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쳤지.
시력을 잃고 쓰러졌다가 막 깨어나 혼란스러울 스카디에게 냅다 고백을 해버리다니.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젠장.
그렇게 늦어도 한참 늦은 후회를 하며 밤을 지새웠다.
••••••
그시각, 스카디의 병실.
달빛보다 빛나며 찰랑이는 은발 머리의 소녀는 석양보다 더 붉게 두 뺨을 물들인 채 있었다.
"박사…왜 쓸모없어진 나를 좋아해주는 걸까…"
더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 두 눈을 매만지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일단 아침에 다시 생각해 보자."
••••••
나는 전장에 있었다.
그날의 임무는 마을에 침입한 원석충 무리를 제거하는 것.
아주 쉬운 임무기에, 어비셜 헌터즈와 자원해서 참가한 사리아로 이루어진 5명의 팀이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원석충을 처리해 가는 과정에서, 그들과 점점 멀어져만 갔고, 아무리 따라잡으려 해도, 아무리 그들의 이름을 불러도, 그들은 뒤돌아 보지 않았다.
결국, 홀로 남겨져 원석충 무리에 둘러싸인 나는…
••••••
"…핫."
온 몸이 떨린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분명 내 옆 침대에 글라디아가 있을 텐데.
숙소에 불은 왜 다 꺼져 있는거야?
왜 앞이 보이지 않지?
공포가 온몸을 휘감아서,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침대를 뒤졌다.
"누군가…제발..!"
탁-
따스한 무언가가 날 감싸 안았고, 날 안심 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누구야…나에게서 떨어져…!"
반쯤 울부짖으며 나는 무언가를 밀어냈다.
"괜찮아, 스카디. 나야."
담담하지만, 어딘가 슬픈, 그러나 안심되는 목소리로 무언가가 말을 걸어왔다.
"…박사..?"
"응, 나야. 괜찮아 스카디..? 악몽이라도 꾼거야?"
"어째서 여기에..? 나는… 아…"
그제서야 잔혹한 현실이 기억났다.
나는 시력을 잃었고, 이곳은 내 숙소가 아닌 병실이다.
터져나올거 같은 울음을 간신히 참아내며 박사에게 물었다.
"박사, 지금 시간이 어떻게 돼..?"
"새벽이야. 4시쯤."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야…박사가 평소에 자는 시간은 이미 지났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병상 옆을 지키지 않으면 안될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 느낌이 맞았던 것 같기도 하고."
흠칫.
부끄러움과 고마움이 섞여 얼굴이 빨개지는걸 느끼며, 나는 물었다.
"나, 날 지키…아니 보러 온거야..?”
"응, 맞아. 덜덜 떨며 침대에서 울고 있길래, 무심코 껴안아 버렸어. 실례를 끼쳐버렸다면 미안해."
저 말을 듣자, 불안했던 마음이 끈을 놓은 것 처럼 풀리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미안…미안해…내가…내가 박사에게 폐를 끼쳤어…작전도 실패하고…눈도 안보이게 되서…앞으로도 할 수 있는게 없을텐데…이제 쓸모가 없어졌는데…"
"…"
"그런데도 박사는 날 좋아한다고 말해 주고, 날 지켜주고…난 당장 박사의 마음을 받아줄 용기도 없어서 생각한다는 핑계로 도망친건데…"
"…"
"나는…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박사..? 불안해. 무서워. 내가 싸워왔던 바다보다도 지금 이 상황이 난 너무 무서워…"
"…괜찮아 스카디. 어제 내가 약속 했잖아? 내가 너의 눈이 되고, 너를 지켜주겠다고. 그저, 내 곁에, 내 주위에만 있어줘."
그는 이 말을 하고선 나를 다시 따스하게 안아 주었다.
••••••
아침이 되고, 나는 다시 눈을 떴다.
내 곁에는, 어제 새벽에 늦게 잔 것이 피곤했는지 잠에 빠져있는 듯 한 박사가 있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온기가 존재를 말해 주었다.
"…박사, 이렇게 되어버린 나의 눈이 되어주겠다고 말 했지? …좋아.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까지…박사의 곁에 계속 머물게. 무슨 일이 있든, 응."
그의 손을 살포시 잡으며, 나는 속삭였다.
••••••
아침, 일어나 보니 스카디는 먼저 일어나 병상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내가 뒤척이며 일어나자, 그녀가 생긋 웃으며 인사했다.
"좋은 아침, 박사."
"으응…스카디 안녕. 좀 어때?"
"난 괜찮아. 마음을 정했거든."
쿵-
심장이 다시 한번 요동쳤다.
"…대답을 정해 준 거야..?"
"응. 후… 좋아."
그녀는 그녀답지 않게 잔뜩 긴장한, 그러나 내가 보기엔 사랑스러운 얼굴로,
"박사, 나의 혈족이 되어줘. 얼마가 남았을 지 모를 앞으로의 삶에서, 나를 지키고, 나의 눈이 되어, 평생 함께 해줘."
"…좋아. 너의 혈족이 될게. 앞으로 남은 삶동안, 너를 지키며 너의 눈이 되어, 평생 함께 할게."
어디선가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며, 병실의 창을 두들겼다.
그 병실 안에는,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행복해 하는 한 쌍의 남녀가 있었다.
••••••
이후 며칠 뒤, 켈시에게 더이상의 치료는 불필요 하다는 판정을 받은 스카디는, 출장을 간 것으로 위장하여 내 숙소에서지내게 되었다.
그녀의 부상이 알려져도 괜찮을 상황이 오기 까지, 그녀는 공식적으로는 쉐라그로 초장기 출장을 나간 것으로 되어있다.
"참, 박사.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된다고…방 안에서는 혼자 돌아다닐 수 있어..!"
"그래도, 내가 불안해서 안되겠어…으으…원석충…나중에 박멸시켜주겠어…"
"푸핫…전투능력도 없는 박사가? 난 어려울거라고 생각해~"
한층 밝아진 그녀는, 아름답게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