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들었다. 본능적으로 여기는 어딘가? 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눈을 떴을 때의 알 수 없는 부조화를 느끼고 '좆됐다.'나를 것을 느꼈다.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서는 두뇌가 빨리 회전해야하며 박사의 두뇌 회전 속도 빠른 편이지만 얻어맞은 듯한 통증이 가시지 않고 눈을 오랫동안 감고 있어서 빛에 한창 민감한 상태라 쉽사리 파악하지는 못했다. 


 눈 부시고 흐릿한 시야 속으로 박사는 자신이 하얀 방 벽에 뭔가가 난잡하게 무언가가 다닥다닥 걸려있는 것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저게 뭐지? 하고 호기심을 느끼게 만들 정도로 하얀 벽에는 수많은 것들이 걸려 있었다. 튀어나와 있는 것이 없으니 납작한 것을 걸어둔 것처럼 보였다. 조금씩 돌아오는 의식과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하면서 그것들이 뭔지 점차 알아낼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을 알아내지 않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작은 후회와 함께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주변을 돌아보며 사방에 걸려져 있는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자신이 묶여 있는 것 상황은 결코 좋게 느껴질 수 없을 것이다.


사방이 사진이었다. 하얀 방의 벽에 붙여진 사진들, 수사나 추리물을 보면 그런 것들로 범인의 정체나 위치를 파악하는 듯하겠지만 지금 현실의 이 사진들 속에 찍혀 있는 인물을 보면 아무래도 그런 문화 매체를 찍으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찍힌 장소, 상황은 모두 말랐지만, 사진의 인물들은 분명히 모두 같은 대상이었다.


 박사 자신이었다.


 또 다른 문제라면 불편하지 않게 어느 정도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침대에 팔 다리가 쇠사슬로 묶여있어서 자신에게 처한 상황이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줘야만 하는 상황을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구조를 기다릴 때 각종 사진들에 눈이 가는 것도 호기심인지 모르겠지만, 박사가 완전무장을 한 사진에서부터, 목욕 때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을 때, 심지어는 박사의 혼자만의 해피 타임까지 찍혀 있는 수많은 사진에서 이런 사진을 찍고 벽에 장식한 대상이 상당히 악질이라고 느꼈다.


 그와 동시에 한 가지 불길할 생각이 있다면, 자신이 기절하기 전 읽었던 그라벨의 일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기 내용들과 엮는다면 이런 일을 저지른 인물이 그라벨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그라벨은 왜 이런 짓까지 저지른 것일까?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중요 인물인 박사를 납치해서 감금할만한 이유가 있었던가? 이전에도 그라벨에 대한 의심을 하긴 했었는데 만약 그 의심이 이제와서 적중했다면 그라벨은 박사와 로도스 아일랜드에 아주 커다란 통수를 친 것이다. 


 배신. 단 한 단어로 설명 가능했다. 그라벨은 로도스 아일랜드를 배신했다. 


 하지만 그러면 의문 하나가 또 생긴다.


 로도스 아일랜드가 카시미어에 그렇게 중요할 위치에 자리잡을 만한 존재인가? 그것도 로도스 아일랜드 중요 수뇌부가 아니라 박사 단 한 명으로 말이다.


 일전에 카시미어를 방문한 경험으로 있어서, 좀 심하게 들리겠지만 카시미어는 과거의 영광은 모두 잊은 채 썩어빠졌다. 기사들을 이용해 오로지 돈으로 움직이는 세력으로 변질되버린 카시미어이지만 아무리그래도 돈을 만지기 위해서 광석병 관련된 약을 만든다고 이런 일을 저지를 만한 멍청한 녀석들은 아니라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고하더라도 박사 하나보다 차라리 로도스 아일랜드를 포섭하는 게 여러가지로 더욱 이득일텐데 혹시 협상카드로 자신을 납치한 게 아닌가? 하는 나릅 합리적인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한 가지 다른 의문이 또 생긴다.


 어떻게 찍었는지 모를 수많은 사진들은 무슨 의미이고, 벽에 걸린 수많은 박사의 사진들. 평범한 것부터 부끄러운 것까지, 설마 카시미어에 자신도 모르게 열성팬이 여럿 있기라도 한 것인가? 같은 어처구니 없는 농담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지만 여느 때처럼 잔혹하기 짝이 없는 이 모든 게 현실이었다.


 시계도 없고, 창문도 없는 하얀 방의 침대 위에 묶여서 얼머나 흐르는지 알 수 없는 시간 속에서 희망을 걸어야 한다면 누구한테 거는 게 좋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하루만에 박사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면 로도스 아일랜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라벨 또한 박사와 같이 사라졌다면 로도스측에서는 납치범을 그라벨로 지목할테지만 현재 그라벨은 박사의 곁에 없다. 아마 자신이 그랬다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겠지.


 그러면 언제 나간 것이고 언제 돌아오는 것인지 모를 자신이 잔뜩 찍힌 사진들을 돌아보면서 이 장소를 빠져나갈 궁리를 해보았다.


 쇠사슬은 팽팽하지 않더라도 움직일 수 있는 제한된 범위가 있다. 넓게 잡아도 침대에 걸터 앉는 수준이다. 박사의 힘으로는 부수는 건 불가능했고, 끼이지는 않지만 손목과 발목에 착 달라붙어서 빼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 역시 박사를 납치한 대상과의 정면승부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물이나 음식등은 보이지 않은 것을 보면 금방 돌아온다는 뜻이다. 박사를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죽일 거면 굳이 이러지 않아도 충분히 죽일 기회가 많았고, 로도스를 대상으로 협박을 하려면 일단 대상이 살아있어야 한다. 암살 경험이 많은 그라벨이 그걸 모를리는 없었다. 박사는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침대 위로 누웠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자기를 납치한 대상이 다시 나타나거나 운 좋게 누군가가 구조해주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그렇게 빠져나갈 궁리를 계속하던 중,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벽에 붙여져 있는 수많은 사진들을 살펴보던 중 특이한 것들을 하나씩 찾았다.


 기존에 찍은 사진에서 어설프게 붙여놓은 듯한 사진들이었는데, 이 사진들 모두 박사와 그라벨이 딱 달라붙어 있는 것들이었다. 그 사진 중 하나가 기억에 떠오르는데. 민간인도, 리유니온도 있지 않은 폐허지역이 수상하다는 이유로 탐사 중에 버려진 카메라를 발견한 오퍼레이터가 작동이 된다는 이유로 단체로 사진을 찍지 않겠냐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탐사가 끝나고 복귀하고자 차량을 기다리던 중었기에 당시 현장 지휘하던 박사도 좋다고 다 같이 찍어서 기념으로 남기려고 했었다.

 

 그때도 그라벨이 참여하긴 했었었는데 사진 찍기전 같이 있던 블레이즈가 갑자기 박사의 팔짱을 끌어안은 상태로 찍혔던 것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여기에 붙여진 사진에는 블레이즈는 찢어져 없어져 있었고 그라벨이 대신 붙여져 있는 이상한 사진이 되었다.


 굳이 왜 이런 짓을...?


 그라벨이 블레이즈를 싫어할만한 이유가 있었는지에 의문이 든다. 블레이즈는 머리가 딱히 좋지는 않으나 상당한 노력파에다가 성격도 어디 모난 곳 없이 친화력도 좋은 편이라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그레이스롯 같이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렇지만 그라벨에게는 그럴만한 특이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증명하 듯이 비슷한 다른 사진들을 보면 블레이즈만 그런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블레이즈처럼 접촉하지 않았어도 박사와 가까이 붙어만 있는 경우에도 찢어서는 그라벨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그러한 사진들을 감상하며 의문을 가지고 있자 철컹이는 소리와 함께 기분 나쁘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예상했던 인물의 등장이다.


"박사. 일어나 있었네."

"그 정도는 예상할 줄 알고 있었는데. 예의상 하는 말인가?"


 박사의 목소리에서 다정함은 없다. 반면 그라벨은 그의 말을 듣고도 속셈이 있는 산뜻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현재 박사는 구속을 당한 상태며 설사 구속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무력의 차이를 이겨낼 수는 없다. 


"그라벨. 너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이러는 건가?"


 반갑지 못하다는 말투로 그라벨을 쏘아붙이나 그녀는 알 수 없는 방안의 사진들을 둘러볼 뿐이었다. 박사와 다르게 이런 기분 나쁜 장소가 그라벨에게는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 동안 박사를 향해왔던 마음을 표출하지 못해서 뒤틀려버린 자신의 애정의 증거들을 지금 그 대상에게 보여주는 중이었으니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겠지만 피해자에게는 하나 같이 호감으로 다가 올 수 없었다. 미쳤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무슨 꿍꿍이인지 모를 그녀의 속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일일 게 분명했다.


"확실히, 로도스 아일랜드를 상대로 터무니없는 짓을 한 건 인정해."

"단순히 터무니 없다. 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가벼운 일이 아니야."


 내색은 하지 않지만, 박사 스스로도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중요한 인물이란 것은 알고 있다. 중요한 인물을 이상한 장소로 납치해 온다는 건 로도스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호소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라벨.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 네가 저지른 짓은 영원히 함구할 게. 제발 이상한 생각하지 말아줘."


 납치한 목적이 불명확해도 이 일이 단순한 일이 아님이 확실했다. 부디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조용히 원래대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되는 일이다. 그라벨을 향한 마지막 신뢰였다.


"미안해 박사. 하지만 약속할 게. 박사한테 해코지 할 일은 전혀 없을 거야. 내가 평생 돌봐줄 테니까."


 박사의 뺨을 어루만지며 그라벨은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굉장히 매혹적이면서도 짐승이 자신의 짝을 유혹하는 것 같은 자태가 순간 박사의 본능을 건드렸다. 완전히 흥분하지는 않았지만 그라벨은 박사를 향해 조금씩 몸을 밀착시켜나갔다.


"미안,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져서 많이 놀랐지? 하지만 이 방법 말고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표정을 보니 뭔가 단단히 오해한 것 같은데... 혹시 박사를 카시미어에 넘기는 짓이라도 하는 줄 알았나 봐? 오히려 그 반대야. 난 박사를 카시미어 따위에 넘기지 않아. 오히려 빼앗길가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라벨은 카시미어의 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로도스 아일랜드의 편도 아니었다.


"박사. 난 박사가 참 걱정이야. 박사를 따르는 대원들이 엄청 많은데. 그 중에서 박사를 몰래 흠모하고 있는 대원들이 있다는 거 박사도 알고 있었으려나?"


 박사쪽에서 눈치채지 못했었더라도 그라벨을 포함해 그에게 호감을 품은 인원은 한 둘이 아니다. 몇몇 오퍼레이터들이 박사가 눈치가 없다면서 한숨을 푹푹내쉴 정도였음에도 박사에게 그들은 좋은 동료였다. 그렇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대원들이 하나둘씩 늘어감에 따라 박사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라벨은 박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때였다.        


 느닷없이 로도스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뒤늦게 박사에게 신뢰를 얻었기에 박사에게 호감을 얻는다에 대해서 뒷 순위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너무나도 억울했다. 박사를 갈구했으나 그에게 신뢰하기 위해서 그라벨은 그를 몰래 따라다니며 만질 수 없는 그의 사진이나 용품으로 외로운 마음을 달래왔다. 달랠수록 둔해져서 더욱 강한 자극을 원하는 것처럼 날이 갈수록 박사에 대한 갈망은 커져갔다.


 욕망을 발산하지 않고 차분하게 그를 기다리며 그에게 손을 뻗었지만 여전히 그는 그라벨을 바라보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주변에 그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품은 수많은 인물들 사이에서 카시미어의 암살자였던 그라벨은 선을 넘어야만이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사. 박사는 내가 이런 말해도 믿지 않겠지만...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해. 이 말을 직접 전하지 못한 건 내 잘못이지만 박사가 먼저 잘못했잖아? 내가 그렇게 박사에게 언급했음에도 날 돌아보지 않은거. 슬프다고 그런 건. 그거 때문에 내가 얼마나 조바심을 냈는데? 너를 향해서 얼마나 많은 시선을 향하는지 알고는 있어?" 


 있을리가 있나. 몇 번이나 언급해도 박사의 입장에서는 그 모두가 그저 신뢰하는 동료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난 놓치지 않을 거야."


 그라벨의 배신을 예상하기는 했으나 설마 이런 이상한 방향으로 배신할 거라 예상하지 못한 건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할지도 모른다.


 박사는 그라벨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굉장히 큰 고생을 해야 한다고 직감했다. 











감금 + 열린 결말이라 이후에는 알아서 생각해라. 라고 떠넘기는 건 미안하지만 이런 식의 결말도 많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끝낼까 고민하다 이런 식으로 결말 내놓음

이제 다음편 준비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