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오후 5시/날씨 맑음.


로도스 아일랜드 중심부, 제어실.


"굉장히 발전된 과학은 너희가 쓰는 아츠 마법과 다를 게 없어. 켈시."


녹색머리 필라인은 고개를 휘저었다. 그녀의 옆에는 박사가 앉아있다. 가지런히 정돈된 서류더미가 그의 테이블 위에 돋보인다.

제어실 대형 모니터 화면에는 크고 육중한 전함 한 척이 있다, 거함의 전열갑판 위에 설치된 거포의 포구가 울려퍼진다.

거대한 괴물이 토해낸 파괴적인 보랏빛은 가련한 목표물의 여러곳에 커다란 구멍을 내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켈시의 얼굴은 살짝 일그러진 채로 경직되었다, 아무래도 화가 난 듯한 어투로 박사에게 항변한다.


"닉네임, 당신이 보여준 그건.. 육상전함, 병기들.. 위험한 것들을 내 허락없이 만들고,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있었다니. 너.."


후드를 벗은 박사는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이봐 켈시. 로도스 본함에 시범운용 중인 주포의 사정거리는 제어실에서 잘 조정하면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비무장 상태로 신형 아츠재밍 시스템을 탑재시킨 훈련용 GM타입 단 한기로 어느 한 우수한 술사 집단을 몇 분만에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 넌 내가 입안한 계획의 골자를 전혀 이해하지 않는군."


"...! 넌 박사야, 무기상인이 아니라. 그리고 저것들.. 저런 무기들이 정말로 로도스에 필요한 거라고 생각한다면 너는 큰 오산을 저지른 셈이야."


"음, 맞아. 그래서 너한테 묻는거야. 아츠에 의존하는 너희들 특성은 그 자의 지배적인 아츠능력에 너무나도 취약해. 가령 너의 신속한 지시 하나로 현장의 대원들은 오리지늄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지만 보이는 육체와 보이지 않는 아츠는 성질이 아주 달라."


"아츠는 테라인의 모든 수단방법 그 자체야. 이 싸움의 양상은 항시 놈이 우리의 모가지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어. 하지만 지금 막 개발되어 실전테스트에서 성능이 입증된 아츠재밍 병기를 이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거야 뻔한 결과이지 않겠어?"


짝ㅡ, 별안간 박사가 손뼉을 치면서 외쳤다.


"럭키~! 바로 그거야. 우리는 놈의 아츠를 완벽히 재밍하게 된다. 그 영향으로 비록 우리 대원들 몇몇이 아츠를 못 쓰게 되더라도 말이지."


"하, ...적어도 당신과 아미야, 작전에 참가하는 대원 다수가 놈의 살인적인 정신지배나 다른 알려지지 않은 위협적인 살카즈 특유의 아츠능력에 당할 걱정은 덜어낸다."


테레시스. 살카즈 군왕.

혈육의 시체를 가뿐히 밟고서 권좌에 오른 젊은 군왕은 그 존재한다는 자체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박사의 세력이 고안한 아츠재밍 병기를 비롯한 아츠무력화 시스템이 대원들의 장구류와 슈트에 부착될 것이다. 이로소 그들은 본연의 다양한 아츠를 발휘하지 못할 것임이 분명해보이는 터.


카넬리안과 스즈란, 실버애쉬, 이프리트, 헤이즈, 사리아를 비롯한 여러 정예대원들의 마법과도 같은 오리지니움 아츠들.


ㅡ하지만 그런 것들은 박사가 세워둔 치밀한 계획에서 아무래도 좋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저, 그 자를 어떻게하면 굴종시켜 자신의 앞으로 끌고오게 하는 것 이상의 계획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켈시는 커피잔을 홀짝였다. 쓴 맛과 진한 향내가 그녀의 콧잔등과 섬세한 귀를 간질였다.

평소와 똑같이 크게 무심한 표정을 지어내는 그녀였지만 하루종일 독타집무실에서 멍청하게 굴기만 하던 박사가 대원들의 아츠능력을 거세까지 하면서 이토록 자신보다 더욱 집착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ㅡ무엇이 한 사내의 질투욕과 정복욕을 부추기는 것인가... 에 대한 추상적인 생각에 빠져있을 동안, 박사는 오늘의 비서담당 대원이 타 준 믹스커피를 잔 째로 벌컥 벌컥 들이마셨다. 그녀의 코드명은 사리아, 맛있게 우러낸 믹스커피의 향과 맛이 사내의 미각을 즐겁게 했다.


"사리아. 당신이 봤을때 내가 계획한 육상함 급의 전술과 아츠전술에 기반한 모빌슈트의 잠재력은 어디까지라고 보시는지?"


라인랩 출신의 중장대원, 사리아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가끔 박사는 그녀와 대화를 하다보면 신랄하면서도 명석한 지적인 느낌이 스스로 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너의 방에 진열된 프라모델처럼 겉은 그럴 듯해도 실속은 없는, 커다란 장난감에 불과해."


"맞아. 사리아, 당신이 말하는 장난감들이 선보이는 기록적인 교환비는 내가 보증하겠는데 일단 켈시. 지금 당장은 신형기의 입고는 할 수 없어도 이미 개량된 구형의 보급은 내 선에서 가능해."


탁. 커피잔을 내려놓은 켈시는 추임새를 이어가던 박사의 말을 받아채 서류더미 속에 섞인 보고서를 한장 꺼내어 읽기 시작한다.

잔에 담긴 내용물은 아직도 뜨거웠다. 그녀는 곧바로 그들의 질의응답에 이어서 자신의 대화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닉네임. 네가 지시한 물자보급을 클로저가 담당하고 있는데 현장에서 약간의 불협화음이 들리더군. 문제의 파일럿들은 당신 부하들인데 그 자들은 저번의 사건을 계기로 네가 직접 계도했는지 몰라도 비교하자면, 그래. ...성향이 다소 온순하더군. 내 승인이 있었다곤 해도 그 종족들을 함부로 선내에 들이는 것은 무모해."


"게다가 박사. 그들 중 스트라이더라는 자는 얍삽하고 교활하게 내 칼슘화 방벽의 빈틈을 단숨에 꿰뜷었어. 그 남자.. 도 그렇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이야."


얌전히 대화를 지켜보던 사리아가 말하자 박사는 게슴츠레 허리를 굽히고는 도중에 말을 가로챘다. 그의 손에 들린 한 보고서에는 작전에 대한 상세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뭐..? 금마들이 저번 작전에서 너희들 구해준건 쏙 잊었나. 좀 험상궂고 거칠긴 해도..."


"하아, 박사! 사람이 말을 하면 좀...아니다, 됬다. 너에게 내가 뭘 기대할지가.."


켈시가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을 잘랐다. 일어나서 실황을 중계하는 제어실 모니터 화면을 뜷어져라 쳐다보던 박사는 테이블 뒤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아, 그런 얘기는 이쯤하지. 여하튼 걔네들 4명은 다목적 전술병기 운용담당 교관 및 스페셜리스트 인원으로써 취급하는 골자로 본함에 승선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나는 이거끝나면 잠시 내 친구들을 만나러 격납고에 갈 테니까 켈시 당신은 하던 업무 마저끝내는게 좋겠어, 내가 당신 보조로 붙여놓은 전담 의무관 실력은 신뢰가 갈만하지?"


켈시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박사에게 긍정의 표시를 보냈다. 박사가 단서수급을 위한 제어실 인원들을 재배치하기 위해 콘솔을 조작하는 동안, 사리아는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뭉치를 차곡히 모아서 휴대용 서류함에 담았다.


"닉네임, 너의 대담한 계획도 썩 나쁘지는 않았어. 널 조금은 다시 보게되었지만 당신이 입항시킨 그들로 인해 생기는 대원들과의 트러블 역시 너에게 주어진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야. 잘 생각하면서 4명의 교관들에게 어느 대원을 붙여서 작전과 인프라 업무에 편성할지 결정해."


박사가 제어실 화면 콘솔을 이리저리 누르고 결정하려던 찰나에 켈시는 이윽고 제어실 문을 나섰다.

그녀의 왼쪽을 스쳐지나가듯 제어실로 들어선 레이즈와 듀나, 그녀들의 걸음을 뒤따라 들어온 어느 한 거구의 사내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어이, 박사. 아츠재밍 시스템의 조정은 끝났어. 스트라이드와 워패스가 지금 입고된 전술병기의 콕핏을 조정 중이야, 걔네들 말로는 여기 아츠장이들도 쉽게 다룰 수 있을거라고 하던데.. 어.. 회의중이었나 보군. 어이쿠 실례."


"아 괜찮아 지금 끝난 참이니까 너도 여기 잠시 봐주다가 다음 순번 교대할 때까지 느긋하게 앉아서 쉬어. 그리고 레이즈 씨는 왼쪽 자리, 듀나교관은 오른쪽 자리에 앉아서 업무 진행해. 나도 지금 격납고로 간다."


"알겠다 박사! 바쁜와중에 실례지만 여기 와이파이 작동되나? 내가 지금 여기서 원격으로 정례보고 좀 하려는데. 뭐.. 격납고에서 할 수도 있지만 지금도 파이로 녀석이 배선작업 중이라 좀 곤란해."


박사와 거구의 사내 사이의 목청높은 대화가 한동안 오갔다. 그 사이 각자의 자리에 배치된 레이즈와 듀나들은 조곤조곤 대화를 이어가면서 사리아의 서류운반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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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감성으로 별생각없이 휘갈겼다, 생각보다 글이 잘 써졌고 오랜만에 쓰니까 좀 피곤하네.


늦었지만 잘자 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