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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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은 좀 쉴겸 생각보다 짧음



이번화의 추천곡




 

시 그녀는 얀데레다 8장  "간극"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시도 없어서 조용한 방에서 혼자 현기증이 날 정도로 원을 그리며 도는데도 묘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전의 그런 상황에서 엔시오도스를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고 프라마닉스도…

 

“아! 이 멍청한 새끼야.”

 

회담 중에 엔시오도스에게 물어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해 다른 쉐라그인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터호른은 엔시오도스의 수행원으로 따라갔으니 저녁때쯤 돌아올테고, 당장에 유력한 후보는 엔야와 엔시아 둘로 좁혀졌다. 하지만 지금 둘이 같이 있을 게 뻔한데 무슨 구실로 만나러 가야 하나 고민이다.

 

풀썩.

 

물어보는건 매우 간단하지만 여성 둘이 있는데 가서 뜬금없이 산 얘기만 달랑 하고 나오자니 그것도 그런대로 나 스스로가 내키지 않는다. 소파에 힘없이 주저앉아 골똘히 생각하는데 슈바르츠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박사님. 오늘도 얼그레이로 하시겠습니까?”

 

그래! 다과회야!

 

“고맙다 슈바르츠!”


 


구세주처럼 등장한 슈바르츠가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쾌재를 부르자 이상한 광경을 봤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회색 귀를 까딱였다.

 

“박사님… 또 오리지늄 간식을 몰래 드신겁니까?”

 

“아 음… 크흠… 흠. 오늘은 집무실이 아니라 다른데 갈 곳이 있는데. 이번에는 혹시 커피로 부탁해도 될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채비를 하겠습니다.

 

척하면 척이다. 역시 슈바르츠.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홍차와 다기세트를 챙길 준비를 한다. 오늘은 엔시오도스와의 회담 이후 일정이 비어 있으니 엔야와 엔시아 둘과 다과회를 빙자한 정보수집을 하고 니엔을 만나러 가면 될 듯하다. 엔야의 방은 현재 공사중이므로 아마 엔시아의 숙소에 둘이 같이 있을 것이다.

 

 

 

엔시아 실버애쉬 이름패가 있는 숙소문을 가볍게 노크하자 급하게 물건 정리를 하는지 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다. 그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문이 살짝 열렸다. 처음에는 새하얀 속털이 보이는 귀가, 그 다음에는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성녀가 문 밖으로 빼꼼 내다보았다.


 


“음…? …어! 여긴 어떻게 온 거죠?! 크윽! 당신의 발, 두 번 다시 쓰지 못하게 얼려… 음? 박사님.”

 

다른 사람과 착각했던 모양이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엔야가 놀란 듯한 얼굴을 하고 잠시 복도를 좌우로 훑어보고는 내 쪽으로 손을 뻗어왔다. 그리고는 박사 전용 외투를 덥썩 잡아 방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성녀님… 무 무슨…!”

 

맹수가 사냥감을 끌고가듯 재빨리 방 안으로 나를 들여온 엔야가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대면서 얼굴을 가까이했다.


 


“쉿, 조용히…”

 

엔야의 표정이 너무나도 경계심을 띄는 눈치였기에 잠자코 고개만 위아래로 끄덕여 알겠다는 표시를 했다. 아마도 실버애쉬 가문의 가신들과 쉐라그 출신인 다른 인원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는 의도이리라.

 

“저기… 커피랑 선물을 가져왔는데… 혹시 너무 무례를 범한 것이 아닐까?”

 


“커피요? 저한테 말씀이신가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박사님도 여기서 잠시 느긋하게 있다 가시겠어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슈바르츠를 부르자 문 밖에서 대기하던 그녀가 트레이를 끌고 들어와서 커피와 간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엔야는 숙소 테이블을 정리하더니 구석에서 적당히 접이식 의자를 하나 더 끌고 왔다.

 

팡! 팡!

 

여기에 앉으라는듯이 의자를 복실복실한 꼬리로 치며 입꼬리를 올리는 엔야. 커피를 준비중인 슈바르츠를 한번 힐끔 보고는 의자에 착석. 머지않아 커피와 간식이 테이블에 올려졌다. 엔야가 커피잔을 들어 살짝 입술을 적셔 맛을 본 것을 확인하고 내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엔시오도스와 만나지 않게 배려를 했어야 하는데, 내 반응이 느려서… 미안해요. 오빠랑은 원래부터 그렇게 사이가 안좋았어요?”

 


“아니요… 어렸을때 밖에서 발을 다친 적이 있었습니다. 오라버니께서는 저를 등에 업고, 밤새 돌아다니며 인가를 찾았었지요. 그땐, 오라버니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괜한 얘기를 꺼냈다는 듯이 엔야가 말을 얼버무리고는 주제를 피하려 한다. 하지만 엔시오도스의 제안 아닌 제안도 있고 앞으로 실버애쉬 가문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면 적어도 대략적인 상황은 알고 있어야 한다. 

 

“부디 말해주세요. 정말로 하기 싫은 얘기가 아니라면 꼭 듣고 싶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고민하는 것이 표정으로 다 드러난다. 그런 그녀의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가녀린 손을 살포시 잡아주자 엔야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방금 말했듯이 오라버니는 매우 자상하고 용기있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저희 가문이 몰락하고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상황에서 저와 엔시아를 지켜주었죠. 하지만 실버애쉬 가문이 쉐라그에서 입지를 확보하고 다른 원로들과 가문들을 누를 수 있을 만큼 강성해지자 오라버니는 바뀌었어요.”

 

맞잡은 손이 슬며시 미끄러져 나가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말로는 항상 실버애쉬 가문을 위해, 가족을 위해… 라고 하지만, 제 눈에는 그저 권력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폭군일 뿐이에요. 게다가 이번 혼사 문제도… 오라버니에게 저는 그저 권력을 위한 수단일 뿐인거죠. 그래서 상대가 누구라고 하던가요?”

 

엔야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혼인 상대로 나를 지목했다는 것은 입 밖으로 절대 못 내겠어서 차라리 말문을 돌려야 할 것 같다.

 

“성녀님. 제가 아는 엔시오도스는 다릅니다. 그는 전투에서 항상 선봉에 서며, 전장에 함께 선 많은 로도스 오퍼레이터들을, 동료들을 지켜주고 의지되는…”

 

“아니요, 그이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가족을 돌아보기 전까지는 저는… 오라버니를 마주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요.”

 

엔야가 훌쩍이며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

 

쉐라그인에게도 통할지는 모르지만, 빅토리아에서 신사들은 여성이 울 때 손수건을 건네 준다고 했던가. 가끔 똑같은 행위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완전 다른 의미가 될 때가 있긴 하지만 일단은 기본적인 에티켓은 지키고 싶다.

 

???

 

엔야의 태도가 이상하다. 눈물을 훔치다 말고 얼굴을 붉히며 다소곳이 손을 모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 아직… 박사님의 손수건은 받을 수 없습니다.”

 

“네? 뭔가 잘못됐나요? 울고 있는 여성에게 손수건을 건네주는건 기본적인 에티켓 아닌가요?”

 

내 말을 듣자 엔야가 한 대 세게 얻어맞은듯 멍 하니 있다가 전보다도 더 빨갛게, 쉐락볼튼 산에 걸친 저녁노을처럼 홍조를 띄우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문화적 금기를 넘었거나 실례를 범한건가 싶어서 재차 덧붙였다.

 

“미안합니다. 제가 실례를 범했나 보군요. 쉐라그의 문화는 아직 잘 몰라서…”

 

“아… 아,아니에요 박사님. 손수건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가 빨아서 다시 돌려드릴께요.”

 

애써 침착한 척을 하며 엔야가 손수건을 가져가 눈물을 마저 훔치고는 테이블 위에 두었다. 안된다고 했다가, 지금은 또 받아서 눈물을 훔치는 것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네…”

 

어색하다… 저쪽은 뭐 때문에 그렇게 부끄러워하는지 모르겠지만 분위기 때문에 이쪽도 덩달아 가시방석이다. 빨리. 빨리 화제를 돌려야 한다.

 

“그… 엔시아는 지금 외출중인가요? 성녀님이 엔시아 방에 있을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하다. 엔야가 이쪽을 째릿 쳐다보더니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박사님. 제가 성녀라는 호칭으로 불리길 원치 않는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엔야… 로 해주세요.”

 

“아… 엔야…”

 

그제서야 활짝 웃어보이며 엔야가 말을 이었다.


 


“훨씬 낫네요. 박사님.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도저히 방금 전까지 울고 있었던 여성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해맑게 웃는 엔야. 저렇게 울다 웃다 하다니, 코가 길어져도 난 모른다.

 

“아 그리고 엔시아는 금방 돌아올거에요. 원래는 엔시아를 보러 온게 이번 일탈의 주 목적인데 새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아하하.”

 

나중에 엔시아가 돌아오면 근처 산맥이랑 지리에 대해서 물어봐야 할 것같다. 아니면 이참에 엔시아 도움을 받아서 쉐라그 지리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을 작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간 쉐라그에 로도스 본함이 와서 현지 작전을 할 일이 없었기도 했고 험준한 산이 많은 쉐라그 특성상 지리 정보 기록의 중요도와 정확도가 낮았는데 이번에는 해야 할 것 같다.

 

 

                                                              




 필자의 궁시렁 궁시렁


이번화는 분량조절 실패해서 둘로 자른 것도 그렇고 좀 쉴려고 짧게함 비축본 여분 있는건 당장 안올릴꺼야.

 

그리고 혹시나 오해할 사람을 위해서 남김

“너의 혼례에 대해 박사와 의논하고 있었다.” = 너의 혼담에 대해 박사에게 의견을 물었다.

결국 엔야는 상대가 누군지 모르고 그저 자신의 혼사에 대해 박사에게 상담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음.


 담배 사줘




간단한 설정


쉐라그에서 청혼 프러포즈는 남성이 직접 짠 손수건을 여성에게 건네는 것이다. 특히 여성이 울고 있을 때 하면 효과가 더 좋다고...


쉐라그 여성이 손수건을 받아들고 나중에 그 남성에게 다시 돌려줘야만 혼인 승낙이 된다.


쉐라그는 험준한 지형과 험악한 날씨 때문에 산악 지리정보 기록이 쉽지 않다.


실버애쉬 가문의 종족인 설표는 종종 입에 꼬리를 문다.





그림주소

성녀님

https://www.pixiv.net/artworks/79458691

https://www.pixiv.net/artworks/79370140

https://www.pixiv.net/artworks/80291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