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언니!!!"


 통곡과 함께 주저 앉은 굼을 껴앉으며 박사는 다시 한 번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빌어먹을...!"


 로도스 내부의 배신자에 대한 영향은 너무나도 컸다. 어느새인가 박사도 참았던 눈물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불과 방금 전 제시카도 그 모습으로 죽었는데, 아직은 어린 지마와 일행마저도 똑같은 꼴이 되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과 배신자에 대한 분노. 그 외에도 여러가지가 섞인, 복합적이고 너무나도 큰 고통이 느껴진다.


"...가자..."


 흐느껴 우는 굼의 손을 잡고 끔찍한 현장을 빠져나왔다. 지마 일행이라고 같이 행동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오퍼레이터들도 있었지만, 누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꼴이 났는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본다면 박사마저도 마음이 무너저 내릴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야 자신도 살고 굼과 스즈란도 살아남았다.


"박사님..."


 혼란속에서 두려움에 찬 스즈란의 손을 잡아 걸어갔다. 스즈란의 손에서도 떨림이 느껴졌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박사는 조용히 그 장소를 떠날 뿐이었다. 


 로도스 아일랜드를 벗어나면서 박사는 이 일에 대한 것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될 것 같았다.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해결하지 의문들도 많이 있었는데, 많은 생각을 품고, 박사는 굼과 스즈란과 함께 그 곳을 벗어났다. 가장 가까운 국가에 돌아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앞으로의 일이 막막했다.

 얼마나 살아남았는지 모를 오퍼레이터들과 합류는 할 수 있을까. 

 켈시와 아미야는 어떻게 됬나.

 그 동안 수많은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것에 익숙했던 박사도, 처참한 상황에서 머리가 쉽게 굴려지지 않았다. 우선 가장 가까운 곳인 용문으로 가서 조용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다리에 석궁 볼트가 박히기 전까지.


 짧은 비명과 함께 살과 뼈가 관통되는 고통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다. 허나 박사는 그러한 고통보다 큰 일 났다는 것을 먼저 느꼈다. 


 박사의 상태를 보고 굼이 볼트를 빼보려 하지만 치료에 관한 전문 지식이 없는 굼이 보기에도 함부로 볼트를 뺼 수는 없어서 대신 박사를 끌고가기로 했다. 굼 정도의 힘이면 박사는 들고 갈 수 있었지만 리유니온은 이미 몰려오고 있었다. 잠시라도 걱정을 했던 게 문제가 되었다.


 석궁을 쏜 병사가 여기 있다면서 외침과 동시에 몰려오는 소리에 굼과 스즈란은 덜컥 겁이 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사를 포기할 수 없었다. 버리고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자기 때문에 둘까지 죽을 수 있음을 직감한 박사는 둘에게 손짓을 하며 소리쳤다. 


"굼! 스즈란! 도망쳐!!!"


 볼트에 관통된 다리를 붙잡고 박사가 외쳤다.


"싫어! 박사를 두고 갈 수 없어!!!"


 굼이 외쳤다. 허겁지겁 박사를 들려고 하나 칼을 들고 달려는 리유니온이 더 빠를 것 같았다. 포위되는 건 순식간이 될 것이다.


"젠장!!! 이러다가는 다 죽어!!! 굼! 스즈란! 도망치라니까!!!"

"싫어!! 싫어!!!"


 스즈란도 합세해서 박사를 들려고 했다. 어리더라도 어떻게 해야한다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이제 정말 큰일 나기 직전이었다.

 박사는 그런 둘을 때리 듯 밀쳐냈다. 맞은 부분이 아팠다.


"명령이야! 살아남아! 너희들까지 죽게 할 수는 없어. 굼, 스즈란. 너희라도 살아야 해. 힘든 거 알아, 괴로운 거 알아. 나도 괴로워... 하지만 너희들까지 잃으면 더 크게 괴로울 거야. 그러니까 살아줘. 어서 도망가. 이 이상 늦으면 정말 끝이야."


 영화를 본 적 있었다. 뭔가 소중한 사람들을 도망치게 할 때 멋있는 대사를 하던데, 막상 상황이 닥치니 그냥 도망치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진심이었다. 지금도 리유니온에 의해 박사가 알던 오퍼레이터들이 참혹하게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디 이 둘에게 만큼은 그런 고통을 맛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둘을 살리고 싶었다.


"가, 굼... 어서!"


 굼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그 눈물이 어떤 각오를 만들어냈을 까. 박사의 말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굼은 스즈란의 손을 잡았다. 굼은 스즈란과 함께 달려갔다. 뒤따라 리유니온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 개새끼들!!!"


 리유니온 병사 하나가 박사를 붙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싸움 실력은 없더라도 저항할 수는 있었다. 제시카의 유품으로 취급하는 전술 나이프. 그것을 꺼내들어 자신을 붙잡으려던 리유니온의 목을 찔러넣었다. 

 리유니온 병사는 순식간에 공격 당해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목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다른 리유니온 병사가 달려들자 목을 찔렀던 병사에게 칼을 뺏어 휘둘렀다.


 죽이지는 못했지만 칼날이 몸에 닿아서 그런지 피가 튀는 게 느껴졌다. 무기를 휘두른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자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오퍼레이터가 이런 감각을 느꼈을까? 


 그 이상 리유니온들은 덤벼들지 않았다. 수만 보면 한 명은 더 죽일 수 있어도 그 이상은 무리였다. 정 뭣하면 석궁 같은 것이라도 쏴서 죽일 수 있는데 덤벼드는 병사들은 없었다. 아츠 능력도 없고, 기껏해야 단검과 한 손으로 휘두르는 칼을 들고 있는 비실거리는 박사 혼자만이 있을 뿐인데 말이다.


"저 새끼가 동포를 죽였어!"

"참아, 놈은 생포해야 하는 놈이야!"

"썅! 그 계집년들은?"

"내버려 둬. 둘이서 뭘 할 수 있겠어."


 리유니온들은 굼과 스즈란을 추격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문제는 이제 홀로 남은 박사. 생포라고하니 바로 죽일 생각은 없어보이지만 그렇기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더욱 경계심이 들었다. 


"저런 놈 때문에 수많은 동포가 죽었는데 생포를 해야한다니..."

"그래도 레스티 동포 덕분에 복수하는데는 성공 했잖아. 배신자놈들도 대부분 처형했고."


 순간 웃을 뻔 했다. 

 로도스 아일랜드도 이 꼴이 난 것이 그 배신자 때문인데, 리유니온들은 박사를 포함해 로도스 아일랜드를 배신자라고 칭한다. 정작 자기네들은 오히려 감염자들에 대한 이미지만 신나게 실추 시키던데. 덕분에 로도스가 감염자와 비감염자가 공존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나쁘게만 생각해 고생했었다.


"레스티가 왔어."


 한 리유니온 병사의 말이다.

 박사는 리유니온들에게 둘러쌓인 것보다 배신자를 직접 마주한다는 상황이 찾아오는 것이 긴장되었다. 그 배신자에게 어떤 폭언을 던질지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일 것이다.


 정면에서 리유니온들이 고개를 돌려서 레스티투션 오는 것을 확인 후 길을 비켜주었다. 리유니온들의 머리 위로 왠 도끼창날만이 보이는 데, 생각보다 키가 작은 인물인 듯 했다. 

 덕분에 도끼창에 대해 시선이 갈수 밖에 없었는데, 그 도끼창 날이 이상하게 익숙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저 도끼창날은 '프로스트리프'의 도끼창날 아니었나?


 리유니온 병사들의 사이가 벌어졌고, 레스티투션의 모습이 나타났다. 죽은 제시카가 기겁할만 했다. 어째서인지 제시카의 잘린 목처럼 몇몇 오퍼레이터들의 시체 절단면이 얼어있더니.


"...프로스트리프...!!!"


 이를 꽉 물어서 그런지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입에서 피가흐를 정도로 참았던 분노들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리유니온 사이에서 입만 가리는 방독면을 쓴 채로 여유롭게 걸어나오는 프로스트리프의 모습이 그 무엇보다도 끔찍할 정도로 혐오스럽게 보였다.


"...다리에 볼트를 쏜 건 누구지?"

"...접니다."


 한 쪽 다리에 볼트가 꽂혀서 일어나지 못해 무릎을 꿇고 저항했던 흔적이 보인다. 지금도 볼트와 피부, 근육 사이의 틈을 총해 피가 흐르고 있다. 프로스트리프의 시선은 그것을 향해 있었고 방독면 영향인지 목소리가 변조되어 있지만 심기 불편한 말투로 박사의 다리를 볼트를 맞춘 병사를 찾는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려하면 먼저 도망을 칠 수 밖에 없는 상태..."    


 때에 따라서는 상대에게 최소한의 피해로 제압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그 병사는 박사를 잡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리를 노려 석궁을 쐈고, 보기 좋게 명중했다. 하지만, 프로스트리프의 눈은 잔뜩 찡그린 상태로 박사에게 상처를 입힌 리유니온 병사의 다리를 도끼창날의 끄트머리로 푹 찔렀다. 리유니온 병사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고꾸라졌고, 프로스트리프는 화가 난 것인지 언성을 높였다.


"자르거나 죽이지 않은 걸 고맙게 생각해."


 뜬금 없이 자기 부하로 추정되는 인물을 찔러 넣을 정도로 화를 낼만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박사는 그런 프로스트리프가 더욱 어처구니 없었을 뿐이다.


"로도스 아일랜드를 작살내고, 동료들을 리유니온 손에 죽이게 만들어놓고 잘도 떠들고 있군. 레스티투션."


 다른 의미로 그토록 만나보고 싶었던 존재에 대해서 이를 갈면서 이야기한다. 프로스트리프. 아니, 이제 로도스는 없어진 거나 다름 없고, 로도스 아일랜드를 배신하고 박살내버린 프로스트리프란 존재보다 역겹게 생각할 레스티투션. 편하게 레스티로 불리는 게 맞을 것이다.


 레스티는 리유니온 병사의 피가 묻은 도끼창날 끝을 닦아낸다. 


 배신까지 했는데 자기 부하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라 섬뜩한 느낌을 준다. 레스티에게 존대를 하는 것을 보아 부하를 둔 모양인데, 동지라고 하는 리유니온 병사가 있는 것을 보면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고, 그 점을 미루어보아, 아무래도 리유니온에 가담한 지 제법 시간이 흐른 듯 했다.


 덕분에 박사의 이만 계속 갈리는 중이었다.


"대체 왜지? 왜 배신을 한 거냐? 동료들을 죽이고, 로도스 아일랜드를 작살내다니. 여태까지 봐왔던 건 전부 가면이었나? 빌어먹을! 널 믿었던 게 내 평생 실수였어! 이제 로도스는 없어. 모든 감염자가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거라고!! 너 때문이야! 전부 너 때문이라고!"


 레스티에게 더 심한 폭언을 내뱉고 싶었으나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 로도스를 배신한 이유도 이제 궁금하지 않았다. 감염자를 구제하고자 활동했던 박사에게 이런 짓을 저지른 프로스트리프였던 것은 역겹고 추악한 한 명의 배신자 뿐이었다. 그녀 때문에 모든 것이 망했다.


 레스티가 다가왔다. 박사가 무기를 휘두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도끼창날이 박사의 목에 다가왔다. 살짝 만지기만해도 피부가 잘려나갈 것 같은 날카롭고 피부에서 느껴지는 한기가 목에 닿았다. 


"내가 배신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날이 목에서 점점 멀어졌다. 레스티가 도끼창을 거꾸로 들었다.


"너 때문이라고만 이야기 해둘 게"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박사는 머리의 충격을 느끼고 의식을 잃었다.





상엽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건 여기서부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