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당신은 지쳤어요. 조금 쉬셔야 합니다."

"잔소리할 거면 나가. 나 말고 진짜 치료를 필요로 한 녀석들이나 돌보라고. 나보다도 전투를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는 병력이 있어야 싸움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그 부분에 대해서 더 할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쉬셔야 저들도 체력을 보충하죠. 저희 고해신부의 역할은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는 겁니다. 망가진 당신의 마음처럼 다친 사람들 말이죠."

"네 년이 뭔데,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이야기를 들었어요. 당신은 본래 이런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쓸데없는 참견일 뿐이야." 

"쓸데있고 없고는 제가 판단 할 겁니다.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당신에게 필요한 휴식을 제공하세요. 필요한 게 있으면 저한테 이야기하셔도 되고요."

"....하도 작전을 짜느라 고개를 수그리고 다녀서 목이 존나 아픈데, 와서 목이나 좀 주물러보던 가."

"그러면 잠시 팔을 벌려보시겠나요? 겨드랑이쪽을 마사지 해주면 간단하게 해결 되는 거랍니다."

"겨드랑이라고?"

"겨드랑이는 목이랑 액와신경으로 연결 되어 있으니까요. 광석병 연구 권위자라고 하던데, 그것도 모르시는 건 아니죠?"

"아니, 그냥 내가 민감한 부분이라 남이 만져주는 건 좀..."

"조금만 참으세요. 다 당신 좋으라고 하는 거니까....어떠신가요? 자꾸 움직여서 마사지 하기가 좀 힘들지만 괜찮아지셨죠?"

"으음...확실히 방금 전이랑 다르 게 통증이 가라앉았군. 그럼 다시 일을 해야지."

"제가 할 말 기억 못하시나요? 좀 쉬어야 한다니까요."

"이럴 시간에도 어디서 녀석들이 처들어올지 모르는데 쉴 수는 없어. 어떻게해서든 이겨야 해. 그게 내 존재의 이유니까. 너야말로 돌아가 휴식이나 취해. 또 다친 병사들을 돌보는 건 내가 아니라 너희야."

"그러면 잠깐 누워있는 것조차 안 되는 건가요?"

"그걸 누가 본다면 날보고 참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누가오면 깨울텐데 그게 휴식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모두들 당신을 두려워해요. 당신에게 말을 걸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을 정도인데 누가 당신을 깨울건가요?"

"잘도 엄청난 소리를 하는군."

"주무시지는 않아도 되니, 잠시 여기 앉아 누우세요. 배게가 없으니 제 다리라도 빌려드릴게요."

"고해신부들 중에 미친 사람도 있다는 건 처음듣는데, 아니면 이 난리통에 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뿐인가?"

"군소리 말고. 당장 이리오세요."

 

       









 꿈은 현실과 연관되어 있다는 조사가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꿈을 꾸나, 그것이 박사 자신이 꾸는 꿈이라는 자각이 전혀 없다. 분명히 꿈 속에서 나온 존재는 박사 자신이 분명하다고 느꼈는데 말이다. 그 속에서의 자신은 지금 자신과 비교해보면 1만년은 떨어진 존재처럼 차가웠다. 부하나 동료들의 죽음에 애도는 커녕, 그냥 쓸만한 말 하나 버렸다는 식으로 행동하며 그에 따라 박사를 볼 때 모두들 존경이나 신뢰보다는 공포와 혐오뿐이었다. 게다가 감정을 표하는 사람들도 모두 박사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는 아군뿐만 아니라 적들 또한 마찬가지인 반응이었으나 그렇기 때문에 꿈속에서의 자신은 더욱 위험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저격수에 대해서 알고 있나? 아군을 지원하는 병과임에도 아군에게는 꿀 빤다고 빈축을 사고 적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만약에 저격수가 적에게 잡힌다면 절대로 좋은 꼴 못 본다고 하는 병과다. 꿈속의 박사는 그것 이상으로의 아군과 적들에게 혐오를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박사에게 다가오는 인물들이 있었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낯설지 않은, 익숙한 느낌이 사람들이 박사에게 다가왔다.


 그 중에서 온통 검은 옷으로 치장하고, 얼굴에는 짐승의 두개골로 마스크를 끼고 있었던 존재들이었다. 아니, 존재인가? 분명 꿈속에서는 여러 명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단 한 명이 박사에게 다가와 무척 고운 목소리로 잔소리 마냥 쉬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박사는 처음엔 거절하다가도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니니 마지못해 휴식을 취하거나 마사지 같은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행위를 받는다. 마사지를 받고나면 꿈에서 깼다. 


 이외에도 다른 과거로 추정되는 꿈을 꾸기도 하지만, 이것 말고는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지만 깊게 생각하는 부분들이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과거에 대해서 벗어나고자 하는 현실도피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과거를 잊어버린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아무리 그런 적이 없다고 부정해도, 누군가는 그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면 그 과거는 사실이 되니까. 애초에 부정하는 사람도 과거를 알고 있으니 정확하게 부정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이미 지나온 과거를 어떻게 생각해야만 하는 것일까. 계속 부정하고 잊어야 하는가? 아니면 책임감을 가지고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하는가? 부정하기에는 이 장소에서도 그곳에 있었던 자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책임감을 가지자고 해도 그들에게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 전쟁이라는 '합리'라는 불공평 아래에서 말이다. 그들을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대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할 일도 많다. 겉으로는 멀쩡한 제약회사겠지만, 리유니온이랑 전투는 물론, 필요하면 더러운 짓이라도 하는 곳이다.


  그 덕분인지 종종 기억을 되찾게 도와주겠다는 로도스 아일랜드가. 정말 자신을 위해서 기억을 되찾아주는 건지, 아니면 자기네들 입맛대로 필요한 것만 골라서 쏙쏙 빨아먹히는 건지 의심이 들지만, 지금으로서는 박사 혼자서 뭘 어떻게 할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동안의 활동으로 로도스라는 곳의 입지도 많이 커져 여기를 따르는 오퍼레이터들과 협력하는 곳이 늘어났다. 그 중심에는 박사가 있었기에 이제와서 로도스를 그만둔다거나 하는 것에도 어마어마한 리스크가 따라온다. 신뢰받는 것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결국, 현재로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회피하거나 도망치기만 바쁠 뿐, 과거라는 사건에 대한 일로 다시 고개를 돌리기도 어려운 수준이 된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한 구석에서 과거를 알아내고 싶다는 집요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동안 만나왔던, 과거의 인연들을 통해 조금씩 기억을 되돌리는 중이라는 게 그 증거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것들이 부족했다. 박사를 알고 박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도통 그의 과거를 제대로 이야기해주는 경우가 없었다. 주변에서는 낚으려고 떡밥만 퍼다 던지는 것 외에는 알아낼 수 없는 게 많은 현실인지라 어느새인가 박사도 느슨해져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종종 잠 잘 때마다 꾸게되는 꿈들이 느슨해진 박사를 졸라매는 것 같았다. 잊혀진 기억이 빨리 자기를 찾아달라며 조르는 것 같이 잠시 동안이라도 편함을 누릴 수가 없었다.


 그나마 박사에게 쉰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역시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자신을 따라주는 동료들일 것이다. 켈시나 아미야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박사보다는 아래겠지만, 박사를 신뢰하며 편안하게 대하는 존재들로 단지 평범한 상하관계가 아닐테다. 가끔 로도스 아일랜드에 대해 불신이 생기더라도 그것이라도 자신을 안도하게 만든다.


 그런 박사를 신뢰하는 만큼 자상하게 대하는 존재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친한 친구처럼 대하는 사람도 있고, 부드럽게 대하는 존재도 있고, 그에게 호감을 품은 존재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반대로 이따금 좀 지나치다 싶은 경우도 종종 보였다. 무슨 배짱인지 자신보다 하대하는 대원도 있겠지만 박사쪽에서 적당히 너그럽게, 이따금 심하다 싶으면 박사로서의 위엄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럴때면 왜인지 로도스에 합류한 W 같이 박사의 과거를 알고 있는 베베꼬인 인물들이 '많이 너그러워졌다? 원래였으면 즉결처형이었는데.' 라며 섬뜩한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그것마저 박사를 괴롭히는 '과거'에 별 다른 힌트를 주지는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박사의 과거를 알고 있는 존재들도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어물쩡 넘어가고 떡밥만 툭 던지는 듯한 짜증나는 태도가 한 둘이 아니라 박사도 포기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리고 대원들 사이에서 박사가 호기심을 품게 만드는 존재가 나타났다.


 샤이닝이 그 존재였다.









얀데레 소설인데 제목이나 상단에 얀데레라고 써놓는 게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