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 악몽이야'

꿈을 꾼다.

주변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
경멸하는 듯한 차가운 시선들이 쇠사슬이 되어
온 몸을 뱀처럼 기며 죄여온다.

모든 아이테르를 절멸시킨 후에도,

이 꿈을 꿀 때면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그들은 이미 죽었을 테인데.

이 손을 그들의 피로 물들였을 터인데.



"자 오늘은 정신감응에 대해 배워보자꾸나."


세월에 짖눌려 축 늘어진 눈, 듬성듬성 깎은 더러운 수염, 부스스한 잿빛 머리카락.

거리의 부랑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선생이라니 믿기질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얻는건 아무것도 없었고,
나날이 주변 사람들이 날 보는 시선이 차가워져갈뿐.

처음엔 정장을 입은 여성이,
다음은 캐쥬얼한 룩을 입은 남성이,
또 그 뒤론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된 풋내기가.

점점 날 가르치려는 사람은 줄어들었고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샌가 내 선생이 되어있던 이 늙은 부랑자.

낙오자의 선생은 마찬가지로 낙오자가 어울린단 말인가.


"다른 놈들한테 감응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몸부터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어야겠지."


그는 그렇게 술주정에도 닮은 말을 횡설수설 쏟아냈다.
절반쯤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됐으니, 벗어라."


"네?"


내가 지금 뭘 들은 것인가.
이 썩을 부랑자가 미쳐버리기라도 한건가?


"네 부모의 허가도 받았지. 미련한 자식을 어떻게 해서든 가르쳐달라며 말이야. 하!"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양팔을 잡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트렸다.


"으윽!"


넘어지면서 깨진 유리 장식품의 조각이 등에 박혀 타는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어떻게든 도망치려 발버둥쳐보지만
신체적 차이는 어떻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게 아니었다.


고통에 눈 앞이 몇 번 깜빡거릴동안
순식간에 날 감싸고 있던 옷은 이미 누더기마냥 찢어지고 말았다.


"지금부터 내가 널 전력으로 범할거다.

 임신하고 싶지 않다면 '정신감응'을 이용해

 난자를 옮기든, 정자를 죽이든 해보라고!"


붉게 충혈된 눈이 내 몸을 꿰뚫을 듯이 바라본다.


평소에 주변에서 느끼는 무관심과 경멸, 동정의 눈빛과는 다른,

미쳐버릴 듯한 열기를 띈 눈빛은 평생 잊지 못하리라.


이미 으스러진 손톱으로 긁어보아도,
발로 몇번이고 차도, 흠집하나 나지 않는다.

화상처럼 손톱 사이로 타고 흐르는 고통에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도중, 손에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잡혔다.

"죽...어!!!!!"

젖먹던 힘까지 써서 목에 유리조각을 찌른다.

살을 찢는 감각, 손목을 타고 흐르는 부랑자의 더러운 피, 차갑게 식은 살덩이가 내 몸을 짖누르는 감각.

--꿈은 여기서 끝이 난다.


그 뒤론, 의미없는 화상들이 차례차례 지나가고,

제 부모와 동족을 죽이고 미친 듯이 웃는 붉은 여자가 서 있을뿐.


아이테르로 태어난 운명은 내겐 너무 가혹했다.

이 더러운 족속들이 세계에서 전부 사라질때 까지 저주할 것이다.

이 깊고 더러운 감각이 더 이상 내 혈관을 타고 흐르지 않을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