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CH ME BURN 번역 링크














 그러한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나날들이 1주일 정도 지났습니다. 


 새하얀 저의 세계는 최근들어 덜컹이는 진동을 느끼는 빈도가 잦아졌습니다. 


 근접한 재앙이 이동도시가 디디고 있는 대지를 흔들고 있는 영향입니다. 회진을 온 닥터가 말하기를, 상당히 대규모에 속도까지 빠른 재앙으로, 로도스 본함도 로도스 터미널도 가능한 한 최고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불규칙하게 흔들리고 때로는 바닥을 기울이기까지 하는 진동은 예전에 도솔레스 해변에서 탔던 보트를 떠올리게 했고, 우리들이 사는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놀이기구와 다를 게 없음을 다시 한 번 의식하게 했습니다. 


 엄청나게 거대한, '파도'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뒤에서 다가옵니다.


 재앙을 앞에 두고 100% 안전하다는 보장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닥터의 손길과 행동에도 감출 수 없는 불안과 긴장이 느껴집니다. 


 마치 구름이 우중충 끼어 태양을 가로막은 날같은, 차갑고 무거운 분위기가 주변에 차올라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음기가 제게 스며들기라도 한 듯, 제 병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고농도가 된 혈중 오리지늄은 제 체내에서 결정화되어 그 상태로 혈류를 타고 온 몸을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그건 수많은 주사바늘에 온몸을 찔리는 것 같은 엄청난 격통입니다. 그 통증 앞에서는 어떤 약물도 효과를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발광 직전까지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며 몇 번이고 아츠를 폭주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몸에서 뿜어져나와 병실을 항성과도 같은 고온으로 불태우는 업화를, 제 의식은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습니다. 


 느끼는 것은 오로지, 주위를 꿈틀거리며 으르렁대는 파도 소리뿐.


 그것은 로도스 터미널 전체를 뒤흔드는 재앙의 파도와 기묘한 공명을 보이며, 저의 의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날뛰어다닙니다. 마치 거대한 뱀이 저를 꽁꽁 휘감은 채 그대로 삼키려는 듯한,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를 느끼게 했습니다. 그 파도를 앞에 두고, 저는 그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트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무섭도록 거대한 파도가 지나간 뒤에는, 제 병실의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번에 네가 뿜어낸 아츠는 병실 내화온도의 97퍼센트까지 다다랐어 


――로도스 터미널의 설비로는 더 이상 내화성 보강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해 



 손가락 끝으로 읽는 것은 그저 점자의 나열일 뿐일텐데, 닥터의 비통한 마음이 전해져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침대에 옆으로 누운 채, 닥터가 인쇄해준 점자 문서를 읽으며, 떨리는 손을 허공으로 내밀었습니다. 닥터가 키보드를 제 몸 바로 옆으로 옮겨주었기에, 저는 검지만을 사용하여 달칵...... 달칵...... 하고,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키를 두드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저의 의지대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주사 바늘의 바다에 누워있는 것 같아서, 아주 조금만 움찔거려도 심한 통증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목으로 넘어가지도 않게 되어, 팔에 박힌 관으로 흘러들어오는 링거만이 저의 식사였습니다. 몸은 점점 더 말라가고, 단지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에도 남은 의지를 총동원시킨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아직, 더 강해질 거예요』 



 닥터가 제 어깨를 만집니다. 그 손은 가늘게 떨려와, 불안해하는 어린아이와도 같이 느껴졌습니다. 



『몸 속에, 엄청나게 커다란, 무언가가 있어요』 


『그게 저를 부르고있는 것 같아요』 



 눈가를 감싼 붕대로 눈물이 번져갑니다. 


 아픔 때문에 저는 오열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닥터』 


『혹시 더는 무리라고 판단된다면』 


『그때는 가장 좋은 선택을 해주세요』 



 닥터가 제 손을 잡았습니다. 손바닥에 손가락을 올리고, 글자를 적습니다. 



――그, 런, 말, 하, 지, 마 



 몸은 항상 고열로 달아올라있고, 손바닥의 감촉도 이제 상당히 둔해졌습니다. 



『제 마지막에 누군가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요』 



 쿠궁, 또 이동도시가 흔들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새하얀 세상이,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에 의해 흔들립니다. 


 손바닥 위의 닥터의 손가락도, 떨리고 있었습니다. 



――많, 이, 무, 서, 울, 거, 야 



 눈을 가린 붕대가, 또다시, 뜨거운 것으로 서서히 번졌습니다. 


 새하안 세계. 넘실거리는 공기. 떨리는 손가락. 정상적인 것이라고는 세상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때 색채로 넘쳐났던 세상은 무상의 흰색으로 덧칠되었고, 행복은 이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무서워요』 


『죽고 싶지 않아요』 


『닥터에게 아무리 많이 사랑받아도 이 마음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저는』 


『이 이상으로 또 누군가를 괴롭게 하는 게, 가장 무서워요』 



 저의 몸이 다른 것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무가 불타 재가 되어가는 것처럼, 저를 구성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이 깎여나가고, 딱딱한 오리지늄 원석의 존재가 커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점점, 제가 제가 아니게 되어갑니다. 


 최후에 저는 끔찍한 활성 오리지늄 분진이 되어 세상을 더럽히는 암이 되며 죽습니다. 한때 '저였던 것'은 오리지늄에 잡아먹혀 흔적조차 남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제가 저일 때에 끝내고 싶습니다. 


 무섭더라도, 그게 분명 가장 좋은 선택일 테니까. 


 닥터는 제 손을 쥔 채 키보드로 입력되는 소원을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저의 손바닥에 똑, 물방울이 떨어집니다. 한 방울, 두 방울, 이윽고 비처럼. 



――너, 와, 헤, 어, 지, 기, 싫, 어 


――네, 가, 없, 어, 진, 다, 면 


――나, 는, 어, 떻, 게, 해, 야, 할, 지 



 거기에서 계속할 수 없게 된 듯, 닥터는 제 손을 두 손으로 꼬옥 붙잡고 거기에 자신의 이마를 대었습니다. 저의 앙상한 손에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아픔에 닳아버리고, 노인과도 같이 피폐해졌던 제 마음이 조금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통증도 마다하지 않고 목으로 소리를 전합니다. 닥터라고, 이름을 부르고 싶어서, 동물과도 같은 신음소리를 내었습니다. 



『닥터』 



 저는 눈물을 쏟으며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아직, 저를 사랑해주시고 있나요?』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다니, 제정신이 아닌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저희들이 나눴던 것은 안타까울 정도로 느렸던 만남과 폭력이 섞인 퇴폐적인 사랑뿐이었습니다. 


 저희들은 서로 상처받고, 지치고, 마모되어, 상실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서로를 요구했을 뿐. 그러한, 현실도피와 동정심, 육체만으로 연결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닥터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채입니다. 닥터 스스로도, 그 연인이라고 부르기에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선을 넘으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몇 년 전 아직 선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던 제가 지금의 저를 본다면, 자신의 미래에 절망하고 울부짖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추악한 삶의 오물로 뒤덮여 짓물러진 관계 속에서도―― 



――사, 랑, 해 


――너, 를, 죽, 이, 는, 세, 상, 을 


――저, 주, 해, 버, 리, 고, 싶, 을, 정, 도, 로 



 손바닥 너머로 스며들어오는, 불꽃처럼 통렬한 마음이 저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기쁨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요. 


 온몸에 내달리는 극심한 통증은 결국 견디기 힘들어져 더 이상 키보드를 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쥐고 있는 닥터의 손에 다른 손도 포개어, 그 손을 배에 끌어안고 몸을 태아처럼 둥글게 말았습니다. 당신 덕분에, 조금만 더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 전해지도록. 


 닥터는 제 마른 머리를 빗어주고, 조용히 입맞춤을 해주었습니다. 


 메말라져 갈라지고 금이 간 저의 입술에 전해지는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 저는 깊게 호흡을 반복하며, 마지막으로 남은 찬란히 빛나는 보물을 소중히 마음에 새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격통에 지쳐 쓰러져 진정제로 흠뻑 젖은 저의 뇌는, 현실과 허망의 경계선을 위태롭게 넘나들기를 반복합니다. 


 끌어안고 있었을 닥터의 손은 어느새 사라져있고 온기조차 느낄 수 없었습니다. 닥터를 느낄 수 없는 제 시간은 언제나 너무나도 모호해, 1초를 정확하게 세지도 못하고 순간과 영원이 똑같은 길이처럼 느껴집니다. 


 눈먼 새하얀 캔버스에 투영되듯 되살아나는 것은, 일찍이 제가 보낸 나날들.


 기억의 조각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언젠가, 저는 아츠 스태프를 손에 들고 전선에 서서 감염자들의 거리를 습격하는 폭도를 진압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뱅가드 오퍼레이터들이 깔아놓은 포위망을 빠져나온 폭도 중 한 명이 지휘를 하고 있던 선배를 향해 화염병을 투척했습니다. 뒤에서 엄호를 하던 제가 날린 아츠는 화염병을 공중에서 부수며 선배의 머리 위에 거대한 불덩이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두 손을 뻗어 불덩이에 온 신경을 쏟았고, 불을 압축해 작은 공 크기로 만들어 폭도들이 모인 곳을 향해 쏘았습니다. 불길은 폭도들을 날려버렸고, 그것을 결정타로 진압 임무는 무사히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있던 선배는 저를 보고 감사의 말을 한 뒤 '에이야퍄들라는 대단하구나' 라고 감명깊은 듯 말했습니다. 당시 아직 신입 오퍼레이터였던 저는 그 말에 온몸이 찌릿찌릿해지는듯한 기쁨을 느끼곤 했습니다. 자신의 아츠로 싸우며 누군가를 지키는 것에 의의를 느낀 첫 순간이었습니다. 




 또 언젠가, 저는 로도스 본함의 식물원에 있었습니다. 입원한 감염자들의 휴식처로 사용되곤 하는 아주 커다란 식물원은, 퍼퓨머 씨나 포덴코 씨 등의 관리로 아주 깨끗하게 가꾸어져있습니다. 저는 큰 일이 없을 때 가끔 심부름을 하러 들르는 정도였지만, 그날은 퍼퓨머 씨의 권유로 점심 다과회에 초대되었습니다. 테이블 한가운데에는 제가 열심히 키워 꽃이 핀 제비꽃 화분이 장식되어있었고, 저는 원예부 분들과 실론 씨와 슈바르츠 씨, 스즈란 씨와 민트 씨와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날의 날씨도 아주 쾌청하고, 머리 위 선루프로부터 부드러운 햇빛이 비치고, 세상 모든 것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것 같아서. 거기서 마셨던 홍차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다고 느낀 것이었습니다. 




 또 언젠가, 저는 로도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활성화산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화산의 활도와 지반의 오리지늄 광맥의 활성률과의 상호 관계를 알아보는 조사로, 최종적으로 대지를 덮는 재앙의 규명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연구였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생명의 위험도 있고 감염될 위험도 높은 연구입니다. 하지만 로도스의 일부 오퍼레이터 분들이 저의 뜻에 공감을 표해주셨고, 어느덧 로도스 내에 전문 연구팀이 발족되었습니다. 연구를 거듭하면서 저희들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감이 생겨났습니다. 화산에서 현지 조사 중이었던 몇 번째 밤, 저는 참가자 분들과 커피를 한 손에 들고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달도 보이지 않았던 칠흑같은 하늘. 산맥은 검게 물들어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고, 그 검은 산꼭대기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여러 개의 붉은 줄기를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가장 연식이 있으셨던 분은 그것을 '아름다운, 동시에 무서운 광경입니다' 라고 표현하고, 그리고 저를 보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 팀에 지원한 것은, 이 연구를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에이야퍄들라 씨. 무엇보다도 당신에게 이 광경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수많은 광경이 새하얀 경치에 안개처럼 떠올랐다가, 현실적인 아픔에 의해 지워지고 맙니다. 현실과 공상을 넘나들 때마다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육체의 감각이 풀려갑니다. 


 마치 저의 영혼이 죽을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약물과 통증으로 흐려진 의식이 바다에 흔들리는 나무조각처럼 떠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합니다. 


 그것은 나쁜 기분만은 아니었습니다. 


 떠오르는 기억 속 광경들은 모두 추억이 깊고 가지각색 다채로운 것들입니다. 저는 그동안 제게 허락되었던 시간을 있는 힘껏 사용하여,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연구하며 믿음직한 동료들과 함께 싸워왔습니다. 


 수많은 추억의, 찬란한 빛들이, 제가 필사적으로 살아왔던 일을 상기시켜, 저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두려우면서도 불가사의로 충만한 마음으로 현실과 몽상의 부상과 침잠을 반복합니다. 




 그 다음에 떠오른 광경은, 드물게도 제 기억 속에는 없는 장소였습니다.


 선명한 녹색으로 둘러싸인 작은 언덕입니다. 파릇파릇한 잔디 사이로 자그맣고 새하얀 꽃이 여기저기 피어있었습니다. 높고 푸른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흐르고 있습니다. 


 쨍쨍 빛나는 태양은 매우 눈부신데, 어째서인지 온도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언덕의 풀잎을 흔들고 햇빛을 반사하며 빛의 물결을 그립니다. 그러나, 솨아아... 같은 상쾌한 풀잎이 스치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근처에서 즐거워하는 기색을 느끼고 시선을 돌리자, 언덕의 중턱 부분에서 세 사람이, 쪼그려 앉아 꽃을 따고 있었습니다. 


 안젤리나 씨, 스즈란 씨, 어스스피릿 씨였습니다. 안젤리나 씨가 저를 발견하고 활짝 웃는 얼굴로 달려와 손을 잡아줍니다. 



"딱 좋을 때에 와줬네? 같이 꽃을 따자!" 



 활기찬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안젤리나 씨는 저를 무리에 끼워주었습니다. 저도 언덕에 쪼그리고 앉아 새하얀 꽃을 땁니다. 


 가까이서 보니 꽃은 의외로 크고, 거의 제 손만한 크기를 가진 것도 있습니다. 줄기의 한가운데를 뚝뚝 끊어버리자, 걸쭉하고 투명한 액체가 단면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다섯 장의 꽃잎을 가진 꽃은 제 손바닥에 떨어져 꼼지락거리고 있습니다. 안젤리나 씨는 키득키득 즐거운 듯이 미소를 지으며 꿈틀꿈틀 움직이는 꽃을 똑똑 따고 있었습니다. 


 '이 꽃으로 뭘 할 건가요?' 라고 제가 묻자, 스즈란 씨가 두 손 가득 꽃을 안고 '장식을 할 거예요' 라고 했습니다. '이제 다같이 선물을 보낼 거니까요' 라고 덧붙이며.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어스스피릿 씨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평상시라면 기식의 어긋남은 땅 속에 잠든 고래의 목과 같은 무게의 상호작용적 관념 물질로 이루어진 화물차의 고양이이기 때문에, 반전하여 어두운 색에 귀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 말을 들은 안젤리나 씨와 스즈란 씨는 웃음을 터뜨렸고, 어스스피릿 씨는 쑥스러운 듯 수줍어했습니다. 진지한 어스스피릿 씨도 농담을 할 때가 있구나, 저는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꽃을 한 줌 정도 땄을 때, 세 사람은 일어나 언덕의 맨 위로 달려갔습니다. 꽃 줄기의 단면에서 흘러내린 많은 액체가 세 사람의 발자국에 떨어져 투명한 물웅덩이를 만들어갑니다.


 저는 세 사람의 뒤를 따라 작은 언덕을 올라갑니다.


 언덕의 꼭대기에는 제 허리까지 오는 정도 크기의 새하얀 석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석판 앞에는 직사각형 구멍이 파여있고, 그 안에 투명한 유리상자가 놓여있었습니다. 




 그건 무덤이었습니다. 



"자아, 그럼 선물을 보내자!" 



 그렇게 말하며, 안젤리나 씨가 제 등을 떠밀어 유리로 된 관 앞에 세웁니다. 


 저는 구멍 속의, 이제부터 매장될 사람의 얼굴을 봅니다. 






 관 속에는 제가 들어있었습니다. 


 눈가를 붕대로 덮은, 앙상하게 마른, 창백한 피부를 한 제 시체가 거기 있었습니다. 






 ――아아, 


 ――이 꿈은, 보면 안 되는 거다. 






"자, 우리가 에이야퍄들라 씨를 영원한 저 너머로 보내자!" 



 핏기가 가신 채 굳어있는 저의 등 뒤에서 안젤리나 씨가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합니다. 


 지금 당장 여기에서 도망쳐야―― 그렇게 생각하지만, 제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아아――――――――――!!" 라고 비명을 지르며, 스즈란 씨가 울부짖었습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은 찢어질 듯이 벌린 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 라며 사이렌같은 커다란 비명을 질러댑니다. 



"에이야퍄들라 언니가 죽었다! 죽었다죽었다죽었다! 불쌍하게도! 이제 아무도 만나지 못해! 불타죽어서 인간도 아니게 돼! 불쌍해! 불쌍해불쌍해! 불쌍하게도!!" 


"사후장례축 평행현의 장갑열차 창문 너머로 보는 바위 눈사태에 나비의 날개를 부수어 뿌려야 한다! 또아리를 튼 뱀의 제2관절의 불꽃에 상점가와 항우울제와 개 사료가 갈채를 올리고 있다! 세계는 조정이 필요하다! 조정! 조정을!" 



 스즈란 씨의 절규에 어스스피릿씨의 의미불명의 노성이 겹칩니다. 그 목소리가 무게마저 느끼게 하는 박력으로 저를 집어삼켜,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퍼억 하고 등을 떠밀려, 저는 구멍 속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관의 유리문은 어느새 열려 있었고, 제가 떨어지자마자 쾅 닫혀 저를 가둡니다. 


 그 순간 제 시야는 새하얗게 물들었습니다. 눈가에 붕대의 감촉이 느껴져서 말기 감염자로서의 저로, 관에 갇혀 매장되는 저로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유리 관은 차갑고 딱딱하고 무섭고 좁았습니다. 


 빨리 꿈에서 깨어나! 반쯤 미쳐버려 날뛰는 제 손발은 단단한 유리에 부딪혀 가로막힙니다. 



"그럼 안녕, 에이야퍄들라. 저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해!" 



 안젤리나 씨가 그렇게 말하자 세 사람은 양손 가득 안은 하얀 꽃다발을 관에 투두둑 떨어뜨렸습니다. 


 하얀 꽃은 관을 뚫고 저를 가득 채웠습니다. 줄기에서 쏟아지는 끈적끈적한 액체가 제 몸을 흠뻑 적셔옵니다. 


 '우화' 라고, 어스스피릿 씨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움찔― 기분나쁜 감촉이 온몸에 느껴졌습니다. 


 꽃이 꿈틀거리며 제 몸을 올라옵니다. 다섯 장의 꽃잎이 제 팔과 허리와 배와 뺨에 달라붙어―― 아니, 그것은 결코 꽃잎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가락입니다. 꽃처럼 보이던 그것은 해골처럼 앙상한 손이었습니다.


 저는 좁은 관 안에서 수십 수백 개의 팔들에 둘러싸이고 있었습니다. 


 오싹함에 비명을 지르며 두 손과 발을 휘두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온몸에 얽혀든 수많은 작은 팔들이 저의 손발을 엄청난 힘으로 억누르고 꼼짝도 못하게 합니다. 가늘고 작은 손가락이 피부를 파고드는 것은, 무수한 벌레들이 온몸을 기어다니는 것 같은 끔찍한 혐오감을 들게 했습니다. 


 저는 순식간에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공포에 질린 나머지 소리를 질렀습니다. 도와줘, 이 꿈에서 꺼내줘, 닥터! 닥터! 닥터!! 하지만 그 목소리는 유리 관 안에서 반향만을 일으킬 뿐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밖에서는 '우화' 라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습니다. 안젤리나 씨, 스즈란 씨, 어스스피릿 씨, 그녀들 이외에도 수많은 목소리가 '우화' 라고 제게 말해옵니다. 


 몸을 꿈틀꿈틀 기어다니는 팔이 제 가슴을 오르고, 목을 작게 찢으며 올라와 저의 얼굴에 올라옵니다. 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어 털어내려고 하지만, 무수한 손들이 제 머리와 귀를 잡아당기며 마치 표본처럼 관 바닥에 고정시켰습니다. 


 그리고 제 얼굴까지 기어올라온 수많은 팔들은 제 눈을 가린 붕대 사이로 쑤욱 들어갔습니다. 



"우화" 



 그만해, 라고 온 힘을 다해 외쳤습니다. 그 입술마저 콱 붙잡히고, 벌려져, 작은 손이 입 속까지 파고들어옵니다. 


 얇은 눈꺼풀을 붙잡혀 강제로 벌려진다. 싫어, 그만해, 그만해! 



"우화" 



 그렇게 도망칠 수 없는 저의 안구에, 수많은 손가락이 파고들어왔습니다. 


 뿌직, 소리를 내며 대량의 손이 제 눈을 뚫고 안으로 기어들어왔습니다. 불타는 석탄을 비틀어넣는듯한 격통. 그러면서도 수많은 손이 저를 억누른 채로, 아주 조금의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제 안으로 파고들어온 팔들은 더욱 깊숙한 곳으로 돌진해옵니다. 마치 땅을 파헤치며, 묻혀있는 무언가를 파내려는 듯한 움직임. 눈과 입으로 파고들어온 수많은 팔이 제 안을 휘젓습니다. 


 이윽고 저의 몸 속,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깊은 곳에서 무서운 열기를 느꼈습니다.


 걸쭉하고 피부가 떨리는 듯한 맹렬한 열기. 그것은 용암과 비슷했습니다. 수많은 팔이 제 살을 헤치고 그 무서운 열을 끌어냅니다. 


 열기가 치밀어오릅니다. 이윽고 눌려있던 바닥 전체가 오븐처럼 지글지글 뜨거워집니다. 피부에 닿은 부위에서 조금씩 떨리고, 금세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져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바뀝니다. 싫어, 도와줘, 여기서 꺼내줘!! 저는 필사적으로 소리치며 몸부림치지만 온몸을 결박한 손들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옷에 불이 붙어 등이 구워집니다. 수분이 증발하는 맹렬한 통증이 전신을 관통합니다. 관 안의 온도는 끝없이 상승합니다. 구워지는 등이 끝에서부터 숯이 되어 무너져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울부짖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안쪽에서 솟아오르는 열은 저를 산 채로 화장시키는 절망의 업화였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저건 매장을 위한 불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화" 



 저것은, 저를 제가 아니게 만드는 불꽃입니다. 





 제 몸은 완전히 불타, 이미 숯이 되어있었습니다. 






 이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어. 비명도 지르지 못해. 






 열기가 벌써, 바로 거기까지 다가와있다. 






 파직, 몸이 갈라지고, 무너지고, 부서지고, 






 저의 몸에서, 새빨간 불꽃이 흘러나와 






"우화" 






 그리고 저는――







※ 일러스트 출처: https://www.pixiv.net/artworks/118718452

※ 이 소설은 원작자 「オリスケ」님의 허가를 받고 번역하였습니다. 

※ 작가분 트위터: https://twitter.com/brava_novel

※ 원문출처: https://syosetu.org/novel/332051



이제 후반부 


어스스피릿 저런 캐릭터였나.. 말장난같은 무언가같은데 알아듣지도 못했다



오타 오역 의역 어색한 표현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