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스타에서의 작전은, 순조롭게 종료되었다.


옵시디언 페스티벌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화산과 토착 광석충을 조사, 유도, 제거하는 일은..... 하드코어 그 자체였다.


작전에 참가한 대원들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심리상태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얼라이브 언틸 선셋의 음악으로 대기실 플레이리스트를 도배해놓을 정도였고.


하지만 그 덕분인지 다들 텐션을 유지한채로, 별다른 손실 없이 시에스타 행정부와 계약까지 새로이 체결하며 로도스의 활동 폭을 넓히는 부수적인 결과까지 들고왔다.


그리고 옵시디언 페스티벌이 폐막하기 정확히 사흘 전, 모든 작전을 종료하고 로도스는 모든 경계경보를 해제, 평시 상태로 전환했다.


다만 이는 현장팀과 전투지원팀에 한정된 이야기였고, 닥터를 비롯한 본부인력과 필수 유지보수 인력은 각종 행정처리와 로도스의 보수로 인해 외출은 별세계 이야기였다.


' 우리는 왜 못 나갑니까!! '


' 미스 켈시는 각성하라!! 계원들에게 휴식을 보장ㅎ..... '


등등의 반발이 있었지만, mon3ter를 꺼내겠다는 협박과 켈시 씨 또한 행정업무에 투입된다는 이야기에 항명사태까지로는 발전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들 창문 너머로만 축제의 열기를 느끼며 입맛만 다실 무렵, 보다못한 실론이 시에스타 소속의 회계사와 기계공들을 보내준 덕에 직원들의 노고를 조금 덜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은 폐막식 날 새벽 06시 25분에 모든 업무를 해치우고, 켈시에게서 나가 놀아도 좋다, 는 허가를 얻어내고야 말았다.


닥터는?


서류의 결재가 얹히고 얹혀, 남들 다 수영이다 클럽이다 할 때에도 켈시의 감시 하에 도장이나 찍어야 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을 갈굼당한 끝에 켈시에게서 풀려나 천금같은 휴식을 보장받았고.


닥터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로도스가 정박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였다.


폐막식장은 반경 1 킬로미터 안이 아수라장이었고, 도심지는 인생 마지막인 것마냥 불타는 청춘들로 아비규환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시에스타 행정부 쪽에서 작전지역으로 지정해준 바닷가이니만큼 한산해서 다행이었다.


아직 바다는 보이지도 않는 숲인데도 짠내가 코로 훅 끼쳐온다.


이게 바다 냄새였구나, 하고 닥터는 더욱 깊게 숨을 쉰다.


기억을 잃기 전 나는, 이곳에 와본 적이 있을까, 와 보았다면 누구랑 왔을까, 무엇을 했을까.....이런저런 상념에 잡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숲을 헤치고 나오자, 드디어 바다가 시야를 채운다.


발 밑은 바닷물에 젖은 모래, 머리 위에는 보름달과 은하수가 붙박힌 밤하늘, 그리고 앞에는 그 모든 것이 비치는 바다.


특히나 밤하늘의 빛이 비추어진 바다는, 지금껏 본 그 어떠한 거울보다도 아름다워 눈길을 떼지 못하게 했다.


" 와...... "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온 탄식.


그렇게 얼마나 오랫동안 밤바다를 기억 속에 새기고 있었을까.


바다 한 가운데서 무언가 뛰어올랐다가 다시 첨벙, 하고 빠져들고, 자신만의 파도를 만들어 흩뿌리며 다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 돌고래.....? 돌고래 치고는 작은데, 사람....인가.... "


호기심이 동하여 점점 다가가다, 파도가 발끝을 적시자 걸음을 멈춘다.


더욱 가까이서 보자, 의문의 형체가 더욱 또렷이 보인다.


새하얗고 가늘은 다리로 수면을 박차고 올라 찬란한 회색빛 머리카락을 흩날려 물방울을 튀기는, 마치 인어와도 같은 자태의 여성.


그녀가 물에 뛰어드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찰나의 순간에도 닥터에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든다.


풍덩-하는 소리와 함께 물 속으로 사라졌다가, 닥터의 거의 바로 앞에서 다시 물 밖으로 나오는 그녀.


" 스카디 씨, 폐막식에는 안 가셨군요. "


" 나하고 그런 곳은 맞지 않아. 에기르의 노래하고는 다르니까. "


머리를 좌우로 휘둘러 물기를 대충 털어내고, 닥터의 앞에 서는 스카디.


" 그러는 닥터야말로 서류더미에 묻혀 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미스 켈시는 굉장히 화가 난 모양이던데. "


" 15분 전까지 혼나다 왔어요..... 그리고 제 일은 끝내고 온 겁니다. "


" 그렇구나...... 다행이네, 닥터도 이 바다를 기억 속에 담을 수 있어서. "


스카디는 닥터를 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어 주고, 어디론가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닥터는 무작정, 그녀를 따라 다섯 걸음쯤 뒤에서 걷는다.


이곳은 달이 굉장히 낮게 뜨는 걸까, 가로등 하나 없는 외진 곳인데도 그렇게 어둡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스카디의 젖은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반짝거릴 정도로.


" 그러고 보니, 스카디 씨가 로도스에 들어온 이후로는 처음 바다에 왔네요. "


" 로도스의 욕조는 좁으니까, 정말이지 오랜만에 실컷 헤엄쳐 본 것 같아. "


" 죄송해요, 아무래도 에기르 대원들은 수가 적다보니까 복지에 신경쓰기가..... "


스카디는 미안한 티를 내는 닥터를 뒤돌아보며, 살풋 미소짓는다.


그리고 그대로, 그와 눈을 맞춘 채로 뒷걸음질치며, 언제나의 소근거리는 목소리로 잡스러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 괜찮아. 우리만 특별대우를 바라는 건 아니니까. 우릴 사교 컬트라면서 몰아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


" 사교 컬트란 건..... 글라우크스의 해신海神인가요? "


" 그 아이 앞에선 조심해 줘, 누군가에겐 구세주이자 창조주가 육지의 사람들에겐 파괴신이라니, 슬프잖아. "


" .....언제나 주의하고 있습니다. "


그렇게 얼마나 대화가 오갔을까, 발 밑에서 사브작, 사브작 소리를 내던 모래사장은 이제 뒤에 저 멀리 두고 왔다.


정신차려 보니, 발 밑은 돌바닥.


마치 스카디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높은 절벽 위에 서 있었다.


바닷바람이 더욱 매섭게 들이치며, 옷섶을 여미게 한다.


" 닥터, 그 이야기 알고 있을까? 뭇 삶生은 바다라는 어머니에게서 왔다는 거. "


" 몇억 년 전 이야기죠. "


" 그렇지. 이 테라에, 우리의 까마득한 조상이 첫 지느러미를 내딛을 때의 이야기지. 그렇다면, 뭇 삶生은 어머니에게로 돌아오고자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아이들에게 실망해서, 모조리 무無로 되돌리고자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았을까. "


" .......모르겠네요. 에기르 설화입니까? "


어느새 닥터는, 스카디의 바로 옆에 서 있다.


단 서넛 발자국만 내딛어도 바다에 풍덩, 빠질 것만 같은 낭떠러지에.


하지만 어째서일까, 두렵지는 않아.


" 정답. 내 생각이지만 그 설화는, 해신海神을 섬기는 컬트의 변형이 아닐까 해. 어느정도 비슷하지 않아? 피조물을 증오하는 창조주. "


" 좋은 지적이네요. "


" 그리고 해신海神이 징벌코자 보내는 재앙, 우리의 이복 남매를 내 일족은 피로써 막아 왔어. "


" 갑자기 코스믹 호러가 되는데...... "


바람의 한기 때문일까, 스카디의 이야기가 전하는 우주적 공포 때문일까, 몸을 바르르 떨며 옷깃을 더욱 여미는 닥터.


그리고 그런 닥터의 옆에 서서, 팔을 그의 허리에 두르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스카디.


쿠욱-


" 두려워할 것 없어, 나의 닥터. 바다는 생각보다 훨씬 아름답고, 훨씬 간결하니까. "


저항할 수 없어.


" 우리는 결국, 바다로 돌아가게 될 거야. "


떨어지기까지 반 발짝도 안 남았어.


" 그 전에 닥터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 단 한 조각을 선사할게. "


숨은 어떻게 쉬지?


" 걱정하지 마, 나의 닥터. 곁에 내가 있으니까. 하나, 둘-! "


닥터의 등을 시원하게 밀어버리는, 스카디의 손길.


시간이 너무도 느리다.


무엇이라도 붙잡아 보려고 손을 뻗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자기 멋대로 돌아서, 시선이 하늘을 향한다.


절벽 위에서 자신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스카디의 얼굴.


그 얼굴을 보자마자 정신이 번쩍, 일갈한다.


" 미친 범고래 새끼야--!!!! "


그리고, 풍덩.


눈꺼풀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따갑고, 옷이 물을 잔뜩 머금은 탓에 팔다리는 너무도 무겁다.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도 잠시 뿐이다.


차갑지만 포근한 바닷물이 온몸을 휘감자 사고思考가 정지하고,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끝없이 침전할 뿐이다.


아, 나는 저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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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가라앉았을까, 주변은 온통 칠흑 뿐이기에 잘은 몰라도 등에 부드러운 바닥이 닿는 느낌이 든다.


팔다리를 조금씩 움직이자 모래가 조금씩 움켜졌다가, 손아귀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전해진다.


어떻게든 수면으로 올라가야 해, 라고 생각하며 아직도 얼얼한 발을 바닥에 구른다.


그 순간이었다.


차갑고, 은은한, 푸른 빛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 해저를 밝힌다.


지금껏 본 적 없던 검은 모래바닥에 자라난 색색의 산호 군락과, 그 사이를 마구 헤엄치는 온갖 빛깔과 형태의 물고기가 닥터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저 위에서는, 붉은 눈동자 한 쌍이 내려온다.


스카디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닥터에게 헤엄쳐 다가와, 눈을 맞추고 웃어 보인다.


곧이어 입술을 포개고, 자신의 입술로 닥터의 것을 벌리고, 자신이 머금은 공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그를 꽉 끌어안고는, 저 위를 향해 부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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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학! 컥, 커헉! 쿨럭, 쿨럭, 카악-!! "


꼴사납게, 해수면 위에 머리만 동동 뜬 채로 개헤엄을 치는 닥터.


그리고 그 옆에 너무나 편안한 자세로 떠 있는 스카디.

" 바다의 아름다움, 그것의 편린을 맛본 소감을 들려줄래, 닥터? "

" 스카디! 케헥, 미쳤, 우욱, 미쳤냐!! "

" 어머나. 닥터는 생존수영 수업을 다시 들어야겠는걸. 이래서야 에기르인과 결혼하기는 커녕 뻘밭에 묻혀 죽는 게 빠르겠어? "

" 이게 생존수영으로 될 사안이, 아니잖, 아!! "

스카디는 그저 미소를 만면에 띌 뿐,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다리를 밀어 모래사장에 밀어 안착시킨다.

" 내가 좀.....심했,을까? "

"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네. "

스카디는 지금껏 보인 적 없던 장난끼 가득한 미소를 지우지 않는다.

그저 대자로 뻗은 닥터의 옆에 앉아,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닥터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어. 과격한 방식이 아니면, 에기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으니까. "

스카디는 시선을 바다에서 떼지 않고, 손만 움직여 닥터의 손에 포갠다.

" 지상의 사람에게, 에기르의 방식을 강요하는 게 이기적인 짓이란 거 알고 있어. 하지만 에기르는 이렇게밖에 못 해. 자존심이 높으니까. "

" ......뭔 의식이었어요? "

그제서야 스카디는 고개를 돌려 닥터와 눈을 맞추고, 볼에 홍조를 띄운다.

몸을 움직여 그의 허리 위에 올라타더니, 상체를 숙여 몸을 겹친다.

" 응. "

그리고 그의 입술에 다시금, 자신의 입술을 맞추고, 아까와 똑같이 숨결을, 타액을, 온기를 건넨다.

한참 동안, 파도가 절벽에 부딪혀 산산히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혀와 혀를 얽어 가며, 닥터에게 두 번째 키스를 바친다.

입술을 떼자, 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홍조로 붉어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스카디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닥터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읊조린다.

" 에기르 방식의 프로포즈......청혼이야. 닥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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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에올렸던건데 추하게 재업함ㅎ
씨-벌 스카디얼터 내놔 해묘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