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텐 러시아 친구가 두놈이 있다.

정확히는 한 패거리긴 한데 가장 대화를 자주 하는 두놈이 있는거지.


17년도에 겜 하다 만난 놈들인데 그 중 한놈은 그냥 평범하게 겜하면서 지내는 전형적인 한국 고딩 보는 느낌이였어.

얘가 사진 찍는 취미도 있는지라 지가 친구들이랑 찍은 사진하고 풍경 사진 보내줬었는데 괜찮았었다. 유감스럽게도 그 사진 몇장은 날아가고 없어졌다. ㅜㅜ

그 친구의 이름은 A라고 적을게.

다른 한 친구의 이름은 M이라 적을게. 애는 평범한 대학생 게이머였어.

둘 다 페이데이2를 오질라게 하던 페창인생들이였는데 당시 나도 상당히 좋아하던 게임이라 어쩌다보니 공방에서 만났다.

M은 영어를 상당히 잘했어. 그래서 걔를 통해 그 러시아 게이머 패거리를 알게된거지.

우크라이나 경찰 현역이던 이름 모를 아저씨부터 집 안에서 담배피면 안된다고 10분에 한번씩 자리 비워대던 다른 A, 밈에 환장한 17살짜리 S까지 별 놈들 다 모인 패거리였어. 해외던 어디던 사람 모이는덴 다 비슷한건가 싶더라 ㅋㅋ


아무튼 그렇게 한참 겜하면서 뿍짝대고 잘 놀다가 대충 19년도 후반즘에 M이 군에 끌려갔어. 제대로 기억은 나질 않네.

포병 끌려가서 탄도계산하고 뭐 했다는데 지 군대 썰은 자세히 안 풀어주려고 하는 거 보면 학을 뗀거같더라.

그렇게 개고생하다 21년도 4월즘에 전역했어. 딱히 즐겁다느니 사회는 좋다느니 뭐 이런 얘기 없이 담담히 나오던거 봤을땐 안 힘든거 같았는데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니 뭐...

한데 이 러시아 패거리가 내가 밀딱인걸 잘 알거든. 특히 M은 나랑 러시아,소련,대한민국 개인화기랑 개인장구류 등으로 간단하게 토론하고 서로 평가해보고 하는걸 좋아했어.

걔는 지가 군에 있을때 지급받은 물건 위주로 알려줬었어. 넝마쪼가리 쓰레기 고르카1 부터 6sh112 몰리 전투조끼등등... 풀도 참 넓드라고.

대충 사진 보면 알겠지만, 최신 장비랑 남아도는 구형장비 막 섞어 준단거 같더라고. 어디서 많이 본 체계같은데...ㅋㅋ

여담 하나 적자면 러시아 px라 해야되나? 군 부대 내 샵에선 저런 디지털 플로라 신형 장비도 얼마든지 푼돈으로 구매가 가능하대. M이 그렇게 나한테 줄 선물을 한 세트 쟁여놨는데 지금 러시아 상황때문에 배송을 못 하고있다 하더라구.

뭐 이런식으로 나랑 M의 흥미를 자극하는 얘기들도 이거저거 하면서 잘 지냈지. 서로 vk 친추도 하고 연락도 자주했고 본명까지 알 정도였으니 잘 지낸거라 생각해.

다른 러시아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놀았지. A가 헌트 쇼다운 하자고 꼬셨었는데 해볼걸 그랬나. ㅋㅋ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21년도 후반즘 되었을때, A도 징집대상이 되고 결국 군대에 갔어.


그때까진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남 얘기인줄 알았어. 당장 서버에 우크라이나 경찰 아재 있단 윗 얘기만 봐도 서로 막 차별없이 잘 지내던 사람들이였고, "푸틴이 미친놈이지만 정규군 존나 때려붓는 전면전은 안낼걸 ㅋㅋ" 하던 애들이였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이 미친놈이 진짜로 우크라이나를 쳤고, A는 우크라이나로 끌려갔다.


소식 처음에 들었을땐 핏기가 싹 가시더라. 끌려갔단 소식 들었을즘에 내가 그 전쟁 관련 뉴스 들은게 하르키우에 막 미사일 갈겼을때 였으니 만감이 교차했어.

"그럼 내 친구도 침략자인가?" 하는 생각부터 먼저 들더라고.

소식도 끌려간 직후에 남기고 그 이후로 몇달동안 연락도 없었으니 난 얘가 진짜로 죽은줄만 알고 한동안 아주 우울하게 지냈었다.

어떻게 보면 겜으로 만나서 랜선으로만 연락하고 지낸 놈인데 왜 그렇게까지 감정을 느끼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겐 몇년을 알고 지낸 애가 전쟁에 끌려가 소식이 끊긴 상황이라 정말 머리가 멍해지더라. M도 얘가 어떻게 된건지 모르고 살았고...


그러다 어느 날 연락이 왔어.

나한테 직접 온건 아니구, 나보단 더 연락 자주 하고 지내던 M이랑 연락하면서 나온 얘기더라고. 얘도 포병으로 배치되어서 탄약만 주구장창 만지고있대.

자긴 전쟁 초반에 포 조금 쏘다가 후방으로 재배치되더니 거기서 계속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대. 왜 그런건가 했더니 자주포 탄약이랑 연료 보급이 안되서 죽치고 후방에 있던거랜다.

난 반가운 마음과 더불어서 "이 새끼 민가에 포격날리던 부대인데 구라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즘에 그게 말이 되냐고 떠봤더니 디코방에 얘 초대해서 같이 대화하게 해주더라고. 휴가 나온 상태여서 그게 가능하댔어. 심지어 휴가 복귀하고 이틀 뒤에 또 5박 6일 휴가 일정 잡혀있단데서 난 납득했지.

적으면서 가장 최근 근황 질문도 날려놨는데 하면서도 아무 일 없길 강하게 빌게 되더라. A나 우크라이나 전역에나...

사진 찍는 취미는 여전한지 지 셀카를 이렇게 분위기 있게 보냈더라. 사진상으론 안 보이겠지만 표정은 멍 해보였어.

얘가 중3일때부터 알고 지내던 내 입장으로썬 살아있단게 너무나도 다행이였어. 그 애기얼굴이던 애가 전투장비 입고 저러고 있는거 보니 좀 심란하기도 하고.

근데 그 순수하고 장난기 많던 애가 말수가 상당히 줄어있더라고. 말버릇도 하나 생겼는데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 를 잊을 만 할 때마다 한번씩 하던거 같다.

단순히 "포병이니 거기 있지 임마" 라 하기엔 함축된 의미가 상당한거 같아서 차마 그런 개드립도 못 던지겠더라고. 

전역 2달 남았다고 하던데 그 동안 쭉 시간만 죽이다 나오면 정말 좋겠다. 그 전에 전쟁이 끝나면 더 좋을 거 같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측이 한 민간인 학살들이나, 무차별 포격으로 민간인들이 잔뜩 죽어나가는 뉴스 보다 얘가 하는 일 보니 증오스럽다가도 "얘는 끌려와서 명령듣고 하는건데 뭔 죄겠냐" 싶은 생각 들더라.

근데 "그런 논리로 치면 러시아군들 모두가 명령 받고 하는건데 쟤는 니 친구니까 불쌍한거냐" 라는 소리 들을까봐 적어둔다.

나는 러시아가 이 전쟁은 답이 없다고 어느날 전군철수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정말, 정말 좋겠어.

저 정신나간 새끼가 젊은이들 갈아넣어서 내는 이 전쟁을 보고 "러시아는 위대하다 우크라이나는 받아들이고 GG쳐라" 라고 할 미친놈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푸틴 이 미친놈이 자기가 저지른 짓에 크고 확실하게 대가를 치르길 바라고있어.

당장 멀리 갈 거 없이 이 전쟁때문에 난 오래 알고 지낸 친구 하나를 잃을 뻔 했어.

"최전방에서 총 안쏘는 포병인데 님 감성팔이 자제좀요" 라 하기엔 러시아군 상황이 얼마나 씹창인지 챈럼들도 알테니 포병으로 징집되었대도 난 안심하질 않았으니까.

좀 더 일찍 발발했으면 다른 친구도 잃을 뻔 한 상황에서까지 전쟁을 옹호하는 미친 전쟁광은 아니란 말이지.


필력이 후달려서 내가 러시아군을 옹호하지 않는단걸 더 어떻게 어필해야 할지 모르겠다. A 얘기 들을때마다 심정이 너무 복잡해져서 대체 어떻게 내 기분을 서술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서로 대치만 하다가, 푸틀러 이 개새끼가 어느 날 진 빠져서 gg치고 전쟁 끝내면 안될까 하는 생각은 절대 머리속에서 안 사라질거야. 모든 전쟁이 그렇지만 이 전쟁 또한 일어나선 안 되는 전쟁중 하나였단 생각도 마찬가지고...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지금 이 순간도 우크라이나에서 전투중일 모든 군인들과 좀처럼 와닿질 않던 전쟁에 관련된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저 친구의 무사안전을 빈다.


모자란 필력에 심란한 기분까지 더해지니 아무리 검수해봐도 글이 좀 모자란거같다.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