심 좋았겠지.


하지만 그녀를 바꿔가는 그 이면에서 나의 죄책감은 날로 커져만 갔다


무리해서 모딩을 강요하는게 아닐까.


아직 예전의 그녀를 내 마음에서 다 걷어내지 못한걸까.


어쩌면 난 옛날 잊지못한 그녀의 모습을 지금 이 헌신적인 사람에게 투영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불안감이 무색하게 그녀는 더욱 아름다워져 갔다




"예뻐?"


"…"


"맘에 들지 않는거야?"


"아니.. 너무 아름답고 고마워서 어떤 말로 감사의 표현을 해야하나 머뭇거렸던거 같아"


"… 그거면 됐어 나도 좋아"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토록 그녀의 아름다움을 서로의 노력으로 끌어낸 것 같아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뒤쳐지지 않는 매력까지 갖췄다고 느꼈다


솔직히 내가 해냈다고 느꼈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서로를 만끽했다


그리고 그렇게 내 자만심도 다시 자라났다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얼마나 한 자리에 머물 수 없는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지.


그렇게 아름다운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옛날 총으로 모딩을 할 거였으면 차라리 M4가 낫지 않았을까? 치장할 장신구들도 훨씬 더 다양하게 어울릴텐데.'


'DH 모드라면 그래, 화 M4라는 최적의 선택지가 있는대도 왜 굳이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야하는 거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는 내 눈은 이미 다른곳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내 스스로에게 핑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차라리 부정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홀려 너를 배신하겠다고 말해버리자.


내가 어쩔수 없는 나쁜놈이라고 말해버리자.


넌 잘못이 없다고 말해버리자.


난 너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말해버리자.


나를 욕하고 떠나보낼수 있게.


가만.


잘못하는 건 내가 맞잖아.


뭘 상처를 덜 주는 척 위선을 떨고 있는거지?


날 떠나던 날,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미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그녀는


내가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게 분명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죄책감은 덜했다.


하지만 딱 한번 뒤돌아봤던 그 눈빛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어디에서도 겪어본 적 없었던 감정.


새로운 그녀의 느낌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정말이지 모든 걸 다 가지고 있는 듯한 총이었다.


단 하나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모딩, 접철식 스톡, 홍승 숏스코프, 그리고 DH 모드가 가능한 M4 라는 점까지


그 무엇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아니 내가 무슨 공을 쌓았다고 이런 총을 만나게 되었나.


그저 어안이 벙벙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드디어 돌아와야 할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래 역시 모딩을 할려면 M4지. 이보다 더 확실한 선택이 어디있겠어?'


'5.56mm 를 쓰는 DMR 이라니. 긴총과 짧총의 느낌을 한자루로 해결할려면 이게 갑이지'


그래 이게 최선이야.


이게 최선이라고.


진짜 이렇게 한 모딩으로 이만큼 많은 사진을 찍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뭔가 나 자신을 계속 설득하기 위해선 이 총의 아름다움을 계속 찾아야만 한다는 강박이 점점 생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뭔지 모를 이 작은 공허함이 점점 커져서 다시 또 어리석은 생각을 할것만 같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그녀를 앞에 두고도 뭔가 이상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무더운 여름날


결국 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잊지 못한다는 것이 있다는 것.


합리라는 핑계를 대고 그녀를 더 알아볼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나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는 것.


끝까지 후회하지 않을 사랑을 해보지도 않은 채 


그녀를 너무나도 쉽게 떠나보낸 것.


줄곧 불편했던 그 감정이 후회라는 것을 인정한 그 순간,


비로소 떠나던 날 Sig 553 의 그 눈빛이 무슨 의미였는가를 깨닫고야 말았다.


그래, 


결국 돌아올 운명이었다는 걸 그녀는 이미 느끼고 있었던 거겠지.


그때가 끝이 아니었다는걸 그녀는 알았던 거겠지.


어떻게 알았을까?


너무나도 궁금한 것이 많다.


만나서 물어보고 싶은 말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다시 만난다면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채운다.


만나면 지금까지는 넘어설 수 없었던 세상 너머를 찾아갈 수 있을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녀를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