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편지(예리아, 키아)



 - 그로누의 답장 -


[조종사이름]에게


편지는 이렇게 적는 거 맞지? 난 다른 사람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르거든. 아무튼 [조종사이름] 네가 잘 지내고 있길 바랄게! 그리고 초콜릿 줘서 고마워!


그 도브라는 쿠리어가 편지를 가져다줬을 땐, "혹시 배달을 잘못했나?", "쿠리어 길드에서 배송 실수를 이렇게 자주 했었나?"라면서 막 혼잣말도 하고 그랬거든. 일부러 찬드라한테 맞게 온 건지 따로 확인까지 해 달라고 했는데, 확실히 내 앞으로 온 게 맞더라구! 찬드라가 안 말해줬으면 지금이 관월제라는 것도 모르고 지나갈 뻔했어. 역시 내 최고의 파티원 [조종사이름]답다니까!


근데 처음에 포장을 열어 보곤 진짜 깜짝 놀랐어. [조종사이름]~ 날 너무 잘 아는 거 아냐? 게임 트로피에 초콜릿을 가득 담다니! 게다가 게임 속에 나왔던 트로피랑 너무 똑같이 생겨서 포장 뜯기가 아까울 정도였다구! 아무튼 입에 넣으니까 부드럽고 맛있는 밀크초콜릿 맛이 나더라. 게임할 때 하나씩 집어 먹다가 하마터면 한 상자를 다 먹어 버릴 뻔했지 뭐야. 그래도 유니메트 것도 한 개 남겨 뒀어. 유니메트는 나한테 초콜릿 세상을 소개해 준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거든.


음, 어쩌다 그렇게 됐더라? 아마 유니메트가 연구실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같아. 사실 처음부터 유니메트가 소소한 물건들을 발명하는 걸 굉장히 재미있어한다는 걸 알았거든. 그치만 말을 할 때마다 더듬거리니까 깊이 소통하기가 쉽지 않았단 말이지. 그날도 원래는 집에 가서 게임이나 하려고 했는데, 복도에서 여자애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처음엔 어차피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니까 별 관심 없었거든? 근데 지나가면서 어쩌다 보니까 유니메트가 벽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게 보였던 거야.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만약 이게 게임 속 상황이라면, 이럴 때 말을 걸면 호감도가 반드시 오를 거라고 말이야. 그래서 호감도를 올려 보자는 마음으로 가서 어깨를 톡톡 두들겼는데, 날 보고 엄청 놀라서 두 눈이 동그래지는 게 진짜 너무 웃기더라니까. 그리고 한참 공을 들여서 알아낸 사실인데, 유니메트는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동료들이랑 어떻게 인간관계를 쌓아야 할지 몰라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더라구. 혹시나 자기가 잘못해서 미움을 사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 게다가 그날따라 유니메트가 심혈을 기울여 조립한 작은 기계 팔에 갑자기 작동 문제가 생긴 거고, 그래서 더 어쩔 줄을 몰라 했던 거지. 얘기를 듣고 나서 차라리 내가 좀 봐 주겠다고 한번 확인해 봤는데, 기계화 부위의 비율이 너무 높다 보니까, 중형 기계팔의 소모가 너무 빨라진 거였어. 그래서 내가 루미나틱스를 사용해서 조금 손을 봐줬지. 별로 힘든 작업은 아니었는데, 걔가 초롱초롱하게 날 바라보는 그 표정은 진짜 평생 못 잊을 거 같아! 뭐, 근데 인간관계 쪽으로는 내가 별 도움을 못 주긴 했어, 그건 유니메트가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였으니까. 그래도 유니메트를 데리고 밤새워 게임을 해 보니까, 유니메트는 이해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더라구. 게임에 재능도 있고! 어라? 어쩌다 보니까 편지 주제가 바뀌어 버렸잖아? 아무튼 그날 그 사건이 그렇게 마무리되고 다음 날이 되니까, 유니메트가 머뭇거리다 나한테 은박지에 쌓인 젤리빈 한 줌을 건네줬어. 엄마가 보내 준 초롤릿이라고 하더라. 난 기억이란 걸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초콜릿을 먹어 본 적은 없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맛있더라. 아주 오래전 그 시대에도 그런 게 있었을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맛보는 이런 달콤함은 상당히 매력적이야.


그치만 유니메트가 준 지하성 스타일 고전 초콜릿이랑 맛을 비교하자면, 역시 [조종사이름] 네가 선물해 준 이게 풍미도 더 깊고 다양해. 우유향이랑 견과류 맛도 더 진하고. 그래서 먹고 나면 밤새울 기분이 풀충전된다니까! 다음에 [조종사이름] 네가 일루미나에 오면 지하성 스타일 초콜릿을 맛보게 해 줄게. 그리고 그거 먹으면서 같이 게임하자!

네 나이스한 동료, 그로누



 - 미카엘의 답장 -


아이테르 [조종사이름]에게


편지를 잘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드릴 겸, 이렇게 답장을 씁니다.


보내 주신 편지는 잘 받았어요. 그리고 선물해 주신 초콜릿과 곰인형도요. 곰인형이 정말 귀엽더라고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전 초콜릿의 맛을 느낄 수가 없어서 그냥 보기만 해야 해요. 곰인형도, 초콜릿도 지금은 제 다른 소장품들과 함께 보관 중이에요. 소중히 간직할게요. 생초콜릿은 쉽게 변질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친구에게 루미나틱스를 사용해 초콜릿을 얼음으로 감싸 달라고 부탁했어요. 영원히 변질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다음에 콜로서스에 갈 때, 이 초콜릿도 함께 가져갈게요. 그렇지만 이 얼음덩어리는 부피가 꽤 크니까, 아마 커다란 상자를 하나 정도 미리 준비해 둬야 할지도 몰라요.

마지막으로 초콜릿을 먹었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한참 전이라서, 이젠 초콜릿이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요. 전 과거를 회상하는 건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초콜릿이 어떤 맛이었는지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아요. 제게는 지나간 일들보단 지금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훨씬 더 중요해요. 새로운 모습, 질서를 수호할 수 있는 번개의 힘을 얻는 대가로, 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몇 가지 잃엇어요. 미각도 그렇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능력도요. 그래도 전 절 구해 준 라파엘에게 정말 고마워하고 있고, 몇 가지 능력을 대가로 힘을 얻게 된 걸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하지만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 몇 가지를 잃었기 때문에, 전 온갖 기괴한 물건들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걸 이런 식으로 보상받으려 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백야성은 질서가 잘 잡혀 있고, 엄숙하면서 화목한 곳이긴 하지만, 대신 지상과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요. 그렇지만 콜로서스에 와서 당신과 함께 여행을 한 뒤로부터, 전 이 세상을 더 자세하고, 더 확실히 볼 수 있게 됐어요. 콜로서스가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을 때, 전 제가 콜로서스의 곁을 비키는 번개가 된 것 같았어요. 콜로서스와 함께 산과 강을 건너, 도시와 마을을 건넜죠. 그러면서 재미있는 것들도, 수집해 두고 싶은 것들도 정말 많이 보게 됐어요. 예를 들면 일루미나의 기차, 버려진 콜로서스의 부품, 움브라톤의 음악 상자... 그리고 이번에 당신에게 받은 곰인형 같은 것들이요.


그 곰인형의 촉감은 무척 신기했어요. 복슬복슬한 머리 부분을 만질 때면, 꼭 작은 동물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살짝 꼬집으면 말랑말랑, 보들보들해서, 제가 예전에 주워 소장해 뒀던 곰인형과는 달랐어요. 그 곰인형은 아주 오래된 거라서 여기저기 꿰맨 흔적도 많고, 안에 있던 솜들도 다 숨이 죽어서 이번에 받은 곰인형처럼 탄력이 있진 않았거든요.


참 신기하고 이상한 기분이에요. 새로 선물받은 이 곰인형을 쓰다듬고 있어면, 제 머릿속과 몸 안에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가 위안을 얻고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거든요. 참 이상해요. 이 곰인형은 제 능력을 뛰어넘어 제가 다루는 번개에도 영향을 주고 있어요. [조종사이름], 이건 곰인형에 부여된 루미나틱스 때문일까요? 아니면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아이테르만의 어떤 능력을 사용한 건가요? 마치 당신에게 제 목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역시 이해가 잘 안 돼요. 이건 객관적인 규율에 어긋나는 현상이라 수정되어야 해요.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렇다고 이게 잘못되었다고 정해 놓은 규율은 없는 것 같네요...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이런 일과 마주했을 때는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아야 할 수도 있어요. 그보다는 더 자세히 관찰하고, 그 속의 규칙과 원리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죠. 그러니까 전 이 곰인형을 곁에 두고 자세히 관찰할 거에요. 언젠가 제가 결론을 내릴 그때까지요.


부디 빛의 신이 [조종사이름] 당신을 굽어살펴 주시길.

침묵의 뇌전을 조종하는 자, 미카엘



 - 라인하르트의 답장 -


나의 맹우 [조종사이름]에게


초콜릿은 잘 받았다!


사실 받기는 어제 이미 받았지만,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있어 밤이 되어서야 조용히 앉아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선물을 준비해 준 걸 보면, 사전에 내 기호를 조사해 둔 거겠지. 이런 선물을 받게 돼서 기쁘고, 초콜릿도 무척 마음에 든다. 준비하느라 너도 힘들었겠지.


알고 있나? 일루미나에서는 군인들에게 초콜릿과 커피를 보급품으로 나누어 주고 있다. 초콜릿은 빠르게 체력을 보충할 수 있고, 커피는 졸음을 쫓고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지. 그래서인지 이 초콜릿을 먹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옛 생각이 나더군.


내가 18살이 되고, 진정한 전장에 갓 발을 들였을 무렵이었지. 그때는 나 역시 다른 이들처럼 풋내기 신병이었다. 전장의 잔혹함 앞에서, 나는 전우들이 쓰러져 가는 모습을 보았고, 난 사력을 다해 반격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절망이라는 감정이 피어올랐지. 적과 싸우고 있을 때만큼은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손발이 멈출 때면 또다시 그런 감정이 피어나곤 했따. 덕분에 그날은 밥도 잘 안 넘어가더군. 전우들을 잃었을 때의 상황이 끊임없이 눈앞에 떠올랐거든. 그래서 모두가 식사를 마쳤을 때쯤에도, 나는 단 한 술도 뜰 수 없었지.


아마 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챈 모양인지, 식판을 정리하고 자리를 떠나려고 했을 때, 한 전우가 날 불러 세우곤 초콜릿을 한 조각 건넸다. 처음엔 그다지 먹고 싶진 않았지. 하지만 꼬박 하루를 굶었더니 배가 요란하게 울어대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작은 조각 하나를 골라 포장지를 벗기고 입 안에 쑤셔 넣었다. 군용 보급품으로 제작된 초콜릿은 대량의 설탕을 넣어 맛이 무철 달지. 너무 달아서 혀끝이 갈라지고, 불안정했던 정서도 금세 가라앉게 될 정도니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에는 빈 포장지만 남아 있더군. 배도 더는 고프지 않았고 말이야. 참 신기하지 않나?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초콜릿 한 조각이 내게 전우들의 의지를 계승하고, 계속해서 암귀들과 맞설 힘과 용기를 준 거다.


난 지금까지도 그 초콜릿의 맛이 기억난다. 그렇지만 과거의 전우들과 동료들은 이미 시간의 흐름과 함께 더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아. 그 사실 때문에 그들이 더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겠지.


하지만 지금 내 손에 있는 이 초콜릿은 현재를 살아가는 네가 준 것이다. 이 달콤하면서 씁쓸한 커피 맛 초콜릿을 받으니, 과거가 떠오를 뿐만 아니라, 현재의 내게는 새로운 동료들과 전우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과거는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과거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부담과 족쇄가 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 주는 힘이 되어야만 한다. 더군다나 지금은 내게는 일루미나의 모두와 [조종사이름] 네가 있다. 너희 모두는 나의 전우이자 동료이며, 나를 지탱해 주고, 나의 힘이 되어 주는 이들이다. 어쩌다보니 말이 많아졌군.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지금처럼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았던 건 내가 일루미나 연방의 대원수가 되기 전이었던 것 같다. 다음에 네가 일루미나에 들릴 일이 생기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자.

부디 여명의 빛이 네가 나아갈 길을 비추길 바란다.

너의 영원한 맹우, 라인하르트



 - 플뢰르의 답장 -


친애하는 [조종사이름]에게


정말 의외긴 했지만, 초콜릿 줘서 고마워.


도브가 레디젤 사막에 편지를 가져다줬을 땐, 정말 깜짝 놀랐어. 왜냐하면 자기 키보다도 커다란 우편물 포대를 짊어지고 있었거든. 게다가 힘들어서 숨도 헐떡이고 있더라고. 그래서 난 얼른 앉아서 잠깐 쉬라고 하고, 어느 게 나한테 온 우편물인지 알려 주면 내가 직접 찾아가겠다고 그랬어. 그랬더니 도브가 그 포대에 들어 있던 게 전부 아스트라 대륙 각지에서 나한테 보내온 초콜릿이랑 고백 편지라고 하는 거야.


난 매년 관월제에 꽤 많은 초콜릿과 편지를 받아 왔거든. 처음엔 정말 골치가 아팠어. 난 내가 가진 특수한 체질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겼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도브한테 저 편지랑 소포들을 모두 반송해 달라고 부탁한 다음에, 앞으로는 나한테 선물이나 편지 같은 건 보내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는 사과 편지도 적었어. 하지만 그런 일은 매번 반복됐고, 해마다 내가 오랜 시간을 들여 사과 편지를 적어야 했어. 그래서 올해도 도브한테 우편물들을 반송해 달라고 했는데, 도브가 이번엔 네가 보낸 소포도 있다고 하더라고. 그 한마디 때문에 이번엔 저 우편물들을 한꺼번에 반송해 버리지 않았던 거야.


우편물들 속에서 네가 보낸 소포를 봤을 때, 솔직히 조금 걱정했었어. 설마 내 특수한 체질이 결국엔 너한테까지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싶었거든. 하지만 네가 선물해 준 건 알렌 루이츠의 모습을 본떠 만든 초콜릿이었으니까. 그걸 보니까 넌 내가 뭘 좋아할지 아주 잘 알고 선물을 보낸 거란 걸 알 수 있었어. 내 특수한 체질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포장은 정말 화려하게 해 놓지만, 막상 내가 뭘 좋아하는진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선물을 보냈거든. 이거 하나만으로도 난 [조종사이름] 네가 내 특수한 체질의 영향을 받지 않은 멀쩡한 상태에서 나한테 이 초콜릿을 선물해 줬다는 걸 확신했어.


이 초콜릿엔 [조종사이름] 네 마음이 들어 있어. 그러니 절대 거절하지 않을 거야. 정말 고마워 친구! 근데 편지를 받았을 땐 마침 내가 차 수리를 도와주는 중이라서 가지고 있던 편지지가 사과 편지용으로 준비해 둔 것 밖에 없었지 뭐야.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과 편지용 편지지로 너한테 편지를 쓰는 건 너무 아닌 거 같아서, 설계도를 그려 둔 노트를 한 페이지 찢어서 편지지로 사용했어. 번듯한 편지지는 아니지만, 내가 너한테 전하고 싶은 마음은 틀림없는 진심이야.


[조종사이름] 너라는 친구를 알게 되고, 함께 콜로서스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건 나한테 정말 엄청난 행운이었어. 콜로서스에서는 고대 과학 기술의 결정체를 가까이서 직접 볼 수도 있고,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연구도 할 수 있었어. 내 특수한 체질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쫓아오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정말 꿈만 같은 생활이지. 너랑 만나고, 조용하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생기고 나서야 난 더 많은 영감을 실제 기계로 탄생시켰고, 더 강해질 수 있었어. 심지어는 알렌도 더 반짝반짝 광이 나게 됐다니까.


지금까지 너한테 참많은 도움을 받았었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날 엔지니어로서 너랑 스카이워커호를 위해 계속 노력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어. 암귀랑 싸워야 할 때도, 기계를 수리하거나 유지 관리를 해야 할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언제든 기꺼이 네 힘이 되어 줄게.


참, 얼마 전에 좋은 부품을 하나 손에 넣었는데, 굉장히 유용하거든. 부품들은 보통 크기가 작으니까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습관적으로 예비용 부품을 몇 세트 준비해 놓곤 하는데, 여분으로 챙겨 뒀던 걸 너한테 줄게. 파이어플라이같은 소형 기계를 수리할 때 사용하면 될 거야. 효율이나 수명 쪽으로도 시중에서 살 수 있는 부품들보다 훨씬 좋을 거야. 기계들도 감정이 있으니까, 다정하게 대해 준다면 분명히 네 마음에 보답해 줄 거야.

이 부품들이 너랑 네 기계들한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너의 친구, 플뢰르



 - 미노스의 답장 -


존경하는 [조종사이름] 님께


평안하십니까? 그간 별고 없으셨기를 바랍니다.


아침 일찍 당신께서 보내신 편지와 소포를 받았습니다. 편지를 배달해 준 쿠리어의 예의범절에 매우 문제가 있어, 그 점을 조금 지적했더니 순식간에 당황해 도망가버리긴 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 쿠리어도 어느 정도의 겉치레의 요령을 배웠겠지요. 앞으로 쿠리어 길드에서 쿠리어들의 예절 교육을 강화했으면 좋겠군요. 그 쿠리어의 망토는 아주 오랜 시간 세탁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 우아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쿠리어가 돌아간 후, 전 서둘러 니나 아가씨의 아침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관월제가 되었으니 니나 아가씨께서 수제 초콜릿을 만드실 때 제 도움이 필요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조종사이름] 님께서 보내 주신 소포는 오후에나 열어 볼 수 있었습니다. 확인이 늦어진 것에 사과드립니다. 그렇지만 금박으로 장식된 이 우아한 상자 속에 든 것이 트러플 초콜릿일 줄은 정말 예상치 못했습니다. 포장을 뜯고 나서 잠시 말문이 막히기까지 했습니다. 설마 저 같은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 받을 수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요. 조금 머뭇거리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한 조각을 입에 넣어 맛을 봤습니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부드럽게 녹으며, 처음에는 약간 씁쓸한 맛이 나다가, 불현듯 캐러멜 향과 과일 향이 느껴지고, 마지막에는 입안 가득 달콤함이 퍼져 나갔지요. 최고급 초콜릿 중에서도 유난히 뛰어난 맛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역시 [조종사이름] 님께서는 훌륭한 취향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저처럼 평소에 초콜릿을 자주 먹지 않는 사람이라도, 무심코 하나 더 먹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 초콜릿에서 느껴지는 맛은, 제가 인생에서 가장 처음으로 초콜릿을 맛보았던 그 무렵을 무심코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전 그 당시 열 두세 살 정도였지만,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어린 시절을 살아왔던지라 초콜릿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전 매일 스승님과 안도마 주인 어르신께 지도 편달을 통해 갓 태어난 동물처럼 평범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배웟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택 안에 꽃과 비단이 늘었더군요. 그리고 제가 살면서 처음으로 보는 작고 네모난 조각들이 케이크 형상으로 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척 고급스러웠지요. 전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지도 못한 채, 그저 멍하니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제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채시곤 그날은 「관월제」 라는 날이며, 아가씨께서 친구분들을 데리고 저택에서 귀족 소녀들의 다과회를 여신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날은 주인 어르신께서도, 스승님께서도 아가씨께서 점차 의젓해지고 계신 것 같다며 무척이나 기뻐하셨습니다. 전 다과회의 손님들이 은색 티스푼을 저으며, 입 안에 갈색 조각을 넣은 후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저도 모르게 푹 빠져서 계속해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방으로 돌아간 후, 전 제 침대 머리맡에 작고 고급스러운 선물 상자가 하나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던 저와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물거니었지요. 그래서 전 그 상자를 사부님께 가지고 가서 몇 번이나 제게 주시는 선물이 맞는지 확인했고, 그제야 안도마 주인 어르신께서 낮에 제가 지은 표정을 보시고는, 초콜릿을 너무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면 특별히 몇 조각을 남겨 주신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 그날 처음으로 이런 음식을 초콜릿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전 방으로 돌아와 조심스럽게 포장을 벗긴 후, 무슨 의식이라도 진행하듯이 신중히 한 조각을 맛봤습니다. 전율이 느껴지는 맛이었지요. 이 세상이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죄송합니다. 실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늘어놨군요. 아마 따분하다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종사이름] 님, 선물해 주신 트러플 초콜릿은 참 맛있었습니다. 잊고 있었던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덕분에 그 추억이 더 향긋하고 달콤해져 제 가슴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당신의 만능 집사이자 친구, 미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