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듯한 표정, 적진 중앙에서도 한껏 여유로운 기색을 보이며 경망스러운 말투로 적들의 원칙과 신조를 하찮은것인마냥 비웃으며 상대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듯했다.

실력이 강한 상대일지라도, 레일라의 언행에 욱해 이성을 잃거나 혹은 레일라의 경망스러움에 방심한 틈을 보인다면, 라일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상대의 목숨을 앗아간다.



레일라는 어느 환경에나 잘 녹아든다.

상류층의 모임에도, 건달과 주정뱅이로 어지러운 뒷골목길에도 자연스레 어우러진 모습으로 쉬이 넘나들 수 있었다. 때로는 여유롭고 우아하게, 때로는 거칠고 직설적으로, 때로는 경박하고, 때로는 잔혹하게... 누구도 레일라의 진짜 성격과 본연의 모습을 알 수가 었었다.


역병이 퍼지는 그 시기에 레일라는 사형죄로 투옥돼 수감되어 있었다. 형장으로 끌려가던 레일라는 비틀거리는 척하며 위병 허리의 검을 빼내 찔러 살해하고 탈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뒤, 검으로 자신의 얼굴에 상처를 내어 곰팡이가 핀 검은 진흙을 상처에 바른 후 시신이 담긴 자루 속으로 몸을 숨겼다. 시신을 검사하러 온 병사가 발견할 때쯤 레일라의 얼굴은 곰팡이로 범벅돼 있었고 역병으로 죽은 시체라 판단되어 자루채 강물에 버려진다... 

그렇게 중상을 입고 타고난 얼굴을 잃는 대가로 레일라는 악명 높은 제국의 감옥에서 살아 탈출한 유일한 사람이 된다.


황실의 호위로서, 레일라는 어려서부터 티타니아의 황제—이븐과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었던 사이다. 둘은 서로 목숨을 내맡길 수 있는 두터운 우정을 쌓아왔고 오랜 시간을 함께해왔기에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생각을 읽을 수 있을 만큼 호흡도 잘 맞았다. 궁전에서의 재회의 순간, 레일라는 소년 이븐의 눈빛에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숨겨둔 야심을 읽을 수 있었고 이븐도 얼굴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눈앞의 소녀가 ‘옥중에서 사망’한 절친 레일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제국의 검은 매는 다시 날아오를 든든한 날개를 되찾게 되었다.



레일라는, 사람들 앞에서는 황실의 호위이자 모두를 떨게 하는 [철가면의 나슬]이며,

어둠 속에서는 처형인으로서 이븐을 위해 반역자를 처치하는 그림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