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박사."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업무를 처리 후, 잠깐 몸이나 풀겸 복도를 걷다가 수르트와 마주쳤다. 가볍게 '응?' 하고 반응해주고 고개를 소리가 들린 쪽으로 돌렸는데, 평소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매도부터 하고보는 스타일의 이미지였던 수르트가 어디가고,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힌 여성의 등장에 박사도 적잖이 당황할 수 있었다.


"그게... 말이야..."

"으, 응?"


 할 말이 있지만 말 못할 것 같은 분위기라는 게 이런 것인가? 입을 벌리는 듯 아닌 듯하며 우물우물거리고, 박사를 부르나 시선은 박사에게 가지 않는다. 


"아, 알아냈거든..."

"어... 어...?"


 수르트와 관련해서 알아낸 것이라. 그것이 뭐지? 하다가도, 박사는 수르트의 상태를 떠올리고 기뻐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정말?! 알아낸 거야?!"

  

 그런 가벼운 마음에 수르트의 어깨를 붙잡는다. 박사는 수르트에게 무엇이 진짜 자신의 기억인지 알아냈다고만 생각했다. 

 깜짝 놀란 수르트는 신경쓰지 않은 채, 그녀가 알아냈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했다. 그때까지 박사는 자신의 얼굴이 수르트와 너무 가깝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자, 잠깐..."

"수르트! 어서 말해줘! 뭘 알아냈는지!"


 시선을 회피하려하고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토마토가 되어버린 소녀의 모습을 한 수르트가 됐음은 꽤 놀라운 변화였으나, 박사는 그저 그녀가 알아낸 기억에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참다 못한 수르트가 박사를 밀치고서야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깨달은 것을 보면 박사 또한 꽤나 둔감한 남성이다.


"...미안."


 바닥에 주저 앉아서 조용히 사과를 했다. 수르트는 팔짱을 끼운 채 불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박사는 수르트에게 모종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전이었으면 저 입으로 매도 수준이 아니라 쌍욕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 박사를 두들겨 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르트는 그렇게 예상한 행동을 저지르지 않았다. 순간 너 누구냐?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르트의 행동이 달라졌다.


"바보 같으니..."


 잔뜩 토라진 모습을 보이면서 등 돌린 수르트. 머리 위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방금 행동이 당황스럽기는 해도, 박사는 수르트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언행이 마음에 들었다. 연애물 효과란 대단하구나. 하고 골때리는 영향을 칭송하기도 했다.

 물론, 수르트가 어떤 기억을 찾아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으나 그건 나중에 물어보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오늘은 간만에 홀가분한 느낌으로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박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날, 업무로 인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는데 수르트가 다가오더니 도와줄 건 없냐는 질문을 해왔다. 딱히 수르트가 도와줄만한 일은 없었기에 지금은 할 게 없다고 대답했고, 수르트는 "그래?" 하는 짧은 대답을 하고서는 박사의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조금 가깝게 느껴지는 거리에서 서 있어서 조금 신경이 쓰이는데 그런다고 일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잠시 옆에 두고 있었다.


"박사님."


 업무 중일 때 들어오는 아미야의 등장에 눈이 갔다. 서류 몇 장을 들고 오는 것을 보니 뭣 때문에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이번에 PART에 기록된 훈련 자료에요."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들에게 행해진 훈련 기록은 중요하다. 이전에 행했던 작전을 바탕으로 복습과 수정을 통해 전투 효율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로도스 뿐만 아니라 다른 세력 인원들도 참가하는 훈련인데, 그것에 대한 서류가 나온 모양이다.


"여기에 사인 좀 해주시겠어요?"


 아미야가 서류를 건냈다. 공식적으로 진행 되었다는 증명을 위해서 박사의 싸인이 필요했는데 가끔은 이런 것도 일일히 자기 싸인을 넣어야 하는 것이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든 그 또한 박사의 업무였고 어려운 일도 아니기에 별 다른 소리하지 않고 아미야가 건내는 서류를 받으려 했다.


"잠깐."


 서류를 받으려는 시점에서 수르트가 난입했다. 아미야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더니 다시 박사에게 건내주었다.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깝잖아."


 수르트가 한 손으로 아미야의 접근을 막는 듯한 손바닥을 보이며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각진 눈매에 고개는 돌리지도 않았으면서 눈매 끝으로만 향한 날이 선 시선은 저도 모르게 아미야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당황한 것은 아미야 뿐만 아니었다. 뜬금없는 수르트의 행동에 박사 또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불과 얼마 전까지 묘하게 따슷한 눈길을 자신에게 향했는데, 아미야에게 보내는 눈길은 차갑고 매서웠다.


"이봐, 수르트."

"왜 그래, 박사?"


 날이 선 목소리와 시선은 사라지고, 박사의 부름에 부드럽게 대답했다. 


 대체 뭐지?


"바, 박사님, 그러면 이따가 찾아 올 게요."

"어? 어... 그래..."


 수르트의 이상증상에 아미야가 불안감을 느껴 되려 나가자 수르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편안히 의자에 앉는다. 방금 그 상황이 당황스러우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서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그냥 좀 어이없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넘어갔으나, 이후에 박사와 동행하면서 이상하리만큼 다른 오퍼레이터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남녀불문하고 어린 나이에 오퍼레이터로 활동하는 사람들까지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오지 말라며 노려보거나 손으로 밀거나, 이따금 수르트의 말을 무시하고 접근하려면 무기까지 꺼내들었다. 그 시점에서부터 박사는 상황을 중재하고 접근했던 오퍼레이터는 수르트에게 으르렁거렸다가 몸을 돌려 사라졌다. 

 수르트의 지나친 행동이 자꾸 걸리는 바람에 박사는 수르트를 질책하기 시작했다.


"수르트, 별 거 아닌 걸로 접근을 차단하는데, 무기까지 꺼낼 필요는 없잖아."


 게다가 상대가 지마인 바람에 지난 번에 있었던 일과 엮어서 하마터면 큰 싸움이 일어날 뻔 했다. 그걸 말리느라 진땀을 뺀 이후라 박사도 수르트의 행동에 조금씩 열을 받기 시작했다. 민감한 반응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려고 난색을 표하며 수르트를 질책한다.


"필요가 없다니? 박사에게 꼬리치는 녀석들은 이렇게 해서라도 내쳐야해."

"아니, 그렇다고 업무를 보려는 사람까지 내치려는 건 된다고 생각해?"

"박사에게 접근하는 여자는 나로 충분하잖아."


 수르트의 이야기를 듣고 박사는 그녀가 뭔가 단단히 잘못 알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기, 수르트. 저번에 물어보려다 만 건데, 혹시 너와 나 사이의 관계야?"

"아, 그러보고니 그때 제대로 말 안 해주고 갔구나."


 그때 제대로 물어봤으면 좋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과한 스킨쉽을 해버린 터라 수르트가 도망을 쳐서 제대로 된 내용을 듣지도 못했다. 나중에 다시 물어보려 한다는 걸 잊어버리고 지냈는데, 그 기억이란 것이 자기와 관련된 것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박사와도 크게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너랑 나랑 연인이었어. 약혼까지 한."

"....."





얀데레 되는 과정을 쓰는 게 생각보다 어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