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내가 관찰했던 건물의 바로 눈 앞까지 왔고, 그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단 한 사람 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난 러시아 어를 하지 못하니까.


아무튼 눈 앞에 건물을 두고 내가 내린 이 건물의 첫 소감은… 을씨년스럽다고 하겠다. 


'…창문이 다 깨져있어. 건물 외벽도 깨진 부분이 곳곳에 보이고 있고.'


러시아 건물이 이런 폐건물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면 이런 모습이란걸 오늘 처음으로 알게된 아주 약간이나마 의미가 있는 날이 되어버렸다.


'…하루 정도는 여기서 묵어야겠어. 돈도 없으니 마땅한 주거지에서도 조차 못 묵는데.'


그렇게 생각한 나는 4층 정도 되는 건물의 입구에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다음 발걸음을 옮길려고 하는 순간, 눈 앞에 투명한 창이 떴고 그 창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이 건물에 현재 가동되는 시스템이 적용됩니다.」

「적용되는 시퀀스 프로토콜 : EFT, TLD, TWOM」


'…이건 또 뭐야?'


내가 군대에 있을 때 핸드폰으로 깨짝이면서 봤었던 이세계 양판소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창 같은게 내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그것도 6초 정도가 지나자 마치 SF 소설에서 나오는 홀로그램이 꺼지듯이 사라졌지만.


'내 머리가 정말 어떻게 됐나 보네, 돌아가면 병원부터 먼저 가야겠어. …돌아 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총 5층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의 정체는 조금 전에 말한 꼬뮤날까와 흐루쇼프까라는 말에서 유추가 가능하다시피, 바로 아파트다.

먼저 1층부터 수색하기로 나는 입구의 문을 열기 위에 손잡이를 잡고 돌려 열려고 했다.


'…그래도 폐건물인데 설마 안 잠그고 그냥 냅뒀겠어.'


허나 내 기대는 깔끔히 무시당한 채로 문이 열렸다. 열쇠를 꽂지 않았는데도 그냥 열렸다 이말이다.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여기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이 현관문 조차 잠그지 않고 이 건물을 그냥 내팽겨치고 튀었다는 소리다 이말이다.


'…내 입장에서는 좋기야 하다만.'


일이 좀 더 쉽게 풀리고 있다는 좋은 흐름을 탄 나는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이 기분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1층 안으로 들어갔지만… 내부은 처참하다 못해 참혹하다.


'이 뭔…?'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핏자국들과,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유리 파편. 그리고 원형을 알아보지 조차 못할 정도로 박살나 이제는 기껏해야 땔감 용도로나 사용할 수 있는 가구들이었던 나무 조각들이 바닥에 마구 흐트려져 있다.

복도 정도가 이 정도인데, 방 내부가 어느 정도일지… 정말 상상조차도 하기 싫어진다.

 

'여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나는 왼쪽에 나있는 가장 가까운 방 입구까지 걸어갔고 나타난 방의 모습은 예상보다 더욱 처참하다.

부엌으로 추정되는 이 방은 엎어져 있는 식탁은 물론이고, 박살난 의자, 깨진 화분, 그리고 이 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야만 하는 창문 마저 사라져있다.

그 창문 이었던 것들은 역시나 부엌 바닥에 흩뿌려있지만, 몇 개의 조각들은 싱크대 안에 있기도 했다.


'이건 너무한데….'


대강 부엌을 다 둘러본 나는, 이번엔 반대편 방 입구를 열었다.

열어보니 한 개의 방 치고는 좀 널찍한 사이즈가 눈에 들어왔고, 거기다가 TV와 그 TV를 편히 보기 위한 소파도 눈에 띄어서 나는 이 방이 거실이라고 1차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TV를 틀어 대강의 정보라도 얻어볼려고 했지만, 역시나 폐건물이 그렇듯이 전기가 이미 끊겨져 있어 TV는 묵묵부답으로 대응했다.

그런데 좀 특이한 점이라면 서랍같은 작은 물건들을 보관하는 몇몇 가구들이 열려져 있다는 점이다. 열려지지 않은 가구도 있지만 말이다.


'진짜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그 외에는 딱히 특이한 점이 없어 이 방은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어졌다.


거실에서 나온 나는, 이번에는 좀 더 깊숙히 들어가 왼쪽에 나있는 방 입구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침대하고 몇 개의 가구를 제외하면 볼 게 없는 조촐한 방이 나를 맞이했다.


침대 옆에는 협탁이 있는데 협탁 위에 무언가가 놓여져 있다.

집어서 살펴보니 탁상형 달력이다.

호기심이 들어 달력을 몇 장 넘겼는데, 어떤 문장이 나왔다.


[카시미어에 여행 가는 날]


'뭐라고?!'


익숙한 단어에 큰 충격을 받은 난, 혹시나 싶어서 달력을 몇 장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 달 맨 마지막 날에는…


[버킷리스트 - 용문에서 새해 맞이하기]


'아니야… 이럴 순 없어.'


나는 달력을 내동댕이치고, 무언가에 홀린 것 마냥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던 중,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라디오가 있는 걸 발견했다.


'이걸 틀어서 들어보자. 그럼 확실해 지겠지.'


다행히 라디오는 배터리식으로 작동되는 건지 전기가 끊긴 이곳에서도 잘 작동했다.

그렇게 주파수를 맞추던 중… 내 불길한 생각에 그대로 쐐기를 꽂아 넣는 방송이 나왔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현재 '우르수스' 에 '리유니온' 이 침입하는 폭동이 일어났지만 시민 여러분들은 안심하고…}


그 방송이 들리는 순간, 내 다리에 모든 힘이 빠져 나는 꼴사납게 주저 앉았다.


'이건… 이건 말도 안돼.'


카시미어… 용문… 우르수스… 그리고 리유니온.

이걸로 확실해 졌다.


'난… 다른 세계에 떨어진거야.'


… '명일방주' 라는 꿈도 희망도 없는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