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유니온을 피하면서 이동했지만, 로도스 아일랜드 자체가 거대한 함선이라는 것 증명하듯, 아직도 이 난장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압박감으로 크게 다가왔다. 종종 마무칠 뻔한 리유니온이라던가, 중간중간 보이는 알고 지내던 오퍼레이터들의 시체 때문에 더욱 크게 느껴졌다. 

 박사는 그러면서도 부디 이 생지옥을 살아서 빠져나간 오퍼레이터들이 있기를 바랬다. 몇몇 오퍼레이터들이 용무 때문에 로도스에서 자리를 비우기도 한 상태인데 왠지 그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편안해짐과 동시에 무거워 지는 것 같았다.


"헉! 헉!"


 안 그래도 체력이 없는데 허겁지겁 달려온 것 때문에 숨이 차올랐다.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박사는 그제야 잠시 숨을 돌릴 겸,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 호흡을 다듬었다. 상황도 상황이거니 쉽게 진정되지 않는 것이 평소 운동 좀 해야했는데. 하며 후회를 하는 중에 기분 나쁜 철근의 마찰 소리에 놀라 주변을 경계했다. 그냥 철판 중력 같은 것의 영향으로 움직인 건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안에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젠장..."


 누군가가 숨어 있는 것을 눈치챈 박사는 품에서 제시카에게서 가져왔던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거 하나로는 불안하지만 다른 시체에서 물건을 가져올 수가 없었다. 주변에 리유니온 병사들이 서성이고 있어서 제대로 확인도 못했고, 리스크도 너무 컸다. 그래도 리유니온이 쓰던 검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하며 상황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잡히면 죽는 것 말고는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잡혀서 죽거나, 차라리 먼저 죽이거나 둘중 하나였다. 사람을 죽여본 기억은 없다. 아니, 과거에는 있을 수도 있었지만 모르겠다. 박사는 그 기억이 진짠지, 가짜인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자기 손으로 죽였으니, 아니면 타의적으로 죽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아야 했다.


 박사는 움직임이 보였던 철판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철판의 튀어나온 부분을 손잡이처럼 여기고 잡아당겼다. 철판은 너무 쉽게 박사 쪽으로 열렸고, 무게로 인해 박사쪽으로 기울었다. 덕분에 박사도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으나 그것이 운이 일이 될 줄은 몰랐다. 갑자기 왠 쇠파이프가 튀어나와 박사의 머리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저리 가!!!"


 하는 갸냘픈 외침과 함께 노란 머리의 우르스스인이 튀어나왔다. 바닥에 넘어지면서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으나 그것만으로도 박사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렀던 인물이 굼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철판이 넘어지면서 시끄러운 소리가 난 바람에 리유니온이 몰려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바닥에 넘어져서 굼을 보고 있는 박사와 뭔가를 때렸다. 라는 느낌이 없어 자신을 공격하러 왔다고 추정되는 인물을 바라보는 굼과 눈이 마주쳤다.


"굼!"

"박사!"


 서로를 알아본 기쁨에 짧은 외마디 이후, 굼이 박사에게 달려들었고, 박사는 일어나자마자 달려든 굼 때문에 다시 쓰러질 뻔한 위기를 겪었다. 

 우르수스인들은 특이할 정도로 힘이 좋은 종족인데, 학생들도 일반적인 다른 종족들의 어른의 힘, 아니, 그 이상에 해당하는 힘으로 달려와 안기는데 간신히 버틴 박사가 대단할 정도였다.


 박사의 품에 안긴 굼은 안도감 때문인지 얼굴을 박사의 가슴팍에 박고 굵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과거의 가혹함을 다시 경험하는 절망의 영향이었다.


"흐윽... 박사... 박사...!"

"굼, 이제 괜찮아. 그만 울어."


 굼과 합류하면서 살아남은 존재들이 있다는 것에 기쁘지만, 아직 상황이 좋아진 것이 아니었다.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던 굼을 진정시키며, 박사는 다른 이들은 없냐고 물어보려던 찰나였다.


"박사님..."


 아니나 다를까, 굼이 튀어나온 구멍에서 상황을 보던 다른 인물이 한 명 더 나왔다. 특유의 길쭉한 귀와 9개가 달린 푹신한 꼬리가 인상적인 아이였다.


"스즈란!"


 박사가 스즈란을 부르자 마찬가지로 금방이라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구멍에서 쪼르르 나와 굼처럼 박사에게 안겨들었다. 굼 같은 위력은 없으나, 아직 어린 애가 이 난장판에서 안도를 재빠르게 달려와 껴안는 모습은 참 안타깝다.


"훌쩍, 지마네 언니들이랑 떨어졌는데... 훌쩍, 혼자 있길래..."


 굼의 말에 따르면 지마 일행은 녀석들을 상대한다면서 유인을 했고, 굼은 스즈란을 발견에 같이 숨어 있었다고 한다. 지마 일행이 있었다는 증언에 굼이나 스즈란, 지마 일행 말고도 다른 생존자들도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스즈란을 굼이 발견해서 지켜준 것 때문에 밥을 만들어주면서도 순진무구한 아이 같았던 굼이 너무 기특했다. 부모가 된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래, 굼. 정말 대단해." 


 그러는 한편으로 그럴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이 안타까웠다.


 리유니온이 다가올 거라는 불안감을 버리지 못하고 둘을 데리고 그 장소를 빠져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빠져나오는 순간 리유니온들이 이쪽에서 소리가 났다면서 박사 일행이 지나온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굼과 스즈란이 합류한 것은 운이 좋은 것 같았다. 아까랑 다르게 3명이 움직여서 리유니온에게 눈에 띌 확률이 높아져서 몇명의 리유니온과 마주쳤지만, 굼이 방패삼아 들고 있는 문짝으로 공격을 막고, 스즈란이 적들을 느리게 만들어서 그들에게 피해를 입거나 입히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움직임이 느려져서 박사 일행이 도주한 경로도 파악하기 힘들게 하기 때문에 혼자 있을 때보다 안전하고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둘이 없었다면 박사는 진작에 잡혔을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지마나 다름 오퍼레이터들도 만날 수도 있을 거라고 예상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장소를 이동해도 만나는 오퍼레이터들은 더 이상 없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박사는 동행하는 둘에게 그리 이야기했다. 빠져나갈 수 있다. 기쁜 상황이었다.

 허나 다른 동료들은 만나지도 못했고, 로도스를 빠져나간다고 하들, 그 외부에서 리유니온이 진을 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불확실한 상황이었으나 그건 그 때 생각하기로 했다. 외부보다 내부에 더 많은 리유니온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박살난 로도스나 죽인 오퍼레이터들에게서 전리품을 확인하려고 슬슬 경계가 설렁설렁 해지는 것 같은데, 몇몇 리유니온에게 박사의 존재를 들켜서 꼭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박사의 예상대로 주변의 로도스의 잔해가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리유니온 병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 왔다! 이제..."

"박사님!"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에 속도를 높이는데 스즈란의 목소리와 함께 옷자락을 붙잡힌 느낌을 받았다. 힘이 강하게 들어간 느낌을 받아 그 자리에서 멈췄고, 스즈란을 바라보았는데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는 굼이 멍하니 허공을 처다보면서 있는 게 보였고, 굼을 부르려고 하기 이전,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굼의 시선을 따라 박사도 고개를 돌렸다.


 굼에게는 최악의 장면이었을 것이다. 박사에게도 좋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지만.


"...지마 언니..."  


 굼이 그쪽으로 다가가는 것을 박사가 달려와 황급히 막았다. 다시 말하지만 우르수스족의 힘은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박사는 그런 굼을 전력을 다해 막았다. 평소 비실비실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발버둥치는 굼을 필사적으로 막으며 눈을 가려주려고 했다.


"굼! 보지 마! 보지 말라고!"


 그런 혼란을 바라보는 스즈란은 두려움을 느낄 뿐이었다. 지마 언니라고 외치면서 대성통곡하기 시작한 굼과 이를 악 물고 무언가를 참으려는 듯한 박사의 몸 싸움. 그리고 우뚝 서 있는 기다란 창과 끝에 꽂혀있는 끔찍한 것. 그것이 스즈란이 본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오타지적, 피드백 환영


이따가 룰렛 돌려서 상엽이 다음 애 정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