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도 박사는 술집을 마음에 들어했고 곧바로 자리에 착석해 술잔을 따라 하루의 노곤을 풀고자 건배를 한다. 잔이 부딪히고 박사와 호시구마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시원한 술을 들이켰다.


"캬아~ 역시 일 끝나고 마시는 술이 기분 최고란 말이야."

"하하,  그래, 박사. 내일은 푹 쉬는 날이 실컷 마셔야지. 자, 한 잔 더 따라줄 게."


 로도스 아일랜드에서의 점잖고 예의 바른 모습들은 박사와 호시구마 모두에게서 사라진 후였다. 공적인 자리에서나 예의를 차리지 사적으로 만남을 가지며 어울리니 둘은 모두 거리를 벌일 필요가 없었다. 서로 친구 대하듯 서로 털털하고 편안하게 대하면서 술과 안주를 마시고 먹어치웠고 술판도 술판이나 대화의 꽃도 열심히 피어나고 있었다.


"켈시 그 년은 때가 안 됬다. 라던가 그런가, 그렇군. 라거나 뭐 알려주는 게 없어서 말이야. 답답해 죽겠다니까. 알려주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종종 막힌 건 첸 팀장님도 마찬가지다. 나도 가끔씩 첸 팀장님이 스와이어 총경님처럼 유연하게 대처했으면 좋겠어."


 물론 서로의 상관에 대한 뒷담 또한 오고갔다. 박사는 켈시를, 호시구마는 첸을, 서로 일단 묵묵히 따르기는 하지만 불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이며 이러한 공감을 주고 받으며 사이가 돈독해지기 마련이다.


"호시구마 넌 말이야. 분명 좋은 애인 만날 수 있을 거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이런 여자가 어디가 좋다고..."

"아니야, 너 같은 여자가 얼마나 보기 힘든데. 오히려 너의 그런 점을 좋아하는 남자들도 찾아보면 있을 거라고."


 서로간의 덕담을 주고 받으려는 목적으로 박사는 호시구마가 매력적인 인물이라며 후에 좋은 애인 만날 수 있을거라 이야기한다. 호시구마 또한 박사의 말을 이해하기는 했으나,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왠만한 성인 남성보다 크고, 힘도 좋은 편인데 방패를 들면서 자연스럽게 붙은 근육. 그리고 공적인 장소에서는 점잖더라도 본성은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털털하고 호쾌한. 그것이 호시구마의 모습이었다.


 편견일 수도 있으나, 남성들은 보통 조숙한 여성을 좋아한다고 들었었다. 그것에 비교하면 자신은 차라리 남성으로 취급해야 해야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그냥 애인 없는 두 명의 여인 사이에 낀 애인 없는 1인이거나. 


 또한 첸이랑은 다르게 호시구마는 누군가를 안거나 안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흔히 문화매체에 나오는 눈을 마주쳤을 그 한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같은 상황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릴 때는 누구나 그런 환상을 꿈꾸기는 했지만 성인이 되면서 현실을 마주하고 그런 환상은 그저 환상이었을 뿐이라며 그저 어릴 때의 추억으로 남기기 마련이다.


 호시구마도 예외는 아니었겠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환상은 사라지고 눈 앞의 현실을 직시하며 그런 현실을 즐겼다. 그러다보니 용문 근위국에서 알아주는 베테랑이 되어 있었고, 로도스 아일랜드와 협력하면서 지금은 박사와 술을 한 잔씩 하고 있었다.


"뭐, 그렇게 이야기해도, 딱히 애인을 사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렇게 인연이 없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최근에는 마음이 좀 싱숭생숭해졌다. 박사랑 같이 있으면 그냥 별 이유없이 좋지 않나, 꿈속에서 박사가 자신을 포근하게 안아주고 있지를 않나. 그리고 언급은 없었으나 박사가 첸이나 스와이어를 걱정할 때는 이상하게 불편한 감정이 생기기도 했다.


"하하, 그래? 꼭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사실 정말 애인을 사귀고 싶어한다고 그러던데."

"훗, 그러면 너는 좋아하는 여자 있나?"

"응, 있어."


 호시구마도 술 기운에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을 뿐이었는데 술이 든 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손이 멈췄다. 


 박사한테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는 소리가 그렇게도 놀라운 일이었을까? 


 박사의 외형만 보면 그나마 내세울 것이 키 정도 밖에 없지만, 성격이 모난 게 아니라 지내다보면 좋아해줄 사람은 있을 법한 그런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 또한 남자였다. 여성한테 관심이 있을테고 한 번은 사랑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였다. 그것이 본성이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자 한 명쯤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테다.


 그런데 호시구마는 그런 것이 너무나도 거슬렸다.


"그, 그거 참 놀랍네..."

"뭐야, 난 뭐 사랑도 하지 않을 것 같이 보였어?"

"그, 그거야.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직접 나오는 일이 없다보니..."


 박사는 쑥스러워졌는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술기운에 한 이야기였지만 괜히 이야기했나? 하고 후회하는 표정이었다.


"그... 누구를 좋아하는지 말해줄 수 있어? 그... 뭐냐... 호, 혹시, 도와줄 수 있잖아."

"...말 해도 될 까?"


 왠지모르게 호시구마의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에 불안해졌다.


"그게... 너랑 관련된 사람이라서..."


 쓸데없는 호기심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허나 호시구마는 그런 호기심을 참아낼 수 없었다. 이상한 기대감이었을까? 박사에게 비밀로 해주겠다면서 말해보라고 권유했다.

 호시구마가 그런 것에 관심이 많은 줄은 몰랐다. 그래도 여자라서 그랬던 것일까? 그것이 어쨌던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박사는 호시구마의 눈을 피했다.


"됐어. 괜히 너한테 피해 끼치고 싶진 않아."

"괜찮다니까 그러네. 누구야? 혹시 첸 팀장님인가? 하하. 사실이라면 정말 재미있겠네."


 농담을 던졌다. 불편한 감정을 지우기 위해서. 거슬리긴 했지만 호시구마는 그게 사실일리 없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맞아."

"하하하, 하긴, 첸 팀장......님을?"


 왜 농담으로 던진 말이 사실로 밝혀지는 걸까.


"...첸 팀장님이야."

"......" 


 호탕하게 웃으려던 호시구마의 웃음이 사라졌다.

 박사는 부끄러움에 눈을 아래로 깔았다.

 둘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예전에 썼던 거 완전히 새롭게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면 대부분 현재 쓰고 있는 거 완성 안 되었을 때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