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 p.m 로도스 W전용 특별실>


"기억이 없을 뿐인데 사람이 저렇게까지 바뀌는건가?"

특별실이란 이름의 격리실에서 W는 벌써
몇번이나 같은 푸념을 내뱉었다.


"흠...너가 그런거를 계속 신경쓰고 있다니, 의외인걸"

갑자기 켈시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헤, 일단 여기는 내 개.인.공.간 인데 이렇게 멋대로 들어오다니, 너도 참 싸가지 없어졌네"

"사람은 때론 자신의 평소와 다르게 행동함으--"

"그만!  또 이상한 비유 들먹이면서 알아듣지도 못할 말 짓걸이지 말고, 아주 바쁘신 누추한 분께서 이 귀한 곳에 왜 왔는지나 말해."


《죽일 녀석》만큼은 아니지만 W는 켈시라는 여자도 싫어했다.

그런 여자가 느닷없이 방에 들어오니 

W의 기분은
안그래도 좋지 않았는데 최악이 됐다.


"....너가 어느...실험에 협력해줬으면 한다."


켈시가 말을 더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인체실험이라도 하게? 어이쿠 그럼 나는 이상한 괴물 되기 싫으니 널 죽이고 도망쳐볼까나?"

W는 켈시를 비꼬면서 말했다.


"그래, 어떻게 보면 인체실험이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이건 어느 조건을 충족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아니 잠깐만, 진짜 인체실험이야? 너 미쳤냐?"

W는 약간 당황하면서 말을 끊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 그냥 직설적으로 말해줄게."

켈시가 언짢은 표정을 살짝 지으며 말했다.


W는 순간 놀랐다.
이 여자가 굳이 직접 찾아온 것을 보면
중요한 얘기라는 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말할 줄은 전혀
몰랐다.


W가 조용해진걸 확인한 켈시는 말을 계속했다.

"이번 실험은 어쩌면 광석병의 완전치료법을 알아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실험이다. 거기서 너가 해야될 건 하나 뿐이야....."

켈시는 순간 망설이는 듯 했지만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박사와 교미해라"


"뭐?....."

W는 일생일대 가장 큰 황당함을 느꼈다.

몇초동안 멍한 상태였던 W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크게 소리쳤다.

"아니 그게 대체 뭔 X신같은 X랄이야? 너 진짜 미쳤구나. 광석병 치료하고 섹스하고 무슨 상관인데?  애초에 걔가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바벨에서는 왜 아무일도 없었어? 지금 제정신이야?"

"진정해. 간단하게 설명해줄테니까"

켈시는 흥분한 W를 진정시킸다.



"그래, 대체 뭐 때문에 그런 미친 소리를 했는지 들어나보자."

W는 가까스로 냉정함을 유지한채 말했다.


"일단 먼저 교미와 광석병치료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자면...."
켈시가 말한 내용은 꽤나 길었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1.《스펙터》라는 오퍼레이터가 열흘전 야근으로 기절한듯이 잠든 박사를 덮쳤다.


2. 켈시가 뒤늦게 발견한 뒤 둘을 때어놓았고
박사는 그대로 방안에 대기. 스펙터는 검사실에 들어갔다.


3. 발견당시 이미 기절했던 스펙터를 조사한 결과 신경계에 가득했던 오리지늄이 거의 사라졌다.


4. 일단 이 사실은 은폐했으며 스펙터의 정신이상증세는 거의 사라졌고 본인은 현재 비밀격리실에 있는 상태


이런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니 말은 이게 단지 우연의 일치인지 혹은 《지금의 박사》에게 진짜로 치료능력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보고 섹스하라는거지?"

"그런 셈이야. 강요는 하지않아. 하지만 이건 너한테 있어서 꽤나 이득이 되는 거라 생각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응? 이게 왜 나한테 이득인건데?"

W는 어이없었다.
일단 앞의 상황도 어처구니 없지만 무엇보다 왜 이게 자신에게 이득이라고 말하는지를 몰랐다.


"간단해. 너는 내가 아까 말했던 어느 조건인 
《여성, 박사를 좋아함, 감염자, 비밀엄수가 가능》이 4개에 해당되는 인물이기 때문이야"

"뭐? 박사를 좋아해? 내가?"

W는 매우 흥분한 상태로 반박했다.

"평상시 수시로 박사에 장난침, 로도스에 없었을 때에도 항상 박사의 정보를 수집, 주기적인 신체접촉,
박사에 대한 유언비어는 철저히 없애는 등 니가 박사를 좋아하느--"

"그게 왜 내가 박사를 좋아하는 건...아니 근데 대체 그것들은 어떻게 알아낸거야?"

"여긴 내 함선이야. 자기 함선의 일을 찾을려고 하면 못 찾을 것도 없지.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증거를 말해줄까?"

"뭔데, 이 미친 X아"

"넌 지금까지《단 한번도》박사와 교미하는 것 자체를 거절하는 말을 한 적 없어."


W는 순간 숨이 막혔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한 말을 되돌아보았다.

없다. 
켈시의 말에 의문만 표했을뿐 박사와 섹스하는걸 거절하는 말도, 게다가 박사를 좋아한다는 걸 부정하는 말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이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자각했다.

그렇다. 이 실험은 실패하든 성공하든 자신한테 이득밖에 없다.

하지만 W의 용병으로서의 자존심과 
《지금의 박사》를 순수하게 좋아하게 

만들 수 없는
《죽일 녀석》에 대한 증오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그래, 니 말이 맞다치고 해줄게 하지만 조건이 있어."
이미 이성이 많이 없어진듯한 W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너. 도. 해."


켈시는 허를 찔린 듯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너도 그런 표정을 짓네."

W는 조소하듯 말했다.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켈시는 진정하며 말을 이었다.


"일단 그런 조건을 제시한 이유를 듣고 싶은데"

"간단해. 아까 니가 말한 조건들. 그거 너한테도 해당되잖아? 안될게 뭔데?"

"일단 첫번째로 이 실험은 비밀리에 하는 것이기에 나 혼자서 실험진행을 한다. 즉, 내가 참가할 경우 제대로 된 실험이 아닌 단순한 교미다.
그리고 두번째로 난 박사를...증오한다. 《지금의 박사》라도 마찬가지야."

"허 그러셔?"

W는 이런 켈시의 모습은 처음봤다. 
그 복잡하고 논리적으로만 말하는 여자가 지금은 말투는 그대로지만 논리엔 헛점이 있고 너무나 단순하게 말한다.

W는 내심 웃으면서 켈시의 말에 반박했다.

"첫번째 이유는 말이 안되잖아? 이건 단순한《확인》이잖아? 게다가 능럭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몸으로 직접느끼는게 확실하기도 하고.
두번째 이유? 너 일단 실험을 주도하는 책임자잖아? 사사로운 감정때문에《아미야의 꿈》을 막을 생각이야?

켈시는 말이 막혔다. 
자신의 소원은 아미야, 박사의 꿈을 지키는 것. 
그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고 스스로 맹세했다.

거절은 할 수 없다.

"그래, 그 조건을 수락할게. 대신 실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뭐래, 어차피 박사가 마른 걸레가 되도록 짜낼거니까 괜한 걱정말고 너나 잘해."





반응 좋으면 다음편 쓸까 생각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