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이 필요하다.

사람은 자극을 갈구하며 자극에 자극을 위한 자극에 의한 삶을 살아가는 법이었다.

무료한 나날에서도 자극은 언제나 존재해왔고 나는 그것을 위해 살아가지는 않다고 할 수는 없지는 않았다.

오늘은 다행히도 작전이 없었다. 서류작업이 끝난다면 그저 간단한 검사 후에 주어지는 자유시간을 만끽하는 거다.

소용돌이 치는 인파 속은 어지럽다. 입은 웃고 눈은 울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어지럼증에 나는 물결쳤다.

항상 검은 색이라는 것은 슬펐다. 그게 내가 입는 옷이라서 더 슬펐다.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헬멧마저 검은 색으로 덧칠된 나는 매 순간마다 그러한 기분을 느꼈다. 그림으로 덧칠한 망상과 그 사이에 새겨진 현실들을 본 소설가의 기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극이 삶의 이유라는 것은 틀렸다. 나는 매 작전마다 다시 느끼지 못할 것 같은 자극을 수십, 수백번이나 느꼈다.

어디선가 전장을 지휘하는 것이 마치 지휘자가 지휘봉으로 악단을 지휘하는 것 같다는 연출을 보았고 나는 그날 구토했다.

아마 그 날이었나 혹은 어제, 잘 알고 지내던 오퍼레이터가 사라졌던 것 같다. 아마도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는 것은 매순간 나에게 그 망할 자극을 부여해주는 것 같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면 사람들이 감탄하는 선율이 흘러나오지만 내가 지휘봉을 든다면 고통과 비명, 그리고 증오로 얼룩진 저주와 악담, 그리고 가득 메우는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코끝을 스치우면 그 소식의 전달자는 항상 흐릿하면서도 확실한 혈향을 함께 데려왔다.

온몸을 가린 코트와 그것으로도 모자라 검은 색으로 덧칠된 헬멧을 24시간 365일 1년 동안 써본 적이 있는가.

여름에는 죽을 맛이었다만 겨울은 꿀맛인 옛 염국 속담 인생사 새옹지마를 실천해주는 훌륭한 옷차림이자 나를 다른 이로부터 가려주는 훌륭한 벽이 되어준다.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관계구축의 고통을 아는가? 택배를 배달하는 늑대와의 대화는 항상 곪아터진 상처에 담뱃불을 지지는 느낌이었다.

비명을 지르고픈 고통 속에서도 미소를 지어야한다니 이 얼마나 참신한 고문이 아닌가.

이 헬멧 속에서 보는 세상은 정말이지 시꺼멨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시꺼먼 세상은 구별과 분간을 흐릿하게 한다.

뼈와 피, 살점이 난무하는 전장이라는 것은 황홀하다. 마치 이것을 위해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나는 증오하면서도 정말 열심히 했다.

폐부를 찌르는 오리지늄이 뒤섞인 공기로 호흡하고, 머릿속에는 쓸데없는 정보로 가득차 퍽이나 중요한 인물이었다.

쿵쿵 뛰는 심장은 금방이라도 식어 멈출 것만 같은데 허상을 신봉하고 공상에 매달리는 사람에게 현실은 언제나 현실로서 자리했다.

당연하다는 것이 싫어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끙끙대며 잠드는 밤공기는 차디찼다. 어둠을 틈타 침대 밑으로 숨어드는 잔상은 언제나 내 목을 옥죄었다. 붉은 색과 검은 색만이 내게 보이는 전부이니 사실 나는 색맹이었다. 흑백도 아닌 흑적색맹이라는 새로운 병명을 정해보았다.

음.... 그런건가.... 하고 그 녀석은 흥미롭다며 연구하려 나를 해부해보겠지, 해부당하며 보는 마지막 천장은 무슨 색일까. 흑색과 적색의 양자택일 중에 병원의 천장은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 의문문으로 끝나는 문장은 항상 나를 괴롭혀왔다.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 왜 짓껄이는 것인가. 무지몽매한 사람을 계몽하는 것은 항상 그보다 높은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높은 사람은 항상 존재하기에 섣불리 단정짓지 못하고 의문형을 적는 나는 미숙한 어린 아이.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푸는 것은 어렵기에 베는 것을 선택하고 베어낸 실타래가 이어질 일은 영영 없다.

선택은 순간이고 대가는 영원히 짊어져야 한다. 손짓 하나, 말 한 마디에 어깨에 짊어질 짐이 추가되는 처사는 불합리 했다. 불합리하고 부조리, 모순이 뒤엉켜있지만 기이하게도 그 난장판이 모순이 아니라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괴로움과 고통스러움의 약간의 간극 사이를 넘나들며 둘을 동시에 만끽하고 동산의 저편을 동경할 때 쯤에는 이미 나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매일 나가기만 하면 초고화질의 싸구려 스너프 비디오를 보는 내 기분을 이해하는가? 천직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나 싫어하면서도 결국 지휘봉을 잡고 지휘를 시작하는 나는 천성이 지휘자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원했던 것은 카시미어의 니어가 샤이닝을 죽이고 죽인 샤이닝이되살아나스카디와수르트가뒤엉켜머리를잡아뽑는몬3터가켈시를다루고세상이뒤엎어리유니온이체르드보그의황제를살해하지않는미래는오지않는다면우르수스의아이들의수학성적에관한고찰과탐색을담은리포터가메피스토에게.........



"박사."


"박사, 일어나라."



흐릿해진 시야 저편으로는 녹색의 무언가가 형체를 갖추었다.


"흐음.... 동공반응은.... 정상이고, 아 일어났는가."


"오리지늄 금단현상이라. 이 전세계에 하나뿐일지도 모르는 희귀병 환자라 그런지 취급이 꽤 어려워."


"병명을 붙인다면 오리지늄 중독쯤이 되려나."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는 여러가지 기계들의 수치를 탐색하며 말을 붙였다.

입에서는 힘없는 목소리로 재미없는 농담이 새어나왔지만 딱히 별 반응이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무슨 즐거운 꿈이라도 꾸었나?"


입꼬리가 쭉 째지며 눈까지 올라가는 적색의 인영은 내게 질문했다.


꿈 속의 꿈, 몽중몽.

내 인생은 폐허 속에 파묻힌 액자식 구성.


내가 원했던 것은 한줌의 재가 쌓아올린 방주였나보다.