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등장하는 도적이나 백성, 즉위 등의 단어는 기록 자체가 불완전한 바 많은 경우 그 정체를 특정 불가
*특정 왕과 관련이 깊은 내용을 해당 왕 위주로 서술
*같은 왕에 대한 설명 중 한 줄이 띄어진 부분은 각기 다른 오벨리스크에 기록되었다는 의미
*말줄임표(...)로 이어진 단어들은 작성자 임의로 붙여 해석. 추후 수정 여지 있음
굵직한 왕들의 이름으로는
시기순서상
1. 란사헤르, 2. 자레브 다울라, 3. "데이 왕" 무자파르, 4. "녹색의 왕" 주마루드, 5. 바르다나, 6. 파라마즈
1. 란사헤르 왕
기록에서 맨 처음 등장하는 왕. 구라바드는 모종의 이유로 이미 멸망한 상태이고, 복면왕 호람틴의 정통후손 카부스가 난을 일으킴.
기록자는 이런 전란은 아흐마르=적왕이 있던 때에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라며 안타까워함.
재앙이 찾아오고, 란사헤르는 백성들을 수도로 강제이송하고 폐허 위에 7고탑을 세움.
각 고탑에는 수호자들을 두어 탑을 지키게 하고, 혼란을 평정하고 스스로 왕중왕의 자리에 오름.
이후 '사파이어의 도시' 툴레이툴라는 휴마운 왕이,
'호박금 용사의 성' 살레는 투란 하강이,
'원형극장의 폐허' 아이하눔은 가르샤스프가 다스리게 함.
사망 3일 전, 본인의 죽음과 왕국에 도래할 대혼란을 예언함.
그의 예언대로 많이 이가 죽어나갔고, 툴레이툴라, 살레, 아이하눔 할 것 없이 혼돈이 계속됨.
그러던 중 가르샤스프가 도적떼를 토벌하고 당시 왕의 인정을 받아 모아잠 하강=대하강이 됨.
백성들은 이때의 혼란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함.
2. 자레브 다울라 왕
즉위 전 명칭은 구르다지. 툴레이툴라 소속.
3일간 계속되었던 형제간 전쟁에서 살아남아 구라바드로 돌아가고,
뿔뿔이 흩어진 7고탑의 성 주민들에게 돌아올 것을 명령함.
왕의 지위에 오르며 본인을 자레브 다울라 왕이라 칭하고, 아흐마르의 신기루 축복을 받음.
이후 29데이의 도시와 조공관계를 맺는 등 10년간 지속되는 황금기,
"황혼의 가랑비"의 시대를 엶.
그러던 중 호젤이라는 왕자가 술을 마시다 죽는 일이 발생하는데,
이 때에 왕은 1천여 명의 노예를 순장하고, 귀족들은 슬픔을 못이겨 백여 명이 음독자살하는 등 나라가 뒤숭숭해짐.
결국 "황혼의 가랑비" 시대는 막을 내림. 그 시기 무자파르라는 인물이 무차별 학살과 약탈을 일삼으며 세를 불리고 있었는데...
3. "데이 왕" 무자파르
*그가 "데이 왕"이라는 칭호로 불린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듯. 둘 중 하나일 수도, 둘 다일 수도 있음.
1)지도자를 "데이"라고 부르는 결사체, 혹은 그 "데이"라 불리는 결사체 출신 왕
2)(자레브 다울라와 조공관계를 맺었던 29데이의 사례처럼) 그 모든 "데이" 중 으뜸이고, "데이"들을 통합한 왕
항구 도시 오르가나 출신. 그를 칭송하는 오벨리스크에는
'바닷속 마수들의 외숙부'
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는데, 비유인지 정말 마신의 핏줄인지는 불분명.
활발히 정복활동을 자행했으며,
당대 유명 도시 베트라하를 함락하고 베트라하 왕의 딸을 마음대로 괴뢰국의 수장으로 세우는 등 막나갔던 듯.
결국 자레브 다울라 왕과도 한판 붙어 깔끔하게 이김.
패배한 왕의 일족을 학살하고, "늙은...왕"의 두 눈을 뽑은 듯한 묘사가 있는데, 늙은 왕이 누구인지는 불분명.
승리한 무자파르는 패배한 왕의 도시 구라바드를 불태우고,
본인의 고향도, 다른 데이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곳에 터를 마련함.
이후 아들 주마루드에게 많은 자손을 낳을 것을 당부하며 시대는 새로운 왕을 맞이함.
4. "녹색의 왕" 주마루드
왕위를 계승한 주마루드는 아버지의 당부에 따라 자식을 99명 낳았음. 50명이 남성, 49명은 여성임.
여자쪽에서는 한자르다스탄이,
왕자들 중엔 무주르딘이 군계일학으로 그 육체와 지성을 과시하였고,
무주르딘은 동생인 바르다나와 함께 아버지의 숙원사업인 '숲 만들기'를 주도했던 듯함.
주마루드의 숲 만들기에 대한 열정은 그가 어느날 꾼 꿈에 기반하는데,
주마루드 재위 2년에 건설된 오벨리스크에 의하면 드넓은 사막만이 보이는 꿈 속 광경에 탄식한 왕은
사막 위에 초록빛 숲을 한창 가꾸다 꿈에서 깨어남.
특기할 점은 이 오벨리스크에 주마루드가 "숲에서 자랐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임.
이후 적왕릉 정중앙 아래 오벨리스크의 기록에 의하면 이때 만들고자 했던 숲은 후대의 전쟁으로 황폐화되었음.
5. 바르다나 왕
왕이 자식이 많으면 나라가 산으로 간다고
결국 "녹색의 왕"의 유망했던 자식들인 무주르딘, 바르다나는 형제간 정쟁을 별였고
바르다나가 승리하며 사건이 일단락됨.
가장 관련된 서술이 적은, 기록상 연결고리 역할만 하는 왕임.
사냥매를 잘 썼다는 기록이 있음.
늙어서까지 왕좌에 있던 바르다나는 고탑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상세한 진위는 불분명.
6. 파라마즈 왕
바르다나를 이어 왕위에 오름. 어린나이에 왕이 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바르다나의 혈육인 듯 보임.
여타 어릴 때 즉위한 왕들이 그렇듯 측근들이 섭정하였으며 파라마즈의 경우 왕후인 마카이라가 섭정의 주체였음.
마카이라는 툴레이툴라 출신이라 여러 툴레이툴라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되는데,
툴레이툴라의 성주 바라슈와 마카이라의 아버지 고라즈도 예외는 아니었음.
하지만 정통성 있는 바라슈 대신 고라즈가 섭정을 넘어 파라마즈를 추방하고,
왕의 자리에 앉자 기존 툴레이툴라 귀족들이 들고 일어남.
이 반란은 고라즈가 죽고, 마카이라가 참수형을 받는 걸로 일단락됨.
정통 왕가의 후예 파라마즈도, 새 왕이었던 고라즈도 죽게 되니 왕좌 싸움은 개판이 됨.
개판이 된 전쟁 속에서 평민들은 전쟁에 징병되어 노예병으로 싸우고, 툴레이툴라 섭정무리를 위해 싸웠던 듯함.
이때 마카이라에 대한 참수형도 흐지부지된 듯.
전쟁 후 파라마즈가 다시 왕위에 복귀하였는데, 왕후 마카이라가 맹독성 살무사에 물려 죽음.
전시 노예병이었던 피지배계급은 이를 파라마즈의 짓이라 생각했던 건지 우림에 왕을 유배보냄.
7. "눈 먼 후예"의 기록
적왕의 무덤 지하 중앙에도 오벨리스크가 있는데, 이는 전쟁통에 적왕릉으로 내쫓기듯 도망쳐온 한 신하의 기록이 있음.
기록상 이 신하는 두 왕을 섬겼으며, 먼저 섬긴 왕에게 버림받고 다른 왕을 섬긴 것으로 보임.
뉘앙스로 볼 때 사막의 치세가 유지되는 것에 매우 회의적이며, 사막의 역사가 기록된 땅을 버리고
살아남은 백성들에게 동쪽으로 와 새로운 터전을 세우라고 쓰고 있음.
터전의 이름은 "아루"라고 지으라고 당부하는데, 이는 고대에 있던, 지금은 잊혀진 적왕의 꿈, 또는 꿈의 공간을 칭하는 말이었던 듯함. 새로운 터전에서 적왕의 부활을 기다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기록을 마침.
요약: 신을 잃은 땅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 인간의 전쟁역사.
수없이 많은 권력투쟁을 목도하고 거기에 휩쓸렸을 사막사람들에겐 적왕의 존재가 구원 그 자체로 비춰졌을 법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