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섬 '아주라이트' 위에 솟아 있는 성채, 백야성.


하늘 위에 홀로 떠 있는 백야성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상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해방감이 느껴지곤 한다.


역설적이게도 사방천지가 하늘로 둘러싸인 백야성은 다른 지역 어느 곳보다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다.


그런 폐쇄성 덕분인지 백야성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폐쇄성이 항상 긍정적인 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외부의 영향이 적기 때문에 백야성은 내부에서 곪아들어가는 병폐에는 대응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병폐로 꼽는 것이 바로 '납작주의'다.



이전 사설*에서 언급했듯, '납작주의'는 솔라드 가문이 권력을 영속화하기 위해 내세운 프로파간다다.

(*'평면의 미학, 백야성' 편 참조)


납작주의의 확산 이전에 왕쭈쭈, 그리고 근육쭈쭈만이 인정받던 백야성이었기에 납작주의로의 변화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고티에-피로스 사건과 이를 명분 삼아 진행된 왕쭈쭈 추방 사태, 제법쭈쭈 이상의 관료들의 로브 착용 의무화 등 


납작주의는 백야성 귀족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런 납작주의의 대표적인 희생양 중 하나가 바로 헤이디다.


"다른 귀족들과 달리 저희 부모님께선 가업의 경영에 전념하셨고, 정치에는 그다지 참여하지 않으셨어요. 그 덕분에 돈 문제로 곤란했던 기억은 한 번도 없었어요. 제가 태어난 뒤, 부모님께선 절 위해 백야성에서 가장 뛰어난 가정교사를 고용해 주셨어요.

제가 행복했냐고요? 물론이죠. 전 행복했어요. 모두가 절 위해서 움직이고, 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으니까요. 제게 상처를 주는 사람도, 절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리고... 제 친구가 되려는 사람도 없었죠."


유복한 귀족 집안이었던 헤이디의 부모님은 항상 딸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예전의 백야성은 쭈쭈가 곧 권력이었기에, 그녀의 부모님은 딸이 왕쭈쭈로 자라길 바랐다.


딸의 이름이 "Hey-D"인 것만 봐도 부모님의 염원이 얼마나 컸는 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갑작스레 변화했다.


과거의 전쟁으로 솔라드의 왕쭈쭈 아내가 사망하고, 하루하루 성장해가는 카렌에게서는 쭈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일련의 사건은 곧 모두가 알고 있는 납작주의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딸이 행복하길 바랐던 헤이디의 부모님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때문에 성장기의 헤이디에게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바로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을 중화하는 호르몬제를 투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헤이디의 쭈쭈는 그렇게 성장기에 머무르고 말아버린다.




호르몬제의 부작용 탓인지, 여성호르몬의 부족으로 인해 헤이디는 오만한 성격으로 자라게 됐다.


그럼에도 납작쭈쭈가 곧 권력인 백야성의 사회에서 헤이디는 강한 입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헤이디의 꿈에 백색의 기사가 나타났다.


왕쭈쭈 갑주를 두르고 있는 백색의 기사는 꿈 속에서 헤이디를 수호하고 있었다.


헤이디는 그 꿈을 기이하게 여겨 그대로 이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전했다.


"아버님 말씀으로는 브라이트 가문의 그 기사가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자, 백야성에서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빛의 기사」라는 칭호를 하사했고, 그와 함께 이 거대한 갑옷을 만들어 준 거라고 하셨어요. 맞아요. 당신 생각대로예요. 그 갑옷이 바로 꿈속에서 절 구해준 그 기사의 갑옷이었어요. 전 갑옷의 먼지를 털고, 그 가슴에 새겨져 있던 이름 「폼페이」를 부르며, 루미나를 주입했어요."


백야성을 수호하던 왕쭈쭈 기사 '폼페이'를 통해, 왕쭈쭈가 될 수 있었던 헤이디의 자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헤이디는 왕쭈쭈로서의 마음을 폼페이에 숨겨둔 채, 납작쭈쭈단 숲속성지부장으로서 납작쭈쭈의 삶을 살고 있다.




비록 납작쭈쭈에 오만한 성격까지 갖춘 헤이디지만, 과거에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만큼 주민들은 그녀를 섣불리 비난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 또한 왕쭈쭈로서의 자신을 보듯 폼페이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납작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한, 헤이디의 삶에는 권력이 함께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 가슴 한 켠에 남은 상처는 치유되기 힘들 것이다.


[백야사설 다시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