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리자 가장 보기를 원했던 존재였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보기 원하지를 않았던 대상이 있다면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스와이어를 발견했을 때는 한 눈으로 보기에도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자에 묶여서 충격 받은 표정으로 이쪽을 보면서 떨고 있었다. 두려움 같은 게 아닌 슬픔의 증거로 얼굴이 눈물과 콧물도 흘러내려서 엉망진창이었고 입을 테이프로 막아서 약하게 읍읍 거리면서 욕인지 애원인지 모를 말만 계속해서 내뱉었다.


 스와이어만큼은 아니어도 박사 또한 이런 충격적인 상황에서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의문을 가졌으나, 조금 생각해보면 자기가 첸에게 당했다라는 것 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거짓말'을 한 게 제 발로 큰 함정으로 들어간 것 같다. 이번에도 판단 실패했다. 그 후폭풍은 너무 커서 감당되지 않을 수준이다.   


 뒤늦게라도 박사는 이 상황에 대해서 변명을 해야했다. 


"아, 아니야!!! 베아트릭스!!! 이건...!"


 그래, 이건 뭔가? 변명을 하려고 해도 스와이어 입장에서는 박사가 자신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자기를 욕하고 첸과 관계를 가지는 것에만 열중했을 뿐이다. 박사가 스와이어를 믿었고, 첸을 믿었었듯이 스와이어도 박사를 믿었다. 하지만 눈 앞의 장면은 모든 것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 모든 믿음을 부정했다.


 비록 첸에게 잡혀서 의자에 묶이고 입이 막혀서 뭘 할 수 있지는 않았다. 


 어둡고 컴컴한 곳에 몇날며칠을 잡혀 있었다.


 근위국의 총경이며 목숨을 건 전투도 있었어도 그런 곳에 계속 잡혀 있으니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 순이었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치지 않았다. 꼭 동료가 자기를 구해줄 것이다. 꼭 박사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다. 만약 박사가 자신을 구했다면 바로 달려들어서 키스를 해줄 것이다. 그렇게 믿으면서 혼자 입가를 올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희망을 가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을 때, 눈 앞에서 첸이 자신을 내려다보며 걸어오고 있는 것을 봤을 때,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믿었던 사람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에 느껴지는 배신감이었을 것이다.


 그녀와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재미 없는 장난을 칠 정도로 성격이 더럽거나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건 확신했다. 자신만의 착각이었을리 없었다.


"첸... 장난이 너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첸에게 항의겸 비꼴 목적으로 하려던 말을 갑자기 머리를 붙잡고 주저앉은 스와이어를 공중으로 끌어당기는 첸의 팔에 의해 막혔다.


"암코양이년."


 첸의 답변은 아주 간단했다. 그 간단한 답변 속에서 첸이 스와이어에 향하는 강한 적개심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강한 나머지 스와이어가 정말로 뭘 잘못한 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표정에서부터 느껴지는 분노가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고통에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창 머리채를 잡고 스와이어를 노려보더니 그 상태로 머리를 끌어당기면서 어디론가 끌고가면서 스와이어를 붙잡아두고 있었던 자들에게는 이제 돌아가도 상관없다면서 무심하게 말하자 그들은 네 누님. 이라면서 대답했다. 마지막까지 장난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자신을 때리라고 명령한 '누님'이라는 자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이제는 현실도피만이 답이 아닐까?


 허나 스와이어는 길고 정돈 잘 되었으나 헝클어져서 보기 안 좋지 못한 스와이어의 머리카락이 끌리면서도 현실을 마주했다. 비명을 지르며 대체 왜 이렇냐고 항의를 하고 욕설과 함께 첸을 비난하고 자신이 뭘 잘못했냐고 말이라도 해보라며 애원도 했지만 그녀가 애원을 하던 욕을 하던 첸은 묵묵하게 어디론가 스와이어를 끌고갈 뿐이었다.


 지하로 보이던 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더니 몇 층 올라가지 않더니 어두운 복도가 나왔고, 그대로 복도 끝까지 끌고가더니 307호라고 써진 방으로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본 것과, 지금 들어온 방을 봐서는 대충 유추해도 러브호텔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여자 둘이 이런 곳을 왜 오나 싶은 생각하는 순간, 첸은 강제로 한 의자에 스와이어를 앉혔고 수갑을 꺼내 스와이어를 의자에 구속시켰다. 그런 것도 모자라 덕트 테이프를 등받이를 통해 그녀를 꽁꽁 묶었고 남은 테이프를 뜯어 그녀의 입을 봉했다. 그 과정에서 저항은 당연했지만 몸을 거칠게 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양아치한테 맞은 것보다는 아프지 않았으나 그때보다 더 분하고 억울함에 눈물까지 찔끔흘렀음에도 입을 막은 테이프로 인해서 더 이상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구속된 채로 화장실에 갇혀버렸다.


 바닥이 차긴 했어도 적어도 팔과 손을 제외한 몸을 자유로웠던 지하에 비해서 눅눅하고 딱딱한 의자에 꽉 묶여서 더 불편해진 상황에서 이해되지 않는 모든 상황에서 일단 어떻게든 움직여보기로 했다. 손목에는 수갑이 의자와 연결되어있고 상반신과 팔도 등받이에 묶여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리뿐인데 이걸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뭘 어떻게해도 달라지는 게 없는 것이 현실이었지만 말이다.  


 수갑에 테이프까지 괜히 팀장 자리에 오른 게 아니라며 칭찬아닌 칭찬을 하며 욕을 하고 싶었으나 입은 그러지를 못했다.


 결국 빠져나갈 궁리만 하면서 시간만 버리고 있을 때, 밖에는 누가 또 왔는지 두런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온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첸이 만나는 사람이 고운 사람은 아닐 게 분명하기에 뭔가 해코지가 들어올 거라는 불안한 예상을 했다. 


 허나 여전히 수갑은 견고했고 테이프는 단단했다. 삐걱이는 소리가 날 정도로 움직이다 싶었는데, 갑자기 화장실 문이 열렸다. 머리를 풀고 스와이어가 보기에도 속이 비치는 야릇한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평상시였다면 저런 옷을 입었다면 야한 영화 찍냐고 놀렸을 것이다.


 의자를 잡고 질질 끌면서 밖으로 끌려나오면서 방으로 들어온 곱지 못할 것이라 예상한 대상을 발견한 스와이어의 두 눈은 떨리기 시작했다.


 러브 호텔의 방에 어울리면서 촌스러운 하트모양 침대에 앉아 있는 남자. 박사가 앉아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존재는 비록 눈을 가리기는 했지만 분명히 박사였다.


 대체 그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처음에는 그도 붙잡혀 온 것이라 추측했지만 박사의 시야만 가렸을 뿐, 스와이어와는 반대로 다른 곳들은 모두 자유로웠다. 손과 팔도, 몸도, 그리고 입도 모든 것이 자유로웠다.


 하지만 박사는 스와이어보다 더하면 더했지 마치 무언가에 구속 당한 듯이 가만히 앉아서 긴장한 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눈만 차단 된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에 제약이 생기니 바로 앞에 자신이 있었어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앞에 있는 것이 뭔지 모른다. 


"그러면, 박사? 자기 소개 좀 부탁할 게."


 박사의 옆에 앉더니 스와이어와 박사의 옆모습을 번걸아가면서 본다. 기분 나쁘게 웃는 그 표정을 봤을 때 아무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곧 확신이 되면서 고개를 좌우로 강하게 흔들어 부정한다.


 안 돼. 안 된다고.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내키지 않은 자의 소심한 발언은 이 상황을 지배하는 자에게 아무런 가치조차 없는 발언이었다.


 그렇기에 스와이어는 테이프로 막힌 입속에서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그 비명 속에서 첸을 욕하는 게 얼마나 많이 들어갔을까.


"뭐든 하겠다며?"


 입은 막혔다. 하지만 비명을 질러야 했다.


"...[단국 욕설]..."  


 스와이어의 비명이 닿을리 없었다. 박사는 더 이상 그 어떤 저항도 하지 않은채 첸과 몸을 포개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랑하던 사람과 믿었던 사람이 몸을 섞는 모습을 두 눈을 뜯고 보고 있어야 하는 고문이 시작되어 눈을 감으려해도 무언가에 홀린 듯 둘의 정사를 지켜보게 된다. 둘의 침대 위에서의 움직임과 생생하게 들려오는 소리들이 스와이어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데도 말이다.


 첸은 박사에게 속삭였고, 박사는 스와이어가 아닌 첸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다. 분명히 첸에게 협박 당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부정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 상황이 현실임을 느끼게 하는 감각이 계속 올라왔다.


 박사는 네가 아닌 첸을 골랐다라고. 


 그럴리가 없다며 계속 부정하지만,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마음은 계속해서 부서지는 것 같았다.



"박사... 다시 한 번 말해줄래? 누가 더 좋아?"

 

 한참 정사를 나누던 중에 첸은 스와이어를 힐끗 보더니 박사를 향해 이런 질문을 했다. 누가 더 좋냐의 질문보다는 '다시'라는 부분에 집중이 되었다. 둘이 관계를 가졌다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니. 대체 언제부터 이런 일이 벌어졌던 걸까? 그리고 얼마나 했왔던 걸까?


 첸의 질문에 박사는 무어라 중얼거리듯이 이야기했다.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 안 들으려했다. 분명 그는 자신을 사랑할 거라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도 이제 끝이라는 느낌을 부정하지 못했다.


 "뭐라고 박사? 잘 안들려서 그러는데 좀 더 크게 말해주지 않을래? 박사는 누굴 좋아하지?"


 이제 제발 그만해. 어느새인가 강경했던 총경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 박사, 제발 아무 말도 하지마. 첸, 제발 그러지 마. 둘 다 그만해.


 애석하게 그 누구도 듣지 못할 애원 속에서 첸은 다시 한 번 박사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게 본심이 아니잖아?"


 첸은 박사를 내려다보다가 스와이어를 다시 힐끗보았다.

  

"박사는... 누가 좋아...?"


 박사의 비명을 들었을 때 스와이어의 정신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자신이 아닌 첸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다는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잡고 있던 정신줄은 며칠동안 잡혀있었어도 놓지 않았던 스와이어의 믿음은 너무나도 강했었다. 그 강한 믿음이 산산조각이 났을 때.


 박사의 배신과 첸의 배신. 그리고 첸이 내미는 하나의 치명상이 재기불능으로 만든다. 설령 치료가 된다고 하더라도 금이 간 사랑만큼에는 너무나 가녀렸던 그녀의 마음이 처음처럼 돌아올까?


 자신의 앞으로 자랑하듯이 두 줄이 그어진 막대기를 보여주면서 승리를 자축하는 사이는 비록 나빴으나 믿었던 동료로부터 느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런 게 아니라며 그 동안 봐왔던 위엄이고 뭐고 없어진 채로 이런 상황을 어떻게는 해결하려는 사랑했던 애인에게 느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스와이어는 알지 못했다.






















 스와이어, 난 네가 참 마음에 안들어. 나랑 다르게 여러방면으로 완벽했거든. 얼굴도, 사람을 다루는 능력도, 재력도 모든 것이 차이가 났으니 말이야. 하지만 제일 마음에 안 들었던 건 너와 내가 일하는 방법도 달라서 너무나도 달라서였어. 그래도 이게 사람이고, 이게 운명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서로 추구하는 건 다르니까.


 그것을 느끼기 전까지는 말이야.

 

 내가 느꼈다는 것은 너도 그를 느꼈겠지. 이 남자는 나의 것이다. 같은 거. 하지만 앞서 말햇듯이 너는 너무 완벽하잖아? 재력가이면서도 서민들에 어울리면서 그들의 마음을 얻는 거 나라면 잘못했을 거야. 오로지 카리스마로 그들을 제압했겠지. 하지만 박사는 그게 되지 않아. 박사라는 존재가 이미 우리들 위에 있는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너와 엮인 걸수도 있지. 너라는 존재 자체를 원하든, 혹은 그가 다른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든. 


 나도 나름 유복하다 한 집안에도 태어났지만 더 이상은 아니야. 그런 녀석어 어떻게 내 위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불가능해. 나의 방법으로는. 난 언제나 정공법만을 바랬지 원리원칙대로, 사무적이고 워커홀릭인 내가 그의 마음을 얻는 건 불가능했어.


 하지만 넌 가능했지. 그게 너의 능력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네가 하던 방법을 그대로 따라해보기로 했지. 물론, 거기다가 과격함을 좀 첨가했지만 말이야. 왜냐고? 이거 말고는 방법이 없었거든. 나 같은 녀석이 박사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지만, 네가 항상 고수하는 '변칙적'인 방법을 응용하니까 가능하더라고.


 덕분에 용문 근위국 소속 인물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지. 협박, 납치, 강간 그외 기타등등 참 골때리지? 하지만 애초에 더 이상 난 근위국 소속의 인물이 아니까 상관 없잖아? 결과적으로 난 박사를 얻을 수 있었어. 그와 함께 평생을 할 소중한 '보물'도 생겼고 말이야.


 스와이어. 난 나와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은 참 싫었어. 하지만 살다보니, 그런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을 존중한다면 새로운 것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마워 스와이어.


 너의 방식은 정말 최고였어.   












첸 에피소드도 끝

스와이어를 굴리지만 사실 첸보다 스와이어를 훨씬 좋아함

이제 다음편인 스카디 올려야 하니 쓰러간다.

그리고 사료 좀 더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