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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로도스 아일랜드의 비서 오퍼레이터는 매일매일 바뀐다. 일정한 순서가 딱히 있어 보이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사람이 눈에 띄게 많이 들어온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일의 난이도나 강도가 휙휙 바뀌는 게 체감이 확 될 정도다.


물론 대부분의 오퍼레이터들이 성심성의껏 일을 도와주고, 어떤 사람은 빨리 하루 일 끝내고 자기 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일처리가 느린 사람이 있기도 하고, 시키는 일은 성실하게 하는데 잔실수가 많은 사람도 있고, 그냥 농땡이 치는 사람도 있고....


"박사, 챠오."


"오늘은 안젤리나인가. 안녕."


그 머리 사건 이후로 2주 정도 지난 어느 맑은 날.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사무실에 갔더니 안젤리나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에 머리 망친 건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나름 신경 안 쓰려고 하는 건지, 주눅들거나 하진 않아 다행인 것 같다.


"오늘은 배달할 거 별로 없어?"


전달자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안젤리나가 비서 오퍼레이터로 들어오는 날은 그다지 많지 않다. 거기에 최근 들어와서는 몇 달 동안 배달 없는 날에는 계속 비서로 들어왔던 것 같다. 얘 쉬는 거 괜찮은 건가. 배달 하면 하루종일 하는데.


물론 일은 잘 해 주지만 휴식 시간을 뺏는 것 같아서 뭘 많이는 못 시키고 있다.


"어제오늘 분량 모아서 한 번에 가면 되니까. 그냥 방에서 뒹굴거리기도 좀 그래서."


이 대답 전에도 들은 것 같지만, 몇 번 비서로 들어오다 보니 이젠 그러려니 하게 된다. 알아서 잘 해 주겠지, 하고.


"오늘 일 많아?"


"지금 봐서는 모르지. 이따 오후에 들어오는 일거리도 있으니까. 아침은 먹고 왔어?"


"그럼. 박사는? 아까 식당에선 못 봤는데."


"대충 먹었어."


사실 안 먹었지만 대충 주워섬겼다. 안젤리나는 흐음? 하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보더니, 금방 흥미가 식었는지 내 책상으로 가서 서류 한 뭉치를 들고 비서 오퍼레이터 자리에 가서 앉았다.


"하다가 잘 모르겠는거 있으면 물어보고."


"네~"


일의 내용이야 평소하고 크게 다를 거 없고, 단순작업도 꽤 많다보니 내용을 몰라도 어렵진 않을 거다.

오늘은 아미야가 오후에 일거리를 많이 가져오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급탕실로 들어가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아, 또 아침부터 커피 내린다."


"커피 없이 일 시작하기 힘들어."


카페인, 알코올, 니코틴은 직장인의 3대 절친이라고 하던데. 마지막 건 안 하지만. 

안젤리나가 불만스러운 듯 이쪽을 보고 있다. 자기도 커피를 달라는 건지, 커피를 아침부터 준비한다는 게 싫은 건지 모르겠지만.


"....너도 한 잔? 설탕 두 숟가락이랑 크림 하나? 아니면 코코아로 할래?"


내 물음에 긴 침묵이 돌아왔다. 바깥쪽을 보니 안젤리나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코코아로 할지 커피로 할지 고민중인 걸까.


"안젤리나?"


"....커피로 해줘."


전에 안젤리나가 비서로 왔을 때 이야기한 취향으로 세팅한 잔 하나, 그리고 원두만 갈아넣은 잔 하나.

커피 재료를 전부 제자리로 갖다놓고 조금 기다리니 물이 커피포트를 흔들며 김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 한 잔을 안젤리나에게, 남은 하나는 책상으로 들고 와서 오늘 일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음, 뭔가 오늘 집중이 잘 되질 않는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선내 소음이 더 잘 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도 옆에 처리가 끝난 일거리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시계를 흘끗 보니 아직 열 시도 안 됐다. 이렇게나 일을 했는데도 아직 시간도 안 가고 있다니.


안젤리나는 어쩌고 있나 싶어서 흘끗 보았더니 왼팔로 턱을 괴고선 고개를 까딱거리고, 그러면서도 오른손은 쉬지 않고 펜을 놀리고 있다. 

이따금 턱을 괴고 있던 왼손으로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는 것 정도지만. 잘 보니 평소 작전 내지는 외출할 때 쓰는 이어셋이 꽂혀있을 자리에 하얀색 유선 이어폰이 꽂혀 있다.


"뭐 걸리는 건 없어?"


마침 커피잔도 비었고, 물이라도 한 잔 뜰까 하면서 일어났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는데도 기척이라던가 느꼈는지 안젤리나가 한쪽을 빼며 이쪽을 바라봤다.


"어떤 거?"


"뭐 어렵다던지,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던지."


"아직은. 어렵다 싶으면 이야기할게."


안젤리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반대쪽 이어폰도 빼더니, 옆에 놓인 잔을 들고 남은 내용물을 전부 마시고는 급탕실로 다가왔다. 어딘지 들떠보이는 걸음걸이에, 뭔가 즐거운 일이라도 있나 싶을 정도다. 잘 보니 은근한 얼굴로, 조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물통을 들고 물잔을 채우고 있자니 안젤리나도 옆에 와서 섰다. 그렇게 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물통을 내밀자, 안젤리나도 반색하며 잔을 내밀었다.


"고마워, 박사. 근데 일하는 데 음악 듣는다고 뭐라고 할 건 아니지?"


"일하는 데 음악 듣는 거? 별 생각 없는데. 일만 제시간에 해서 주면야."


이런저런 오퍼레이터들을 비서로 받아서 일해온 게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당연히 오퍼레이터들이 다 일하는 태도가 비슷하지도 않고, 개중에는 아예 땡땡이 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아예 자리를 비우는 것도 아닌데, 음악 듣는 정도야.


"진짜? 배달 하다보면 음악 들으면서 일한다고 뭐라고 하는 손님들도 있어서."


"안 혼내. 근데 뭐 듣고 있는 거야?"


갑자기 호기심도 생기고, 이야깃거리나 늘려보자는 생각에 물어보았다. 기억하는 게 맞다면 안젤리나는 D.D.D.의 팬이었을 거다. 예전에 시에스타에 갔을 때 그 무대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후로 음악이 더 나왔던가?


"그거? 옛날 노래."


안젤리나의 자리로 가서 다시 보니 안젤리나가 가지고 다니던 단말기가 아니라, 납작한 금속으로 된 큼지막한 음향장치이다. D.D.D.가 그렇게 오래된 그룹이었던가? 거기다 이어폰도. 요즘은 아츠로 굴러가는 무선 이어셋이 상용화되어 있고 작전에서도 많이들 쓰는데, 이 이어폰은 유선으로 되어 있다.


"너 D.D.D 좋아했던 거 아니었어?"


"그것도 듣고, 이것도 듣는 거지. 근데 가끔 그런 날이 있어. 오늘은 옛날 노래 듣고 싶다 하는 날. 근데 그거는 음반이 따로 없다 보니 시라쿠사 집에서 가지고 갖고 나온 걸로 듣는 거고."


비그나가 가끔 전자기타 아닌 기타를 가지고 노는 거랑 비슷한 감각인가? 음악을 들어버릇 하지 않으니 잘 모르겠지만 고개를 조용히 주억거렸다.


"박사도 이 노래는 알고 있을 거야. 내가 완전 어렸을 때 노래거든."


안젤리나가 스스럼없이 이어폰 한쪽을 내게 선뜻 건네주었다. 안젤리나도 그 옆에 서서 남은 이어폰을 자기 귀에 꽂고, 장치를 만져서 음악을 재생시켰다. 이제 보니 여우 귀도 있고, 사람 귀도 있구나. 저러면 좀 더 잘 들으려나? 아, 그러고 보니 양쪽에 이어폰을 끼고 있었는데도 내가 불렀을 때 제깍 대답했지.


잡음과 함께 들리는 음악은 빠른 템포의 기계음 반주에, 정반대로 힘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담담히 응원하는 가사였다. 


"이런 그룹도 있구나."


음악을 듣는 취미는 달리 없다 보니 어떤 음악이 유행인지, 어떤 음악이 흘러갔는지 전혀 감각이 없다. 체스랑 뭘 먹는 것 말고는 인생에 낙이 그닥 없었고.

그나마 오퍼레이터들 몇 명하고 떠드는 정도?


"응? 박사는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15년인가? 됐다고 하더라고. 이제 테이프 구하기도 힘들 정도라던데."


"15년....미안해, 안젤리나. 나 그때 기억이 하나도 없는데."


"아....맞다."


내 말에 안젤리나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란히 서서 음악을 듣고 있는데도 당황한 게 눈에 보일 정도다.


"미안, 박사. 괜한 말을 했지. 아직 기억 못 찾았을 텐데."


"괜찮아. 그런 인식 안 하고 평범하게 대하는 게 좋으니까. 잊어버려."


하나하나 사과할 필요도 없고 악의없는 선에서 장난으로 넘겨도 될 텐데. 나름대로 친해졌다지만 안젤리나도 컴플렉스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민감한 나이대라서인지 이런 일이 꽤 잦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어떤 그룹이야? 이왕 말 나온 거 나도 좀 알면 좋을 것 같아서. 이야기 들으면 또 기억나는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응. 나도 이 사람들에 대해 막 팬들처럼 자세히 알지는 않아. 남자 둘에 여자 둘로 되어 있는 그룹이고, 멤버 한 명이 작사랑 작곡을 다 했어. 유행하는 노래보다는 오래 기억될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했었고, 그래선지 지금도 이 사람들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꽤 있어."


"배달 다니면서도 이거 들어?"


"그런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고. 배달 다니다 보면 이 음악 듣는 사람도 몇몇 있어. 그래서 일하다가 쉴 겸 해서 그거 이야깃거리로 떠들기도 해."


다행히도 화제를 돌린 덕분에 안젤리나도 다시 평소 텐션으로 돌아왔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콘서트에 데려가 준 이야기라거나, 테이프다 보니까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되감기와 빨리감기를 이리저리 해 가면서 곡이 어디에 있는지, 시작 지점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하는 게 번거롭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란히 서서, 음악을 들으면서 이야기도 같이 듣고 있다 보니 묘한 느낌이다. 음악 감상을 하면 조용히 음악에 집중한다는 인상이지만 이것도 신기한 경험이다.


"...."


게다가 이어폰이 길지 않아서 멀리 떨어져 서면 귀에서 빠질 것 같다. 그래선지 안젤리나가 한 발짝 붙어섰는데 엄청 가까워서, 가느다랗게 세워진 속눈썹까지도 눈에 보인다. 그 아래의 얼그레이색 바다는 한시도 내게서 떨어지지 않고, 내가 없는 곳에서 자신이 겪었던 즐거운 일들을 쉼없이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업 템포의 음악에 맞추어 쫑긋거리던 귀가 갑자기 불규칙하게 움직였다. 두어 번 그렇게 쫑긋거리더니 들떠서 수다를 떨던 입이 멈추고, 바깥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세웠다. 


"....?"


잠깐 그, 깜짝 놀란 듯한 행동과 표정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 전에 마천루에서 본 것 같은, 어른의 성숙함과 아이의 순수함이 조화롭게 섞인 모습에 귀에서 이어폰이 빼앗기듯 낚아채이는 것도 몰랐다.


"왜, 왜 그래?"


하지만 안젤리나는 대답하지 않고 내 등을 밀며 내 자리로 갔다. 언제 챙겼는지 한 손에는 서류 한 뭉치를 들고.

저항한다던지 뭐 어쩔 틈도 없이 도착하자마자 사무실 문이 딱 열렸다.


"박사님. 켈시 선생님이 이거 작성해 달라고 하시는데...."


검은 토끼 귀가 쫑긋거리면서 사무실에 들어왔다. 어떻게 들고 온 건가 싶은 두꺼운 서류뭉치를 품에 안고, 놀란 듯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서류 뭉치를 한 손에 들고 내 등을 떠밀고 있는 안젤리나,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쭉 밀려서 내 자리까지 온 나.


"? 두 분 뭐 하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어....그게 말이지."


뭘 하다가 이렇게 됐다고 해야 할까. 안젤리나의 음향장치로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안젤리나가 등을 떠밀어서 내 자리로 왔다고?

솔직히 말하면 그래도 반이라도 간다. 하지만 누가 들어도 농땡이를 부렸다는 걸로 보일 거고, 안젤리나를 끌어들이는 꼴밖에 안 된다.


그 "쉬시면 안 돼요"는 나 혼자 듣는 걸로 충분한데 말이지.


"있지, 있잖아? 아미야. 내 얘기 좀 들어봐. 박사는 내가 영 못 미덥나 봐. 괜찮다고 하는데도 잘 되고 있냐면서 몇 번이나 오는 거 있지? 나 혼자 잘 할 수 있는데 오랜만에 한다고 못 맡기겠다는 거야, 뭐야?"


어? 이걸 이렇게 둘러댄다고?

거기다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가 180도 바뀌어서는, 완전 못마땅하다는 듯한 말투와 표정까지. 방금 잠깐 보았던 매혹적인 표정이 꿈인 것 같다.


"아아, 박사님이 잔걱정이 많으셔서 그래요. 박사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보다 나이도 많은 분이고, 다른 일도 했었으니까 잘 하실 거에요."


그리고 이걸 속는다고?


"알겠어. 잘 안 되면 물어보고."


"괜찮다니까 그러네."


"그래서, 아미야. 이건 언제까지 해야 돼?"


안젤리나가 자리로 돌아가고, 아미야가 대신 내 자리로 와서 서류뭉치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검은 건 종이고 흰 건 글씨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눈과 귀에 쏟아지는 흑백 줄무늬를 대충 흘려듣다가, 흘끗 안젤리나를 보았다.


재밌는 것이라도 보는 표정으로 턱을 괴고 이쪽을 보고 있었기에 제풀에 놀라 다시 서류뭉치로 시선을 돌렸다.

결국 이야기한 거 반도 못 알아들었다. 오늘도 제 시간에 끝내긴 글렀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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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이야


사일라흐가 나왔는데 다들 가챠 결과는 만족스러운가


나는 환절기라 뭘 못하겠더라

일년에 몇 번 정도 오는 코 짤라버리고 싶은 시기...



요번 에피소드는 야자시간에 이어폰 꽂고 옆자리 놈이랑 붙어서 음악 듣다가 후다닥 했던 것에서 착안했음

벌써 그런짓한게 10년이 넘었네 와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