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억... 허억..."


 또 다른 빌어먹을 기억들이 수르트를 괴롭힌다. 


 이상한 곳을 떠돌아다니다가 로도스 아일랜드에게 발견되어 일하는 건 좋았으나, 이따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 기억이 내 기억이 맞는 건가? 싶은 의문이 자주 드는 것은 그녀만의 특징일 것이다.

 어제 무엇을 했는데 그것이 내 기억인가? 더 나아가서 바로 전에 있었던 일도 나의 기억인가? 의문일 정도로 심각한 광석병 증상을 보이면서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수많은 사람들을 살렸다. 동료들과 함께 싸웠다. 함께 싸운 동료를 죽였다. 가족이 있었다. 가족이 없었다. 그 많은 기억 중에서, 어떤 것이 진짜고 거짓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검을 들고 적들에게 휘둘렀다. 사라지지 않은 검의 움직임이 선명했다. 과연 이것도 나의 기억인가? 그렇다면 굉장히 기분 나쁜 것이지만, 아니라고해도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기억에서 진짜를 간파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기억 중에서 진짜를 간파하기 위해 보존을 하지만, 오히려 그런 것 때문에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가 누군지조차 의심하는 역효과를 내어 이 지경까지 왔다. 


 적어도 눈 앞에서 피 흘리며 쓰러진 하얀 로브와 기분 나쁜 가면을 쓰고 있는 녀석들을 죽였다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수르트."


 그러한 기억에 대한 혼란이 다시 찾아왔을 때 누군가가 건내주는 시원하고 단 아이스크림이 그런 혼란을 잠재워 주는 역할을 해준다.


"수고했어."


 아이스크림을 건내주는 박사라는 존재. 로도스의 존재 이유 중 하나라고 하던 인물이지만, 수르트에게 그것은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그가 건내준, 직사각형 모양의 하얀 우유맛 아이스크림에 집중할 뿐이었다.


 언제나 그런 식으로 혼란을 잠재운다. 덕분에 받는 급여를 아이스크림에 적지않은 금액을 투자한다.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아이스크림 한 입이면 그런 것을 쉽사리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러한 문제 때문에 종종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활동하는 오퍼레이터와 사소한 마찰이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너무 먹어서 히비스커스가 주의를 주자, 수르트는 히비스커스의 맛 대가리 없는 음식 먹을 바에는 차라리 이게 났다면서 말 싸움이 있었고, 제시카가 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대량으로 구매하자 자신의 대검을 들고 위협하면서 아이스크림 내놓으라고 윽박을 지른 적도 있었다. 그 와중에 제값은 또 냈다는 게 묘미다.


 물론, 이는 아이스크림의 문제는 아니라 수르트가 일방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그런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도 그나마의 위안거리가 있다면, 작전 능력은 좋은 편이라는 것이다. 일단 로도스 아일랜드에 소속되어 있는 대원이니만큼, 박사에게 틱틱거려도 명령에는 충실했으며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예측 불가의 행동도 벌이지 않았다. 


 기억에 문제가 있고, 성격이 더럽지만, 아이스크림으로 왠만한 거 다 해결되며 전투 능력도 좋다. 이게 박사가 한 수르트에 대한 요약이었다.


"너 말이야. 자기 일도 다 못한다고 나보고 도와달라고 하는 거야?"

 

 굼이 수트르에게 밥을 먹이려다 아이스크림 먹는 게 방해된다고 바닥에 엎지른 것 때문에 같이 있던 지마랑 한 판 붙을 뻔한 사건을 계기로 어시스던트라는 이름하의 감시를 하려고 부르자 내뱉은 수르트의 말이다. 역시 가까워지기 어려운 인물이었지만, 로도스 아일랜드의 박사가 그녀를 내비둘만한 인간은 아니었다.


"재미 없는 일이겠지만, 혹시 기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흥, 방 구석에 박혀서 잘도 찾겠군, 그럴 거면 네 기억부터 찾지 그래?"


 박사 또한 과거의 기억을 잃었다는 점에서 수르트와 비슷할 수 있지만, 기억이 싹다 날아가서 드문드문 떠오르는 것과,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기억이 진짠지 가짠지 구별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기에 그런 점에서 둘이 힘을 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수르트는 궁시렁거리면서 어시스던트 자리에 앉았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손에 깍지를 끼운 것을 베게 삼았으며 다리를 꼬고 발을 흔들거린다. 

 일 안하겠다. 이런 모습이었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당장 시킬 일도 없었고, 수르트가 사고만 안 친다면 박사도 만족하는 선에서 끝낼 수 있었다.


 물론 그러기도 잠시, 수르트가 심심했는지 책상을 이리저리 뒤져보기 시작했다. 있는 거라고는 필기구나 그런 것 뿐일텐데, 그 외에는 마땅히 특이점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건 뭐야?"


 가지고 있는 서류 작업을 끝낸 타이밍에 수르트가 호기심을 보이면서 책상 서랍에서 꺼낸 한 권의 책을 책상 위로 던졌다. 마치 동화 같은 그림이 표지에 그려진 책의 제목은 '기억하지 못하는 연인들'이라는 소설이었다. 

 박사가 그것을 발견하고 저게 왜 어시스던트 책상에 있는 거지? 하고 의문을 가졌다. 업무를 하면서 딴짓을 시키게 하지는 않지만, 여유로워져서 할 일이 없으니 심심한 어시스던트들이 박사에게 방해 안 되는 선에서 취미 생활을 하는 게 있다보니 독서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깜빡 잊고 두고 간 모양이다.


 그런데, 누가 두고 간거지? 책을 좋아한다. 하는 인물 중에 대표적이라면 이스티나가 있긴 하지만, 최근에 이스티나를 어시스던트로 둔 적은 없었다.


"연애소설인가? 유치하게."

  

 혀를 차면서도 책을 넘기고 있는 수르트.


"심심하면 그거라도 읽지 그러냐?


 박사가 한 마디했다. 이에 수르트는 질색하는 반응을 보였다. 자기와 책은 맞지 않는다는 얼굴 같았다.


"하지만 그거 말고는 할 게 없는 걸? 작전 나갈 일도 없고,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가끔 자기 취향에 맞지 않는 것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거든."

"글쎄, 내가 책을 읽어본 기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데?"

"글자 읽을 수 있으면 된 거지."


 이내 수르트는 혀를 차는 소리를 냈지만 마땅히 할 것도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책에 시선을 가져갔다. 박사는 평소 수르트의 행동과 책을 읽는다는 게 매칭이 안 된다는 건 부정 할 수 없었다. 

 혹시, 조금 읽다가 잠이 들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 반, 기대 반 섞인 감정이 들면서도 아직 쌓여 있는 서류에 다시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서류 작업에 집중하고 나서 시계를 보니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뻐근한 몸을 풀어주면서 기지개를 피다가 수르트에게 무의식적으로 눈이 갔다.

 자기 입으로 유치하고 이야기 했던 것과 달리, 연애 소설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고, 조용히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이 꽤나 도도하게 보였다. 책의 내용이 재미있는 것인지, 아니면 연애물이 의외로 수르트 취향인 것인지 이번에는 박사가 방해를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박사님! 혹시 어시스던트 자리에서 책 한 권 못 보셨나요!?"


 박사는 방해를 안 하지만 히비스커스가 집무실의 노크도 안 하고 헐레벌떡 들어온 것이 수르트에게 방해가 된 모양이다. 


"뭐야?! 중요한 순간에 방해를 하는 건?!"


 히비스커스와 수르트간의 아이컨텍팅이 있었지만, 히비스커스의 눈동자는 수르트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 적힌 표지로 내려갔다.


"앗, 그거 제 책인데요..."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히비스커스네 예비팀이 히비스커스의 밥은 죽어도 먹기 싫다고 어시스던트로 끼워달라던 팽의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넣은 적이 있었다. 어시스던트로 임명되면 다른 일 하지 못하고 박사만 따라다녀야 하니 식사를 차릴 수 없는 것 때문인데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요리를 만들지만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어하는 히비스커스가 좀 불쌍하게 보였다.

 그때 책을 한 권 들고 있었고, 박사에게 일 없으면 책을 잃어도 되겠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박사는 그러라고 대답했지만, 그 날 따라 일이 많은 바람에 책 읽을 시간은 전혀 없었다.


"...어..."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얼마 전에 식사건 때문에 투닥거렸던 전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의외의 상황이라면 수르트가 책을 덮고 히비스커스에게 책을 넘기면서


"...재밌는 내용이더라."


 하고 칭찬을 했다는 것이다. 








제목이랑은 다르게 얀데레 소설인데, 솔직히 엄청 순할 거다

보기랑 다르게 은근히 수요 있는 애인가 보더라

그나저나 잘 모르는 애라서 쓰기 참 힘들더라

그나마 기억이 뒤죽박죽이라는  거 보고 그거 이용해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