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안 있어서 병장 진급 앞뒀을 상말 때였어요.


연대전투력측정 있어서 몇 주간 병기본과 주특기 훈련 뺑뺑이를 돌고 있었는데

하루는 회의실 싹 비우고 거기서 화생방 보호의 입고 벗고 하는 MOPP 훈련을 하고 있었어요.


우리 중대 같은 분대 사랑스런 이등병 후임께서 자기 M16A1을 바닥에 떨궈 놓으시는 바람에

제가 보호의 하의 입는다고 힘차게 발을 뻗는 순간 총을 밟고 발목이 꺾였죠.


그때 "우드드득"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고 바닥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려는데 발목에 힘이 풀리면서 못 일어나겠는 거예요.

통제하던 간부랑 후임들이 괜찮냐고 하길래 발목을 삔 것 같다고 하고 의무중대에 가서 의무병한테 이러저러했으니까 안티푸라민이랑 파스 좀 달라고 했죠.


바르고 붙이니까 좀 괜찮은 것 같아서 다시 복귀해서 하던 것 마저 하고 일과 마무리하고 잤어요.

걸을 때마다 발목에 누가 미싱질을 하는 것 같았지만 좀 지나면 괜찮겠지 하고 넘겼는데...


이게 2주가 지나도 증상이 좀처럼 호전되질 않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어서 중대장에게 외진 좀 보내 달라고 하니까 곧 있으면 연대전투력측정이고 행군도 해야 하는데 외진을 어떻게 보내 주냐, 못 보내 준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번에 진급 누락된 사람에게 그런 융통성을 기대하기란 무리였겠다 싶어요(그래도 그렇지, 이 개새끼야).


어쨌든 그리하여 그 상태로 전준태도 하고, 출동도 나가고, 행군도 하고 그랬어요.


근데 연대전투력측정 끝났더니 중대장이 바로 분교대를 가라네요?

당시 중대장이 뭔 깊은 뜻인지 상병 이상급의 인원은 전부 분교대를 갔다오라는 방침을 세웠거든요.


그래서 가서 뭐... 단독군장구보, 완전군장구보 등 분교대에서 시키는 거 다 하고 복귀했죠.

갔다 와서는 더는 못 버티겠다 싶어서 제발 외진 좀 보내 달라고 했더니 여태껏 훈련 다 한 거 보면 괜찮은 거 아니냐고,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연히 그 주 주말에 부모님이 면회를 오셨고

아들이 다리가 불편해 보이니 어쩌다 다쳤냐고 물으셨고

저는 자초지종을 얘기했고...


그랬더니 얼마 안 가서 거의 곧바로 외진이 잡혔어요.

근데 우리 부대 병력들이 가는 병원이 아니라 좀 떨어진 더 큰 병원으로 데려가더라고요.

그리고 선탑 간부가 전화를 바꿔 주길래 받았더니 중대장이 부모님한테 전화해 보라고 하더라고요(씹새끼가 콜렉트콜인데...)


아무튼 그래서 부모님께 전화해 봤더니 거기 병원에 어머니가 아시는 분이 근무하고 계시니까 뭐 불편한 거 있으면 거기 얘기하고, 진료 잘 받고 어디가 어떤지 얘기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진료를 받았는데 군의관 왈 발목 인대가 찢어졌대요.

근데 이게 수술을 받는다고 딱히 좋아질 것도 아니라서 좀 애매하기도 하고

솔직히 너도 여기서 수술 받고 싶진 않지 않냐면서 일단 입원해서 보조기 끼고 생활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꽤 오랫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전국에서 온 육해공군, 해병대 아저씨들과 특전사 형들하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죽었던 민소희가 갑자기 부활해서 돌아오는 거 보고 하면서 막장드라마 욕하면서도 챙겨 본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도 알게 되고

신체등위급수가 1급에서 3급 됐고...


뭐 그랬어요.


지금도 축구는 고사하고 뭘 발로 세게 차거나 그러지는 못해요.

원래 축구를 안 좋아하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려나요?

 

이 얘기에서 교훈은...


1. 군대에서 다치지 말자.

2. 다쳤다면 괜히 눈치 보느라 병 키우지 말고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라.

3. 정당한 요청을 간부가 묵살하면 외부와 얘기해라.


P. S. 이XX 소령 이 씹새끼야, 잘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