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The Witness


헛되이 종교에 대해 논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정직하다면, 그리고 과학자는 응당 그래야 하는데, 종교란 잘못된 주장들의 잡동사니이며 현실에 기반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압도적인 자연의 힘에 오늘날의 우리보다 훨씬 많이 노출되었던 원시인들이 공포와 전율 속에 이러한 힘들을 인격화한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만 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자연 과정을 이해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그런 식의 해결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상정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가정은 다음과 같은 비생산적인 질문들을 낳을 뿐입니다.


어째서 신은 수많은 불행과 불의를,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것을, 그가 막을 수 있는 모든 참상들을 내버려 두는가? 아직도 종교를 가르치는 이유는 종교가 여전히 우리를 납득시켜서가 결코 아니라 그저 우리 중 일부가 하층 계급을 얌전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일 뿐입니다. 시끄럽고 불만족스러운 사람들보다 얌전한 사람들이 더 다스리기 쉽고, 착취하기 또한 더 쉽습니다.


종교는 아편과 다름 없어 국가 스스로 희망 가득한 꿈을 꾸도록 안심시키며 민중들에게 자행되는 불의를 잊게 만듭니다.


폴 디랙, 1927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저서에서.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네. 이것도 들어맞지 않네요.


어떤 식으로 들어맞지 않는지 특정 지어 말해보겠어요?


그건...논쟁에 대한 것이고,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지나치게 불편해하고 있어요. 높은 수준을 목적하거나 궁극적인 진리에 대한 것도 아니고요. 진짜로. 주로 몇몇 멍청한 사람들은 잘못된 일을 하고 있고, 반면 자신은 옳게 행동하고 있다는 얘기예요.


하지만 폴 디랙은 적어도 물리학의 영역에서는 확실히 진리를 추구했어요. 네. 하지만 이 발췌문에서는 그런 태도가 보이지 않아요. 어떤 믿음이 다른 믿음들에 대한 반대로 만들어졌다면 그런 믿음은 근본적일 수 있을까요? 깊이가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보다시피, 디랙은 자연 과정에 대해 언급하는 곳부터 실제 철학의 골자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음, 흥미로운데요. 그 지점에서 단순한 거부나 반대가 아닌 그 자체로 성립될 만한 무언가가 있어요.


어쨌건 이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무신론적 선언은 아니에요. 계속 찾아볼게요.


봐요. 디랙이 이런 글도 쓴 적이 있어요.


"상황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은 매우 높은 차원의 수학자이며, 우주를 창조하는데 매우 발달된 고등 수학을 사용했다고." 난 디랙이 아인슈타인 식의 신을 의미했다고 봐요.


디랙이 그렇게 말했어요? 같은 사람이?


네, 디랙이. 사람들은 참 이상해요. 과학자들은 더 이상하고.


네,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