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창문의 빗소리 내리치는 천둥소리 흘러오는 축음기의 음악
스스로 어찌할 수 있는 것과 어찌할 수 없는 것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을 겪는다는 그런 지겨운 소리를 어른이 될 때까지 아이들은 지겹게도 듣는다고 했다
하지만 듣는 자도 들려주는 자도 직접 겪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묶여진 팔과 다리 입에 붙여진 테이프
지금 내가 처한 그것들은 지겨운 어른들의 조언에 딱 맞는 상황이다
어째서 여기있는 것인지 축축한 방 안과 두꺼운 외투, 막힌 입가가 어울러져 체온이 높아져서인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다
분명히 기억나는건 나는 집무실에 있었다
블루포이즌이 준 독특한 형형색색의 과자를 조금씩 입에 넣으며 서류허가를 내고 있었다
서류의 마무리 전 여느 때처럼 홍차를 타러 주전자에 물을 담고 있었다
그 다음... 그 다음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가 기억나지 않는다 무언가 어지럽고 문 너머의 빛과 그 앞의 그림자
누구지? 누구였지? 외견이나 종족을 알아볼 수 있는 정체성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을 확인하기 전 빛은 이미 시야를 마비시킬만큼 강렬해져 있었다
이런걸 할 수 있는건 몇 안 된다
오퍼레이터인가? 외부의 침입인가
믿고싶지 않지만 전자일 것이다 로도스 아일랜드는 작지만 여느 이동도시만큼의 보안을 보장한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픈 배를 노크하는 냄새와 함께

"박사님 몸은 괜찮으세요?"

사람의 고집과 진실은 일을 처리하는 시점에 있어서 다른 분야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도 그런 이야기인 것일까
솔직히 너무 잔인한 이야기다

"9시간이나 눈을 감고 계셨어요 배고프실까봐 스튜를 가져왔습니다"

스튜와 부드러워 보이는 빵을 담아온 쟁반을 든 샤이닝과
그 뒤에 아담한 발걸음으로 따라들어온 나이팅게일이 보인다

"지금 입을 풀어드릴게요 조금 아프실 수도 있어요"

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입가에서 접착력이 떨어지는 뜨거움과 바깥공기와 다시 만난 입가의 시원함이 묘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왜 이러는거야? 이러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

"드시고나서 말씀나눠요 많이 배고프실거에요 입을 좀 더 열어주세요"

"나중에 먹어도 되니까 설명해줘"

"먹지 않으시면 설명해드리지 않을거에요"

이상한 기싸움이다
날 위한듯한 말에 내가 마음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니
그래도 일반적인 감정으로는 이 상황은 어쩔 수 없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니까

"고집 부리지 않아주셔서 감사해요"

입 안에 적당히 따뜻한 스튜가 들어온다
부드러운 크림 속 당근과 감자 닭고기가 느껴진다
목을 타고 뱃 속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느껴진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임에도
정신과 달리 몸은 좀 더 먹고싶다며 보채고 있다
몇 스푼을 먹었을까 그럼에도 배고파하는 공복감에 수치심을 느끼는 와중 스푼은 더 이상 입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의 어린아이 같은 아쉬움은 그 자체와 함께 나의 어리석음에 내 눈가를 조금 촉촉하게 만들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나를 공포감에 밀어넣었다

"울지마세요 저희가 같이 있어드릴게요"

"얘기... 해줘... 왜 이러는거야? 여긴 어디야?"

"로도스 가까이에요 아직은"

여긴 로도스가 아닌건가? 아직은...
다른 사람들이 찾아주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특기를 가진 오퍼레이터들이 있으니까 불가능은 아니다
창피한 마음을 애써 치우며 어떻게든 생각해보지만
역시나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9시간이나 주무신건 오래간만이시죠? 저랑 처음 만나셨을 때도 항상 쫓기고 계셨어요 주위로부터 계속"

묶인채 저항할 수 없는 몸을 샤이닝이 끌어안아주고 있지만
어머니 같은 목소리로 안아주고 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이 말에는 깊은 미움이 담겨있다

"그곳에서 다시 만났을 때 예전의 당신을 다시 볼 수 있어서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이 빛과 함께 걸어갈 수 있을거라고"

그곳에서 말이 끊겨버렸다
무섭다 아무 말도 못하겠다 내가 알고있던 샤이닝이 아니다
따스하고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던 그 샤이닝이 아니다

"하지만 너무 똑같아요 무서울 정도로 똑같은 길로 가고 있어요 당신을 볼 때마다 매일 눈을 뗄 수 없어요. 얼마나 괴로울까, 얼마나 도망치고 싶을까, 다시 망가져버리시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거야??..."

또 다시 끊겨버렸다
그녀의 말도
나의 인내심도 나의 감정도
나는 울먹이며 눈물을 흘리고 어린애처럼 흐느끼며 말하고 있었다
과거의 나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
내가 망쳐버린 이 여자에 대한 죄책감에 대해서
하지만

"네!"

샤이닝은 이제껏 보지 못한 가장 밝은 웃음으로 나를 보며 짧고 강렬한 대답을 해줬다

"이제 주무시고 싶으실 때 주무셔도 되요! 배고프시면 드시면 되요! 놀고 싶으실 때 놀아요! 적절하고 건강한 삶을 사시면 되요! 우리 같이 걸어가요 함께, 제가, 리즈랑 같이 지켜드릴게요"

아프다
피가 통하지 않는 양팔과 양다리도
눈물로 범벅이 되어버린 내 마음도

"샤이닝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이러지마..."

"괴로우셨잖아요? 외로움은 없어졌지만 그래서 더 괴로우셨잖아요? 잃어버릴까봐 두려우셨잖아요. 몇번이고 반복될거에요 거기 있으면, 그렇게 두지 않을거에요 제가 지킬게요 당신을, 이 몸이 쇠할 때까지"

"다 함께 있고싶어"

"네?"

"아미야도, 켈시도, 케오베도, 스카디도, 다 같이 있고 싶어"

"그러지 마세요..."

"잠깐이라도 다 같이 있어서 즐거웠어..."

"이러시면 곤란해요"

"넌... 안 그랬던거야...?"

"......네 전 그 사람들이 싫어요"

굳은 얼굴로 말하는 샤이닝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눈은 나만을 보고 있었다
정말 진심이구나
정말로 즐겁지 않았구나
나는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남을 구해주는 샤이닝을 보고 존경하고 있었는데
샤이닝은... 싫었던거구나
이게 사실이라는걸 나는 알고싶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당신을 더 아프게 만들거에요. 부서진 장난감처럼 만들고 다시 고치고 다시 반복할거에요 그런 짓은 더 이상 못 봐줘요 용서하지 않을겁니다"

"......."

"박사님?"

"나가줘"

"옷이 많이 젖으셨어요. 옷을 갈아입으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나가... 나가!!!"

감정에 못 이겨 소리를 질러버렸다
쿵쾅이는 심장 소리가 온 몸을 북처럼 두들긴다
스스로 말한 것임에도 스스로 놀라고 스스로 두려워하게 된다

"....필요하신게 있으시면 리즈한테 말씀해주세요 가능한한 준비해드릴 수 있을거에요"

샤이닝은 더 이상 군말하지 않고 자리를 일어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보지 않는다
이대로 영원히 눈을 감고싶다
무섭고 배고프고 외롭다
그리고 슬프다
빗소리가 들려온다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
고막을 통해 머리 속에 울려퍼진다

"돌아가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