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르르르 하는 자명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림 벨리톤에서 지원한 지상 함선의 최상층, 제어 센터와 응대실 사이에 있는 박사 전용 숙소(임시)에서 그는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미묘하게 풍기는 곰팡이 향기와 창 밖에서 비쳐오는 반짝거리는 빛. 조금은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 야전용 침대에 걸터 앉아서 그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자명종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계는 아침과 점심을 가르는 시간을 가리키곤 방 주인이 자명종을 눌러달라는 듯이 씨끄러우면서도 사람이 신경 쓰이라는 듯이 불규칙 적으로 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자명종에 손을 얹어 소리를 죽이곤 찌뿌둥한 몸을 풀어내듯이 기지개를 켰다. 뭉친듯한 근육들이 풀어지는 듯한 시원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느낌이 그의 머릿속을 휘저어내며, 전날의 먼지를 쓸어내렸다.



그는 몸을 가볍게 풀고는 가까운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방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시선, 익숙한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밤색 귀를 쫑긋거리는 한 소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나요. 박사님. 방금 막 돌아와서 박사님이 이런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어요. 불편하신게 있다면 저나 켈시 선생님에게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아미야 라고 불리는 소녀는 그를 꽤나 걱정했는지 대화 사이사이에 본인의 귀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뜩이나 바쁜 둘을 불러다가 이야기 할 생각도 없었던 그 였기에 제 눈가를 한손으로 가리곤 가볍게 본인의 얼굴을 훑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아, 괜찮다고요? 그렇다니 다행이에요. 지금은 야전용 침대지만, 못해도 내일 모래 까지는 박사님의 침실을 재대로 만들도록 할게요. 이 장소 말고 어떤 장소가 괜찮을지 수배 중이거든요. 급하게 박사님을 찾아야 할수도 있고..."



그도 그정도는 이해하고 있었고, 아마 그녀도 그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일과 중에 이야기 할 수 있는 내용 이었으니까. 그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분명 다음에 올 질문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민감한 질문이지만, 언젠간 짚고 가야 할 이야기 였으니까.



"그리고... 박사님이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몇몇 오퍼레이터들의 불만 사항이 접수되고 있어요. ...접수 라기 보다는 저도 개인적으로 불만이 있는 쪽이지만요. ....생각을 바꾸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올게 왔다는 질문에 그는 눈을 감았다. 여기서 괜히 도주를 시도하려 해도 그녀의 아츠가 압도적으로 강한 상황이니, 얌전하게 고개를 두어번 좌우로 저어 거절의 의사를 보였다.



"그러신가요.... 저는 박사님을 존중 하니까요. 그래도 오퍼레이터들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어쩔수 없다는 말에 힘이 들어간 것은 그의 착각일까, 아니면 착각이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지금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밤색 귀를 쫑긋 거리며, 천천히 거리가 멀어지는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는 한숨을 푸욱 쉬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는지....



아마 시발점이라면 그녀가 처음 왔던 날이었을 것이다. 흑장발이 잘 어울리는, 그러면서 기품있는 모습을 보여주던 그녀. 본인을 사가라고 소개했던 그녀의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가 솔직한 감상 이었다. 말을 할때는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일어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이 일관성이 있었고. 그 일상은 로도스에 없던 활기찬 무언가 였기에 그녀를 밀어내는 이들은 많이 없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과 활발함이 있는 그녀가 사건을 벌인 것은 그녀가 전자기기로 영화라는 것을 본 뒤의 일이었다. 장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러브 코미디라고 부를만한 그것은 극동의 승려라는 입장에서도, 호기심이 많았던 여인이라는 입장에서도 꽤나 흥미로운 무언가 였을 것이다.


그런 영화에서 지나가던 목욕탕의 모습은 아무리 많은 것을 보고 다녔다는 그녀에게도 꽤나 흥미로운 것 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방법을 고민하던 중 로도스에 욕탕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낸 그녀는 박수를 쳤다. 사가, 그녀는 혼욕을 해보고 싶었다.

"해보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것은 다르니.... 조금 무리가 아닐까 싶소이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가는 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머릿속에 번뇌가 차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처럼 귀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번뇌를 풀어가던 와중 석가모니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꺠달음을 얻은 것처럼, 사가는 하나를 꺠달았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사람이 사람이라면 혼욕의 제안은 인간의 본질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테니 오히려 로도스 측에서 달갑게 반겨주지 않을까?

"불가능 합니다. 애초에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제안이에요."

그 즉시 아미야에게 달려가 제안을 해본 사가 였지만, 결과는 당연하게도 완고한 거절이 돌아왔다. 사가의 검은색 귀가 시무룩 해지듯이 귀가 숙여지자 아미야는 조금 걱정이 되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가 씨, 이건 사가 씨라서 거절한게 아닌 그 누가 제안을 했더라도 거절 했을 테니까요."

"...위로는 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미야 씨. 이것 또한 저의 업이지요."

"이해 해주셨다니 다행이ㅇ... 업... 인가요?"

"그렇소이다. 역시 업과 시련은 제가 이겨내야 하는 것이외다!"

"네? 잠시... 사가 씨! 누구! 사가씨를!!!!"

로도스의 목격자들은 이날 벌어진 일을 '갈색의 토끼 귀를 가진 소녀가 나신의 검은 여자를 쫒았다.' 라고 증언했다.



저녁식사 후, 로도스의 목욕탕은 붐비고 있었다. 각자의 일과가 끝난 후 하루의 마무리를 목욕탕에서 하는 경우도 있었고, 야간 임무의 준비를 위해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밤을 즐기기 위해 몸을 깨끗하게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중 로도스의 박사는 첫번째에 가까웠다. 조금 더 이야기 하자면 하루의 마무리를 욕탕에서 하는 것을 좋아했다.

물이 찰랑거리는 느낌과 따뜻하게 올라오는 김 사이사이에 느껴지는 인공적이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입욕제의 향기. 그는 온천수 특유의 그 물향기를 좋아하지만 로도스 내부에서 그런 천연 온천수를 바라는건 사치에 가까우니까. 그나마 이것도 클로저를 비롯한 이들이 신경을 써준 것이겠지.

탕에서 몸의 피로를 녹여내는 동안 제 앞을 지나가는 마터호른, 안셀 (먼저 인사를 했을땐 여탕에 들어온줄 순간 착각했다.), 그리고 이그제큐터가 탕에 들어오려고 할때 즈음 밖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인 수건으로 몸을 가렸...없소이다!"

"아무리 그래도... 있다고요! 누가.... 좀!"

중간중간 문 너머와 욕실 특유의 소음 덕분에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늠하려고 할때 즈음 욕탕의 문이 벌컥! 하는 소리와 기세 좋게 열렸다. 탈의실의 밝은 후광이 그녀를 비춰내었다. 검은색 긴 머리가 흰 수건으로 미처 가리지 못한 등허리 언저리에서 찰랑거렸다. 욕탕 안의 눅진한 습기가 하얀 수건에 들러붙어 그녀의 몸의 곡선을 하얗게 그려내었다. 

그 뒤에는 얼굴이 잔뜩 붉어진 밤색 머리칼을 가진 토끼 귀의 앳된 얼굴을 한 소녀가 있었다. 앞에서 달려온 여인과는 다르게 몸에 살색은 뻗은 손 뿐이었다. 이 손도 부끄러움 떄문인지 욕탕의 열기 떄문인지 손과 얼굴의 살색이 복숭아처럼 익어가고 있었지만. 이후 검은 머리칼의 여인이 기세좋게 열은 남탕의 안쪽을 차마 보지 못하고 숨을 삼키며 제 얼굴을 양손으로 가렸다. 결국 전차와 같은 그녀의 질주는 욕탕의 예절을 무시하듯 질주하고 날아올라 박사가 있는 욕탕에 그 몸을 던져 넣었다.

수영장 에서나 들릴법한 물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하얀 천이 떠오르고 난 뒤에서야 검은 머리의 여인은 파하! 하는 소리와 함꼐 얼굴을 들어올렸다. 얼굴과 함께 올라온 두 언덕은 수건의 하얀 색이 아닌 여인의 몸과 같은 색을 하고 있었다. 이후 호걸처럼 크게 웃으며 탕에 기댄뒤 입을 열었다.

"역시 이렇게 하면 쉬운 일이었소!"

호탕하게 웃어대던 그녀가 제 앞에 누가 있는지 확인한 후 주위를 가볍게 둘러본 후, 그녀의 앞에 있던 이를 빤히 바라보더니 그대로 잠수를 했다. 잠시 뽀글뽀글 거품이 올라오더니, 이후 다시 물 위로 고개를 내민 여인은 지나치게 얼굴을 붉히며 괜히 헛기침을 하고, 탕 위를 떠다니던 수건을 본인 쪽으로 당겨내었다.

"그... 실례 했소이다. 소승은 박사가 그런 엄청난걸 가진 줄은 몰랐구려. ...잡념을 비우려고 해도 박사에겐 앞으로 비우기 어려울..."

"자 사가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도록 하고 당신은 소관과 블레이즈를 따라오도록 하십시... 죄송합니다. 박사님. 너무 빤히 봐버렸네요."

"귀여운 토깽이의 이야기를 듣고 왔어. 다른 사람들은 좀 미안해? 호시구마, 뭣 떄문에 아직 사가를 못 끌고 나오는ㄱ... 박사, 나중에 술한잔 하지 않을래? 그것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져서."

"두분! 빨리 대리고 나오셔야죠! 무얼 하시는건가요!"

"아, 미안. 금방 대려갈게. 어서 호시구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진 알겠는데... 여기는 남탕이라고."

"아, 그랬죠. 그럼 다들 마저 씻으시길. 박사님도 모쪼록 좋은 밤이 되시길 바랍니다."

방금 들어왔던 여성 오퍼레이터들의 반응과 뚝 뚝 떨어지는 물 소리, 문이 열려있기에 미묘하게 식어가는 남성용 욕탕의 눈동자는 한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고, 시선이 향하는 곳에 있는 그 남자는 조용히 욕탕에서 방금전의 피로까지 녹여내고 있을 뿐이었다.




-봐도 되고 안봐도 되는 곳-


사가가 출시 되었을때 다원균 본인이 사가 관련 팬아트를 그린 것에서 아이디어를 삼아 써봤음.


그 팬아트


팬아트 기반으로 쓴거라 내용이 어디서 본것 같을 수 있음. 이 이후는 생각 안해봤는데 아마 꾸금 태그가 걸리지 않을까 싶음.


이것도 꾸금 걸어야 하나 좀 고민 했는데 야스 씬 안나오니까 괜찮겠지 싶어서 올리는데 문제 되면 태그 바꿀게.


그럼 다들 이벤트 화이팅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