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똑바로 들어요, 박사님!"

"그, 저기, 반성하고 있으니까....."


아미야는 분노한 채로 손에 붕대를 감은 박사를 무릎꿇려 놓고 있었다.

"반,"

퍽!

"성,"

퍽!

"을,"

퍽!

"하...."

턱.


".....잡아요?"

"그, 저기, 아프니까....."

"아, 예, 그래요. 아프시겠죠. 왜냐하면 창문에서 그 얼굴이 보인다며 온 창문을 다 손으로 깨고 다니셨으니까!"

박사가 이성을 잃었는데 하필이면 컨트롤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게 화근이었다.

평소에 보던 코스믹 호러 소설이 안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는지 돌아다니며 유리란 유리는 다 깨먹고 다닌 결과,

로도스는 자금에 영향이 갈 정도의 손해를 입었다.

"......"

"후......"

아미야는 박사의 머리를 때리던 서류철을 펼쳐 박사의 눈 앞에 들이댔다.

"자, 보세요, 박사님, 이건 깨진 유리 제거 및 청소비용, 이건 새로 주문하는 유리창 가격, 이건 설치할 때 드는 작업자 일당, 이건 치료비에요."

"......"

"박사님이 무급으로 일해도 50년쯤 일해야 갚을까? 수준이에요. 갚는다가 아니라."

"......"

"아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에요? 지난번에는 서류철로 종이비행기를 접지 않나, 스즈란한테 들이대다 두들겨 맞지 않나,"

"스즈란은 이성 회복을 위해서였....."

찌릿-

"넵."

"후......."


툭.

"사인해요."

".....?"

"하라고요."

아미야가 손에서 아츠를 보여주자, 박사는 허겁지겁 펜을 들고 사인을 했다.

".....근데 이거 뭐-"


서 약 서


나  박사는 로도스 아일랜드에 입힌 피해를 배상하기 위해

오퍼레이터들의 피로 회복과 심신 안정을 위한 지속적인

개인 면담권 판매 동의 및 해당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것임을 맹세합니다


                                                            서명 독 타


"......."

"네, 됐습니다. 그럼-"

"잠깐, 아미야."

박사는 긴급히 아미야의 호출을 막았다.

"그, 저기, 아미야양? 여기 모든 일에 대한 책임....."

"아, 참, 그렇죠. 공지에 추가해주세요. 망가지지 않게 써달라고요.

"망가지지 않게?!"

-예, 알겠습니다.

"잠까아아아아아안!!!!!"


박사의 절규도 소용없이, 다음날 로도스 사내 계시판에는 새로운 공지가 걸렸다.

"어머, 슈바르츠, 이것 좀 보세요."

"무슨 일이길래 그러십니까, 실론 님-"


박사 개인 면담권 판매

가격: 문의 요망


"....또 무슨 헛짓거리를. 가죠, 실론 님. 실론 님?"

"예, 그럼 지금 집무실로...."

"실론 님?"

"가죠, 슈바르츠."

실론은 슈바르츠를 데리고 박사의 집무실로 향했다.


덜컹-

"아, 아미야? 내가 미안하니 제발 그-"

".....박사님?"

"...어? 어.... 실론이랑 슈바르츠구나....."

서류에 둘러쌓여 이성을 잃기 전 타이밍 좋게 두 사람이 왔다.

"개인 면담권 구매 때문에 왔답니다."

".....잠시만. 잠깐 거기 앉아있어."

박사는 둘을 앉혀놓고 아미야를 호출했다.


".....아미야. 너 내일부터 판다고 하지 않았어?"

-어머, 죄송해요, 박사님. 청소비 지급이 늦어질까봐 급하게 팔았네요.

"야 너 어제 보여준 거 영수증이었"

-뚝-


"후....."

"혹시, 뭔가 잘못된 거라도 있나요?"

"아니야, 앉아. 차는...."
"제가 끓이겠습니다. 실론 님께서 드시는 차는 아무거나 끓일 수 없지요."

"아니, 그냥 내가 끓일게. 손님인데 아무렇게나 대할 수는 없지."

"그렇다네요. 슈바르츠."

"....알겠습니다."


둘을 등 뒤로 하고, 박사는 포트에 물을 올렸다.

"참고로 말하지만, 티백 홍차다."
"그런 걸 실론님한테-

"음, 어쩔 수 없죠."

"......"

두 번이나 실론에게 제지당한 슈바르츠는, 차가 나올때까지 실론 옆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자, 여기. 찻잔은 없지만."

"고마워요, 박사님."

차를 내온 박사가 앉아서 자신도 한 잔 마시려는 때, 슈바르츠에게 눈이 갔다.

슈바르츠는 차를 마시는 실론 옆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슈바르츠?"

"왜 그러십니까, 박사님."

"아참, 깜빡했네요. 슈바르츠."

"시, 실론 님, 여기서-"

실론은 슈바르츠의 컵을 들고 후 불어 홍차를 식혀 주었다.

"죄송해요, 슈바르츠가 필라인 족이라 뜨거운 것을 잘 마시지 못해서 제가 식혀준답니다"

슈바르츠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옆에 앉아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박사는,

"쿠쿡......"

결국 참지 못했고.

쾅-

"슈, 슈바르츠?!"

1분간 잠시 기절 상태가 되었다.



"......사님, 박사님?"

"....으음....아미야....그만...."

"박사님!"

"일.....어.....실론이구나."

박사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본 광경은 당황한 실론과 얼굴이 빨갛다 못해 폭발 직전인 슈바르츠였다.

"정신이 드세요?"

"죄송합니다 박사님......."

슈바르츠는 연신 박사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늘 일은 비밀로 해줄게."

"평소에는 그냥 식혀 마십니다......"

"......믿어줄게."

아닌 것 같았지만.


잠시 정신을 차린 후, 박사는 집무실 쇼파에 앉아 둘과 대면했다.

"그래서, 이걸 산 이유는?"

"음, 재미있어 보여서이기도 하지만, 티 파티에 손님이 없어서겠죠?"

"티 파티?"

"그렇답니다, 혼자 마시는 건 지루하잖아요? 그러니 오늘 하루는 손님이라도 모시고 마시는게 어떨까 해서 사봤답니다."

"흐음......"

박사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원칙적으로는 내가 업무중이란 말이지."

"그거라면 걱정 없어요. 살 때 설명을 들었거든요."

"....? 뭐?"

"어머, 이야기 못 들으셨나요?"


1시간 전.

-구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론 님.

"후후. 그럼-"

-유의사항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하나, 유효기간은 익일 출근 시간 전까지입니다.

둘, 박사와 동반할 수 있는 인원은 1인까지로 제한됩니다.

셋, 박사를 데리고 로도스 아일랜드 외부로 나가는 것은 괜찮지만, 만일 박사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경우, 해당 사항에 대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넷, 망가지지 않게 사용해달라는 아미야씨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이상인가요?"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지금.

"그렇다고 하네요, 박사님."

"나가도 된다는 건가....."

박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가자."

"얼마든지요. 슈바르츠?"

"미리 준비해놨습니다. 실론 님."

"그럼...."

셋은 실론의 개인실로 이동했다.


"오오....."

박사의 눈 앞에는 다과와 찻잔이 준비된 테이블이 있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마시는 건가?"
"아뇨, 오늘은 특별히 박사님을 위해 준비했어요."

"이쪽으로 앉으시죠. 박사님."

슈바르츠의 안내를 받아 박사는 자리에 앉았다.

"곧 차를 내오겠습니다."

"슈바르츠가 홍차를 탄다라."

"후후, 저와 티 타임을 할때 처음에는 제가 차를 타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타지 뭐에요? 의외로 우아한 구석이 있어요."

'아니, 그건 우아한 구석이 아니라 떨떠름한 구석이겠지.'

"크흠. 그래서, 오늘 가져온 홍차는 어떤 종류야?"

"얼 그레이입니다. 실론을 베이스로 한 차입니다."

"어, 실론은...."

"맞아요, 제 코드네임이죠. 본명이기도 하고요."

"실론님께 사다드렸더니 좋아하셔서 자주 사오고 있습니다."

"흐음."

박사는 차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과자에 손을 뻗었다.

"박사님, 다과는 차가 나온 이후에 같이 드시는게 어떨까요?"

"어? 어, 그래. 그럴게."

"실례합니다. 박사님."

마침 타이밍 좋게 슈바르츠가 찻주전자를 가져왔다.

슈바르츠가 홍차를 세 잔 모두에 따르고, 셋 모두 자리에 앉았다.

"그럼....."

"잠깐만요, 박사님, 혹시 밀크티로 드실 건가요?

그렇게 말하며 슈바르츠와 실론은 차에 우유를 부었다.

"....그래, 나도 부을게."

우유를 살짝 넣은 후, 박사는 홍차를 입에 갖다댔다.

부드럽고, 뒷맛이 쌉싸름한 느낌.


".....괜찮은데."

호로록-

"여기 마카롱도 같이 드셔보시겠어요?"

"그러지."

마카롱을 입에 넣고, 홍차를 입에 들이키는 순간, 박사는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잠깐, 왜 이렇게 몸이.....'

따뜻한 걸 마시고 누적된 피로가 확 왔다기에는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순간이었다.

"저기, 실론......"

그 말을 들은 순간, 실론과 슈바르츠의 표정이 변했다.

무언가 말하려고 했으나, 서서히 눈꺼풀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너....희....."

"슈바르츠, 박사님이 피곤하신 거 같은데, 침대를 준비해주겠어?"

"맡겨만 주십시요. 실론 님."

"무........슨......"

"주무세요, 박사님."


"다시 눈을 떴을 때 여기라는 보장은 할 수 없지만요."


마지막으로 박사에 눈에 들어온 건, 두 명이 천천히 일어나는 모습과, 두 명 앞에 놓인 가득 찬 찻잔이었다.




다음 편에는 70%의 확률로 야스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