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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 후. 


 나는 직원들 몇 명과 함께 로도스 터미널 갑판에 서있었다. 


 공기는 차갑고 건조하며 흐릿했다. 바람에 날려온 모래알갱이가 마치 물웅덩이처럼 갑판 위에 펼쳐져있다. 요즘들어 날씨는 계속 이것과 비슷한, 모래 섞인 강한 바람이 부는 어두침침한 하늘이었다. 



"......거리가, 멀어지질 않네요." 



 옆에 있던 1명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굳이 얼굴을 마주볼 필요도 없다.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앙이다. 우리들 로도스가 계속 도망쳐왔던 재앙이 시야의 한 면을 검고 탁한 소용돌이로 덮고 있었다. 


 대지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로도스 본함도, 로도스 터미널도 최대 속도로 달려나가고 있지만, 그래도 재앙과의 거리는 전혀 벌어지지 않는다. 


 갈색으로 빛나는 활성 오리지늄의 소용돌이는 마치 가스 행성의 표면과 같은 불규칙한 문양을 그리고 있다. 


 때때로 에너지가 활성화되어 재앙 구름에 거대한 번개가 친다. 그 충격은, 100km는 떨어져 있는 이쪽의 내장을 울리게 할 정도로 강렬했다. 


 마치 굶주린 짐승의 표적이 되어 죽을 때까지 쫓기는 듯한, 그런 끝을 알 수 없는 포악성을 느끼게 했다. 


 재앙은 아직도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규모도 속도도 예측할 수 없고, 대지를 파괴하는 방법도 다양하며 종류도 너무 많아 분류조차 잘 되지 않고 있다. 


 재앙을 피하기 위해 문명이 만들어낸 이동도시라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전속력으로 도망쳐도 결국 따라잡히고 허무하게 유린당한 사례는 수도 없이 존재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 세상에서, 내일도 우리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 세계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위험의 싹을 조금이라도 잘라내려는 노력과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었다. 


 재앙의 노호를 가르며, 수송 헬기 한 대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저 헬기에 그 집행인이 타고 있는 건가요?" 


"너무 가볍게 말하지 마. 가장 중요하고 막중한 책임이 있는 임무를 맡은, 엄청난 솜씨를 가진 오퍼레이터일 거야. 분명 우리가 본 적도 없을 정도로 굉장한 아츠를 사용하는 달인이겠지." 



 동료들이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나는 허망한 기분으로 듣고만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소녀를 죽일 사람이 저 헬기에 타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품은 감정이 진실된 사랑이라면, 나는 그 사람에게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를 붙잡고, 그런 심한 짓은 시키지 않는다고 소리를 질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떠올린 상상 속의 나는, 너무나도 공허하고, 한심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아니다. 상상이고 뭐고, 애초부터 나는 무력하고 초라한 것이다.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의 파도에 휩쓸려갈 뿐인, 황야에 떠도는 모래알갱이 하나. 


 울며불며 발악해봤자 광석병은 불치병이고 그녀는 죽는다. 그 이전에 내게는 그렇게 소리칠 기력도 남아있지 않다. 


 지금 가슴에 맺힌, 뒤에서 어깨를 붙잡힌 듯한 감정도, 내게는 분에 맞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같은 건 하나도 없으니까. 


 무력감. 무력함을 강요당하는 무상관. 나는 나의 비참함과 보잘것없음을 외면하고 그저 멍하니 머리 위를 올려다보며 끝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이 몹시 피곤해보였을 것이다. 배웅해주러 온 동료 한 명이 기운내라는 듯 내 어깨를 두드렸다. 



"탈출 축하한다. 뒷일은 신경쓰지 말고, 로도스 본함에서 마음 편히 지내." 


"......어어." 



 부러움이 섞인 목소리였지만, 나는 애매하게 대충 대답하며 넘겼다. 


 그리고 수송 헬기가 로도스 터미널 갑판에 착륙을 준비하려고 할 때였다. 


 ――그때였다. 




 강렬한 섬광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세계를 물들이는 진홍색, 늦게 오는 충격.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충격파에 밀려 나가떨어져있었다. 이동도시의 갑판 위를 세차게 구르며, 무거운 통증이 온몸을 덮친다. 



"크흐억― 뭐, 뭐야......!?" 



 깜빡거리는 눈을 간신히 뜨고 핀트를 맞추자, 보인 풍경에 크게 놀란다. 


 머리 위를 날고 있던 수송 헬기가 불타고 있었다. 윗부분의 프로펠러가 순식간에 회전력을 잃고 기체 전체가 휘청거렸다. 산산조각난 꼬리 날개가 떨어져나와 격렬한 소리를 내며 갑판에 떨어졌다. 


 갑판에 서 있던 다른 직원들도 아까 함께 날아갔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머리 위 광경을 멍하니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들의 눈앞에서, 헬기에 붙은 불이 더욱 강해지며,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고도를 떨어뜨리고― 이윽고 갑판에 떨어졌다. 두꺼운 쇳덩이가 만들어내는 격렬한 소리와 진동이 우리로 하여금 제정신을 되찾게 한다. 



"크, 큰일이야! 헬기가 추락했다! 공격인가!?" 


"바로 구조한다, 불이 더 번지기 전에 안에 있는 사람을 꺼내야 해!" 



 직원들이 서둘러 추락한 헬기로 달려갔다. 


 또다시 진홍빛 섬광과 굉음이 그들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몸을 움츠린 우리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전율해 얼어붙었다. 



"......재앙이......!" 



 하늘을 가득 채운 황혼빛 파괴의 소용돌이. 


 대량의 활성 오리지늄을 품은 갈색 먹구름이 어느새 우리들의 머리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금 전까지 로도스 터미널에서 100km 정도 거리를 두고 있던 재앙 구름이었다.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던 구름이, 어느새 분화하듯 오리지늄 분진을 옆으로 확산시켜 우리들이 있는 이동도시 상공을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비대해진 활성 오리지늄 에너지가 먹구름 속에서 충돌하고, 거기에서 태어난 진홍빛 번개가 우리의 눈을 부시게 했다. 번개는 로도스 터미널에도 쏟아졌고, 곳곳에서 거센 불꽃을 일으키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재앙이 이런 행동을 한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어쨌든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 있으면 죽겠다!" 



 겁에 질린 직원들과 함께 불타는 헬기로 달려간다. 


 거의 착륙하기 직전 단계였기에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우리는 탑승자들을 구조하고, 붉은 번개가 빗발치듯 쏟아지는 가운데 필사적으로 달려 이동도시 안으로 피신했다. 


 함의 해치를 잠그기 직전,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재앙 구름의 빛나는 활성 오리지늄 에너지의 농도가 한층 더 짙어져있었다. 구름 속을 달리는 번개가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듯 대지를 격렬하게 전율시키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재앙이 우리들을 찌부러뜨리려고 팔을 뻗는 듯한―― 



"이봐, 어서 해치 닫아! 죽고 싶냐!" 



 들려오는 고함과 동시에, 쏟아진 번개 한 줄기가 바로 옆에 내리꽂혔다. 황급히 해치를 닫고 함내로 도망간다.


 로도스 터미널 전체에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재앙의 접근에 모두가 혼비백산하며 서둘러 움직이고 있다. 



"로도스 본함과의 연결은!?" 


"안됩니다, 자기장이 흐트러져 통신이 되지 않습니다!" 


"어서 탈출하자! 번개의 위력이 여기서 더 올라간다면 선체에 구멍이 생길 거야!" 


"이미 최대속도예요, 재앙 구름의 속도가 너무 빨라요! ......말도 안돼. 이런, 로도스 터미널을 노리고 찾아오는 듯한 움직임이라니......!" 



 누구나 할것없이 얼굴이 창백했다. 당연한 일이다. 지상의 모든 것을 유린하는 재앙과 조우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한없이 0에 가깝다. 


 갑작스럽게 지옥의 가마솥에 내던져진 직원들은 전전긍긍하며 함내를 뛰어다니고 있다. 



"......, .............." 



 그 소란의 한가운데에 남겨진 나는― 기묘한, 운명같은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마치 로도스를 쫓아오는 것처럼 기이한 행동을 하는 재앙. 


 곧 죽음을 맞이하려 하는 한 환자. 



『몸 속에, 엄청나게 커다란, 무언가가 있어요』 


『그게 저를 부르고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모니터 화면에 띄워졌던 문장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일반병동에서 환자들이 날뛰는 것 같아. 우리도 가자!" 


"미안, 다른 사람을 찾아줘. 난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 


"뭐? 야, 어디 가! 멋대로 움직이면 안돼!" 



 나는 다른 직원의 제지도 무시하고 급히 달려나갔다. 


 가슴 속에서 뻗어나온 끈을 누군가에게 잡아당겨지듯, 몸이 자연스레 앞으로 나아간다. 주위의 소란이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아무 근거도 없다. 이성적인 판단도 아니다. 미친 듯한 내 머리가 그냥 끼워맞춰 연결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파괴의 소용돌이에 집어삼켜진 내 머리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도 필사적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그녀의 덧없는 미소로 가득할 뿐이었다. 



"에이야...... 하아, 하아...... 에이야퍄들라......!" 



 숨 쉬는 것도 아깝다. 진압을 위해 로봇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로도스 터미널 안을 전속력으로 달리고, 출입금지 규제선도 뛰어넘어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뛰어내려간다. 


 그 와중 재앙의 충격으로 온몸이 흔들리며 발을 헛디디고 만다. 벽에 몸을 부딪치고 계단에 굴러 떨어져 부딪친 얼굴과 몸통에 심한 통증이 온다. 그것을 신경쓸 겨를도 없이, 나는 아래로, 아래로, 기능을 정지한 특별 병동으로 향한다. 


 하층부에 도착하자 소란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두꺼운 벽 너머로 간헐적인 천둥소리가 들리고, 이동도시 전체를 뒤흔드는 진동은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지만, 흐려진 그 소리들은 어딘가 머나먼 일처럼 들린다. 




 기능이 정지된 창문도 없는 공간은 어둠에 뒤덮여있다. 곧 이 도시가 무너질지도 모르는데도, 이 공간만은 시간의 흐름과 분리되어있는 듯한, 이상한 정적을 느꼈다. 


 나는 손전등을 키고 어둠을 밝힌다. 


 보이는 끝에는 며칠 전 닫힌 채,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격리벽이 있다. 


 하지만, 그것의 상태는, 며칠 전 내가 봤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놀란 나머지 순간 숨을 멈추고 말았다. 


 격리벽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 구멍 테두리에는 녹아내린 쇠가 밀랍처럽 흘러내려 굳은 흔적이 있었다. 



"......" 



 구멍 너머로 희미한 소리가 들린다. 


 위잉... 위잉... 하는 자그마한 기계음. 


 나는 조심조심 벽에 뚫린 구멍을 살며시 통과했다. 


 모든 것이 불에 타 썩어버리고, 바닥은 녹아내린 강철이 고여 울퉁불퉁하게 융기하고 있다. 


 마치 화산 동굴에 발을 디딘 것 같다. 어둠 속에는 재와 그을린 냄새가 가득 차있다. 


 점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니, 위잉, 위잉, 하는 기계음에 다른 소리가 섞여있었다. 바스락... 하는, 날아간 종이가 땅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 


 소리는 복도 끝부분의, 벽에 뚫린 커다란 구멍 너머에서 들려온다. 


 에이야퍄들라의 병실이다. 


 나는 구멍 앞으로 다가가, 손전등의 빛을 비추고―― 거기에 있던 광경에 얼어붙었다.



"......" 



 방대한 종이의 산. 


 모든 것이 타들어간 병실 바닥은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량의 종이들로 뒤덮여있었다. 흩어진 종이는 모두 무수한 구멍이 뚫린 점자 인쇄지다. 


 몇 천 장, 아니, 몇 만 장이나 될까. 일부에서는 종이가 쌓여 진짜 언덕을 만들고 있는 곳도 있다. 


 도서관의 책을 모두 바닥에 쏟아부은 듯한 난잡하고 수많은 종이 더미. 


 마치 누군가가 격렬하게 싸움을 벌인 것 같다. 아니, 실제로 그곳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동되고 있는 PC가, 어둠 속에서 찬란한 불빛을 밝힌 채 끊임없이 점자 문서를 인쇄하고 있다. 


 그 차가운 불빛 앞에, 그녀가 있었다.



"......" 



 종이더미로 뒤덮인 차가운 바닥에 에이야퍄들라가 웅크려 앉아있었다. 


 그녀는 옆에 있는 인쇄기에서 출력되는 점자 문서를 집어들고는 순식간에 읽어내리고, 곧바로 다음 용지에 손을 댄다. 


 인쇄기는 2초에 한 장 정도 속도로 문서를 인쇄하고 있다. 그럼에도 에이야퍄들라의 독해 속도는 기계를 능가하고 있었다. 그녀는 양손을 써서 용지를 스윽 쓰다듬는 것만으로 독해를 완료하고 있었다. 바로 문서를 치우고, 곧바로 다음으로 인쇄되는 문서를 집는다. 


 그 비정상적인 독해 속도를 가지고도 이 수천 장은 될 듯한 문서들을 읽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었을까. 


 마치 기계와도 같은 귀기가 느껴지는 행동. 그것을 대체 얼마나 반복하고 있었을까. 


 고개를 숙인 에이야퍄들라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으로 얼핏 보이는 대량의 종이에 둘러싸인 그녀의 모습은,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 같은 경외감과, 마치 초월자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에이야퍄들라는 그 생명감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기계적인 독해를 계속하다가― 갑자기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인형처럼 경직된다. 그리고 그녀의 두 손이 천천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글자를 친 에이야퍄들라가 모니터를 살짝 돌렸다. 


 화면에 그녀가 적은 글자가 떠있다. 



『와 주셨군요, 닥터』 



 공포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싹,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어떻게, 나라는 걸..."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새로 화면에 문자가 입력되어 나타난다. 



『온도가 느껴지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서모그래피(Thermography)처럼, 당신이 있는 걸 알 수 있어요. 당신이 긴장하고 있는 것도요』 


『설명드리기 어려워요. 마치 또다른 감각기관이 새로 생겨난 것 같은 느낌이에요』 


『머리도 맑아졌어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이, 지금은 너무나도 넓게 느껴져요』 



 그렇게 말하고 에이야퍄들라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비춘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드러낸다. 


 에이야퍄들라의 눈은 찌부러져 있었다. 대량의 오리지늄 결정이 눈가에서부터 튀어나와, 그녀의 얼굴은 이미 울룩불룩 망가져있었다. 활성화된 오리지늄은 그 균열 사이로 황혼색의 에너지를 심장의 고동과도 같은 박자로 빛나고 있었다. 


 대량의 활성 오리지늄에 침식된 그녀의 얼굴은, 더이상 인간이 아닌 괴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내게 이야기했다. 



『모든 것이 자그맣게 느껴져요. 제 목숨조차도』 


『하지만』 


『그래도, 닥터와 만나서 기뻤어요』 


『절 보러 와줘서 고마워요』 



 굳어있던 발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간다. 밟힌 점자문서가 구겨지는 소리가 난다. 


 그녀의 손을 잡는다. 기억 속 그 어떤 것보다도 초췌하고 가느다란 손. 그러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그 체온보다도 더 거대한, 엄청난 에너지가 안에서 느껴진다. 


 나는 그녀의 피골이 상접한 손바닥 위에 내 손가락을 대었다. 



――뭘, 하, 고, 있, 었, 어. ? 



 조용히 의식을 집중하며, 글자를 읽어낸 에이야퍄들라는 키보드를 향하고, 딸각딸각 글자를 적는다. 



『자료를 읽고 있었어요』 



 그것은 마치, 처음으로 우리가 선을 넘은 그 날의 기억에, 다시 한 번 불을 붙이듯. 



『로도스가 관측했던 재앙 정보를 읽고 있었어요. 속도, 영향범위, 진행 경로의 변화 방법, 활성 오리지늄 함유율같은 것들요』 


『두 시간 단위로 기록된 수치 정보들을, 한 달치 정도』 



 그건, 내가 지금 인간과 대화하는 게 맞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답이었다. 


 재앙은 아무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로도스는 모든 수치를 실시간으로 관측하고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관측되는 데이터는 수십 종류에 이른다. 그 하나하나가 전문 연구팀이 동원되어야 할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걸 한 달치를 모두 읽었다고? 점자로?



『전부터 한 가지 가설을 세우고 있었어요』 



 얼어붙어있는 나를 두고, 에이야퍄들라가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거의 미신같은 거예요. 하지만 그 가설은 재앙 연구를 해오며 제 안에서 점점 존재감이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머리가 따라잡지 못한다. 그저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계속 듣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그녀는 한 손으로 내 손을 꼬옥 쥔 채, 키보드를 두드렸다. 



『저 재앙은, 생물재해예요』 


"......대체, 무슨 말을" 


『모든 재앙이 그런 건 아닐 거예요. 하지만, 지금 우리를 쫓아오는 재앙은 틀림없이 의지를 가진 생명체가 일으킨 거예요』 


『그 구름 속에,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있어요』 


『그것이 저를 부르고 있어요』 



 에이야퍄들라의 눈가에 튀어나온 오리지늄이 엷게 빛났다. 


 농담하지 마, 라며 웃어넘기고 싶었다. 


 정신질환에서 나오는 망상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허나 그 어느 것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에이야퍄들라가 쓰는 글자는 진심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원인은 모르겠어요. 그것이 절 찾은 건지, 아니면 제가 그것을 부른 건지』 


『하지만 그 재앙은 저를 쫓아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나는 에이야퍄들라의 손바닥에 손가락을 얹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라고 적었을 때는 이미 그녀의 다른 손이 키보드를 두드려 새로운 말이 모니터에 출력되고 있었다. 



『제 안에도 무언가가 있어요』 


『저라고 하는 알에 금이 가고 있는 게 느껴져요』 


『저는 곧,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버릴 거예요』 



 쿠궁―, 이동도시 전체가 진동했다.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온 것처럼. 


 에이야퍄들라에게는, 이미 인간을 초월해버린듯한 다른 차원의 각오를 느꼈다.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바닥에 글자를 적는다. 



――어, 쩔, 생, 각, 이, 야 


――너, 는, 뭘, 하, 고, 싶, 은, 거, 야, ? 



 곤혹스러운 질문에 에이야퍄들라는 미소를 지었다. 키보드를 치며 『닥터는 말을 잘 들어주시네요. 항상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기 좋게 해주세요』 라는, 인간미 있는 말로 칭찬하고 나서, 다시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될 대로 돼버리라고 생각했어요. 거대한 무언가에 섞여가는 감각은, 너무나 개방적이고 기분이 좋았거든요』 


『함께 저 소용돌이에 뒤섞여서, 모든 걸 불태워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만뒀어요』 



 키보드를 치는 손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섬뜩하고도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얼굴에는, 그저 처절한 각오가 떠있을 뿐이었다. 


 마치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의 시간을 불태우는 것 같다. 


 마치, 지금, 이 세상에 남길 마지막 말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새하얀 고독 속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옛날 일들을 떠올렸어요』 


『열심히 했던 일. 힘들어서 울었던 일. 기뻐서 기뻐서 견딜 수 없었던 일.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던 일. 별 일 아니라고 대답했던 일. 지켰던 것. 지키지 못한 것. 평생 잊지 않겠다 맹세했던 가슴 뛰는 경치, 잔혹한 경치, 아름다운 경치』 


『저는, 이 테라에서 수많은 광경들을 봐왔습니다』 


『선배나 켈시 선생님, 저를 이끌어준 많은 대단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저의 죽음에 눈물을 흘려 줄, 많은 친구들을 만났어요』 


『죽음 직전까지, 제 손을 잡아주고 있는, 다정한 사람도 만났어요』 



 그렇게 말하고 에이야퍄들라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고개를 든 내 앞에는, 눈가에 오리지늄 결정이 뒤덮인 그녀의 자애로운 미소가 있었다. 



『마지막까지, 완전히 절망해 꺾여버리는 일 없이, 저 자신의 삶을 살아올 수 있었어요』 


『저는, 저 자신의 인생을, 진심으로 자랑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저는,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감사를 전하며』 


『에이야퍄들라로서 죽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엔터를 한 번 치고, 에이야퍄들라의 손가락이 화면을 벗어났다. 


 그녀는 얼어붙어있는 내 몸을 향해 조용히 몸을 기대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체온.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몸. 거기에 튀어나온 대량의 오리지늄 결정이, 부드러움과 굳음과 아픔을 나에게 전했다. 


 가느다란 팔이 내 등에 감겨왔다. 


 여리고 연약한 몸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포옹. 



"으...... 다......윽...... 타아......" 



 귓가에 기대온 입술로부터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올바른 발음같은 건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도 두 번 다시 들리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속삭인다. 부디 전해지길, 기도를 담아서. 



"고......마......aa어......요............" 



 눈동자에 뜨거운 것이 북받쳐오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강하게,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것이 내게 허락된, 단 하나뿐인 할 수 있는 일로서, 그녀가 내게 바라는 사랑이었다. 


 팔 안에서 그녀가 기분 좋게 힘을 빼고 내게 몸을 맡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온몸으로 느낀다. 그녀의, 조금만 더 강하게 힘을 주면 부러져 버릴 것 같은 연약함을. 몸 이곳저곳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가버려,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위태함을. 


 ――아아, 이제 끝이구나. 


 그때 나는, 이것이 마지막 순간이라고, 마음속 깊이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윽...... 에이야퍄들라......!" 



 북받친 감정이 방울져 뺨을 타고 그녀의 어깨에 떨어진다. 


 그 눈물이, 곧 최후에 이를 그녀의 마음을 적신 듯했다. 


 천천히 포옹이 녹아든다. 


 나는 다시 한번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다. 


 오리지늄 결정으로 침범당해 인간다움을 잃은, 그럼에도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소녀의 얼굴. 


 그 눈가를 뒤덮은 오리지늄 결정이 눈부시게 빛났다. 


 다음 순간, 폭발하는 듯한 충격이 내 온몸을 밀쳐냈다. 나는 그대로 병실 밖 복도까지 튕겨나갔다. 



"커헉―― 에이야퍄들라!" 



 고개를 든 나는 보았다. 


 공중에 떠 있는 에이야퍄들라를. 


 온 몸에 튀어나온 오리지늄 결정이 찬란한 빛을 내며 불꽃을 형성한다. 차례차례로 태어나는 불길은 의지를 가진 듯 그녀의 주위에 소용돌이치고, 마치 날개옷처럼 아름다운 빛의 띠를 그리며 에이야퍄들라를 감쌌다. 


 병실 온도가 급상승하고, 열파가 에이야퍄들라를 중심으로 뿜어져나왔다. 


 발밑에 흩어져 있던 문서들이 열파에 의해 말려 올라가더니 화악, 일제히 불이 붙었다. 


 수많은 불타는 종이가 허공을 날며, 어둠을 눈부신 홍련으로 물들인다. 


 소용돌이치는 불길의 모든 것이 에이야퍄들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불길 속에 떠 있는 에이야퍄들라는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에이야퍄들라는 내 반대 쪽 벽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 체표의 오리지늄 결정이 더욱 밝게 빛나며 강렬한 불꽃이 손바닥 끝에서 쏘아져나왔다. 압축된 고열은 마치 레이저와도 같이 순식간에 벽에 거대한 구멍을 내버렸다. 


 휘이잉! 하고 불어오는 돌풍. 비쳐들어오는 황혼빛. 바깥을 유린하던 재앙의 폭풍이 에이야퍄들라 앞에 드러난다. 



"......개애, 챠...... n아, 요..." 



 마지막으로 에이야퍄들라는 나를 돌아보고, 웃었다. 


 화악, 별이 태어나는 듯한 빛과 함께, 그녀는 하나의 불꽃이 되어, 밖의― 소용돌이치는 재앙 속으로 날아갔다. 






※ 이 소설은 원작자 「オリスケ」님의 허가를 받고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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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출처: https://syosetu.org/novel/332051



회광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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