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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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한 방울이 수면 위에 떨어지듯, 작고 청아한 소리가 들려왔다.

서서히 눈이 떠지며 보이는 건 잔잔한 진청색의 수면과 별빛 가득한 남색의 밤하늘. 그리고 몇 걸음 정도 앞의, 수면 위에 떠 있는 두 자루의 스태프. 
 
아무 생각 없이 가까이 다가가자, 스태프가 움직이면서 서로의 머리 부분이 교차했다. 마치  자물쇠에 열쇠가 들어가 잠금을 해제하는 것처럼 회전하더니,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후두둑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깨진 공간 너머로 보이는 칠흑의 소용돌이. 이윽고 모습을 드러내는 형용할 수가 없는 형상의 기괴한 무언가.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눈동자는 두서없이 사방팔방 회전하고 있었다. 철판을 쇠못으로 긁는 것 같은 쓸데없이 기괴한 소음. 조각난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거대한 짐승의 발과도 같은 무언가.

orre ot mgephaiagl shuggoth ot haiagl n’ghauh’e ot ephaiagl

c’ah’hri throdog uh’eog c’vulgtmah throdog gnaiih 

Ia! Ia! gnaiih ot yar!

알아들을 리가 없고, 그리고 알 리도 없는 단어가 들려왔다. 근원지는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내 혀였다. 

정체불명의 주문과 함께 소용돌이 속 푸른 안광이 날 꿰뚫었다. 창자가 뒤틀리고, 살이 갈기갈기 찢기는 공포감이 느껴져 바닥에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저항할 수 없는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은 양팔을 벌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핏줄이 터진 건지 붉어진 시야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팔은, 그렇게 나를 서서히 옥죄어 왔다. 



“...허억!”

뭔가 끔찍한 시간을 보낸 듯이, 얼굴이며 등이며 몸에 축축한 곳이 없을 정도로 땀범벅인 게 느껴졌다. 점차 선명해지는 시야 너머로 보이는 건 암석으로 이뤄진 천장. 고개를 돌려보니, 지금 내가 있는 건 대체 어디인지 모를 수상한 동굴인 거 같다. 동굴 안인데 왜 이리 밝나 싶더니, 오른쪽에서 작은 모닥불이 자기 존재를 어필하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 하니 등 근육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찰과상이라도 입은 것일까? 옷과 살이 스칠 때마다 느껴지는 욱신거림이 비몽사몽이었던 내 정신을 일깨웠다. 흙과 피로 얼룩진 랩코트(Lab coat).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내 코트와 헬멧. 분명 난, 탈선한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그 뒤 모스티마가...

“어떻게 살았지...?”

의식이 날아가기 전에 똑똑히 들은 모스티마의 한 마디. ‘아츠가 발현이 되지 않는다.’ 그걸 듣고 이제 다 끝났구나 싶었는데, 몸이 좀 아프긴 해도 어찌저찌 사지 전부 멀쩡하다. 혹시 내가 기절하고 나서 아츠를 발현한 건가? 당사자에게 묻고 싶지만 정작 내 몸 위에 본인의 코트를 올려두곤 사라져서 행방을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어났어, 박사?”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가. 시기적절하게 동굴 입구 너머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스티마...?!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박사야말로 상처투성이인데 남 걱정할 때야?”

여유롭게 말하고 있는 모스티마였지만 그녀의 흰색 셔츠는 나랑 마찬가지로 흙투성이였다. 반바지 아래로 쭉 뻗은 길쭉한 맨다리는 출혈의 흔적이 보이는 상처가 드문드문 보였다. 그런 상태임에도 왼손으로 과일과 버섯을 품에 안고 오른손에 생선 몇 마리가 꽂혀 있는 긴 나뭇가지를 어깨에 지고 오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무심코 자잘한 상처를 긍지로 생각하는 선사 시대 주민이 다가오고 있다고 착각할 뻔했다.

“그나저나 여긴...?”
“글쎄. 나도 모르겠어.”

화력을 높이려는 것인지 나뭇가지를 모닥불에 몇 자루 더 집어넣으면서 모스티마는 담담히 대답했다. 버섯이랑 생선을 돌판 위에 가지런히 얹어놓아 모닥불 근처에 두니, 얼마 안 가 잠든 위장을 깨울 것만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빨리 밥 달라고 투정 부리는 내 뱃속 어린아이의 칭얼거림은 덤이다.

“정신 차려보니까 이 동굴 근처에 있더라고.”
“그 뜻은... 네가 아츠로 이동한 게 아니란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모스티마의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언제나 같은 미소라는 이름의 포커페이스지만, 1년 넘게 그녀를 알고 지낸 내 직감이 그리 말해주고 있었다. 

각설하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랑 모스티마 둘 다 정신 차려 보니까 멀쩡히 협곡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는 거다. 젬머링 협곡의 높이를 생각하면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결과다. 중간에 덩굴줄기에 걸리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대체...

“일단 좀 먹어. 온종일 안 일어나서 기력이 쇠했을테니까.”

수염이 살짝 자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고 있을 때, 음식을 권하는 모스티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운 생선과 버섯을 꽂은 나뭇가지를 받아먹으려 한 순간, 그녀가 말한 단어 하나가 내 몸에 급하게 제동을 걸었다.

“잠깐... 하루종일...? 지금 몇 시야?”
“시계가 없어서 모르겠는데, 일단 밖은 이미 어두워. 산 한가운데라서 해가 빨리 지는 걸 생각하면 오후 6시쯤 아닐까?”
“우리 분명 떨어질 때가 오후 4시쯤 아니었어?”
“내가 일어날 땐 햇살을 쨍쨍한 게 오전이더라. 아무래도 기절하고 그대로 하루가 지나버렸나 봐.”

듣고도 이게 뭔 소리인가 싶어 왼쪽 손목을 쳐다보았다. 손목시계를 확인해보려 했는데 망가졌는지 초침은 어제 4시쯤에서 요지부동이었다. 주머니에 넣어둔 단말기라도 꺼내려 했건만, 추락하면서 어디로 날아간 건지 행방불명. 몸이 무사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이게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이었을 줄이야.
 
“조난인가...”

젬머링 철도에서 뛰어내렸으면 아마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얼추 알프스 산 중턱쯤. 제일 낮은 구간이라 해도 산림을 헤집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곳저곳 숨어있는 맹수며 낮은 기온, 빽빽한 나무의 무리에 빨리 바뀌는 낮과 밤. 그 이전에 내 체력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 안 해도 돼. 너 자고 있는 동안 지형은 대충 파악해뒀어. 내려갈 때 별로 안 힘들 거야.”
“너 뭔가 이런 거에 익숙하다?”
“전달자니까. 각종 지형에서의 야영은 알고 있어야지. 라테라노에 있을 때도 수업으로 배웠고.”

라테라노의 학교는 무슨 서바이벌 스쿨이라도 되는 곳인가? 왜 학생에게 그런 것을... 어찌 되었건 악재 중에 호재로군. 

“고마워. 내가 기절하고 있는 동안 이것저것 대신해줘서.”
“감사할 것까지야.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걸 한 것뿐인걸.”
“나 춥지 말라고 코트까지 덮어줬잖아. 덕분에 따뜻하게 잘 잤어.”
“그렇게 감사할 필요 없다니까.”

덮고 있던 코트는 그렇게 원주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코트를 옆에 접어서 놓아둔 채, 모스티마는 별다른 말 없이 사냥해 온 음식들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나 역시 먹으려다 만 생선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굽기 전에 미리 손질해둔 것인지, 잔뼈나 가시의 불쾌함이 생각보다 많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금간이 안 되어 있어 살짝 싱겁긴 했지만, 굶주린 위장이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있겠는가. 별다른 미사여구는 필요 없었다. 맛있다는 한 마디만이 텅 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잘 먹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들고 온 생선과 버섯은 체감상 10분도 되지 않은 채 우리 두 사람의 위장 속으로 사라졌다. 생선과 버섯의 향이 아직도 내 코와 입에서 맴도는 게 느껴진다. 다 먹고 나니 디저트가 생각나면서 혀를 이리저리 할짝댔지만, 조난당한 상황에 그런 건 사치다.

“일찍 자는 게 좋을 거야. 박사. 내일 새벽에 출발해야 되니까.”
“모스티마 너는?”
“모닥불이 꺼지면 안 되니까 일어나 있을게.”
“너도 자야지. 그렇게 고생했는데. 교대로 서자.”
“난 밤새는 거에 익숙하니 괜찮아.”
“그래도...”

날 지긋이 바라보는 모스티마의 미소는 내가 말하려는 것을 제지했다. 전부터 계속 일관되게 말해왔던, ‘이 이상 말할 필요 없다’는 암묵적인 메시지. 나로서는 그녀의 의사에 따라 말을 아끼는 것 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알았어.”

하지만 그렇다고 막 일어난 참인데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벽에 기댄 채 멍하니 모닥불만 보며 아무 말 없이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무언가가 잡혔다. 물컹한 기묘한 감촉에 의문이 들어 꺼내 보니, 한참 전에 열차에서 샀던 애플파이 모양 젤리였다. 녹아서 형태가 좀 일그러졌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겠지.

젤리를 보니까 다시금 열차에서의 일이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떠올랐다. 지금까지 그녀의 여러 얼굴을 봐왔지만, 라테라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길 꺼리는 것처럼 안색이 어두워지는 모스티마의 모습만큼 내 인상에 깊게 남은 표정은 손에 꼽을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 켈시는 입 다물고 있고, 라테라노 관청에 직접 물어볼 수 없는 노릇이고, 하물며 로도스에 저장된 데이터베이스가 풍부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한된 정보 내에서 추론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각종 오류를 범할 확률이 매우 높아서 속된 말로 ‘뇌피셜'에 불과하다는 게 문제지만.

로도스에 계약된 산크타족의 스나이퍼 오퍼레이터, 이그제큐터가 예시다. 예전에 그가 헤일로와 날개가 검게 물드는 현상은 ‘동족을 사격하면 바로 효력을 발휘하는 법률’이랑 연관이 있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거기에 모스티마가 용문 공동묘지에서 보여줬던 행동이랑 말투를 결합해 보면, 그녀는 자신의 동족을 직접 총으로 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대체 어떠한 이유로 동족을 쏜 것일까? 그것만이 아니다. 검은 헤일로와 날개는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저 살카즈의 뿔과 꼬리는 설명할 수가 없다. 종족이 변질하는 현상은 아미야 같은 키메라 외에는 지금까지 발견한 사례가 없다. 심지어 모스티마는 종족이 변질한 게 아니라 두 개의 종족이 ‘공존’하고 있는 거다. 

그 외에도 그녀가 항상 들고 있는 스태프에 이전에 클로저가 치른 테스트에서의 폭발 사고, 시간 조작과 불꽃 아츠의 이중 사용. 기타 등등. 하나에 빠져들면 다른 것에도 신경 쓰이게 만드는 이 생각의 수렁은 점차 내 머리가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날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도 뭐 안 나와. 박사.”
“아...”

내 생각을 눈치챈 걸까.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게 모스티마는 무릎 위에 서 이는 한쪽 팔로 턱을 받치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불빛에 의해 오렌지색이 물든 깊고 푸른 두 눈동자는 보석과도 같이 반짝여, 무심코 그 속으로 빠져들 거 같았다. 

“웬 젤리야?”
“아... 그게...”

내 손에서 부스럭거리고 있는 젤리의 존재를 눈치챈 건지, 모스티마는 가까이 다가와서 나와 같이 벽에 기대며 물었다. 딱히 숨길 일은 아니지만, 이미 찌그러져 있는 걸 줘도 되는가 싶어 손이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 먹을래? 너 애플파이 좋아하는 거 같아서...”
“내가...?”

눈을 두 번 깜빡이더니, 모스티마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약간 멍한 듯이 젤리를 받아 갔다. 앞뒤를 몇 번 뒤집으며 찌그러진 모양새를 보다가, 그제야 상황이 파악이 된 건지 다시 고개를 돌려 내게 질문을 던졌다.

“잠깐, 설마 나 주려고 산 거야? 왜?”
“왜라니, 그런 표정을 지으니 걱정돼서 그렇지.”

막상 말하니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뭔가 마음속 한 칸이 간지러워졌다. 이상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몸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고 손발이 석쇠에 구운 오징어라도 된 것처럼 오그라들었다. 신기하게도 어색한 이 기분은 피차일반이었나보다. 몇 번 손으로 자기 뺨을 어루만지더니, 모스티마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 그렇게 얼굴에 다 드러났어?”
“그야, 뭐...”

이 상황이 재밌어 보이기라도 하는 걸까? 앞의 있는 모닥불의 웃음소리가 동굴 안을 가득 채웠다. 아무 말 없이 서로 시선을 피하며, 미묘해진 이 공기를 어찌해야 하나 곤란스러워할 때, 옆에서 모스티마가 피식 웃는 것이 들려왔다.

“간만에 옛날 생각이 나네.”
“응?”
“라테라노에 있던 시절에 지인이 기운 내라고 애플파이를 사준 적이 있었어. 꽤 좋은 사람이었는데.”

젤리를 만지작거리면서 모스티마는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고 있는 건 천장이 아닌 더욱 고차원적인 무언가라는 건, 아무리 눈치가 없는 나라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다시 만나긴 힘들겠지만.”

쓸쓸해 보이는 한숨은 한순간이었다. 내려갔던 모스티마의 입가는 재빨리 원위치로 돌아갔다. 복잡한 내면을 감추려는 건지, 아니면 순식간에 미련을 내던진 건지는 그녀만이 알고 있겠지.

“역시 넌 그 사람이 아니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달라. 하지만...”

그 아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적어도 방금 모스티마가 말한 애플파이를 사준 친절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임은 짐작이 갔다. 어디까지나 직감이지만, 날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서 나 자신을 감싸고 있던 모종의 허물이 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될까. 음... 역시 모르겠네. 그래도, 싫지는 않아.”
“...그렇구나.”

비닐이 뜯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스티마는 젤리를 곧바로 꺼내어 한 입 베어 물더니, 모양과 달리 맛은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러고선 젤리를 살짝 뜯어내더니 나에게 권하며 말했다.

“이번엔 내가 간식을 먹으면서 들어볼까? 박사의 이야기를.”
“응? 내 이야기? 딱히 흥미로운 건 없을 텐데.”
“평소에 내가 자주 해주니까 한 번 정도는 괜찮잖아?”
“...중간에 자거나 하지 마라?”

머리를 긁적이면서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나갔다. 1년 넘게 로도스의 동료들과 함께 걸어온 모험담을, 어떨 땐 담담하게, 어떨 땐 과장되게 표현하면서 풀어나갔다.

"이 대륙에 물든 증오의 연쇄는 언제나, 결말은 비슷하구나."

체르노보그에서 깨어난 걸 필두로, 시작한 2개월간의 리유니온과의 결전에선 약간 씁쓸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엠페러는 옛날부터 적이 많았으니까 말이야. 그건 그렇다 쳐도 언제나 대담하다니까."

시에스타에서의 사건, 특히 예전에 펭귄 로지스틱스 대원들에게 들은 엠페러와 갱단의 이야기에선 늘 있던 일이라는 듯 후훗, 하며 평소와도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그런 이유로 비행정을 격추하다니. 사랑이란 건 복잡하네."

사르곤에서의 여행, 정확히는 캐스터 오퍼레이터 토미미가 메딕 오퍼레이터 가비알에 대한 집착 하나만으로 이뤄진 사고는 살짝 이해가 안 된다는 것 같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나라도 이해가 안 되는 이유긴 하다.

그 외에도 니엔이 영화를 만든다며 일으킨 소동, 카시미어에서의 암투, 섬멸전, 위기협약, 오퍼레이터들과의 담소 등. 한동안 내 입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내 이야기 하나 하나에, 평소라면 생각도 못 할 모스티마의 여러 반응을 볼 수 있었다. 묘하게 느껴지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어째선지 오늘따라 유독, 모스티마의 시선과 미소가 겨울날의 벽난로와도 같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햇빛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이른 새벽. 저 멀리서 새들이 출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엔 새벽까지 자지 않고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 덕에 체감상 잠을 2시간도 못 잔 것 같지만,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활기가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어차피 챙길 것도 없지만,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잔불마저 없어진 검은 장작과 먹고 남은 생선 가시들. 이곳에서 있던 일들을 머릿속에 되뇌며 고개를 돌려 동굴 입구로 향했다. 그 앞엔 동굴 아래로 펼쳐진 광활한 산림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모스티마가 있었다.

"이제 출발하는 거야? 구체적인 계획은 있어?"
"어제 내가 생선을 잡아 온 강줄기를 따라갈 거야. 계속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강의 하류에 도착할 테고, 근처 도시에 다다를 수 있을 거야."

평소와는 다르게 뭔가 한결 가벼워진 것 같은 미소와 함께 모스티마는 날 돌아보았다. 

"그럼, 가볼까?"
"그래."

모스티마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전, 무심코 고개를 들어 나무로 가려진 채도 낮은 푸른색의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어제 꿈속에서 본 그 광경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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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맨 처음 등장한 언어는 르뤼에 어. 대충 크툴루에 나오는 언어라 생각하면 됨.


- 기말 끝나고 최대한 호다닥 써봤다. 재밌게 읽어주면 ㄱㅅㄱㅅ


- 이대로면 2~3편 이내에 끝날듯. 다음 히로인도 정해뒀으니 플롯 짜려고.


-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