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 수뇌부들은 이런 일을 조용히 넘어갈 수 없다며 프라마닉스의 로도스 아일랜드에서의 영구 추방을 지지하는 중이었다. 이에 실버애쉬는 무슨 용을 써서라도 프라마닉스의 영구 추방을 막아야 했다. 이미 이전부터 실버애쉬는 수뇌부에서 그다지 신임을 얻지 못해 실버애쉬의 영입 및 협력을 부정적으로생각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 사건을 빌미로 로도스 아일랜드 내의 실버애쉬의 입지는 굉장히 약화되었다.


 그럼에서 실버애쉬는 필요하면 뇌물마저 바치는 등의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자신의 입지와 프라마닉스의 영구 추방을 막기 위해 계속해서 용을 썼다. 


 그럼에도 프라마닉스의 영구추방의 찬성표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전부터 실버애쉬의 협력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수뇌부의 켈시나 중립이었던 아미야가 이번 일로 실버애쉬가 벌인 일에 대한 반감으로 적대적으로 변한 만큼 강경해지기 시작했다. 실버애쉬는 이런 곤란한 상황에서 이전에 박사에게 들었던 로도스가 시행한 도박과도 같은 작전을 떠올리고 한 가지 큰 도박을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무슨 일이죠?"


 이 사건 이후로, 로도스 내부에서 실버애쉬에 대한 이미지가 확실히 망가진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쿠리어나 마터호른은 물론, 광석병 치료를 받는 중인 클리프하트마저도 따돌리림 당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사태에 대해 자세히 들은 클리프하트가 실버애쉬에게 달려가 언니가 그럴리 없다면서 다들 거짓말 하고 있다고 울면서 하소연할 정도였다. 

 실버애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실버애쉬가 바쁘게 뛰어다닌 던 중, 한 번은 박사의 상태가 걱정이 되어 장기간 휴식이라는 명분으로, 정신 치료중인 박사를 보러 온 적이 있었다. 정신적인 충격이 큰 관계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박사의 방에는 허가 밭은 인원 제외하고 들어갈 수 없게 경비가 두 명씩 서 있었다. 덕분에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오늘은 아미야와 블레이즈가 담당인 듯 했다. 멀리서 '우리 토깽이'라며 아미야를 꽉 끌어안고 귀여워 하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안타깝고 쓸쓸함을 느낄 블레이즈와 그런 블레이즈에게 끌어안긴 아미야가 실버애쉬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늘한 눈빛을 보냈다.


 아미야는 블레이즈에게 풀려나서 친절함은 1도 없는 말투로 용건을 물어보았다.


"박사와 이야기 가능할까."


 조용히 방을 찾아온 이유를 말한다. 


"네가 박사하고 할 이야기가 하고 싶다고 들어올릴 면상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블레이즈는 팔짱을 끼우고는 그를 향해 눈 깜빡 안하고 비꼬았다. 실버애쉬는 아무런 대답하지 않았다.

 

"박사님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오신건가요? 박사님께 대신 사과라도 하려고 오셨나요? 아니면 부디 아무 일 없었던 것이라고 입 막음이라도 하시려고요?"


 블레이즈를 말리지 않고 아미야마저도 실버애쉬를 비꼬는데 합석했다. 그만큼 박사에게 의존하던 아미야였는데, 그런 박사를 한 순간에 폐인으로 만든 존재의 오빠가, 그냥 가만히만 있었어도 그냥 안 좋게 느껴질 뿐, 대놓고 비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실버애쉬가 혐오스러운 존재처럼 느껴졌다.

 실버애쉬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들어가실 수 없어요."


 아미야가 박사의 방에 실버애쉬의 출입을 허가 하지 않는다. 머지 않아 프라마닉스에 대한 처분이 내려질 예정인데, 실버애쉬가 박사를 찾아왔다는 이유는 단 한 가지가 되는 것이다.


"부탁한다. 맹우를 한 번만 만나게 해줄 수 없나."


 명색의 실버애쉬 가문의 수장이 로도스 아일랜드의 사장에게 무릎을 꿇을 판이었다. 그것으로 가능하다면 당장에라도 엎드려 절을 시작했겠으나, 아미야의 눈에서 아무리 그래도 허가따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그럼에도 실버애쉬는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이대로 모든 걸 무너트릴 수는 없다면서 말이다.


"꺼져."


 블레이즈의 한 마디는 아미야가 전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함축시켜준 단어일 것이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아미야나 블레이즈가 열어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실버애쉬와 박사와의 접촉은 혹시 자기들이 처벌을 받더라도 허가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들의 의지와는 달리, 갑자기 박사의 방이 열리는 것을 보고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미야, 블레이즈. 들어오라 그래."


 유독 쇄약하게 느껴지는 박사의 말이 실버애쉬의 귀를 쿡 찔렀다. 


"박사님, 들어가서 쉬셔야죠."


 아미야가 박사를 밀면서 다시 방으로 돌려보내려했으나, 오히려 박사는 그런 아미야를 제지했다.


"난 로도스 아일랜드의 박사이자 지휘관이야. 누가 날 찾아왔다면 맞이를 해주는 게 당연하지."


 정신적 충격이 크다는 것을 증명하 듯, 방에서 얼굴을 내민 박사의 모습 초췌했다. 그런 모습으로 실버애쉬에게 중요한 것 같으니 들어와서 이야기하라는 말을 들은 직후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별 짓 다했으나, 이처럼 죄책감이 느껴지는 것도 오랫만이었다.


 아미야와 블레이즈는 할 수 없이 박사의 말대로 실버애쉬를 들여보냈다. 굉장히 언짢은 표정으로 실버애쉬를 바라보지만, 그들에게 눈길은 주지 않았다.


 박사는 손님 맞이용 접대 의자를 실버애쉬에게 밀어주었다. 보통 개인 상담이 필요하다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 앉아서 상담을 들어주고는 했다. 


 실버애쉬가 자리에 앉아 박사를 바라보았다. 휴식을 위해 간편하게 차려 입은 반팔과 반바지 때문인지 실버애쉬는 박사의 손목과 발목에 눈이 갔다. 동상 흔적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그... 프라마닉스 이야기 때문이지?"


 어렴풋 박사가 경계심 없이 자신을 방으로 들여보낼 때부터 눈치를 챘다고 생각은 했다. 실버애쉬는 이야기가 빠를 거라 생각하고 서론은 생략하기로 했다.

 생각하기도 싫을텐데, 입 밖으로 꺼내면서 언급할 수 있는 박사를 다시 한 번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이번 일에 대해선 내 책임이 크지. 그런데도 주책없게 부탁을 하고 싶어서 왔고."

"후우... 역시 그거 때문인가..." 

 

 어렴풋 박사노 눈치챘을 것이다. 실버애쉬도 그쯤은 파악했을 것이다. 평소 맹우라고 불러두전 신뢰하던 남자의 가족이 자기를 덮치고 그 사건을 덮으려 뒷공작 벌인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실버애쉬를 포용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실버애쉬는 도박판에 뛰어들었다.


"...부디 이번 처벌에 대한 것을 완화시켜주지 않겠나?"  

"....."


 박사는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상함선인 로도스 아일랜드이니 만큼 박사의 방도 창이 달려있다. 재앙으로 인해 황무지가 대부분이라 아름다운 경치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넓게 탁트인 시야는 복잡한 생각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정신 치료를 받으면서 몇 번이고 밖을 내다보았다. 보호자들에게 부탁해 갑판 위로 올라사 가볍게 산책을 하고 오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때의 충격이 가신 것은 아니다. 


 정신 치료를 받는 중인 만큼, 여전히 박사는 프라마닉스를 떠올릴 때마다 몸에 소름이 돋았다. 호흡이 빨라지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나마 치료를 받아서 이 정도였지, 처음 치료를 시작했을 때는 남녀 상관 없이 은발만 봐도 발작을 일으킬 정도였다. 본디 무력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한 인물이라도 한날 로도스의 지휘관 역할을 해주는 존재가 이렇게 나약해지다니.

 

 당연히 실버애쉬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 박사의 표정은 나빠졌다.

 

 실버애쉬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는 박사가 결정할 문제였다. 아무리 많은 보상을 하더라도 그때의 악몽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박사에게 실버애쉬가 애걸복걸할 자격이 있을리 없다. 


 애초에 프라마닉스에 대한 처벌을 완화 시켜달라는 의견을 이야기할 자격도 없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 동안 오퍼레이터들을 믿어주면서 자신이 내린 작전과 지휘하며 때로는 공적으로, 때로는 사적으로도 어울려주면서 누군가에게는 친한 친구처럼, 또는 호감을 가진 이성으로써 느끼며 수많은 신뢰 관계를 쌓아왔다.


 그 결과가 이런 거란 말인가?


 어렴풋, 누군가가 박사는 과거 휘하의 오퍼레이터도 적들도 체스판의 말이로 취급하는 정도였다 게 떠올랐다. 전쟁 중에선 누구나 말이 된다. 쓰기 좋은 소모품, 고기방패. 분명 목숨걸고 싸우는 존재들인데 지휘하는 입장에서 그런 취급을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것이 전쟁이었다.

 

 하지만 지휘관보다 더 높은 자가 있다면.


 그런 지휘관도 결국 소모품 1에 지나지 않았다.


 박사는 결국 자기 스스로도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밖에 없었다.


 로도스 아일랜드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수 많은 협력을 요청했고, 그 중에서 손을 잡은 몇몇 세력들 덕에 이 정도로 서는 것이 가능했다.


 특히 실버애쉬의 영향은 그 중에서도 굉장히 큰 축에 속했다. 특히 자금분야에서 말이다.


 만약에 박사가 실버애쉬의 요청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 까?


 자신이 소모품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로서 권리를 주장한다면. 로도스 아일랜드와 실버애쉬간의 사이가 어떻게 될까?


 어느 때나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판단을 내려야하는 지휘관이자 소모품이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며 당장의 이득을 위해 로도스의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다.


 박사로서 로도스 아일랜드가 박사를 구한 값은 제대로 치뤄야 했다.





원래 오늘 끝내려 했는데 분량 조절 실패해서 내일 진짜 마무리 올린다


오타지적 및 피드백 여전히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