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CH ME BURN 번역 링크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던 와중, 로도스 터미널 전 구역에 울려퍼진 긴급 사이렌에 놀라며 깨어났다. 


 이동도시에 있는 모든 인원을 깨우기 위한 대음량 불협화음. 


 로도스 터미널의 존속을 뒤흔들 정도의 긴급 상황이 벌어졌음을 알리는 사이렌이다. 예상되는 상황은 환자들이 집단으로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거나, 오리지늄 분진의 치명적인 누출이 발생했거나, 혹은―― 



"헉――!?" 



 어째서인지 평소와는 다른 끔찍한 예감이 들어,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상황 파악과 대피 유도 준비에 나서는 다른 직원을 무시하고 감염자 병동으로 뛰쳐나간다. 



『긴급사태. 긴급사태. 아래층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환자 분들께서는 침착하게 직원들의 지시에 따라주세요』 


"야, 뭐야, 뭐가 일어나는 거야! 누가 설명 좀 해줘봐, 우리들은 갇혀있단 말이야!?" 


"아아아아아아아아! 심판이다! 심판의 때가 왔다! 우리는 모두 죽을 거야!" 


"싫어, 꺼내줘! 여기에서 꺼내줘어어어!" 


『긴급사태. 긴급사태. 아래층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환자 분들께서는 침착하게 직원들의 지시에......』 



 감염자 병동의 넓은 복도는 이미 혼돈에 빠져 있었다. 사이렌에 놀란 환자들이 반쯤 광란에 빠져 문을 두드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 사이로 의료 로봇들이 기계적인 안내방송을 하며 돌아다니고 있다. 나는 그 층을 쏜살같이 빠져나와, 지하―― 특히 위험한 감염자를 수용하는 특별 병동 구역으로 뛰어들어갔다. 



"에이야―" 



 특별 병동 구역에 발을 디딘 그 순간에 엄청난 열풍이 불어왔다. 


 무심코 두 손으로 얼굴을 막고, 조심조심 눈을 뜨고, 깜짝 놀란다. 


 에이야퍄들라가 있는 병실. 


 그 수천 도의 온도를 견딜 수 있는 초고내열성 벽이, 용광로에 녹아내리는 쇠처럼 주황색으로 물들어있었다. 


 방까지는 수십 미터나 남았는데, 폐가 통증을 호소할 정도의 고온. 열기는 공기를 진동시켜 마치 특별 병동 전체가 전자레인지 안에 돌려지는 것 같았다. 


 과연 그 근원인 병실 내부의 온도는 얼마나 되는 걸까. 


 병실 안에 항성을 품는 꼴이다―― 그 상상이, 역설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었ㄷ. 



"아츠 농도가 급속 상승! 실내온도는...... 3, 3000도를 넘어가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에이야퍄들라 씨를 진졍시켜야 해! 외부에서 최면 가스를 흘려넣어서―" 


"증발해서 닿을 리가 없잖아! 환기시설을 차단하고 산소농도를 떨어뜨려!" 


"안됩니다, 고온 때문에 설비들이 고장났어요. 시스템이 반응하지 않아요!" 


"젠장...... Lancet-Bφ를 예비기도 포함시켜서 여기로 가능한 한 모아와. 소화 기능으로 조금이라도 이걸 억제시켜야 해! 이대로라면 로도스 터미널이 통째로 불타 녹아버릴 거야!" 



 뒤따라온 직원들이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 같은 문 앞에서 전율하고, 허둥지둥 지시를 내린다. 로봇들이 격렬하게 캐터필러를 돌리며 모여든다. 꼼짝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이 소동과 내 사이에 두꺼운 베일이 덮인 것처럼 어딘가 멀리 흐릿하게 들리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설비가 최대한 버티기를 바랄 수밖에 없겠어. 다들 어서 환자 피난을 준비해! Lancet-Bφ, 격리벽을 내려줘!" 


『알겠습니다. 환자명: 에이야퍄들라의 병실을 격리합니다.』  



 리더 격인 직원이 그렇게 말하고, 로봇이 기계 음성으로 대답한다. 


 콰광,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격리벽이 내려왔다. 우리들과 병실로 연결되는 길이 막혀간다. 


 병실 주위에는 여러 대의 로봇들이 모여 방수를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효과는 전혀 없는 것 같고, 병실은 초고온을 나타내는 선명한 오렌지색으로 발광하고 있다. 


 풀려있는 내 귀에서는 뜨거운 공기가 윙윙거리는 굉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열기의 파도 사이에서 뭔가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아주 희미한, 깊은 물밑에서 이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호소하는 절규의 잔재같은. 



"――아――아아――――――!" 



 비명.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에이야...... 에이야퍄들라!" 



 정신없이 그녀를 부른다. 하지만 몇 걸음 가자마자 뒤에 있던 직원에게 붙잡혔다. 그대로 땅에 밀려 쓰러진다. 



"으윽...... 놔줘, 에이야퍄들라가 저기 있단 말야!" 


"좀 진정해! 병실 주위는 소각로와 다를 게 없어! 가까이 가면 죽어!" 


"그 애가 소리를 지르고 있어! 도와달라고 하는 거야, 어서 가야 해!"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으윽...... 다들 도와줘, 이녀석을 막아야 해!" 



 기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던 나는 또다른 직원 둘에게 포박당한다. 


 눈앞에서 격리벽이 내려간다. 


 그녀가 고독하게 남겨진다. 



"에이야퍄들라......!" 



 간신히 짜내는 게 고작인 내 목소리는 그녀에게 들릴 리가 없다.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내게 불어닥친 것은, 얼굴을 데우는 열파와, 그 사이에 섞여 들리는,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한 절규의 잔재뿐이었다. 




*** 




'자신인 채로 죽는다'는 것은, 감염자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사치일 것이다. 


 혈중에서 결정화된 오리지늄은 체내의 여기저기에 장애와 격통을 가져오고, 뇌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광석병 환자는 말기로 갈수록 이성과 판단력을 잃고 황당무계한 환각을 보게 된다. 


 그 단계에 이른 자는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된다는 엄청난 두려움에 시달린다고 한다. 몸이 끝에서부터 떨어져나가는 느낌. 눈을 뜰 때마다 기억이 벗겨지고 깎여나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공포. 


 그 스테이지에 이르른 말기 감염자에게는, 로도스 터미널은 안락사를 인정하고 있다. 잔혹한 도피라는 선택지를 취하는 환자는 싫증날 정도로 많다.


 대부분의 감염자에게, 제대로 된 죽음 따위는 찾아오지 않는다. 


 에이야퍄들라 역시 마찬가지일 뿐이었다. 




 ――에이야퍄들라의 착란에서 발생한 긴급사태는 그로부터 4시간 정도 뒤에 진정되었다. 


 에이야퍄들라의 특별병실은 파괴되었다. 격리벽을 연 로도스 터미널 직원이 목격한 것은, 마치 버터처럼 녹아내려, 바닥에 울퉁불퉁한 융기를 그리며 굳은 초고내열 소재 벽'이었던 것'이었다. 병실의 벽도 천장도 무너져내려 큰 구멍이 났고, 거기에는 방 몇 개 분량의 소재를 죄다 녹여낸 검고 넓은 광장이 있을 뿐이었다. 


 인류의 예지를 결집시킨 이동도시의 방위시스템은, 단 한 명의 말기감염자의 아츠에게 패배했다. 예측되었다고는 해도, 그것은 로도스 터미널에게 강렬한 경외와 체념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에이야퍄들라는 지금도 그 모든 것이 녹아버린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그곳에 드나들 때, 녹아내린 문 대신에 격리벽을 여닫고 있다. 


 그건 응급조치라고도 부를 수 없었다. 또다시 에이야퍄들라가 착란상태에 빠진다면, 이런 문 정도는 사탕보다도 더 맥없이 녹아내리고, 로도스 터미널은 이번에야말로 오븐으로 변모하여 모든 인원을 구워버릴 것이다. 


 로도스 터미널에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째섭니까" 



 ――다음 날. 


 나는 로도스 터미널 사무실에서 치프 스탭의 앞에 서있었다. 


 그때부터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한숨도 못 잔 게 틀림없었다. 온몸의 피가 납덩이가 된 것처럼 무겁고, 관자놀이 주변이 욱신욱신 삐걱거린다. 


 긴급사태 처리로 직원들 대부분이 잠이 부족했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유달리 망령처럼 끔찍한 얼굴을 하고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어째서 만날 수 없다는 겁니까?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정신적인 케어일 겁니다!" 


"평상시라면 그럴 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어. 더 이상 그녀를 방치한다면 이 함선 전체가 위험해져." 


"저라면 그녀를 안심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어떻게든 해왔잖습니까." 


"나도 그대로 에이야퍄들라 씨가 편안하게 잠들기를 바라고 있어. 나뿐만이 아냐, 이 함선 사람 모두 각자의 이유로 그걸 바라고 있겠지... 하지만 이젠 무리야." 



 그만 포기해, 라고 치프 스탭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녀를 신경쓰는 건 관둬...... 사랑같은 건, 기껏해야 마취제 정도 효과밖에 없으니까" 


"............!?" 


"왜 그래, 설마 안 들킬 거라 생각했어? Lancet-Bφ가 감시하는 게 환자뿐이라고 생각했나?" 



 끓어오르던 머리가 순식간에 식으며, 목구멍에서 솟아나오려던 말이 사라진다. 


 얼어붙은 내 어깨에 치 스탭의 손이 올라왔다. 툭툭, 위로하듯. 



"안심해. 너와 에이야퍄들라가 한 일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야. 만약 유출된다고 해도,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너를 비난하지 않을 거야." 


"치프......?" 


"1년도 못 견디고 나가는 사람이 허다한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환자에게 찍혀서는,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채로 몇 달을 보내왔잖아. 정신이 망가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치프 스탭의 낯빛에는 동정심이 어려있었다. 진심으로 내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망상에 사로잡힌 정신병 환자를 향한 연민과도 같은 종류였다. 



"그녀에 대해서는 잊어라. 정신을 안정시키려고 한 고의인지, 아니면 협박이라도 당했는지, 아무튼. 넌 이제 더이상 무리할 필요 없어." 


"아니야, 치프. 당신은 착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로 그녀를 위해서, 그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사람의 마음이란 건 꽤나 간사하지. 일반적으로 정신은 궁지에 몰리면 안정을 찾아 허구의 도피처를 만들어. 눈앞의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거지. 에이야퍄들라도 너도 그랬을 거야." 



 치프 스탭은 내 어깨를 붙잡은 채, 나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 굳은 표정이 더욱 확실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 게 사랑일리가 없다'고. 



"유감스럽게도, 네 정신은 정상이 아닌 것 같구나. 가능한 한 빨리 케어를 붙여줄게. 신청도 내가 해둘테니 한 달 정도 푹 쉬고 와." 


"아니야...... 나는 정말로 그녀를 사랑해서......"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설득력이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 자신이, 내 입에서 나오는 '사랑'이란 아름다운 것을 신용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지금 제정신인지조차도 오래 전부터 알 수 없게 되어있었다. 


 뇌가 흔들린다. 품고 있었을 감정이 갑자기 형체를 일그러뜨린다. 발밑이 멀어져간다. 


 나는 과연, 정말로 그녀를 사랑했을까. 


 막다른 길의 두 사람이 상처를 서로 핥아주는 뒤틀린 생존전략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가슴 속에 느껴지는 공허함은 그녀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마침내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난 안도감인지 판단 할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건 있었다. 



"이 다음부터는 우리에게 맡겨줘. 그녀의 목숨까지 네가 짊어질 필요는 없어." 



 더이상 에이야퍄들라를 살려둘 수 없다. 


 그건 예전부터, 로도스 전체의 뜻으로 결정된 것에 가까웠다. 


 한 명을 죽임으로써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까. 로도스는 거듭된 싸움과 사업적 성장의 끝에서, 그 물음에 '죽일 것이다'라고 대답할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사랑이란 말을 내뱉은 나조차도. 


 그것은 이미 여러번 반복되어온 잔혹한 결말이 또 하나 새겨지는 정도의 일이었다. 



"......, ......................" 



 하지만―― 하지만. 


 나의 인생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그녀의 인생은 여기에서 끝난다. 


 그 사이에 있는 채울 수 없는 차이가, 너무나도 비겁하다고 느껴져서. 


 나의 가슴 속이, 타고 남은 석탄을 욱여넣는 것처럼 심하게 아파와서...... 하지만 그것을 표현할 힘도, 아픔을 사랑이라고 형용할 용기도,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치프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나는 한 달 휴가를 가지게 되었다. 


 의무감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에게 있어서 상당히 강력한 엔진인 것 같다. 휴가가 결정된 순간 나는 모든 기력을 잃어버렸다. 


 이틀 후 로도스 본함에서 헬기가 찾아오기로 했다. 나를 대신할 직원이 파견되어, 나는 그와 교대로 헬기를 타고 로도스 본함으로 귀환하게 된다. 


 동시에 그 헬기에는, 말기 감염자의 「특별 조치」에 능숙한 오퍼레이터가 타고 올 예정이었다. 과연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상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들은 환자가 폭주할 위험을 한없이 줄이고 확실한 수단을 통해 편안한 잠을 선사할 수 있다고 한다. 


 다가오는 재앙으로부터 벗어난 후가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각하되었다. 로도스 본함은 이 업무를 헬기가 재앙의 여파로 추락할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 정도로 지금의 상태는 한시의 유예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틀 후. 나는 종말병동을 떠나고, 에이야퍄들라는 죽는다. 


 해임을 통보받은 날 밤, 나는 아래층의 특별병동으로 향했다. 


 전소되어 기능을 상실한 특별병동은 사실상 폐쇄되어있었다. 


 감옥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공간에 창문은 없다. 조명 설비도 모두 고장났고, 모든 것이 짙은 어둠으로 가득차있었다. 


 들고 온 손전등을 켜자, 그날 발생했던 절대적인 고열로 인한 피해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검게 탄 바닥과 천장. 천장 파이프가 터진 틈새에서 떨어진 액체가 웅덩이를 만들고 있다. 벽은 여기저기 융해되어, 마치 녹아버린 촛불처럼 표면을 울퉁불퉁하게 융기시키고 있었다. 들이마시는 공기에는 짙은 그을음과 재 냄새가 났다. 


 칠흑같은 어둠 속을 나아가자 이윽고 두꺼운 강철 벽이 복도를 막고 있었다. 


 이 벽이 닫히기 전에 봤던 광경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결코 잊을 일은 없을것이다. 


 나는 격리벽에 살며시 손을 갖다댄다.


 차가운 강철의 감촉. 그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에이야퍄들라." 



 이 격리벽 너머에, 그녀가 있다. 


 모든 것이 불타버린 가운데, 단지 혼자서. 



"......" 



 나는 벽에 손을 댄 채 손전등 스위치를 껐다. 


 그 순간 어둠이 나를 감쌌다. 


 눈앞의 손조차 보이지 않는 진정한 어둠. 정적.


 다가오는 재앙이 지반을 뒤흔든다. 쿠구―우웅― 하는 진동이, 세계라는 거대한 생물의 숨결처럼 장엄하게 느껴진다. 




 ......두렵다. 


 고작 몇 분만에 땀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내 몸의 윤곽조차 알 수 없는 것 같았다. 몸이 녹아들어, 어둠에 섞여들어,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것 같은 공포. 


 나는 벽에 붙인 손바닥에 의식을 집중시킨다. 피부가 전달하는 차가운 촉각만이 자신의 손 모양을 잊게 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무언가를 만지지 않으면 자신조차 순식간에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그녀는 이런 허무 속에 갇힌 채로 몇 달 동안이나 계속 살아왔다. 


 과연 이 허무 속에서,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고, 누군가가 안아주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을까. 



"......이제, 자신조차 알 수 없다" 



 격리벽에 이마를 기댄다. 쿠궁― 하는 재앙의 울림이 내 혼잣말을 묻었다. 



"가슴에 뒤얽힌 이 감정이, 네 곁을 떠나게 된 안도인지, 너를 잃는다는 슬픔인지. 이런 것조차도 잘 모르겠어." 



 질척질척한 내 감정은 에이야퍄들라라고 하는 배출구를 통해 비틀린 애정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그녀를 잃음으로서 방향을 잃고, 이전보다도 더욱 질척질척한, 차마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이 되었다. 땅 위로 넘쳐흐른 용암과 비슷한, 차가워져 굳어진, 왜곡된 검은 색으로. 


 광기 섞인 애정은 이성을 장작으로 불태우고, 보통으로 남아있어야 할 감정의 흔적조차 지져버리며, 끝난 뒤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이윽고 전문 직원이 이 격리벽을 열고 그녀의 「처분」을 실시할 때, 나는 로도스로 향하는 헬기에 탄 채, 멍하니 테라의 황량한 경치를 바라보며, 그녀를 걱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너무나도 박정하고 냉혹한 결별. 그래도 우리의 시작을 생각하면, 그렇게 끝나야 할 모습 같기도 하다. 


 박사님로 오인당하는 것에서 시작된 나와 에이야퍄들라의 관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틀리고 뒤틀린 착각일 뿐이었다. 


 그런 문란하고 광기섞인 것이 사랑일 리 없다. 이성으로는 그것을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었다. 



"......에이야퍄들라" 



 그런데, 머릿속에서 그녀가 떠나질 않는다. 


 눈가를 붕대로 감은, 제대로 된 발음조차 잃은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 동정심과도 비슷한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눈이 보이지 않는 채로 지내는 시간은 마치 영원과도 같이 길게 느껴질 것이다. 회진 때마다 병실을 찾아가 손을 잡았을 때 그녀가 보여줬던, 긴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집에 돌아온 듯한 안도의 표정에 속절없이 가슴이 뛰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는, 답답할 정도로 느렸던 의사소통이 기억난다. 그녀가 실수하지 않도록 천천히 키보드를 두드렸던, 그것을 기다리는 시간도 즐거웠다. 


 화면에 떠오른 글을 읽으면서, 그녀가 상냥한 마음씨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좋았다. 



『아직, 저를 사랑해주시고 있나요?』 



 그때, 그녀가 화면에 적었던 말을 보는 순간 차올랐던 감정은―― 애정 이외에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겠어...... 알 수 있는 건 오직, 내가 두 번 다시 너를 잊을 수 없다는 것, 그것뿐이야" 



 나는 격리벽에서 손을 떼며 다시 손전등을 켰다. 불빛이 나 자신의 윤곽을 알 수 있게 하고, 자신을 되찾게 한다. 


 나는 돌아서서 가지고 온 것을 확인한 뒤 격리벽 앞에 놓았다. 


 에이야퍄들라가 쓰던 PC와 점자 인쇄기다. 전에 쓰던 것은 불타 소실되었기 때문에 예비용을 창고에서 가져왔다. 


 어차피, 그녀가 이것을 다시 칠 일은 없다.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 또한 없다. 


 그저, 무언가 이별에 어울리는 게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해서. 


 무덤 앞에 놓는다면, 꽃보다도 우리를 이어주었던 이것이 더 알맞을 것 같았다. 



"......부디 편안히, 에이야퍄들라."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발길을 돌려 특별 병동을 떠난다.


 아직도 울리는 재앙의 진동이 병동을 채운 짙은 어둠마저 물결치게 하는 것 같았다. 




 이것으로, 나와 에이야퍄들라의 관계는 끝난다.


 실수에서 시작된 서로의 상처 핥아주기는 한쪽이 상처받고 지쳐 죽는 것으로 끝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비극조차도 되지 않는다. 


 광석병 말기 환자에게 찾아오는 비참하고 가엾은 인생의 말로. 그 중에서도 유난히 장렬하고, 조금은 행복하다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삶의 종막. 


 지금부터 일어나는 것은 단지 그것뿐인, 당연한 일. 


 그런 흔해빠진 하나의 비극으로 끝나는 일인 것이다.






※ 이 소설은 원작자 「オリスケ」님의 허가를 받고 번역하였습니다. 

※ 작가분 트위터: https://twitter.com/brava_novel

※ 원문출처: https://syosetu.org/novel/33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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