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머리카락과 카우투스족의 귀다란 귀가 눈에 뛰는, 리유니온의 간부 중 한 명인 프로스트노바의 등장에 레스티는 잠시 뜸을 들였다.


"...무슨 일이야?" 


 경계하다시피 이야기하는 레스티. 


"탈룰라의 명령이야."


 프로스트노바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면서 시선을 포로쪽으로 향했다. 그 행동은 레스티를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다. 포로에게 볼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뭣 때문인지 몰라도 괜히 신경 건드릴 일은 아니라 생각하고 길은 만들어주었다.


 레스티를 지나간 프로스트노바는 몰골이나 다름 없는 포로를 내려다보았다.


"박사라고 불렸던 남자의 모습이 말이 아니군. 상처 하나 없는데 대체 어떤 고문을 했기에 이런 상태까지 만든거지? 사람 말은 들을 수는 있는 거지?"


 프로스트노바는 레스티가 자신과 같은 얼음 아츠를 사용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만약 아츠를 이용했다면 피부 괴사가 기본적으로 생겼을테니 아츠를 이용한 고문은 아니었을 거라 짐작했다. 그렇다고 정신적인 공격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랬다는 증거가 남지 않아 레스티를 조금 무섭게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포로가 날뛰지는 않으니 귀찮은 일은 안 생긴다고 보았다. 


 프로스트노바의 말에 레스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다시 박사가 될 생각 있어?"


 포로는 그 짧은 한 마디에 고개를 들었다. 빛이 사라졌던 눈동자에 모처럼 생기가 돌아왔다.


"...뭐라고...?"


 포로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얼마만일까? 레스티는 프로스트노바의 대답한 이 상황이 불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던 반응조차 없었는데.


"로도스 아일랜드 생존자들에게서 협력 요청이 들어왔거든."

"...!!!"

"...!!!"


 눈이 휘둥그래진 포로와 반대로 빛을 잃어가는 레스티.


"그 토끼 아가씨와 의사를 필두로 로도스 아일랜드 소식었던 사람들이 와서 너를 풀어주는 대가로 광석병 치료 개발에 몰두하겠다더군."

"아미야... 켈시..!" 


 포로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은 오랫만이었다. 레스티 앞에서 전혀 보여주지 않았던 환한 얼굴이었다. 자신은 그 무간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생존자들. 


"그런데 광석병 치료라니, 내가 로도스에 활동 할 때는 아직까지는 완화시켜주는 수준 밖에 되지 않았을텐데?"

"치료제 개발이 가능하다가 뭐라나. 대신 그 기술을 응용할 박사가와 제조실등이 필요하다는 요구 조건이 들어왔거든. 탈룰라는 리유니온을 대상을 우선으로 치료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새웠거든."


 치료제 개발이 가능하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지만 그보다 아미야와 켈시가 살아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는 것이 박사를 더욱 화색이 돋게 만들었다.

 허나, 내키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로도스 아일랜드가 작살 났고, 지금 전세계적으로 위혐요소로 찍히기 직전인 리유니온에 협력해서 치료제를 개발하라니.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서 리유니온이 점령한 지역에서 그런 의료 시설이 하나 정도는 있을거라 생각은 하다만, 조건으로 리유니온을 우선으로 치료한다는 조건이라니.


"너희들을 우선적으로 치료라고 하면...?"

"말 그대로. 나를 비롯해서 이 리유니온에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애들이 많아. 모두가 감염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았던 동포들이지."


 프로스트노바는 포로의 앞으로 다가갔다. 한 쪽의 무릎을 꿇고, 포로를 바라보았다. 


"다들 살고 싶어했어. 감염자라는 이유로 외면받고, 차별받고, 소중한 것들을 잃었지. 그렇기 때문이야."

"...아무래도 그건 네 의견인 것 같군."


 쉽사리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리유니온 대표 역할의 탈룰라를 필두로, 수많은 리유니온들이 그동안 받아왔던 부조리에 치료 한 번으로 조용히 넘어갈 존재들이 아닌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의 지독한 광석병이 치료된다고 한 들, 지난 날의 상처까지 치료되는 것은 아니었다. 프로스트노바 또한 마찬가지였다. 포로는 그런 프로스트노바의 이야기에 숨은 것이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런 포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로도스 아일랜드의 박사이지 지휘관이었나. 눈치가 빠르네."


 프로스트노바는 부정없이 바로 인정을 했다.


"맞아. 우리를 치료해 달라는 건 내 의견이야. 탈룰라는 '우리만' 치료해 달라고 전달해줬지."


 '우리만' 이라면 리유니온의 병사들을 뜻하는 게 아닐까했다. 


"그렇다면 리유니온 이외의 감염자들은 알바 아니라는 건가?"

"그건 아니야. 탈룰라는 그보다 더한 것을 준비하고 있었거든."


 프로스트노바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덩달아 포로의 표정도 마찬가지로 좋지 못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우리쪽에서 오리지늄이 대량으로 뭍힌 광산을 발견했거든. 그리고 리유니온측에는 무기 개발자과 노동력을 제공할 존재들이 있어. 탈툴라 의도대로라면 너와 로도스 애들이 치료제를 개발하는 즉시 세상은 혼돈의 도가니가 시작될 거야."


 좋아. 정리가 되었다.

 오리지늄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고, 무기 개발자와 노동력이라면 단 하나 밖에 없다. 오리지늄으로 만든 무기. 아니, '오리지늄의 영향을 실어 담은 무기'를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셀 수가 없을 것이고, 감염자 또한 가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리유니온은 자신들만 치료를 받아 원래 생활이 가능하겠지만, 피해를 입은 국가는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막장으로 치닫게 된다.


 미친 짓이다. 짧게 생각해도 그런 탈룰라의 계회에 동참 할 수가 없었다.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것은 감염자를 구하기 위해서지, 누군가를 호의호식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탈룰라의 계획을 반대한다면 난 죽겠지?"

"그렇겠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면 넌 그 정보를 왜 나한테 흘리는 거지?"


 포로는 같은 리유니온 소속의 인물인 프로스트노바가 왜 그런 중요한 정보를 이야기하는지에 대해 설명이 필요했다. 


"...지쳤거든."


 한쪽 무릎을 구부려서 포로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던 프로스트노바는 그 자리에 털석 주저 앉았다. 얼굴에 나타나지 않으나, 그녀의 행동이 그 동안의 노고가 보였다.


 리유니온 내부에서도 언제부터인가 탈룰라에 대한 반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리유니온이라는 단체. 그 동안 감염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핍박 받았던 그들은 그 동안의 분노를 표출하며 자신들의 사상을 따랐다. 


 허나 그 사상을 따르기 위해 행동한 것은 '폭력'이었다.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행하는 폭력이 정말 올바른 일인가? 단지 폭력을 쓴다는 이유가 아니라 그 폭력을 관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행해서 인생을 망가트려야하나?


 그러한 이유 떄문에 리유니온에 소속된 모든 인물들이 그런 과격한 사상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로도스에 리유니온 소속이었던 인물들이 들어오기도 했다. 다른 이유로 들어왔었지만 리유니온의 사상에 동감하는 인물이 아니란 건 확실했다.


 그런 과격한 사상이 프로스트노바를 포함한 수많은 리유니온 대원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감염자라는 꼬리표에 휘둘리는 삶도, 의미 없이 학살하는 것도, 탈룰라와 그녀를 따르는 과격파의 무자비한 폭력도. 그렇기에 프로스트노바는 자신을 따르는 동료들과 로도스에 들어가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로도스는 더 이상 없다. 그 잔재로 눈앞의 포로뿐이었다.


 하지만 꺼져가는 희망은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로도스의 패잔병인 생존자들이 기적적으로 모여서, 리유니온에게 협조적으로 나왔다. 그것도 광석병을 치료할 수 있 치료제라는 기적과 함께.


 더 이상 그런 잔혹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다. 자신도, 동포들도,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레스티에게 고문을 받았던 포로도.


 구원이 눈 앞이었다.






히로인 같이 생긴 애 등장. 하지만 여기선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