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CH ME BURN 번역 링크














 나의 억압된 감정이 터져, 결정적으로 변하게 된 순간은 그때부터 3일 후 밤이었다. 




 말기환자들만을 모은 로도스 터미널이라도 밤이 되면 조용해진다. 


 내가 야간 순회를 하는 넓은 복도는, 극한적인 고농도의 칠흑같은 어둠으로 뒤덮여있었다. 창문이 없기에 달빛도 들어오지 않고, 절전을 위해 불빛도 켜져 있지 않다. 


 천장의 조명은 감지식으로 되어 있어 누군가가 걸어와야 작동하고 그 주위만 밝게 비춘다. 변해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나는 야간 순회를 하고 있었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넓은 복도에 섬뜩할 정도로 큰 울림을 남긴다.


 각 병실에 비치된 콘솔의 약한 불빛이 어둠 속에 드문드문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어둠 속에 숨어있는 짐승의 눈처럼 섬뜩하고, 마치 자신이 이성이 통하지 않는 황야에 내팽개쳐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발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렇다기보다는 더 이상 아무 생각이 없었다. 


 마침내 다가온 사명감같은 것으로 인해, 나는 원래 순회 루트를 벗어나, 하층부의 특별 병동으로 향한다. 몇 년 동안 일해온 직장이었기에, 어둠 속이어도 목적지인 병실까지 헤메는 일은 없었다. 


 도착한 병실의 문앞에서는 하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불이 켜져 있는 것 같다. 귀를 갖다대보지만 두꺼운 철문은 자그마한 소리는 통과시켜주지 않는다. 


 심장소리가 빠르다. 뺨에 식은땀이 흐른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날뛰는 마음을 억제한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숨겨둔 메스를 꺼낸다. 


 긴장감이 아무리 밀려와도 망설임만큼은 찾아오지 않았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이건, 그저 계속 짊어왔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정도의, 그런 간단한 일이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조심스레 연다.


 어둠 속에 있던 탓에 병실 안의 불빛에 눈이 부신다.


 그녀는 깨어 있는 걸까?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눈도 귀도 쓰지 못하는 그녀는 어차피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경동맥을 스윽 긋기만 하면 된다. 그걸로 모두 끝낼 수 있다. 


 아니면 역공당해 그녀의 불꽃에 잿더미가 되는 걸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결말의 차이에 딱히 의미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끝나기만 한다면 그걸로 좋다. 어떤 결말이라도 상관없다. 이제 어떻게 되든. 


 그렇게 되뇌이며 방에 들어간 나는―― 무심코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 ............" 



 에이야퍄들라는 일어나있었다.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주위에는 대량의 서류가 쌓여있었다. 점자 문서는 통상 문자 문서보다 그 분량이 적다고는 해도 상당한 분량이었다. 그 종이의 산을 침대에 펼쳐놓고, 에이야퍄들라는 일심불란하게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읽어나가고 있었다. 


 눈가를 붕대로 감싼 그녀의 표정은 진중하고, 점자를 읽어나가는 손가락의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귀기어렸다고 표현해도 좋을 그 모습은―― 너무나도, 생기가 넘치고 있는 것이었다. 



"......뭐하는 거야?" 



 무의식 중에 나는 말을 걸고 있었다. 


 시각도 청각도 잃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에이야퍄들라는 꿈에서 깨어난 듯 문자를 읽어나가던 손가락을 멈췄다. 


 붕대를 감은 눈이, 문 쪽으로 향했다. 



"......s어np애애애?" 



 발음은 망가졌지만 누구를 부르는 지는 알 수 있었다. 


 그 목소리에는 누군가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에이야퍄들라가 아직 남은 감각을 곤두세워서, 고요한 병실에 마치 거미줄같은 감지망을 펼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되어버렸다면, 아무것도 전해주지 않는다면 그녀가 공포에 휩싸여 착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나는 에이야파들라에게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s어어패애......!" 



 놀라움이 섞인 기쁨의 소리. 에이야퍄들라의 얼굴에 나이 어린 소녀같은 천진난만한 미소가 떠오른다. 


 나는 한 손에 메스를 든 채, 다른 손으로 에이야퍄들라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글씨를 썼다.



――순, 회, 중 


――불, 이, 켜, 져, 있, 었, 어



 전하는 문장은 필연적으로 간결해진다. 


 에이야퍄들라는 손바닥에 의식을 총동원시키고 있는 것 같다. 숨을 몰아쉬며, 작은 연분홍색 입술이 손바닥에 쓴 글씨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다. 


 눈처럼 새하얀 그녀의 목은 너무나도 무방비했다. 


 메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나 내 마음이 그것을 실행하는 것에 제지를 가했다. 


 나는 에이야퍄들라의 손바닥에 다시 글씨를 적었다. 



――뭘, 하, 고, 있, 었, 어, ?  



 그것을 읽어낸 에이야퍄들라는, 마치 부모에게 비밀기지를 들킨 아이처럼 수줍어하며 몸을 배배 꼬았다. 


 그녀는 침대 옆 PC의 키보드를 친다. 



『책을 읽고 있었어요. 테라 각지의 정세와 재앙에 관한 최신연구에 대한 거예요』 


"......" 


『요즘 인쇄기는 대단해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점자로 번역해서 인쇄해줘요. 덕분에 눈이 보이지 않아도 정보 수집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뭔가. 


뭔가 검고 질척질척한 감정이, 내 가슴 속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의미도 없이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나는 에이야퍄들라의 손을 잡고, 다시 문자를 쓴다. 



――이, 렇, 게, 늦, 게, 까, 지, ? 



 의미를 읽어낸 에이야퍄들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키보드로 문자를 입력한다. 



『아무래도 점자는 익숙하지 않으니까, 훈련을 해도 원래 읽었던 속도보다 느리니까요. 남들보다 좀더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해요』 


『죄송해요. 밤샘은, 좋지 않은 일이죠...... 그래도, 최신 연구를 따라잡으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 무리는 하지 않을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적고, 에이야퍄들라는 멋쩍은 듯 웃었다. 


 흘러넘치고 있는 검은 감정이 하염없이 가슴 속에 쌓여간다. 


 나는 난폭하게 그녀의 손을 잡아채, 또다시 손바닥으로 묻는다. 



――어, 째, 서



 그뿐이었던 내 질문을, 에이야퍄들라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뭔가 이어질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내가 손을 떼고 나서도 그녀는 한동안 그대로 손바닥을 허공에 펴고 있었다. 뒤따라오는 말이 없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윽고 그녀는 멀뚱해하면서도 PC로 향했다. 조용한 병실에 달각, 달각,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린다.



『그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 



 나는 잠시 그대로 멈춘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에이야퍄들라는 곤혹스러운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다시 키보드를 두드린다. 



『어쩌면 지금까지 제가 겪어왔던 경험이 아직 재앙 연구나 로도스 분들께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검고 질척한 감정은 계속 쌓이고, 압축되어, 이윽고 강렬한 열을 내뿜기 시작한다. 



『저는 로도스 분들께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인화점을 넘었다. 



"어째서―― 어째서!!"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폭발한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으로 절규를 짐작했는지, 에이야퍄들라는 움찔하며 놀란 듯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딴 눈이랑 귀로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착란으로 아츠를 폭주시키는, 이거고 저거고 죄다 불태워버리는 말기환자가 하는 말을 누가 들어주기라도 할 것 같아!? 머리도 좋은 주제에, 그딴 당연한 사실도 깨닫지 못하는 거야!?" 


"......서어어어배애?" 


"나를 '선배' 라고 부르지 마!!!!!!" 



 터져버린 마음으로 침대 위의 서류들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점자 종이뭉치가 강렬한 소리를 내며 흩어진다. 눈도 귀도 쓰지 못하는 에이야퍄들라는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하는 채로, 침대 위에서 그저 우물쭈물 당황하고 있을 뿐이다. 


 

"네 되도않는 망상 때문에 나는 미쳐버릴 것 같아! 이런 지옥같은 곳에 갇혀서는, 네 같잖은 역할놀이에 끌려들어가서, 정신이 완전히 박살이 나고 있단 말이야!" 


"오......오에으......?" 


"이왕 이렇게 된거 전부 말해줄게! 난 말야, 너한테 '선배'라고 불리며 안겨있는 동안 계속, 넌 대체 언제쯤에야 죽는 걸까 계속 생각해왔어! 빨리빨리 절망하거나, 환각을 보거나 해서 어서 발광해서 네 모가지부터 불타 뒤져버리라고 계속 저주하고 있어! 이렇게 말해줘도 어차피 못 알아듣겠지. 너는 애초부터 내가 누군지도 모르니까!!" 


"......" 


"아아, 젠장! 얼마나 불쌍해! 오지도 않을 박사를 망상으로 만들어내고, 아직도 자신한테 뭔가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계속 책이나 읽어대고! 너는 위험한 말기환자야, 가치 따윈 없단 말이야! 박사님이 그런 너 따위를 위해 이런 곳에 올 리가 없잖아! 정신 좀 차려! 너는 이미 학자도 뭣도 아니야! 넌 혼자서, 여기에서 비참하게 고통받다가 죽는 거라고!!" 



 내뱉는 말들이 진심인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과연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원망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절망으로 뒤덮인 인생의 종착점에 갇혀버린 자신의 처지에 대해, 그저 화풀이를 하는 것에 이유를 끼워넣고 있을 뿐인 걸까. 그런 판단조차 더는 할 수 없다. 



"아아, 그래. 나는 네가 절망해버렸으면 좋겠어! 나를 이런 곳에 묶어두는 밉살스러운 네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져서 비참하게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다른 감염자들처럼 말이야!" 


"에, 아r로오......" 


"그런데 너는...... 너는, 어떻게......!" 



 에이야퍄들라는 그저 곤란해하고 있다. 


 귀가 들리지 않으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하지만 피부에 와닿는 박력으로, 내가 무어라 소리치고 있는 것은 알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겁에 질린 그 모습은―― 어떻게 봐도 그저 무방비하기 짝이 없는 가녀린 소녀에 불과했다. 


 손에 쥔 메스로 그녀의 목을 그어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로도스 터미널에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설령 그녀를 죽인 것이 발각된다고 해도, 내 정신적 피로는 이미 옛날부터 심각했기에 감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로도스에서 쫓겨난다면 오히려 바라는 바다. 


 계속 바라왔던 해방이 바로 앞에 있다. 


 분노의 화염은 머릿속을 검은 감정을 연료로 타올라―― 그 후에는 슬픈 허무감이 남는다. 



"어떻게 너는,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거야..." 



 무수한 감정들이 뒤섞이며 뇌가 폭발해버릴 것 같다. 나는 머리를 움켜쥐고,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묻는다. 



"귀도 눈도 망가져서, 제정신으로 있을 수도 없을텐데. 오리지늄 결정 때문에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울텐데... 네 수명은, 이제 3개월도 안 남았는데......" 


"......" 


"넌 얼마 못 가 죽어.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살려고 하는 거야. 아직도 웃으면서, 아직도 세상에 희망이 남아있는 것처럼......" 



 굳이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아마 이 감정은 질투일 것이다. 


 누구도 죽음과 그에 동반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공포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파되고 마음을 부숴간다. 


 그런데, 그런 지옥에 나를 옭아매고 있는 에이야퍄들라는, 남은 시간을 필사적으로 살아가려고 하고 있다. 


 설령 가장 사랑하는 이를 환각으로 오인하는, 뒤틀리고 비참한 방식일지라도. 


 명랑하게 미소짓는 그 모습은 다른 어떤 환자보다도 눈부시고, 가련하고, 맑았다. 어쩌면 멀쩡한 우리 직원들보다도 훨씬 더 인간다운 것이었다. 


 나를 지옥에 옭아매고 있는 그 미소에 나는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너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살아있는 한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굳게 믿을 수 있다면, 대체 얼마나......" 



 빛을 갈구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똑바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어떻게 증오할 수 있을까. 


 죽여버릴 각오로 왔을텐데, 여기에 와서야 나는 죄책감에 짓눌리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도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생명은, 그야말로 어둠으로 뒤덮인 세계에서 빛나고 있는 촛불이다. 


 그것을 짓밟는 것은, 세상에는 아무런 구원도 없다고, 내 스스로 증명해버리고 마는 것 같아서. 



"난 도저히 못 견디겠어. 하지만 너를 죽이는 것도,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에이야퍄들라의 침대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격정과 비통으로 마음 속이 엉망진창이다. 피부 안쪽이 녹으며, 진흙마냥 꾸덕꾸덕한 것으로 변해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분명 이대로 1분만 지났다면, 내 손에 들린 메스는 나 자신의 경동맥을 그어버렸을 것이다. 여기에서 도망치고 싶다, 그녀를 건드릴 순 없다, 이 두 가지 감정이 겹치며 도달하는 곳은 그 외에는 없었으니까. 


 그런 내게 그녀는 다른 방법을 내밀어주었다. 



"......저, 어, 브, 해" 



 고개를 들자, 에이야퍄들라가 침대 위에서 몸을 내밀어 내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뭔가 각오를 다진듯한 표정이었다.


 잡힌 옷자락을 끌어당겨진다. 저항할 힘도 없이 나는 그녀에게 끌려갔다. 



"개n, 타, 아, 어?" 



 자신이 더이상 말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을 알 텐데도,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전하려고 시도하는 뚝뚝 끊기는 소리는, 마치 손바닥에 글자를 쓰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따뜻함이 묻어나는 것이었다. 


 눈도 귀도 멀어버렸어도, 그녀는 내가 깊은 슬픔에 빠져있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다. 


 그녀의 작고 부드러운 손이 내 몸을 쓰다듬는다. 고양이가 털갈이를 하는듯한 위로의 행위. 묘하게 간지러웠지만, 피로에 지친 내 마음은 거기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행위를 선택하지 않는다. 




 에이야퍄들라의 손이 내 팔에 닿아 손바닥까지 미끄러져간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내 손가락 끝... 쥐고 있던 메스에 닿았다. 


 그녀는 순간 숨을 들이키더니, 침묵하며―― 미소를 지으며 내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주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빼려고 했다. 그 움직임을 에이야퍄들라의 손이 가로막았다. 



"......개애, 챠, n아, 어"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달래듯이 말하며, 메스를 움켜쥔 채 떨리고 있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침대 옆 테이블에 풀려난 메스가 딸칵 소리를 내며 놓인다. 


 에이야퍄들라에게 쓰다듬을 받는 동안 나는 그야말로 폐인같은 상태였다. 기력을 모두 잃고, 그녀의 자그마한 손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에 젖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의식은 마치 백일몽을 꾸는 것처럼 현실과 망상 사이를 헤메며 기능을 정지시키고 있었다. 


 에이야퍄들라가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열굴에 손을 뻗었다. 




 눈앞에 눈을 붕대로 감싼 천진한 소녀의 얼굴이 다가온다. 긴장한 탓인지, 작은 연분홍색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숨결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내 얼굴에 닿자 뺨에 흐르던 눈물을 알아차린 에이야퍄들라는 깜짝 놀라고는 슬픈 표정을 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모를텐데, 마치 내 일처럼 슬퍼해주고 있다. 


 그녀의 상냥함에 나는 또 울어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그 후에 그녀가 취한 행동은 북받친 눈물이 들어가버릴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내 뺨이 그녀의 작은 두 손에 감싸였다. 



"......에이야퍄들라?" 



 정신을 가다듬은 내가 본 것은, 스윽 깊이 숨을 들이마신 그녀의 얼굴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광경이었다.



"……쪽"



 느껴지는 온기, 눅눅한, 부드러운 감촉.


 그것이 에이야퍄들라의 입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대략 3초 정도가 필요했고, 


 그걸 깨달았어도 무슨 일을 당한 건지 모른 채,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에, 에이야......?" 


"츄, 츄우...... 하, 음..." 



 연분홍색 입술을 대고, 작은 혀를 살짝 내밀며, 에이야퍄들라는 내 뺨에 흐르는 눈물을 핥아간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은 내 뺨을 타고 내려가더니―― 놀람에 벌어져있는 내 입술을 물었다. 



"흐음...... 츄루..." 


"으...... 으응......!?" 



 반쯤 열린 입술에 미끄러져 들어오는 뜨거운 혀의 감촉.


 그제야 나는 완전히 정신을 차렸고, 내가 그녀에게 키스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 밀려왔다.


 뒷걸음질치며 거리를 두려 했지만 그보다 빨리 에이야퍄들라가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예상보다도 강한 힘으로 끌어안겨, 이윽고 깊게 입술을 빨린다. 



"에...... 츄우, 레읍..."


"읍......!?" 



 경악, 당황. 그 어느 것보다도 강한―― 입안을 핥아지는, 저릴 듯한 쾌감.


 나는 가위에 눌린 듯 온몸이 경직되고, 에이야퍄들라의 혀가 내 혀를 얽어매며 타액을 흘려넣는 것을 무저항으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렇게 잔뜩 십초 정도 키스를 이어가자 에이야퍄들라의 입술이 떨어졌다. 


 츄, 하는 젖은 소리와 함께 얼굴이 떨어지며 그녀의 얼굴이 드러난다.



"......후우...... 후우......" 



 요염한 얕은 호흡. 홍조를 띤 뺨.


 눈가가 붕대로 가려졌어도, 그녀가 무언가를 청하는 듯 애틋한 표정을 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이상으로 숨을 몰아쉬며, 놀라 굳은 채로 그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신은 혼미해지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을 정도로 뛰고 있다.


 영문을 알 수 없다. 시간이 벌써 30분 정도 날아간 것 같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내 입안에 남은 그녀의 혀의 미끈한 감촉은 생생할 정도로 리얼하고, 


 그녀에게서 은은히 풍기는 소녀의 향기는, 절망에 피폐해진 머릿속에 극약처럼 강렬한 불꽃을 터뜨린다. 



"......s어배......" 



 발음도 성조도 파탄난 그 목소리에는, 소름돋을 정도로 농염한 기색이 깃들어서, 


 남아있던 이성이, 완전히 녹아내리며 뇌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윽, 아아, 으아아앗!" 



 어느새 나는 착란을 일으킨 환자같은 비명을 지르며 에이야퍄들라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녀를 침대로 밀어 넘어뜨리고 그 위로 덮쳐든다. 충격으로 침대에 널부러져있던 점자 문서들이 바스락거리며 흩날린다. 


 에이야퍄들라의 양손을 움켜쥐고 침대에 위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고정시킨다. 고쳐쥔 그녀의 손목은 여위어 가늘고, 뼈의 감촉이 손에 직접 전해졌다. 


 에이야퍄들라의 얼굴은 공포가 아닌, 아까와 변함없는 요염한 숨결만이 반복해 나오고 있었다. 


 그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모종의 마력에 홀린 것처럼, 


 나는 에이야퍄들라의 어린아이처럼 작고 부드러운 입술을 탐하며, 들이마시듯 입술을 부딪치는 것이었다. 



"으음, 츄, 츄우...... 쥬릅, 츄, 츄우우웃......" 


"응, 츄...... 츄윽, 쥬, 응하, 힛...... 으흣, 추, 쥬우...... 응후, 후우―― 후――웃...... 쥬르, 쥬읏..." 



 혀를 가능한 한 깊이 내밀어 구강을 유린한다. 포개진 입술은 계속 떨어지지 않는다. 서로를 탐하는 축축한 소리 사이로 에이야퍄들라의 쾌락에 젖은 신음소리와 고통스러운 숨결이 섞이고, 그것이 더욱 흥분의 기어를 끌어올려 간다. 


 에이야퍄들라의 타액은 꿀처럼 달콤했고, 향기는 코의 점막이 눌어붙을 정도로 향긋했다. 냉정한 판단력을 잃은 뇌에는 성적 흥분만이 밀려와 나를 짐승으로 바꿔간다. 



"쥬루릅, 츄, 츄윽, 쥬, 츄...... 쥬르르......" 



 나는 한 팔로 에이야퍄들라의 몸을 침대에 고정시키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병원복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잡아찢듯이 힘껏 버튼을 뜯어낸다. 


 햇볕에 그을리지 않은 눈처럼 새하얀 몸. 그곳에는 다른 감염자들과 같이 고통스러운 오리지늄 결정이 이곳저곳에 노출되어, 그 주변을 염증으로 검붉게 더럽히고 있었다. 


 삶의 끝을 향하는 격리생활은 에이야퍄들라의 신체에서 확실하게 활력을 앗아가고 있었다. 몸은 가여울 정도로 앙상하고, 얇은 가슴에는 갈비뼈가 드러나 있다. 피부에 윤기는 있지만 심지가 뽑혀나간 것처럼 부드럽고, 근육도 퇴화하여 쇠약해진 것을 육안으로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초췌한 모습, 오리지늄에 고통스럽게 상처입은 나체에 드러난 유방은 기대에 부풀어 그 끝을 단단히 하고 있기에, 


 나는 홀리듯이 그녀의 가슴에 달라붙어, 유두를 입술로 강하게 앙다무는 것이었다. 



"응큣...... 응아앗, 히, 으으으으응!" 



 날카로운 교성이 한밤중의 고요한 병실에 울려퍼진다. 


 저항은 느껴지지 않자, 나는 그녀를 구속하고 있던 팔을 쾌감을 얻는 용도로 전환한다. 그녀의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가슴을 탐닉하며, 그 끝의 젖꼭지를 엄지손가락으로 밀어돌린다. 



"히야앗, 아히, 아, 아아! 힝, 햐잇!" 



 나의 난폭한 애무를 에이야퍄들라는 기꺼이 받아주는 것 같았다. 유두를 꼬집을 때마다 그녀의 몸이 움찔 크게 떨리고, 크게 벌어진 입에서는 교성이 쏟아져나온다. 입가에서 흘러넘친 타액이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조차 참을 수 없이 관능적으로 보여, 흥분은 끝없이 커져간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미칠 듯한 흥분 속에서, 거의 남지 않은 이성은 당황하고 있었다. 


 어째서 나는 에이야퍄들라의 가슴을 빨며 애무를 하고 있는 걸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까지 온 걸까. 


 꿈이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입에 머금은 유방의 살짝 땀에 젖은 맛과, 손바닥에 전해지는 그녀의 말랑말랑한 살결의 부드러움, 그것들의 농후한 암컷의 향기가, 너무나도 리얼한 쾌감으로 뇌를 때려온다. 


 열정에 몸을 맡긴 탐욕은 이제 겉잡을 수 없다. 상냥하게 배를 쓰다듬던 내 손은 그대로 서혜부로 내려가 그녀의 바지 속으로 미끄러진다. 


 허벅지 틈새로 기어들어간 손가락에, 질척한 끈적거리는 감촉과 맹렬한 열기를 느꼈다. 


 젖어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시작한, 난폭한 애무에서조차, 그녀는 흥분하고 있는 것이었다. 



"앗, 아히―― 꺄흣, 흐히잇!?" 



 주저없이 손가락을 삽입하자 에이야퍄들라는 한층 더 날카롭게 목소리를 높였다. 전류가 이는듯한 강렬한 쾌감에, 그녀의 몸이 브릿지처럼 크게 젖혀진다. 


 이미 그녀의 소중한 부위는 끈적끈적해져, 남자를 탐하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모양새같았다. 그 음란함에 나는 초조함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손을 사용하여 그대로 질내를 헤집었다. 



"응히잇!? 하으, 응깃, 아흐, 히아앗, 아, 아, 아이이잇!?" 



 병실 안에 찌걱찌걱 종잡을 수 없이 음탕한 소리가 울린다. 앙상하게 마른 그녀의 몸은 젖혀진 채, 등을 침대에서 떼어낸 활 같은 자세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잔뜩 새어나오는 애액은 이미 시트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아아! 히익, 으히에! 흐아! 아, 아오윽! 우! 아오오!" 

 

"으...... 시끄, 러워!" 



 청력을 잃고 볼륨 조절이 불가능햐진 그녀의 교성은 이미 절규라고 부르기에 적합했다. 심야라고 하지만, 누군가 온다면 눈치채버릴 것이다. 


 나는 비어있는 쪽 손을 그녀의 입에 포개고, 베개를 향해 찌부러뜨리듯 강하게 눌렀다.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해 그녀를 구속한 채, 비부를 거칠게 손가락으로 휘젓는다. 



"으응, 므으, 우, 으~~~~~~~읏!" 



 입을 틀어막은손이 에이야퍄들라의 비명소리에 찌릿찌릿 울린다. 손가락을 깨물고 있는 그녀의 음부에서 피윳, 투명한 액체가 뿜어져나온다. 


 그때 나의 마음에 가득차있던 욕망은 파괴충동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 순수함이 남아있는 소녀를 부수고 싶다.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다. 정도를 넘은 열정이 잔혹한 공격성으로 변해 그 충동을 탄 채로 손가락을 휘저으며 음란한 물소리를 찌걱찌걱 연주한다. 찌걱찌걱, 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 



"으응, 흐으응, 응히잇, 히으응, 응, 으응~~~~~~~~!!" 




 그렇게 유달리 큰 교성을 지르며, 에이야퍄들라는 절정했다. 


 피잉 몸을 젖힌 채, 음부에서 촉촉하고 투명한 액체를 뿜어낸다. 분수처럼 애액을 뿜어내며, 다리는 바들바들 경련하고 벼락을 맞은듯한 쾌감에 온몸이 휘청거리고 있다. 


 나사가 빠진 인형같은 꼴로 몇번이고 몇번이고 경련하며 절정에 이르는 떨림. 시트를 축축하게 적실 때까지 애액을 뿜어내자, 그제서야 그녀의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몸에 매어있던 실이 잘려나간 듯, 계속해서 휘어졌던 몸이 시트에 떨어졌다. 


 움찔움찔 마비된 그녀의 음부에서 쑤욱 손가락을 빼내자 끈적끈적한 애액 실가닥이 몇 가닥 함께 뽑혀나왔다. 


 병실 안에 음탕한 암컷의 냄새가 가득하다. 비강으로 파고들어와 뇌까지 뒤섞는듯한 농밀한 향기에 현기증이 나는 것 같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머리가 찌릿찌릿하고, 금방이라도 소리지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혼란해하며, 발화할 것 같이 열이 나는 머리는, 마치 처음 사람을 죽인듯한 기분과도 같이 나사가 날아가있다.


 현실감을 뒤로 한 까닭 모를 흥분은 전혀 식지 않는다. 쾅쾅거리며 요동치는 고동은 내 하반신에도 뜨거운 혈류를 가득히 보내고 있었다.



――뭐지, 이건. 



 자신도 모르게 바지가 내려간 채 굳게 세워져 있는 남근을 드러내며, 육체에서 박리된 이성은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에이야퍄들라에게 이런 감정을 품은 적은 없었다. 그녀에게 가졌던 감정은 단지 자신을 여기에 옭아매고 있다는 증오와, 말기감염자로서 맞이할 가여운 최후에 대한 동정심만이 있을 터였다. 


 그런데 나는, 나는 절정의 여운에 몸을 꿈틀거리는 그녀의 흐트러진 모습에 속절없이 흥분하고 있다. 페니스는 전례없을 정도로 마치 철과 같이 단단히 일어서있다. 살인 충동으로 착각할 정도의 강한 정동이, 그녀를 범하고 싶다, 더럽히고 싶다고 외치고 있다. 


 지금 나는 그녀의 아랫배에 자신의 분노한 물건을 맞닿게 하고 있다. 굵게 혈관을 울리는 남근은 사랑스러운 그녀의 배꼽 근처까지 닿는다. 검붉게 기어간 귀두 끝에서는 이미 쿠퍼액이 새어나오며, 투명한 땀이 방울지며 그녀의 배꼽에 고였다. 


 꽂아버리고 싶다. 범해버리고 싶다.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고 싶다―― 그래도, 어째서? 그 단순한 의문의 답을 알지 못한 채 현기증이 일어난다. 


 나는 에이야퍄들라를 죽이러 왔다. 이 빌어먹을 말기 병동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서. 더이상 내 마음이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어째서 나는 그녀를 덮치고 있지? 범하려고 하고 있지? 


 미워서? 죽이고 싶어서? 그녀의 고결함을 용납할 수 없어서? 아니면 그냥 내가 이미 미쳤기 때문에? 


 ――아니면, 용서받고 싶어서? 


 모순을 안은 컴퓨터처럼, 나는 에이야퍄들라의 아랫배에 페니스를 누른 채 움직임을 정지시켰다. 


 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을 모르겠다. 머리의 열은 뇌의 회로마저 끊어버릴 것 같다. 몸에서도 나오는 열과 함께 머리에서 의식이 증발해가고, 이대로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사고의 동결을 융화시킨 것도―― 역시, 그녀였다. 



"......주, 어" 



 얼어붙어 있던 내 귀가 소리를 포착했다. 


 침대에 누운 채, 격렬한 절정에 몸이 저려있는, 병원복을 벗어던지고 오리지늄 투성이의 나체를 드러내는 에이야퍄들라. 


 그녀의 침범벅이 된 입이 움직이며 말을 더듬고 있었다.



"와, 줘" 



이제 자신이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그녀는 내게, 온 힘을 다해 전하고 있었다. 



"오아...... 저...... 와, 주... 어―― 와줘어......!" 


"――!" 



 마침내 마지막 일선마저 본능에 굴복했다. 


 에이야퍄들라의 가냘픈 허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나는 흠뻑 젖은 그녀의 비부에 있는 힘껏 페니스를 집어넣었다. 



"응그읏, 히, 응이이이이잇!!" 


"우읏, 크......읏!" 



 허리를 밀어넣는 순간, 나는 맹렬한 쾌감에 이를 악물었다. 


 어린아이같기도 한 에이야퍄들라의 안은 너무나도 좁았다. 질내에서 느끼는 감촉이 명확하게 페니스로 전해져온다. 분명 아직 건강했을 때 했던 자위의 횟수도 적을 것이다. 질 전체가 고통에 몸부림치듯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렇다는 건 이 질 내부는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었다. 들어간 페니스는 듬뿍 열기를 띤 애액에 젖어, 육봉이 민감한 점막을 찌걱찌걱 핥는다. 삽입한 끝에서 나오는 녹아버릴 듯한 기분에, 신음소리가 새어나오며, 허리가 빠져버릴 것 같다. 



"으읏, 젠장. 이거 기분이 너무 좋아서...... 윽, 이거, 자지가 빠져버릴 것 같아......앗...!" 



 끈적끈적하게 얽혀드는 질 전체가 강렬한 압박으로 조여들어온다. 


 좁고, 뜨겁고, 걸쭉한, 에이야퍄들라의 보지. 정신을 놓았다간 페니스가 찌부러져 정액을 짜여진다고 느껴졌을 정도의 강렬한 쾌감이었다. 



"하앗, 하히...... 히읏, 그히......잇~~~~이이......!" 



 그리고 에이야퍄들라는 나 이상의 쾌감에 떨고있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작은데 입원 생활로 더욱 야윈 그녀의 얇은 아랫배는 내 페니스 모양으로 볼록하게 부풀어있었다. 막 삽입한 참이라, 귀두에 가장 안쪽 자궁까지 찌부러져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그런 그녀가 흠뻑 젖은 질을 페니스에 꿰뚫리는 것은 대체 얼만큼의 쾌감일까. 꽉 악문 이빨에서 빠드득 소리가 울리고, 차마 소리로 내지 못할 정도의 교성이 그 사이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눈가를 감싼 붕대. 작고 여윈 몸. 여기저기 솟아나온 결정. 피부 아래로 극명하게 떠오르는 뼈의 실루엣. 


 그런 죽음이 서려있는 나체를 쾌감으로 가득 체우고, 자그마한 가슴에 자그마한 유두를 쫑긋 세워, 눈앞에 가득한 음문으로부터 또다시 애액을 쏟아내는 모습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내 열정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에이야퍄들라..... 으읏!" 


"후아아, 히, 으으응!?" 



 나는 그녀를 뒤덮고, 탐하듯이 허리를 훔직이기 시작했다. 


 열정과 함께 허리를 밀고 당기며 부딪친다. 에이야퍄들라의 몸이 크게 튀어오른다. 



"응긋! 하히잇, 카하, 히, 히아아앗!?" 



 빠직 하고 터져나오는 물소리가 들려오며, 거기에 그녀의 숨막히는듯한 헐떡임이 겹쳐진다. 


 페니스를 뽑아내고 집어넣을 때마다 음부를 간질간질 넓히고 있는 감각이 든다. 아이의 것처럼 왜소한 그녀의 비부는 애초에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해서, 이대로 가다간 찢어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몸을 걱정할 상냥함은 나의 머리에는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폭력적인 짐승처럼 힘껏 허리를 빼내고, 관통한다. 그녀의 얇은 아랫배에 귀두를 띄우며 그녀의 몸을 경련시킨다. 



"후오옷, 응, 히이, 아히, 아아아! 카히, 히, 히이...... 응아앗, 아우, 아, 아아아아―――!" 



 평소에도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에이야퍄들라의 목소리는, 점점 의미조차 잃어버린 짐승의 포효처럼 되어간다. 더이상 목소리만으로는 쾌감에 의한 것인지 통증에 울부짖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구별할 노력조차 하지 않으며 허리를 부딪치는 것을 계속한다. 


 그것은 '범한다'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리는 성교였다. 희망이라고는 없는 인생 최후의 관 속에서, 곧 죽을 소녀가. 마음이 부숴진 남자에게 짐승처럼 탐닉당한다. 그러한, 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인생의 말로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우으으, 응! 응이, 이히, 이이......!" 


"하앗, 하아, 하아...... 에이야퍄들라...... 에이야퍄들라......!" 



 짐승같은 교성. 참혹한 신음. 말라비틀어진 몸에 떠오른 젖꼭지를 빨며, 곧 죽을 여성의 비부를 페니스로 휘젓는다. 이 세상의 종말이 온 것 같은 성행위. 지옥의 한 풍경. 


 그럼에도 나는 에이야퍄들라의 짐승과도 같은 헐떡임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욕정이 솟아나고 있는 것이었다. 


 에이야퍄들라도 애액을 하염없이 떨어뜨리며 내 냔폭한 욕정을 쾌감으로서 누리고 있다. 살결은 점차 풀리고 녹는 듯 부드러워져 페니스에 달라붙는다. 꾸욱꾸욱 오므리며 깊은 곳까지 끌어오는 따뜻한 속은 허리가 녹아내릴 정도로 안락하다. 


 폭력적이고, 퇴폐적이고, 맥락조차 존재하지 않는데, 서로의 성기를 문지를 때마다 가슴에 뜨거운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하앗, 하아...... 사아아, 주어어......!" 



 숨을 헐떡이며, 에이야퍄들라가 무언가를 말하며, 허공을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으응! 응히잇! 아...... 사! 아, 저! ......사, 아, 주어......!" 



 말의 의미를 이해한 순간, 나는 튀어오르는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곧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연인의 손을 아슬아슬하게 붙잡은 것처럼. 나는 에이야퍄들라의 몸을 뒤덮으며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도 매달리듯이 내 등에 가느다란 팔을 돌린다.



"읏――!?" 



 그녀를 껴안는 순간,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이성이 급격히 돌아왔다. 오싹, 공포심마저 생길 정도로 그녀의 몸은 앙상하게 여위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저기 솟은 오리지늄 결정에 피부가 스치는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얇고 뼈가 드러나는 수준의 나체는 힘을 가하면 마른 나뭇가지처럼 부러져버릴 듯이 여리고 가벼웠다. 그럼에도 그녀의 체온은 늘 몸 안팎으로 염증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화상을 입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그 여림이, 열이, 그녀가 얼마나 위독한 상태인지를 내게 상기시키며 이성을 돌아오게 했다. 하지만 한번 터져버린 어긋난 열정은 더 이상 억제할 수 없었고, 나의 육체는 더욱 밀접하게 느껴지는 암컷의 색기에 하염없이 흥분할 뿐이었다. 


 나는 그녀 위에 엎드리듯 껴안고, 허리를 더욱 누르며 페니스를 질내의 더 깊은 곳까지, 푸욱 쑤셔넣는다. 



"히잇, 응히, 아흐, 후오, 오우, 오히, 히이잇......!" 


"하앗, 하아, 하아, 하아앗..." 



 일심불란하게 페니스를 스트로크시킨다. 팽팽한 물건이 좁은 구멍 속에서 고깃덩이에 끈적끈적하게 핥아져, 오싹한 감각이 등뼈를 타고올라 뇌를 저리게 한다. 


 하반신에서 펄펄 끓는 욕망은 이미 폭발 직전이었다. 서서히 마지막 순간이 치밀어올라, 내게서 여유를 빼앗고, 절정의 예감을 느끼는 페니스는 감도를 올려 쾌감을 증대시키며, 한층 더 전력으로 허리를 부딪친다. 



"에이야퍄들라..... 윽, 크으......!" 



 이제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얼굴에 맞닿은 그녀의 앙상한 뺨에 나의 눈물이 스친다. 



"미안해, 에이야퍄들라...... 미안해, 미안해......!" 



 너를 범해서 미안한 것인가, 죽이려 해서 미안한 것인가, 미워해서 미안한 것인가, 비참한 자신에 대한 한탄인가, 이 병실에 가두고 죽음을 기다리게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무상함에 대한 분노인가. 


 더이상 언어화할 수 없는 여러가지 절망들이 뒤섞인 비통한 감정이 눈물이 되어 터져나오고 있었다. 


 양 다리를 짓누르고 위에서 아래로 찔러넣는 피스톤. 그녀의 좁은 질에 쑤컹대는 운동을 반복하며 헛소리를 뱉어내는 광경은 애처로운 수준을 넘어 골계스러울 정도였다. 


 용서를 빌고 싶다면 빨리 그 더러운 고깃대를 뽑아내면 될텐데, 그것만은 하지 않는다. 육체는 그저 고여버린 감정을 토해낼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 욕망을 거스를 수 없는 꼴사나움에 대한 자기혐오가, 혼탁한 검붉은 감정에 섞여들며 더욱 검고 짙어진다. 


 기분은 좋고 머리는 이상해져버리는데, 마음은 죽는 순간의 악몽을 꾸는 것만 같았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지배당하며 의미도 모르는 섹스를 하더니, 이제 미쳐버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데, 그녀는. 



"......개, 애애아아......여......" 



 꼬여버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에이야퍄들라는 내 뺨에 흐르는 눈물을 핥고는, 입술을 겹쳤다. 



"응...... 츄, 유읍, 츄, 츄우, 츄......" 



 그녀의 메마른 다리가 나의 허리에 돌려진다.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확실한 힘으로. 떨어지기를 거부하듯. 



"츗, 츄루, 쥬릅, 푸...... 애, 주, 허......" 


"윽......!" 


"주후어, 사! 주허...... 사아, 흇, 어...... s아d우어......!" 



 결국 아무것도 모른 채, 이성을 따라가지 못한 채. 


 나는 그녀의 입술을 막은 채, 일심불란하게 허리를 부딪쳤다. 



"흐응, 푸, 으응! 하으, 르흐읏, 흐읏, 으으응! 으응......!" 



 철벅철벅거리는 격렬한 물소리. 뇌가 찌릿해지는 맹렬한 쾌감. 애액과 교성 그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달콤햔 향기가 뇌를 뒤섞는다. 



"에이야퍄들라...... 이제...... 한, 계엣......!" 


"흐으읏, 흐응! 으응! 하, 사아...... 사! 주어! 아, 아아아! 흐응, 웃, 우우우우웃!" 



 하반신이 녹아버릴 정도로 열기가 솟아올라, 치밀어올라, 치밀어올라, 치밀어올라― 마침내 터진다. 



"윽, 간다, 사정한다! 에이야―― 아앗, 으아아아!"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깊이, 입도 페니스도 부딪치며. 


 나는 그녀의 가엾고 앙상한 자궁의 가장 안쪽에 대량의 백탁액을 뿜어냈다. 



"응힛!? 아앗, 으응, 흐이이, 이잇~~~~~~......!" 



 안에 쏟아진 대량의 정액에 최후의 스위치가 들어가며, 에이야퍄들라도 거의 동시에 절정했다. 가득 힘을 주며, 내 몸을 꽉 껴안는다. 


 좁은 질에 페니스가 뽑혀나올 정도로 강렬하게 짜이면서, 용암처럼 뜨겁고 걸쭉한 정액을 뿜어내는 것은 영혼이 녹아내리는 듯한 쾌감이었다. 피부의 오리지늄 조각으로 몸이 살짝 찢어지는 통증조차 고혹적으로 느껴진다. 


 나도, 에이야퍄들라도, 서로를 힘겹게 끌어안은 채,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강렬한 쾌감의 여운에 계속 빠져들었다. 


 페니스에서 뿜어져 나온 백탁액이 자궁으로 흘러들어간다. 에이야퍄들라의 뱃속에 내 체액이 서서히 스며든다. 그 박동을, 참을 수 없는 정복감을, 온몸으로 느낀다. 


 두근, 두근, 움찔, 움찔, 움찔―― 두근, 두근, 움찔, 움찔―― 




"윽, 하...... 하아......!" 


"하앗, 응, 쿠으...... 하으, 응, 츄웃......" 



 이어진 실을 당기듯, 절정에 여운에 온몸이 마비된 에이야퍄들라의 입술이, 당연하다는 듯 나의 입술에 포개졌다. 



"츄웃, 츄...... 흐음, 응...... 후우, 츄우, 츄릅......" 



 이번에는 부드럽게, 음미하듯, 서로의 혀를 얽는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해서, 폭력적으로 끝난 그 섹스는―― 죽음과 절망에 휩싸인 이 종말의 병동에 근무했던 나날 중에서, 가장 『살아있다』 라고 부를 만한 시간이었다. 


 





※ 일러스트 출처: https://www.pixiv.net/artworks/110496428

※ 이 소설은 원작자 「オリスケ」님의 허가를 받고 번역하였습니다. 

※ 작가분 트위터: https://twitter.com/brava_novel

※ 원문출처: https://syosetu.org/novel/332051



신음소리 너무 어렵다앗 


쓰면서도 이게 맞을까 싶었는데 더 좋은 표현 있으면 제시해주기 바람 


오타 오역 의역 어색한 표현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